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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능력을 체험하는 길 (잠언 4 : 20∼22)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나의 이르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말며 네 마음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잠언 4 : 20∼22)
우리는 체험을 통해서 볼 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우연한 일이란 결단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여러분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합시다. "내가 13년 전에 모래사장이면서 갈대가 무성한 여의도 벌판에 나와서 보니 갑자기 땅이 평지가 되고 그 갈대밭이 다 정지되고 그 다음 거기에 여의도순복음중앙교회라는 거창한 교회가 우연히 섰다. 그리고 우연히 선 그 교회에 해마다 사람들이 구름떼같이 모여와서 구 원을 받아 13년 후에는 20만 명의 성도가 되었다. 이것은 사람이 한 일도 아니고 단지 우연히 이런 일이 일어났다." 내가 이렇게 말한다면 누구든지 아마 가소로워 하며 웃을 것이요, 조용기의 정신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처럼 한 교회를 세우는 것조차 우연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하물며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별들이 있는 이 광활한 우주가 우연히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비상식적·비이성적이요, 어리석기 그지없는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3장 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지으셨다고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집마다 지은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여러분, 건축자 없이 우연히 지어진 집을 보았습니까? 지극히 작은 집 한 채라도 건축자가 있듯, 우주 만물에도 창조주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성경에는 이 우주 만물을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지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한복음 1 : 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복음 1 : 14)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쓰고 오신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늘과 땅이 지어지고 그 가운데 있는 삼라만상이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3년 반 동안 사역을 하셨는데, 이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역사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님 안에서 살아 움직여 죄인의 죄를 용서하시고,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을 고치셨으며 귀신에 묶인 자를 자유케 하셨고, 죽은 자를 살려 주시고 믿음, 소망, 사 랑, 영화, 행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 오늘날에 와서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에 기록해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성경의 말씀은 바로 천지만물을 지으신 위대한 하나님의 말씀이요,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나타나셔서 죄 를 사하시고, 병을 고쳐 주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흑암에서 광명을, 무질서에서 질서를, 절망에서 소망을 주신 위대한 말씀입니다.
그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성경의 말씀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성경의 말씀에서 예수님과 성령을 만날 수 잇습니다. 하나님을 찾기 위해서 하늘에 올라갈 필요가 없으며 하나님을 찾기 위해서 땅을 파고 땅속에 들어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 하는 믿음의 말씀이라』(로마서 10 : 8)는 이 믿음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낄 수 있으며 역사하심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성경 66권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하면 현실 생활에 실제적으로 체험할 수 있느냐에 관하여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아무리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 해도 이 말씀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역사와 능력을 체 험하지 못하면 이 말씀은 '그림의 떡'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을 보고고 읽기만 할 뿐 영혼의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며 생명을 얻되 넘치는 얻는 실제적인 역사는 그냥 흘려 보내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말씀'이 실제 생활에 나타나게 하는 길을 제시 하려고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이 바로 잠언 4장 20절부터 22절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나의 이르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말며 네 마음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바로 이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생에 속에서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말에 주의하며
먼저 성경에는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 무소불능, 무소부재하신 분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단번에 전체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문제로 하나님을 만나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죄로 고민하는 사람,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 그렇 지 않으면 사업의 실패로 고민하는 사람,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지 못해 괴로워 몸부림 치는 사람……. 이렇게 여러가지 문제로 고통 당하며 하나님을 만나고자 할 때는 바로 그 문제에 대하여 역사하시는 약속의 말씀을, 고난 당하는 사람은 평안의 말씀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는 약속의 말씀과 은혜의 말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만나려고 하면 나에게 현실적으로 적합하고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서 그 말씀에 주의를 기울어야 합니다. 어지럽고 산만한 마음의 태도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 께서는 말씀 안에서 우리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서 내게 필요한 말씀과 만날 때 그 말씀을 통하여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므로 말씀과의 만남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어떤 사람과 만나고자 할 때 시간과 장소를 미리 약속합니다. 그리고 시간과 장소가 맞추어 만나고자 하는 사람을 만나며 그 사람한테만 주의를 집중하고 대화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는 것도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단정히 앉아서 하나님의 말씀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준비가 없이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전능하신 능력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나의 이르는 것에 귀를 기울이라
하나님의 말씀을 만났으면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문자로 기록된 성경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육신의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마음으로 듣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말씀 을 통해서 내게 무엇을 가르치고자 원하시느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을 하면서 말씀과의 만남을 통하여 성령께서 마음속에 분명한 음성을 들려주실 때까지 시간을 내어서 귀를 기울이십시오. 성령의 고요하고 잠잠한 음성이 마음의 귀에 부딪쳐와서 영혼을 뒤흔들어 놓고 믿음을 불러일으킬 때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를 집중하면서 귀를 기울이고 또 기울이십시오.
나는 콩고 선교사로 갔다가 간암에 걸려서 사형 선고를 받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던중 기적을 체험한 어느 목사님의 간증을 읽어본 일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은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치료할 수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이렇게 보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아내를 시켜 침대를 양지쪽으로 옮겨놓도록 하고, 따뜻한 햇빛을 받으면서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 분은 콩고 선교사로 나가서 일할 정도였으므로 성경은 일생을 통하여 수십 번 읽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목사님이 읽은 말씀이 베드로전서 2장 24절이었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 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목사님이 여기까지 읽자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친히 나무에 달려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셨다는 말씀이 너무나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목사님은 눈물을 흘리며 다음 성경구절에 주의를 집중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갑자기 눈이 번쩍 뜨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거기에는 분명히『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베드로전서 2 : 24)라고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이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러자 성령의 음성이 목사님의 마음속에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인간의 질병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고 그 무서운 형벌을 대신 감 당하기 위해 빌라도의 뜰에서 무자비한 로마의 군인들에게 등허리가 갈기갈기 찢어지도록 채찍을 맞았다. 그리고 찢어진 내 등허리에서 선지피를 흘렸다. 질병은 복이 아니라 형벌이다. 내가 너를 대신해서 형벌을 받으려고 채찍을 맞았는데 왜 네가 또다시 형벌을 받으려고 하느냐? 이제 너는 나를 믿는 그리스도인이다. 내 안에서 네 형벌이 청산되었으니 형벌을 받을 필요가 없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는 이 말씀을 믿느냐?" 성령의 이 음성을 듣자마자 목사님의 영혼 깊은 곳에 믿음이 넘쳐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 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로마서 10 : 17). 그 때문에 말씀을 통해 성령의 음성을 마음속에 들 으면 믿음이 생기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믿음이 없는 이유는 그 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하여 귀를 기울이지 않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콩고 선교사로 나갔던 그 목사님은 말씀에 집중적으로 귀를 기울인 결과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이제 병자가 아니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 즉시 목사님은 부인을 불렀습니다. "여보, 내 옷을 가져다주시오."
갑자기 돌변한 목사님의 태도에 부인은 의아스런 눈빛을 하며 물었습니다. "아니, 왜 그래요?" 그러자 목사님은 활기를 띤 목소리로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이 성경말씀을 보시오.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얻었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소. 물론 나는 이 말씀을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 말씀에 전심으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소. 그런데 오늘 이 말씀을 내 것으로 받았소. 나는 이제 믿을 수 있소. 나는 간암 환자가 아니오, 나는 정상 인이요. 정상인이 왜 드러누워 있어야 하겠소? 그러니 나는 일어나 활동해야겠소." 그리고 목사님은 부인이 말리는 것도 뿌리치고 일어나 활동하기 시작했고 곧 간암에서 고 침받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역사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약속의 말씀을 그냥 지나치면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 때문에 요한계시록을 보면 주님께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말씀하실 때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요한계시록 3 :22)라고 하신 것입니다. 글자 그대로만 읽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것에 구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기 위해서는 묵상이 필요합니다. 성령 께서 말씀을 통하여 무엇을 가르쳐 주시는가를 깊이 묵상하며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영혼에 세미한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이 음성을 들을 때 믿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고린도후서 3 : 6)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말며
그 다음에는 "네 눈에서 떠나게 말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야, 이거 큰일났구나. 성경말씀을 눈에서 떠나게 말라니 그럼 성경을 들고 다니면서 언제 나 말씀만 보아야겠구나. 길거리에서도, 사업을 하면서도, 집안에서도, 앉으나 서나 계속 성경을 들고 바라보고 있어야겠으니 낭패로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눈에서 떠나게 말라는 것은 상상의 눈으로 그 말씀이 이루어진 결과를 그려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세기 13 : 14, 15)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땅을 보고만 있으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동서남북을 바라보고 난 다음 이것을 마음에 받아들이고 이미 소유한 것을 상상의 눈으로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에 집중하고 성령의 음성을 들었으면 이제는 그 말씀이 이루어져 '내 것'이 된 모습을 분명히 그려 놓아야만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말씀에 집중해서 얻은 믿음을 통해 영롱 한 천연색으로 이미 이루어진 모습을 마음의 캔버스에 그려 놓고 앉으나 서나 그것을 바라 보아야겠습니다. 성경에서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꿈과 환상을 통해 그려 놓은 것이 실제 생활에 이루어지는 자원이 되고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네 마음속에 지키라
그 다음에는 말씀을 마음속에 지켜야 합니다. 말씀을 어떻게 마음속에 지킬까요? 이제 말씀을 지키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로마서 10장 8절에 보면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고 하였고, 누가복음 6장 45절에는『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의 인격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면 끊임없이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입으로 계속 말하면 입으로 말하는 그 말씀이 내 마음에 간직되고 그것을 자꾸 시인하면 간직된 그 말씀이 더욱 강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적으로 귀를 기울일 때 성령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또한 그 말씀이 이루어진 모습을 영롱한 꿈과 환상으로 끊임없이 그리고 입으로 시인하게 되면 그 말씀은 언제나 우리가 지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네 과정을 통해서 여러분과 나는 말씀의 껍질을 벗길 수 있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 껍질 안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만나게 되어,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생활 속에 실제로 체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실천적인 예
그럼 여기에 대한 실천적인 예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빌립보서 4장 18절과 19절에 보면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실직당하고 사업에 실패한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 기적적인 체험을 하길 원한다면 바로 이 말씀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말씀 가운데 계시면서 우리와 만나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그러면 이제 이 말씀 앞에서 옷깃을 여미고 단정하게 앉아 주의를 기울여 봅니다. 다른 모든 잡다한 생각을 다 떨쳐버리고 이 말씀에 집중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립보서 4 : 19) 그 다음이 말씀을 통해 성령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귀기울여 봅니다. 그러면 곧장 성령의 음성이 들릴 것입니다. "이 사람아, 하나님께서는 너의 모든 생활의 자원이 되시는 걸 왜 모르는가? 사회 단체에, 직장에 사업장에 자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 자원이 있는 거라네. 풍부한 자원되신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지 않는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천국의 그 영광 가운데 한없이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워 주시겠다고." 이 음성을 듣고 우리는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원을 어떻게 개발하여 손을 넣을 수 있을까요?" 그러면 성령께서 다시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너는 마게도니아 교인처럼 하라. 마게도니아 교인은 바울 사도의 선교 사업을 위해 귀한 헌금을 거두어 예물로 드렸다. 이는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린 다음 하나님을 바라보면 너희 삶의 무궁무진 한 자원되신 하나님께서 하늘의 영광 가운데 풍성한 대로 네 모든 쓸 것을 채우신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라. 땅이나, 기업이나, 네 수단과 방법은 자원이 되지 않는다. 천지와 만물을 지으시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있는 것을 없게 하신 하나님만이 너희 자원이 되시니까 하나님을 바라보라." 성령의 이런 음성을 듣고 나면 영혼 속에 위대한 믿음이 생겨 이렇게 외칠 것입니다. "이젠 두려워할 것 없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신 것이 정말이다. 나는 이제 두려워하지 않노라! 사람과 환경이 내게 어찌 하리요!" 그 다음은 이 말씀을 눈에서 떠나지 말게 해야합니다. 영혼의 눈으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환경 가운데 풍성한 복을 채워 주시는 영롱한 꿈을 그려보고 또 그려보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입술로 시인함으로 이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 "하 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나의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 라."고 입술로 시인합니다. 집에서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채우시리라." 밖에서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채우시리라." 또한 고난 당할때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채우시리라." 이렇게 끊임없이 시인하면 하나님께서 분명한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믿은대로 될지어다!" 그러고 나면 즉시로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아 움직이면서 모든 생활 가운데 위대한 능력과 복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말씀을 소화시키면, 문자로 기록된 말씀이 아닌, 바로 '내 것'으로 얻어지게 됩니다. 이에 성경은 말합니다.『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잠언 4 : 22) 내 것이 되어야 내게 생명이 됩니다.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생명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온 육체의 건강이 되고 믿음, 소망, 사랑이 되고 승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의 생활이 일치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오셔서 놀라운 능력과 영광을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는 고아와 같이 버림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는 말씀을 가지고 계시며 이 말씀을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성령께서 함께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잠언에 있는 말씀대로 이 네 단계를 통해서 말씀과 성경으로 하나님과 만나고, 위대한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 니다.
출처/조용기목사 설교 중에서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나의 이르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말며 네 마음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잠언 4 : 20∼22)
우리는 체험을 통해서 볼 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우연한 일이란 결단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여러분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합시다. "내가 13년 전에 모래사장이면서 갈대가 무성한 여의도 벌판에 나와서 보니 갑자기 땅이 평지가 되고 그 갈대밭이 다 정지되고 그 다음 거기에 여의도순복음중앙교회라는 거창한 교회가 우연히 섰다. 그리고 우연히 선 그 교회에 해마다 사람들이 구름떼같이 모여와서 구 원을 받아 13년 후에는 20만 명의 성도가 되었다. 이것은 사람이 한 일도 아니고 단지 우연히 이런 일이 일어났다." 내가 이렇게 말한다면 누구든지 아마 가소로워 하며 웃을 것이요, 조용기의 정신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처럼 한 교회를 세우는 것조차 우연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하물며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별들이 있는 이 광활한 우주가 우연히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비상식적·비이성적이요, 어리석기 그지없는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3장 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지으셨다고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집마다 지은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여러분, 건축자 없이 우연히 지어진 집을 보았습니까? 지극히 작은 집 한 채라도 건축자가 있듯, 우주 만물에도 창조주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성경에는 이 우주 만물을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지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한복음 1 : 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복음 1 : 14)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쓰고 오신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늘과 땅이 지어지고 그 가운데 있는 삼라만상이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3년 반 동안 사역을 하셨는데, 이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역사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님 안에서 살아 움직여 죄인의 죄를 용서하시고,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을 고치셨으며 귀신에 묶인 자를 자유케 하셨고, 죽은 자를 살려 주시고 믿음, 소망, 사 랑, 영화, 행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 오늘날에 와서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에 기록해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성경의 말씀은 바로 천지만물을 지으신 위대한 하나님의 말씀이요,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나타나셔서 죄 를 사하시고, 병을 고쳐 주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흑암에서 광명을, 무질서에서 질서를, 절망에서 소망을 주신 위대한 말씀입니다.
그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성경의 말씀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성경의 말씀에서 예수님과 성령을 만날 수 잇습니다. 하나님을 찾기 위해서 하늘에 올라갈 필요가 없으며 하나님을 찾기 위해서 땅을 파고 땅속에 들어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 하는 믿음의 말씀이라』(로마서 10 : 8)는 이 믿음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낄 수 있으며 역사하심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성경 66권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하면 현실 생활에 실제적으로 체험할 수 있느냐에 관하여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아무리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 해도 이 말씀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역사와 능력을 체 험하지 못하면 이 말씀은 '그림의 떡'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을 보고고 읽기만 할 뿐 영혼의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며 생명을 얻되 넘치는 얻는 실제적인 역사는 그냥 흘려 보내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말씀'이 실제 생활에 나타나게 하는 길을 제시 하려고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이 바로 잠언 4장 20절부터 22절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나의 이르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말며 네 마음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바로 이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생에 속에서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말에 주의하며
먼저 성경에는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 무소불능, 무소부재하신 분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단번에 전체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문제로 하나님을 만나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죄로 고민하는 사람,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 그렇 지 않으면 사업의 실패로 고민하는 사람,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지 못해 괴로워 몸부림 치는 사람……. 이렇게 여러가지 문제로 고통 당하며 하나님을 만나고자 할 때는 바로 그 문제에 대하여 역사하시는 약속의 말씀을, 고난 당하는 사람은 평안의 말씀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는 약속의 말씀과 은혜의 말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만나려고 하면 나에게 현실적으로 적합하고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서 그 말씀에 주의를 기울어야 합니다. 어지럽고 산만한 마음의 태도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 께서는 말씀 안에서 우리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서 내게 필요한 말씀과 만날 때 그 말씀을 통하여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므로 말씀과의 만남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어떤 사람과 만나고자 할 때 시간과 장소를 미리 약속합니다. 그리고 시간과 장소가 맞추어 만나고자 하는 사람을 만나며 그 사람한테만 주의를 집중하고 대화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는 것도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단정히 앉아서 하나님의 말씀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준비가 없이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전능하신 능력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나의 이르는 것에 귀를 기울이라
하나님의 말씀을 만났으면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문자로 기록된 성경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육신의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마음으로 듣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말씀 을 통해서 내게 무엇을 가르치고자 원하시느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을 하면서 말씀과의 만남을 통하여 성령께서 마음속에 분명한 음성을 들려주실 때까지 시간을 내어서 귀를 기울이십시오. 성령의 고요하고 잠잠한 음성이 마음의 귀에 부딪쳐와서 영혼을 뒤흔들어 놓고 믿음을 불러일으킬 때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를 집중하면서 귀를 기울이고 또 기울이십시오.
나는 콩고 선교사로 갔다가 간암에 걸려서 사형 선고를 받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던중 기적을 체험한 어느 목사님의 간증을 읽어본 일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은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치료할 수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이렇게 보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아내를 시켜 침대를 양지쪽으로 옮겨놓도록 하고, 따뜻한 햇빛을 받으면서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 분은 콩고 선교사로 나가서 일할 정도였으므로 성경은 일생을 통하여 수십 번 읽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목사님이 읽은 말씀이 베드로전서 2장 24절이었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 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목사님이 여기까지 읽자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친히 나무에 달려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셨다는 말씀이 너무나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목사님은 눈물을 흘리며 다음 성경구절에 주의를 집중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갑자기 눈이 번쩍 뜨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거기에는 분명히『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베드로전서 2 : 24)라고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이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러자 성령의 음성이 목사님의 마음속에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인간의 질병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고 그 무서운 형벌을 대신 감 당하기 위해 빌라도의 뜰에서 무자비한 로마의 군인들에게 등허리가 갈기갈기 찢어지도록 채찍을 맞았다. 그리고 찢어진 내 등허리에서 선지피를 흘렸다. 질병은 복이 아니라 형벌이다. 내가 너를 대신해서 형벌을 받으려고 채찍을 맞았는데 왜 네가 또다시 형벌을 받으려고 하느냐? 이제 너는 나를 믿는 그리스도인이다. 내 안에서 네 형벌이 청산되었으니 형벌을 받을 필요가 없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는 이 말씀을 믿느냐?" 성령의 이 음성을 듣자마자 목사님의 영혼 깊은 곳에 믿음이 넘쳐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 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로마서 10 : 17). 그 때문에 말씀을 통해 성령의 음성을 마음속에 들 으면 믿음이 생기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믿음이 없는 이유는 그 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하여 귀를 기울이지 않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콩고 선교사로 나갔던 그 목사님은 말씀에 집중적으로 귀를 기울인 결과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이제 병자가 아니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 즉시 목사님은 부인을 불렀습니다. "여보, 내 옷을 가져다주시오."
갑자기 돌변한 목사님의 태도에 부인은 의아스런 눈빛을 하며 물었습니다. "아니, 왜 그래요?" 그러자 목사님은 활기를 띤 목소리로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이 성경말씀을 보시오.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얻었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소. 물론 나는 이 말씀을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 말씀에 전심으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소. 그런데 오늘 이 말씀을 내 것으로 받았소. 나는 이제 믿을 수 있소. 나는 간암 환자가 아니오, 나는 정상 인이요. 정상인이 왜 드러누워 있어야 하겠소? 그러니 나는 일어나 활동해야겠소." 그리고 목사님은 부인이 말리는 것도 뿌리치고 일어나 활동하기 시작했고 곧 간암에서 고 침받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역사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약속의 말씀을 그냥 지나치면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 때문에 요한계시록을 보면 주님께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말씀하실 때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요한계시록 3 :22)라고 하신 것입니다. 글자 그대로만 읽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것에 구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기 위해서는 묵상이 필요합니다. 성령 께서 말씀을 통하여 무엇을 가르쳐 주시는가를 깊이 묵상하며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영혼에 세미한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이 음성을 들을 때 믿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고린도후서 3 : 6)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말며
그 다음에는 "네 눈에서 떠나게 말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야, 이거 큰일났구나. 성경말씀을 눈에서 떠나게 말라니 그럼 성경을 들고 다니면서 언제 나 말씀만 보아야겠구나. 길거리에서도, 사업을 하면서도, 집안에서도, 앉으나 서나 계속 성경을 들고 바라보고 있어야겠으니 낭패로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눈에서 떠나게 말라는 것은 상상의 눈으로 그 말씀이 이루어진 결과를 그려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세기 13 : 14, 15)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땅을 보고만 있으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동서남북을 바라보고 난 다음 이것을 마음에 받아들이고 이미 소유한 것을 상상의 눈으로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에 집중하고 성령의 음성을 들었으면 이제는 그 말씀이 이루어져 '내 것'이 된 모습을 분명히 그려 놓아야만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말씀에 집중해서 얻은 믿음을 통해 영롱 한 천연색으로 이미 이루어진 모습을 마음의 캔버스에 그려 놓고 앉으나 서나 그것을 바라 보아야겠습니다. 성경에서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꿈과 환상을 통해 그려 놓은 것이 실제 생활에 이루어지는 자원이 되고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네 마음속에 지키라
그 다음에는 말씀을 마음속에 지켜야 합니다. 말씀을 어떻게 마음속에 지킬까요? 이제 말씀을 지키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로마서 10장 8절에 보면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고 하였고, 누가복음 6장 45절에는『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의 인격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면 끊임없이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입으로 계속 말하면 입으로 말하는 그 말씀이 내 마음에 간직되고 그것을 자꾸 시인하면 간직된 그 말씀이 더욱 강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적으로 귀를 기울일 때 성령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또한 그 말씀이 이루어진 모습을 영롱한 꿈과 환상으로 끊임없이 그리고 입으로 시인하게 되면 그 말씀은 언제나 우리가 지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네 과정을 통해서 여러분과 나는 말씀의 껍질을 벗길 수 있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 껍질 안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만나게 되어,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생활 속에 실제로 체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실천적인 예
그럼 여기에 대한 실천적인 예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빌립보서 4장 18절과 19절에 보면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실직당하고 사업에 실패한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 기적적인 체험을 하길 원한다면 바로 이 말씀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말씀 가운데 계시면서 우리와 만나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그러면 이제 이 말씀 앞에서 옷깃을 여미고 단정하게 앉아 주의를 기울여 봅니다. 다른 모든 잡다한 생각을 다 떨쳐버리고 이 말씀에 집중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립보서 4 : 19) 그 다음이 말씀을 통해 성령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귀기울여 봅니다. 그러면 곧장 성령의 음성이 들릴 것입니다. "이 사람아, 하나님께서는 너의 모든 생활의 자원이 되시는 걸 왜 모르는가? 사회 단체에, 직장에 사업장에 자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 자원이 있는 거라네. 풍부한 자원되신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지 않는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천국의 그 영광 가운데 한없이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워 주시겠다고." 이 음성을 듣고 우리는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원을 어떻게 개발하여 손을 넣을 수 있을까요?" 그러면 성령께서 다시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너는 마게도니아 교인처럼 하라. 마게도니아 교인은 바울 사도의 선교 사업을 위해 귀한 헌금을 거두어 예물로 드렸다. 이는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린 다음 하나님을 바라보면 너희 삶의 무궁무진 한 자원되신 하나님께서 하늘의 영광 가운데 풍성한 대로 네 모든 쓸 것을 채우신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라. 땅이나, 기업이나, 네 수단과 방법은 자원이 되지 않는다. 천지와 만물을 지으시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있는 것을 없게 하신 하나님만이 너희 자원이 되시니까 하나님을 바라보라." 성령의 이런 음성을 듣고 나면 영혼 속에 위대한 믿음이 생겨 이렇게 외칠 것입니다. "이젠 두려워할 것 없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신 것이 정말이다. 나는 이제 두려워하지 않노라! 사람과 환경이 내게 어찌 하리요!" 그 다음은 이 말씀을 눈에서 떠나지 말게 해야합니다. 영혼의 눈으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환경 가운데 풍성한 복을 채워 주시는 영롱한 꿈을 그려보고 또 그려보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입술로 시인함으로 이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 "하 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나의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 라."고 입술로 시인합니다. 집에서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채우시리라." 밖에서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채우시리라." 또한 고난 당할때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채우시리라." 이렇게 끊임없이 시인하면 하나님께서 분명한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믿은대로 될지어다!" 그러고 나면 즉시로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아 움직이면서 모든 생활 가운데 위대한 능력과 복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말씀을 소화시키면, 문자로 기록된 말씀이 아닌, 바로 '내 것'으로 얻어지게 됩니다. 이에 성경은 말합니다.『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잠언 4 : 22) 내 것이 되어야 내게 생명이 됩니다.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생명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온 육체의 건강이 되고 믿음, 소망, 사랑이 되고 승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의 생활이 일치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오셔서 놀라운 능력과 영광을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는 고아와 같이 버림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는 말씀을 가지고 계시며 이 말씀을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성령께서 함께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잠언에 있는 말씀대로 이 네 단계를 통해서 말씀과 성경으로 하나님과 만나고, 위대한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 니다.
출처/조용기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