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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혜사 성령을 받은 증거를 보이라 (요 14:16~17)
우리는 성령을 받아서 큰 권능을 발휘하여 병자를 고치려고 애쓰는 기독 신자들을 가끔 만나게 됩니다. 산에 올라가 기도하고 있던 어느 교인이 옆에서 기도하는 분의 기도의 내용을 들었는데 "주여! 제게 망짝만한 성령을 주시옵소서."하는 기도를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기독 신자 된 우리는 성령을 받았으면 실생활에서 사랑의 생활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이라"(갈 5:22)는 말씀이 있는 대로 사랑의 생활이 있을 때 성령 받은 증거라고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라"(요 14:16)고 말씀하셨습니다.
보혜사가 성령이라는 것을 본문에서 찾게 됩니다. "보혜사가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라"(요 14:16), "저는 진리의 영이라"(요 14:17),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7) 이상의 말씀은 보혜사가 성령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됩니다.
보혜사를 헬라어 원어로 '파라클레토스'라고 하며 이 뜻은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 부름 받은 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보혜사를 영문 성경 중에는 변호사, 위로자, 상담자, 협조자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기독 신자로서 보혜사 성령을 받았으면 변호사, 위로자, 상담자, 협조자로서 책임을 다하여서 보혜사 성령을 받은 증거를 보여야 하겠습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보혜사 성령을 받은 우리는 "사랑하기를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할 것입니다."(요일 3:18)
이제 "보혜사 성령을 받은 증거를 보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고자 합니다.
,b>첫째로, 우리는 허물이 있는 사람의 입장을 변호해 줌으로써 보혜사 성령을 받은 증거를 보여 줄 것입니다. 보혜사를 어느 영문 성경(N.E.B)에는 변호사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연약한 여자를 끌고 예수님께 와서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요 8:3~6)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예수를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 하는 심산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고 하셨습니다.
그 때에 모여든 무리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아 노인으로 시작하여 아이들까지 하나씩 하나씩 떠나가고 오직 예수님과 그 가운데 있던 여자만 남았습니다. 그 때에 악한 무리들에 의해서 간음죄로 돌에 맞아 죽을 수밖에 없었던 여자는 예수의 변호로 죽을 지경에서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 8:11)고 말씀하신 후, 그 여자를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분명히 그 여자는 주님이 자기를 위해서 변호해 주신 것에 감사 감격하여 일생 동안 주님의 제자로서 주님만을 정성껏 섬겼으리라고 믿습니다.
제가 춘천 중앙 교회에서 교역할 때의 일입니다. 춘천 지방에서 목회 하던 어느 교역자가 그 교회의 중직들에 의해서 부득이 교회에서 물러나야 할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그 때에 이 소식을 듣게 된 교회의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 청년은 그 교회의 장로님의 아들이었으며 신학생이었습니다. 그 청년은 그냥 있을 수가 없어서 교회의 임원들을 한 분, 한 분 찾아 뵙고 목사님을 위해서 변호하였습니다. 그 후 그 목사님은 몇 해 더 그 교회에서 목회를 계속하였습니다. 만약 그 청년의 목사님을 위한 변호가 없었더라면 목사님은 교회에서 쫓겨났다는 좋지 못한 소문이 퍼져서 목회 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을 뻔하였습니다.
보혜사 성령을 받은 기독 신자는 가정 식구나 이웃이나 친구나 교인들의 허물이 있으면 그 허물을 덮어 주고 잘못이 있으면 변호해 줌으로써 보혜사 성령을 받은 증거를 보일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고통을 받고 있는 분들을 위로해 줌으로 보혜사 성령을 받은 증거를 보일 것입니다. 보혜사를 다른 영문 성경(K.J.V)에는 위로자로 번역되어 있으며, 독일어 성경에도 위로자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보혜사 성령을 받은 기독 신자들은 병고와 사업의 실패와 자녀들의 불량한 생활, 또는 인격적으로 원만치 못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음으로 마음의 고통을 받고 있는 분들을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제가 잘 알고 있는 권사님이 아들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아들이 있는 방에 들어가서 서랍을 열어 보고 비관적인 글과 칼이 있겠지요. 깜짝 놀란 권사님은 그의 아들이 비관 끝에 자살하려는 뜻을 품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에 권사님은 아들에게 둘이서 경치 좋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자고 제의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제의를 받아 들였습니다. 그 이튿날 권사님은 아들과 여행을 떠났습니다. 두 사람의 여행은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하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권사님은 아들에게 어떤 고민이 있으면 주저 말고 이야기하라고 하였습니다. 권사님의 아들은 아버지에게 숨김없이 솔직히 다 자기의 고민하고 있었던 문제를 이야기했습니다. 권사님은 아들과 같이 기도했고 아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소망이 담겨 있는 위로의 말로 용기를 얻었습니다. 권사님의 아들은 그 후 열심으로 공부도 하였고 진실하게 믿음의 생활을 하였으며 지금은 미국에 가서 사업을 경영하면서 부모님 모시고 주안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로써 아버지의 아들을 향한 위로의 말씀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짐작케 됩니다. 우리 자신이 답답할 때,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아니하여서 고민할 때 "하나님은 나를 돕고 위로해 주시느니라"는 시편 80편17절의 말씀으로 용기를 얻게 됩니다.
죄인의 괴수였던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후, 회개하였고 즉시 예수를 구주로 증거 했으나, 많은 무리들이 계속 비난과 조소로 대하니, 고향인 길리기아 다소로 내려가서 기도와 명상으로 세월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바나바는 바울을 만나려고 다소에 가서 바울을 위로하였고 바울과 같이 안디옥에 와서 많은 사람들을 가르쳤고 세계적으로 복음을 증거 하는 터전을 닦아 놓았습니다. 만약 바나바가 바울을 찾아 위로해 주지 아니하고 두 분이 안디옥에 같이 와서 복음을 증거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과연 복음이 세계적으로 전파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로써 낙심한 한 사람을 위로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이같이 우리는 고민하는 분들을 위로해 줌으로써 보혜사 성령을 받은 증거를 보일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고민이 되는 문제를 갖고 상담하려고 우리를 찾는 분들에게 소망과 용기를 줌으로써 보혜사 성령을 받은 증거를 보일 것입니다.
보혜사를 어느 영문 성경(R.S.V)에는 상담자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밤에 바리새 사람 니고데모가 예수를 찾아와서 예수 그리스도와 상담의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무슨 문제로 상담하게 되었는지 잘 알 수는 없으나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는 말씀을 하신 것만은 확실합니다. 예수님과 상담이 끝난 후 니고데모가 완전히 변화 받게 된 것도 엄연한 사실입니다. 니고데모가 변화 받은 증거로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예수의 제자들은 다 도망쳐 버렸으나 공의회의 의원이었던 부자 아리마대 요셉과 공의회의 의원의 한 사람이었던 니고데모, 두 분이 예수의 시신을 안장하였습니다.(요 19:38~40) 이같이 놀랄 만한 사실은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를 찾아가 상담한 결과는 니고데모가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기독교 방송국의 생명의 전화의 담당자에게서 들은 말입니다. 전화로 상담해 오는 사람들 중에는 사랑했던 사람에게서 배신당한 사람의 사연이 제일 많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자연주의 작가인 헨리 데이빗 도로우는 "도시 생활이란 수백만의 고독한 사람들이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성령을 받은 신자들은 고독한 사람들이 다시 말해서 병고나 가정 문제나 자녀 문제나 취직 문제 등으로 우리에게 상담할 것을 청해 올 때, 그들에게 소망의 빛을 비춰 주어야 하겠습니다.
어느 교회에 진실한 기독 신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의 아들이 교인들과 많은 사람들로부터 문제 있는 청년이란 말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 청년이 어느 날 시온 교회의 담임자로 계시는 한승호 목사님과 상담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한 목사님은 그 청년과 상담이 끝난 후, 그 청년에게 "지금까지의 지내 온 얘기 중 다 들었는데 남자로 태어나 그만한 깡패짓 아니한 청년이 어디 있겠는가? 청년은 한 목사님의 희망적인 권면을 듣고 난 후부터 열심으로 공부하여 서울 Y대학에 24세에 입학하였습니다. 그가 4년간의 학업을 마치고 졸업한 후에는 현재 교사로서 모 고등학교에 봉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 신자 된 우리는 상담자의 책임을 다함으로써 보혜사 성령을 받은 증거를 보일 것입니다.
넷째로, 우리는 도움을 받아야 할 분을 도와줌으로써 보혜사 성령을 받은 증거를 보여 줄 것입니다.
보혜사를 다른 영문 성경(T.E.V)에는 협조자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보혜사를 공동 번역 성경에도 또한 일본어 성경에도 협조자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요한 복음 5장 1절에서 9절까지의 말씀에는 38년 된 병자가 주님의 권능으로 깨끗함을 받은 기사가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베데스다라는 못이 있는데 어떤 병자라도 베데스다 못의 물이 동할 때, 먼저 들어가면 병이 깨끗해짐을 받았습니다. 그 많은 병자들 중에 38년 된 병자가 있었는데 어느 누구 한 사람, 그 병자를 도와서 베데스다 못으로 인도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신 예수께서는 친히 그에게 가까이 가셔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시니 그는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요 5:8~9) 38년 된 병자는 예수의 도움으로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어린이들이 병들었을 때, 그리고 나면서 눈 먼 사람이나 죄인이라고 소외 된 사람들을 정성껏 도우셨습니다.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강도를 만나 있는 것을 다 빼앗기고 빈사 상태에 놓여 있는 그를 보고서 그냥 지나갔습니다.(눅 10:30~32) 이로써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 종교 지도자들에게서 사랑을 찾아 볼 수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 교회의 성도들은 과연 소외 된 분들과 불행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앞장을 서고 있는가를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무관심은 죄라고 합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도 피해간 제사장과 레위 사람만이 아니라, 우리들도 도움을 청하는 분들의 청을 듣지 않고서 그들의 청을 거절했다면 기독 신자 된 우리도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의 지도자들과 결코 다를 바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불행에 처해 있는 분들을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대로 도와줌으로써 보혜사 성령을 받은 증거를 보여 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보혜사 성령을 받았다고 병고치는 은사와 방언 하는 은사 받은 것 하나님께 감사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 받은 성도 여러분께서는
① 가정 생활과 교회 생활에 있어서 다른 분의 단점을 변호해 주는 변호사의 책임과
② 상처받고 고민하는 교인들과 가족 식구들에게 위로해 주는 위로자의 책임과
③ 혼자서 해결하지 못해서 그 어려운 문제를 상담해 오는 자녀들이나 교우님들에게 상담을 잘 해서 용기를 주는 상담자의 책임과
④ 사업의 실패 때문에 도움을 청하는 분들을 정성껏 도와줌으로써 보혜사 성령을 받은 증거를 보여주는 성도님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명관조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