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742
십자가를 자랑한다 (에베소서 2:11~19)
교회는 그 어떤 세상의 공동체 보다 뛰어난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공동체 내에도 알게 모르게 작은 장벽들이 있습니다. 교회도 그러한데 세상은 어떠하겠습니까? 인간사회에는 어디에나 크고 작은 장벽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장벽을 허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습니다. 유대인 크리스챤과 이방인 크리스챤이 사이의 장벽을 허물기 위해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등, 많은 교회를 다니면서 구제품을 얻어다가 예루살렘 교회가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와 이방 교회가 서로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해서 사도 바울이 수고한 것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가 되었느냐? 하나가 되기는 정말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노력 중에서 사도 바울이 깨달은 것은 에베소서 2장11-19절 말씀입니다. “멀리 있던 너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서로 갈라져있던 너희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막힌 담을 십자가로 허시고 너희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셨느니라.”
인간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하나 되게 하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고백합니다. 고린도전서 2장 2절 “내가 세상의 다른 것을 알지 않기로 했다. 내가 세상의 다른 학문으로 하나가 되게 하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내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것을 알지 않기로 결심했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6장 14절 “내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 고백 하면서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서로 갈라져있는 우리들, 벽을 쌓고 남남이 된 우리들을 화평케 하는 방법은 십자가 밖에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들의 마음이 갈라지게 되는 이유를 자기 자신에게서 찾습니다. 빌립보서 3장에 보면 “육체로 보면 낳은 지 팔일 만에 할례받은 사람이다. 순수한 이스라엘 사람이고 이스라엘 초대 왕을 배출한 베냐민 지파 사람이다.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다. 그리고 율법으로 흠이 없는 자다.” 이 정도로 사도 바울은 자기 자랑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내가 내 자랑으로 가득 차 있던 동안에 엄청난 벽을 세웠고 서로 적이 되게 만든 장본인이었고 이 모든 것이 나의 자랑 때문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자기 자랑에는 세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종족에 대한 자랑입니다. 성경을 보면 “나는 순수한 이스라엘 사람이다.” 종족에 대한 자랑이 이방인들을 깔보게 만듭니다. 두번째는 물질에 대한 자랑입니다. 물질에 대한 자랑은 가까운 형제 사이도 갈라놓을 정도입니다. 세 번째는 지식의 자랑입니다. 헬라 사람들은 지식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세상에서 자기들만큼 배운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들은 자기 자랑 때문에 화평도 깨지고 행복도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인간의 삶, 서로 갈등하고, 반목하고, 서로 담을 쌓고 이런 인간의 삶 속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평화와 행복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느냐? 사도 바울은 십자가 밖에는 없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 앞에서 예배드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십자가 앞에서 내가 죄인임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랑은 십자가가 되어야 합니다. 바로 십자가 밑에서 사도 바울은 “나는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내가 십자가 밑에서 탐욕이 무엇인지를 알았고 내가 십자가 밑에서 죄가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십자가 밑에서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 이상 축복된 일은 없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십자가 앞에 서게 되면 예수님께서 내 죄 때문에 달려있는 것이 보이고, 내 죄 때문에 희생당하신 예수님이 보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저 어린 양을 보라.” 지금까지는 십자가가 무슨 의미인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오늘 내가 십자가에서 내 죄를 깨닫고 보니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바로 내 죄 때문에 고난 받은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내 허물을 인함이고 그가 상함은 내 죄악을 인함입니다.
내가 오늘 구원받은 것은 내 공로가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 된 데에도 내 공로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 7절 “네가 하나님께 받지 않은 것이 어디 있느냐 네가 어떻게 하나님께 받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는데 네가 자랑하느냐” 우리의 자랑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랑할 것이 없으니 자랑 때문에 쌓여진 담들은 무너지게 되는 것이고 담들이 무너지니까 우리 사이에 평화가 이루어지고 주님이 원하시는 하나 됨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내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바라보시면서 우리의 자랑은 다 사라지고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십자가에 나 때문에 고난당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주님 앞에 더욱 더 겸손해지고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강용규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교회는 그 어떤 세상의 공동체 보다 뛰어난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공동체 내에도 알게 모르게 작은 장벽들이 있습니다. 교회도 그러한데 세상은 어떠하겠습니까? 인간사회에는 어디에나 크고 작은 장벽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장벽을 허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습니다. 유대인 크리스챤과 이방인 크리스챤이 사이의 장벽을 허물기 위해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등, 많은 교회를 다니면서 구제품을 얻어다가 예루살렘 교회가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와 이방 교회가 서로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해서 사도 바울이 수고한 것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가 되었느냐? 하나가 되기는 정말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노력 중에서 사도 바울이 깨달은 것은 에베소서 2장11-19절 말씀입니다. “멀리 있던 너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서로 갈라져있던 너희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막힌 담을 십자가로 허시고 너희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셨느니라.”
인간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하나 되게 하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고백합니다. 고린도전서 2장 2절 “내가 세상의 다른 것을 알지 않기로 했다. 내가 세상의 다른 학문으로 하나가 되게 하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내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것을 알지 않기로 결심했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6장 14절 “내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 고백 하면서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서로 갈라져있는 우리들, 벽을 쌓고 남남이 된 우리들을 화평케 하는 방법은 십자가 밖에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들의 마음이 갈라지게 되는 이유를 자기 자신에게서 찾습니다. 빌립보서 3장에 보면 “육체로 보면 낳은 지 팔일 만에 할례받은 사람이다. 순수한 이스라엘 사람이고 이스라엘 초대 왕을 배출한 베냐민 지파 사람이다.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다. 그리고 율법으로 흠이 없는 자다.” 이 정도로 사도 바울은 자기 자랑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내가 내 자랑으로 가득 차 있던 동안에 엄청난 벽을 세웠고 서로 적이 되게 만든 장본인이었고 이 모든 것이 나의 자랑 때문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자기 자랑에는 세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종족에 대한 자랑입니다. 성경을 보면 “나는 순수한 이스라엘 사람이다.” 종족에 대한 자랑이 이방인들을 깔보게 만듭니다. 두번째는 물질에 대한 자랑입니다. 물질에 대한 자랑은 가까운 형제 사이도 갈라놓을 정도입니다. 세 번째는 지식의 자랑입니다. 헬라 사람들은 지식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세상에서 자기들만큼 배운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들은 자기 자랑 때문에 화평도 깨지고 행복도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인간의 삶, 서로 갈등하고, 반목하고, 서로 담을 쌓고 이런 인간의 삶 속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평화와 행복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느냐? 사도 바울은 십자가 밖에는 없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 앞에서 예배드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십자가 앞에서 내가 죄인임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랑은 십자가가 되어야 합니다. 바로 십자가 밑에서 사도 바울은 “나는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내가 십자가 밑에서 탐욕이 무엇인지를 알았고 내가 십자가 밑에서 죄가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십자가 밑에서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 이상 축복된 일은 없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십자가 앞에 서게 되면 예수님께서 내 죄 때문에 달려있는 것이 보이고, 내 죄 때문에 희생당하신 예수님이 보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저 어린 양을 보라.” 지금까지는 십자가가 무슨 의미인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오늘 내가 십자가에서 내 죄를 깨닫고 보니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바로 내 죄 때문에 고난 받은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내 허물을 인함이고 그가 상함은 내 죄악을 인함입니다.
내가 오늘 구원받은 것은 내 공로가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 된 데에도 내 공로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 7절 “네가 하나님께 받지 않은 것이 어디 있느냐 네가 어떻게 하나님께 받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는데 네가 자랑하느냐” 우리의 자랑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랑할 것이 없으니 자랑 때문에 쌓여진 담들은 무너지게 되는 것이고 담들이 무너지니까 우리 사이에 평화가 이루어지고 주님이 원하시는 하나 됨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내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바라보시면서 우리의 자랑은 다 사라지고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십자가에 나 때문에 고난당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주님 앞에 더욱 더 겸손해지고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강용규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