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출20: 3)

얼핏 보면 본문이 다른 신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물론 우리들은 성경을 읽으면서 그 당시 사람들이 섬겼던 많은 신들을 보게 됩니다. 바알과 아세라는 그 대표적인 신으로 가나안 지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예배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른 신들의 존재에 대해서 긍정하지 않습니다. 고전8:4절에는 비록 하늘과 땅에 신이라 칭하는 존재들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우상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의 제 1계명에서 다른 신들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님과 대등한 또 다른 신이 아니라, 사람들이 다른 신들을 참 경배의 대상이신 하나님과 함께 세우는 것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모세 오경에 따르면 본문에서 말하는 다른 신들은 비록 사람들이 신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나무와 돌로 되었기 때문에 듣거나, 말하거나 보거나 먹지 못합니다. 결국 “다른 신들이 있는가?”라는 첫 번째 질문에서 우리는 다른 신들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손으로 만든 신들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거기서 사람의 손으로 만든 바 보지도 못하며 듣지도 못하며 먹지도 못하며 냄새도 맡지 못하는 목석의 신들을 섬기리라(신4:28)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은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고 계시며, 하나님만이 참 신입니다. 이 고백은 신구약 성경 전체의 핵심적인 전제입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은 서문에서 언급했듯이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해주신 분이시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하나님은 유일한 주님이시기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막12:28~30).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4~5)

우리는 이 고백에서 제일 먼저 “우상숭배”의 문제를 지적해야 합니다. 바알과 아세라가 그 당시의 우상이었듯이, 이 시대에도 하나님을 대신하는 많은 우상들이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절대성을 고백한다면 하나님외에 다른 어떤 신들도 우리에게 유효한 구원을 줄 수 없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나아가서 유일하신 하나님을 고백한다면, 곧장 선택의 문제에 있어서도 우상숭배의 맥락에서 원칙을 세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유일하신 참 신이심을 고백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겪는 일들 가운데 선택의 순간에 하나의 선택만이 남게 됩니다(이것은 배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마지막 유언적인 설교에서 하나님만을 선택할 것을 이렇게 요구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14~15)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은 both A and B의 문제가 아니라, either A or B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우리는 동일하게 다른 어떤 신을 섬길 수 없습니다. 또한 이것은 단순히 우상숭배의 범주를 넘어서 다른 가치에까지 확장됩니다. 마6:24절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맘몬(Mammon)과 하나님을 동시에 두 주인으로 섬길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형상을 만들어 섬기든, 아니면 어떤 가치를 하나님과 함께 병행해서 신봉하든 그것은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가장 심각한 죄악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만을 섬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가장 단순하고 일차적인 의미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신6:4~5절에서 하나님이 유일하신 분이시라는 선포를 한 후 곧장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선포했고, 예수님께서는 마22:34~40절에서 더 중요한 율법에 대한 질문을 받으셨을 때 확증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말입니다. 동일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할 뿐만아니라, 그분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기뻐서 잠을 이룰 수 없는 체험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랑한다는 표현은 단순히 이렇게 감정적인 선에서 종결짓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감정이 움직이지 않더라도 명령이기 때문에 사랑해야 하는 순간이 오게 됩니다(원수를 사랑함).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온전히 헌신하는 것이며, 비록 어려움이 있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한 그 섬김을 고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Love)이기도 하며, 또한 신실함(Faithfulness)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신실함으로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일하게 유일하신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말씀하신 이후 신6:6~6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가르치고 그의 말씀을 지키도록 명령하십니다. 신약 시대에 와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신실함(Faithfulness)은 십자가와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오직 여호와만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께서는 나보다 아비나 어미를 더 사랑하는 것은 내게 합당치 않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나아가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신6:4~9절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요구의 수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우리의 주인이 우리가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요, 그를 위해서 나의 십자가를 지고 순교의 자리까지 나아가려는 결단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신실함입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제 1 계명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는 우상숭배는 물론이거니와 우리의 삶의 모든 자리에게 주님의 주인되심을 고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 마음으로 주님만을 섬기기로 결단하는 것이요, 나누어지지 않는 마음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내가 온전하니 너희도 온전하라고 요구하실 때 이 요구가 단순히 윤리적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철저히 순종하는 온전함을 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노아가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사람이라고 칭함받은 것은 그가 죄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가 하나님께 온전히 초점맞춘 삶을 살았다는 뜻입니다. 나뉘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성경에는 다윗이 여러차례 범죄한 것들에 대해서 기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에 대해서 아주 후한 점수를 주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왕상9:4절에서 하나님은 다윗이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온전히 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는 인간이기에 실수하고 온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향해서 나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온전한 사람으로 받으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그는 영생을 얻는 법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지키라고 했을 때 이 청년은 자신있게 잘 지켰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재물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고 했을 때, 그는 근심하며 돌아가 버렸습니다. 온전하지 못한 마음(halfheartedness)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온전히 주님을 좇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취해야할 온전함은 실수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전 삶을 통해 하늘의 아버지께서 보여주신 성품과 동일한 성품을 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초점은 십계명의 제 1 계명에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우리 삶의 진정한 열쇠인 것입니다.

우리 안에 두 마음을 가지게 하는 요소들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어떤 결정을 할 때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만을 신뢰하지 못하고, 다른 고려사항들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과거 이스라엘이 바알과 아세라에 의해 유혹받았던 그 우상숭배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우리를 유혹하는 현대판 우상은 불교의 불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가치를 포기하고 세상 사람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물이 우리의 우상이기도 합니다. 인간관계가 우상이기도 하고, 아내나 자녀들이 우상이 되기도 합니다. 이성관계가 하나님을 향해 온전한 마음을 가지지 못하게 한다면 그것도 우상입니다. 학점이 우상이기도 하고, 세상에서의 성공법칙이 우상이기도 합니다. 무엇이 우리의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께 집중하는데 방해를 합니까? 그것은 단순히 조금 아쉬운 문제가 아니라, 십계명의 제 1 계명에 대한 명백한 죄악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하나님과 우상을 동시에 섬기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성경은 확언합니다.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만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께 최우선 순위를 두길 바랍니다.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법 앞에서 신실함을 보이기를 바랍니다.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

(제 94 문) 제 1 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요구하닌 것이 무엇입니까?

내 영혼의 구원을 사랑하는 만큼 온갖 우상숭배와 요술, 미신, 성자와 다른 피조물에게 기도하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그리고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만을 올바로 인식하고 그만을 신뢰하며, 모든 겸손과 인내로 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선한 것이 그로부터 나오며 마음을 다하여 그를 사랑하고 두려워하며 경외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그의 뜻에 대항하기 보다는 모든 피조물들을 기꺼이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 95 문) 우상숭배가 무엇입니까?

그의 말씀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신 참되고 유일하신 하나님 대신에 인간이 의지할 것을 고안해 내거나 만들어 놓는 것을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