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와 이단사이비 (베드로후서 2:1~3)

오늘은 이단경계주일입니다. 왜 한국교회가 이단경계주일을 지키는가? 그만큼 이단이 창궐하고 이단의 폐해가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에 교회의 부흥, 복음의 부흥도 있지만 이단사이비 세력의 확장, 그들의 온갖 비리와 범죄행위들이 또한 교회에 막대한 지장을 주고 있습니다. 이단사이비는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곡식 가운데 뿌려진 가라지와 같습니다. 복음이 흥왕하는 곳에 이단사이비도 함께 흥왕을 합니다. 교회역사가 그것을 증명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이렇게 이단사이비의 세력들이 오늘도 교회를 향하여 미혹을 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넘어뜨리고 있습니다. 이단사이비는 교회 안에서 발생을 많이 합니다. 그것은 교회가 반성할 일입니다. 교회 안에 이단사이비가 일어날 수 있는 모순, 부조리, 불신앙, 부패함, 부도덕함과 같은 것들이 있기 때문에 그 바탕에서 이단사이비들이 일어난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공격합니다. 교회의 틈을 노려서 그들은 교회를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대부분의 이단사이비들은 교회를 사탄의 집단으로 규정을 하고 교회의 성도들을 그 집단으로부터 구출하는 전도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우리는 불신자가 전도대상자이지만 이단사이비 집단들은 교회에 다니고 있는 교인들을 일차전도대상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을 찾아다니면서 전도를 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교리가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단사이비는 사회의 어떤 집단보다도 교회에는 적이고 경계해야 될 세력입니다.

이단운동은 악령의 역사이다

반 다이크라는 분은 이단의 세 가지 유형을 말했습니다. 첫째는 헤롯 이단이 있다고 했습니다. 헤롯은 교만과 권력과 음행의 상징입니다.
둘째는 가롯 유다 이단이라고 했습니다. 가롯 유다는 재물로 예수를 판 사람인데 재물을 착취하고 재물에 매우 집착하는 이단입니다.
세 번째는 가인 이단입니다. 가롯 유다는 살인을 행한 자입니다. 그래서 이단집단 안에는 이 요소들이 다 있습니다. 얼마 전에 D월간지에서 통일교에 대한 특집을 다루었는데 거기에 반감을 품은 통일교도 800여명이 사옥에 침입을 해서 기물을 부수고 난동을 부린 적이 있습니다. 몇 년 전에도 모 방송국에 난입하여 기물을 부순 교회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단집단들은 음행과 재물에 대한 착취와 폭력과 테러가 있습니다. 매우 위험한 요소들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이단들은 갑자기 일어난 게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구약 때부터 이단이 있었고 예수님 당시에나 초대교회, 교회역사 속에 이단사상은 계속 이어져 왔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이단사상이 역사적으로 이어져오는 것은 그 이단운동은 악령의 운동이기 때문입니다. 악령의 역사는 변하지 않습니다. 악령의 사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형태는 많이 변했습니다. 예전과 지금은 교회환경이 많이 다릅니다. 지금은 다양한 문화가 있고 기술문명이 극도로 발달되어 있고 IT문화가 현대를 지배하고 있는 등 여러 가지 환경적으로 다르지만 악령은 그 모든 다른 여건들을 전부 활용하며 변신을 시도합니다. 악령이 주도하지만 형태는 다릅니다. 그러나 그 중심에 흐르는 사상은 예부터 이어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이단운동이 극심하게 일어났는데 그 초대교회의 대표적인 이단 네 가지 중 첫째가 에비온운동입니다. 이것은 율법주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게 아니라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는다는 율법주의에 바탕을 두고 이것이 유대적 민족주의와 결탁을 해서 사도들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정면으로 대항을 했습니다. 두 번째는 노스틱주의가 있습니다. 이것은 헬라철학에서 들어온 사상인데 매우 강렬하고 무섭습니다. 이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이원화합니다. 물질과 영을 이원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교리를 부정합니다. 세 번째는 말시온운동이 있습니다. 이것도 영지주의와 흡사하지만 영지주의는 바깥에서 교회 안으로 들어온 사상이고, 말시온은 교회 안에서 일어난 운동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그리스도의 육신을 부정합니다. 예수는 몸을 가진 게 아니라 환상적인 몸을 가지고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하나님과 공의의 하나님을 한 하나님으로 보는 게 아니라 다른 하나님으로 분리해버립니다. 악을 다스리는 하나님과 선을 다스리는 하나님으로 분리시켜버립니다. 네 번째는 몬타나스주의가 있습니다. 이 주의는 성령론과 종말론을 강조합니다. 오늘 이단운동의 그 실체에 들어가 보면 빗나간 성령운동과 빗나간 종말론이 아주 강합니다. 그래서 시한부 종말론이 이 몬타나사상입니다. 이 몬타나스주의가 강렬하게 교회 안에 흘러들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요즘 일어나고 있는 이단들이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닙니다. 갑자기 한 시대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예부터 있었던 악령의 그 사상들이 이어져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단의 함정

한기총에서는 몇 몇 이단집단을 공적으로 규정을 했습니다. 우리 교단에서도 여러 집단을 이단으로 규정을 했고 한국정통교회에서 교단적으로 이단을 규정한 사례들이 대단히 많이 있습니다. 거기에 대하여 이단사이비 집단들은 항변을 합니다. 왜 우리가 이단이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 우리도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고 교회의 정통을 믿는데 왜 우리를 이단이라고 하느냐? 라고 그들이 항변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내세웁니다. 예수님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왜 이단이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거기에 플라스 그들의 것들을 첨가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로 구원, ‘오직 성경만이 진리’라는 여기에서 그들은 넘어서 버립니다. 몰몬교는 성경에다가 몰몬경을 첨가합니다. 통일교는 성경에다가 원리강론을 첨가합니다. 모든 이단들마다 안에 들어가 보면 성경은 바깥으로 내세우고 있는 하나의 장식이고, 그 내면에는 그들의 교리집이 있고 그것이 교회를 주도하는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진리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구원입니다. 성경만으로 아멘이지, 거기에 플라스 썸씽(Something)이 되면 전부 이단사이비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교회론적인 함정이 많이 있습니다. 이단들이 그저 성경을 내세우고, 예수님을 말하는 그런 형태로만 우리가 유혹을 받으면 안 되고 그들이 결정적으로 잘못되어 있는 것이 교회관입니다. 그들의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가 아닙니다. 그들의 교회는 그들 집단의 교회입니다. 그들 집단의 교리가 그 교회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단집단은 말릴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교단이 있고 교회법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가르치지 않고 교리에 빗나가는 행동을 하면 당장 제재를 받고 처벌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단집단 교회는 그런 제재가 없습니다. 공통된 공교회가 아닙니다. 우리 교회들이 다 함께 지키는 성경의 궤율을 그들은 벗어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단사이비는 외형적으로는 교회이고, 외형적으로는 교단 같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가는 게 아니라 그들의 교회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미혹의 초점

우리는 이제 조금 더 심층적으로 들어가서 제가 상담소장으로 있으면서 상담상으로 나타난 몇 가지 사례를 기점으로 해서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우리 주변에 이단사이비에 물들어서 폐가망신을 하든지, 파산을 당하고 폐인이 된 유형들을 보면 통일교나 여호와증인, 구원파, 하나님의 교회, 무료성경신학교 등의 이단사이비 집단에 미혹을 받아서 잘못된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물론 그중에 제일 가까이 있는 게 구원파, 여호와증인이 있습니다.
첫째로 이단집단에서 채워주는 하나의 절차는 기존교회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을 잘 달래준다는 것입니다. 기존교회의 신앙생활에 적응을 못하거나 기존교회에서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탈 교회를 하면 이단사이비의 표적이 됩니다. 거기는 기존교회를 사탄의 집단으로 규정을 하고 교회가 하고 있는 정상적인 예배, 십일조, 교회를 섬기는 모든 행위를 전부 부정되게 해석을 하기 때문에 교회가 하는 일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그곳에 가면 대리만족을 합니다. 거기는 자유롭다는 것입니다. 기존교회의 얽매임이 없다는 것입니다. 목사, 장로, 안수집사 계층이 없고 당회나 제직회 같은 이런 복잡한 구조는 싫다는 것입니다. 십일조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함정입니다. 기존교회에서 십일조도 안 하는 사람들이 그 함정에 빠져서 재산을 전부 탈취당하는 불행한 일을 겪는 것입니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십일조가 아닙니다.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전 재산을 노리는데 그것도 모르고 기존교회의 십일조에 불만을 가지다가 재산을 다 털어버리는 사례들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 가정을 격리시킵니다. 부부를 보고 이혼을 하라고 합니다. 현재의 이 가정으로 안 된다, 우리가 새로 맺어지는 가정을 형성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을 파괴시키는 무서운 함정이 있습니다. 거기에 패가망신한 사람들이 아무리 울고불고 해보아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쇠뇌가 되고 나면 재산을 다 털어 바쳐버리고, 빠져나오려 해도 빈털터리가 되고, 가정도 파괴되어 버리고 꼼짝없이 그곳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벗어나면 테러를 당합니다. 무서운 집단입니다. 그래서 도피하며 살고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우울증에 시달립니다.
어느 모자는 저의 집에까지 상담을 받으러 왔는데 마치 가정의가 환자를 진단을 해주고 돌보듯이 제가 수차례 만나서 상담을 해주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너무나 잘못된 것만 듣고 완전히 쇠뇌가 되어버린 상태이기 때문에 내가 열 마디를 해주면 거기에 긍정을 하더라도 집에 돌아가서는 그만 들었던 그 한마디를 극복하지 못하면 테입이 제자리로 돌아가 버리는 그와 같은 현상이 반복되었습니다. 이단사이비는 끈질기고 집요하고 무섭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삼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예수님의 이와 같은 교훈들은 오늘날 표현을 하면 우리 주변에 이단사이비들을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사명에 충성하자

이제 우리는 진정으로 설교적인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왜 이단사이비가 이렇게 일어나 창궐하고 그들의 세력이 이렇게 자꾸만 커져 가느냐? 여기에는 기존교회들이 일차적인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단사이비는 교회가 부흥되는 그 틈바구니에서 그들도 함께 먹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아서 하나님 앞에 교회다움과 성도다움을 가지고 살지 아니하면 우리가 받은 은혜를 이단사이비들이 착취해갑니다. 그것을 가지고 그들이 부흥하고 성장합니다. 교회가 사명을 다하지 아니하면 이단사이비가 발생합니다. 한국교회에 교회답지 못한 모습이 아주 많습니다. 이단사이비의 행태를 비판하면서도 우리 안에도 이단사이비적인 행태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단사이비들만 욕심쟁이가 아니라 우리도 욕심쟁이고, 그들만 음란한 게 아니라 우리도 부도덕하고, 그들만 돈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우리도 탐욕의 덩어리가 되어 있는 우리 모습을 잘 보아야 합니다. 우리 안에 이단사이비가 얼마든지 자생할 수 있는 모순과 불신앙이 있다는 이것부터 반성을 해야 됩니다.
이단은 직접 상대하면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이단세력과 상대하여 싸울 힘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단을 이길 힘은 그런 방법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서 충성되게 살고 내가 성도답게 살아야 이 땅에 이단세력들이 꺾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속 불신앙으로 살아가면 한국교회 안에서 이단들이 기생을 하고 더욱 창궐해 가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받은 은혜가 매우 큽니다. 그런데 그 은혜를 바로 감당을 못하기 때문에 우리 안에 이단사이비들이 많이 발생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반성해야 됩니다.

영적 무장을 굳건히 하자

두 번째, 우리는 영적으로 무장하고 살아야 됩니다. 에베소서 6장11절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했습니다. 영적으로 무장하라는 것입니다. 주일예배는 매우 중요한 영적인 무장입니다. 오늘 주일예배를 잃어버리면 우리가 영적으로 무장해제가 되는 것입니다. 군인은 무장이 해제되면 아무 힘도 없습니다. 무장해제가 된 군인은 적군이 가까이와도 아무 것도 대항할 수가 없습니다. 성도들이 주일을 잃어버리고, 예배생활을 잃어버리는 것은 영적으로 사탄의 밥이 된 것입니다. 왜 우리가 주일을 지켜야 되고, 예배생활에 우리가 전력을 다하고, 이 예배생활에 우리가 정성을 드려서 예배를 드리고, 정성을 드려서 주님 앞에 섬겨야 되느냐? 영적인 무장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 무장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기도가 없다면 영적 무장이 해제된 것입니다. 사탄이 마음대로 공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 구원의 확신 안에 거해야 됩니다. 이단사이비가 제일 약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 구원론입니다. 모든 이단집단이 말하는 구원은 우리가 말하는 성경적인 구원과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 구원에 한결같이 조건을 붙이고 있습니다. 그 조건이 비성경적인 것입니다. 구원은 조건으로 받는 게 아닙니다. 구원받기 위해서 어떠한 조건도 이행할 수 없습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수님의 피의 공로로 받는 것이고 은혜로 받는 것이지 구원을 위해서 내가 어떤 조건을 이루어드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단사이비에서는 묘하게 그 조건을 가지고 사람들을 얽어매고 있습니다.
십여 년 전에 다미선교회가 예수님이 재림한다 해서 난리법석을 떤 적이 있습니다. 10월28일, 그날 철야를 하면서 온 교인들이 소복을 입고 이벤트를 했습니다. 그런데 다미선교회도 아주 불쌍한 교리가 있습니다. 그들이 그들 교리를 위해서 재산을 다 바쳤습니다. 혈연을 다 끊었습니다. 그리고 그날을 기다렸습니다. 그게 바로 그들의 구원론과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구원받기 위해서 재산을 처분했고, 혈연을 끊었고, 모든 것을 다 했습니다. 얼마나 불쌍한 구원입니까?
우리는 구원받기 위해서 전도하는 게 아닙니다. 구원받았기 때문에 전도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았기 때문에 헌금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았기 때문에 교회를 섬기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은혜, 즉 우리는 자격을 얻고 봉사하는 것이고 전도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구원받은 자가 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못 받아서 전도한다는 것은 근본부터 틀린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섬길 자격을 얻었기 때문에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교회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들과 우리의 구원이 매우 다릅니다. 우리는 은혜의 구원입니다. 그들은 조건부 구원입니다. 구원 얻기 위해 저렇게 열광하는 불쌍한 사람들과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의 약점은 이 큰 구원의 은혜 앞에 감동할 줄 모르고, 주님을 사랑할 줄 모르고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열정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열정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그들은 잘못된 열정이지만 그 열정을 가지고 우리가 섬겨야 합니다. 그들은 주님을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는 주님 오시기를 사모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이라도 주께서 오시면 내가 당당히 주 앞에 설 수 있는 충성된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것은 우리 신앙의 본질입니다. 우리가 주 앞에 서는 그날을 기다리면서 믿음으로 깨어 사는 것이 우리의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진실한 신앙생활을 하자

요즘 대한민국은 도박바다에 빠져 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되어 버렸는가? 왜 국민들이 도박에 이렇게 열광하는가? 대형점포에서만 도박이 있는 게 아니고 자세히 보면 문방구, 서점, PC방, 놀이방, 일부지만 음식점 안에도 있고 한반도 전체가 지금 농어촌을 막론하고 도박이 도배를 해버렸습니다. 여러분, 도박의 매력이 무엇입니까? 두 가지입니다. 첫째, 빠른 결과를 보는 것입니다. 슬롯머신에 돈을 넣고 당기면 당장 결과가 나옵니다. 동전이 죽 쏟아지면 사람이 미쳐버립니다. 농사짓듯이 봄에 뿌려서 여름이 지나서 가을에 거두는 그런 도박을 누가 합니까? 결과가 빠르기 때문에 사람들에 거기에 몰입을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제일 쉬운 일입니다. 빠르고 쉽다는 이 매력 때문에 전부 도박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 사회를 보십시오. 힘 드는 일은 안 하려고 합니다. 우리 심리를 도박이 너무나 잘 읽은 것입니다. 힘 드는 것 안 하고 쉽게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느린 것, 오래 걸리는 것은 안 하겠다는 것입니다. 쉬워도 값을 지불하는 그것은 좋은 것입니다. 수험생이 공부를 많이 해서 시험을 칠 때 쉽게 치는 그것은 좋은 것입니다. 육상선수가 열심히 훈련해서 시합할 때· 빨리 달리고 좋은 기록을 내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값을 치르지 않고 쉽게 하려하고 빨리 하려는 게 문제입니다. 그것을 가리켜 도박이라 하는 것입니다. ‘사행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행’이라는 말 자체가 우연히 좋은 것으로 얻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도박은 우연입니다. 도박은 철학도 아닙니다. 도박은 미신입니다. 거기에 승부를 걸고 인생을 거니까 사람들이 얼마나 잘못되었느냐는 것입니다. 오락하고 게임하고 도박이 결혼을 해서 사생아를 낳았습니다. 이제는 건전한 오락도 오해받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오락은 좋은 것입니다. 게임도 필요합니다. 게임은 게임으로서 얼마나 재미가 있고 좋습니까? 그런데 이제는 오해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도박하고 결혼한 경력 때문입니다. 모두 피해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도박 때문에 왜 이렇게 흥분합니까? 도박 이야기를 하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을 보니 유감스럽게도 도박성이 있습니다. 너무 쉽게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십자가를 지는 일은 생각지도 아니하고 너무 쉽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교회부흥을 너무 쉽게 생각합니다. 값을 치러야 됩니다. 값을 치르고 얻어야 합니다. 값을 치르고 빨리 가고, 값을 치르고 쉽게 되어야지 도박심리를 가지고 은혜를 사모하고 신앙생활을 하지 마세요. 십자가 없는 신앙생활은 도박심리의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도박이 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도박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의의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 우리가 받은 이 축복은 도박하라고 주신 은혜가 아닙니다. 진정 성도답게 살기를 바라는 것이고, 교회가 교회다워지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의도에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복을 주신 줄 믿습니다.

맺는 말

우리가 잘못 사는 그 틈 사이에 이단사이비가 잘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깨닫고 바로 살아야 됩니다. 우리가 그들의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주님을 섬겨야 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해야 됩니다. 그래야 이단사이비들의 세력이 쇠퇴하여 갈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는 동안 이단사이비 교회가 살이 찌고 건강해집니다. 우리가 건강하지 아니하면 그들이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위해서 우리가 건강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 앞에 발걸음을 힘차게 내 딛어야 합니다. 이 계절에 우리가 진정 무장을 새롭게 하고 하나님 나라의 군병답게, 주님이 의도하는 성도답게 우리가 이단사이비 세력을 능가하는 열정을 가지고 충성되게 살아가는 축복이 함께 하기를 축원합니다. 그런 축복의 계절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출처/이용호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