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와 기독교가 다른 36가지 이유

이 글은 '천주교와 기독교가 다른 37가지 이유'(릭 존스, 말씀과 만남)를 중심으로 하였습니다.
저자는 카톨릭의 독실한 신자였지만 구원의 확신을 얻지 못해 기독교로 개종한 후 카톨릭을 비판하는 책을 썼습니다.
37가지 이유 중에 '자만의 죄'는 크게 잘못된 점이 없으므로 생략하고, 36가지 이유만 들겠습니다.
천주교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성경을 외면하고 인간이 만들어 낸 생각을 교리로 추가한다는 점입니다.
딤후 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여금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

성경은 사람이 썼지만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썼으므로 하나님이 쓰신 것과 같습니다.
즉,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경을 떠나서는 온전한 구원을 이룰 수 없습니다.
나라에 법이 있는데 자기 마음대로 법을 만들어 지키면 법정에서 인정을 해 줍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의 계명이 있는데 자기 마음대로 계명(교리)를 만들어 지키면 절대로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습니다.

골로새서 2/8 누가 철학과 속임수로 노략할까 조심하라. 이것은 사람들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들을 따르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니

갈라디아서 1/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선포한 복음 이외에 다른 복음을
선포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

사도 바울은 누군가 철학과 거짓교리로 미혹한다면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원리를 따르는 것이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니 조심하라고 충고했습니다. (예를 들어 니체의 철학이나 다윈의 진화론)
또한 하늘나라에서 온 천사라도 사도들이 선포한 복음 이외에 다른 복음을 선포한다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천주교의 교리는 성경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고 필요에 따라 마음대로 추가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마리아의 원죄 없이 잉태했다는 교리와 승천 했다는 교리는 역사적으로도 성경적으로도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우선인지, 사람의 말인 교리가 우선인지 따져 봐야 합니다.

마태복음 7/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고 부르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 뜻을 행하는 자라야 되느니라.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아니하였으며, 주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며, 또 주의 이름으로 많은 경이로운 일들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라고 말하리니
그 때 내가 그들에게 분명히 말하되 "나는 너희를 전혀 알지 못하니, 너희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거라!"고
하리라

예수님은 분명히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전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습니까?
당연히 하나님이 지으신 성경에 있으며, 성경을 기반하지 않는 신앙은 예수님이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설령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귀신 쫓고, 놀라운 일을 행했다 할지라도 진리 위의 신앙을 하지 않았다면
예수님께 꾸지람만 듣고 지옥으로 쫓겨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자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의 말씀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면 뭐하러 하나님과 예수님이 그 많은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이 글에서 천주교의 교리는 1994년 출판된 "카톨릭 교회의 교리 문답서"를 기반으로 하였습니다.
이 문답서는 로마 교황청이 공인한 천주교의 공식 교리이고, 천주교에서 교인들에게 실제 가르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그럼 천주교와 기독교가 도저히 합칠 수 없는 36가지 이유를 들어 보겠습니다.


1. 교회를 통해서 얻는 구원 (Salvation Through the Church)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보편적 보조 수단인 그리스도의 카톨릭 교회를 통해서만 구원방법의 모든 충족에 도달할 수 있다.
(일치교령 3항)

또한 교리문답서도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모든 구원이 당신의 몸인 교회를 통해 주어진다는 의미이다.
공의회는 성서와 성전에 의거하여 나그네 길에 있는 이 교회가 구원에 필요한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카톨릭 교회를 필요한 것으로 세우신 사실을 알면서도 이 교회에
들어오기를 거부하거나 끝까지 그 안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구원될 수 없을 것이다. (교회헌장 14항)

카톨릭은 카톨릭 교회를 통해서만 구원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교회를 통해야 구원 받는다는 구절은 없습니다.


에베소서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입니다.

로마서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게 되었느니라.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된 우리를 대신해 저주를 받으사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켰기 때문입니다.

딤전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


또한 하나님과 나 사이에는 구원의 유일한 길인 예수 그리스도만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어떤 교회나 신부나 목사도 내 앞에서 하나님을 가릴 수 없으며, 예수님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과 나의 1:1 관계이며, 성령님과 예수님이 내 안팍에서 도움을 주십니다.
신약시대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성전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2. 선행을 통해서 얻는 구원 (Salvation through Good Works)

카톨릭은 구원 받기 위해서는 끊임 없이 선행을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아무리 테레사 수녀처럼 선행을 한다 할지라도, 그 어떤 행위도 우리의 구원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딤후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구원은 우리의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한 은혜로 주어집니다.
물론 선행이 하나님이 인정하는 의가 되기는 하지만, 온전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선행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선한 일을 할 때에는 구원 받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할
도리를 하는 것입니다.

디도서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에 따라 다시
태어남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때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사함
받고, 성령으로 새롭게 거듭난 것을 보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어 구원해 주십니다.



3. 교회가 죄를 용서함 (The Church Forgives Sins)

카톨릭은 교회가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중대한 잘못이라도 거룩한 교회가 사해 줄 수 없는 잘못은 없다. (제 1편 p.372 #9821)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교회는 세례 받은 사람들의 죄를 용서할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제 1편 p.373 #986)

그러나 하나님은 신약시대 이 후 이 땅에 죄 사하는 권세를 예수님에게만 주셨습니다.

마가 2/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사도행전 5/31 이분을 하나님께서 자기 오른쪽에 높이 올리시고, 영도자와 구주로 삼으셔서, 이스라엘이 회개를
하고 죄 사함을 받게 하셨습니다.

예수님 이외에는 그 누구도, 어떤 단체도 인간의 죄를 사할 수 없습니다.
교회가 죄를 용서해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 없는 일입니다.



4. 단 하나의 참된 교회 (The One True Church)

카톨릭은 자신들이 예수님이 세운 단 하나의 참된 교회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유일한 교회를 우리는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라고 고백한다.(제 1편 p.314)

실제로 이 단일 유일한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제 1편 p. 317)

그러나 카톨릭은 초대교회가 아니고, 초대교회의 전통을 이어 받은 곳은 더더욱 아닙니다.
카톨릭(로마 교회)은 4세기 당시 수 많은 교회 중 하나였는데, 콘스탄틴 황제의 도움으로 성장했고, 세력이
커지자 정통교회를 핍박하고 힘으로 굴복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교도의 신앙과 우상을 흡수했고, 교황은 막시무스라는 로마 황제의 칭호를 사용했습니다.

마태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카톨릭은 베드로가 교회의 반석이고, 자신들이 베드로의 후예이니 정통성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반석은 예수님을 상징하고, 베드로처럼 신앙이 올바른 사람이 교회를 이어갈 것이라는 뜻입니다.

고전 10/4 다 같은 영적인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영적인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사도바울은 반석이 예수 그리스도라 명백히 말하였습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중심한 교회만이 무너지지 않고 어떤 환난에도 끝까지 버틸 것입니다.
오히려 카톨릭은 예수님보다도 마리아를 중심하니 반석 위에 있지 못한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5. 세례를 통해 얻는 구원

카톨릭은 구원을 받기 위해선 세례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주께서 친히 세례가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고 (제 2편 p.467)

세례성사를 통해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난 신자들은 과연 견진성사로 굳건하게 되며 (제2편 p.455)

그러나 머리에 물 뿌리는 세례나 유아세례는 성경에 근거 없는 로마 카톨릭 의식일 뿐입니다.
침례는 "잠기다" 또는 "가라 안치다" 라는 의미인 희랍어의 밥티스마-또는 밥티조 입니다.
성경에 따라 초대교회의 모든 사도들과 침례 요한이 행하였던 침례(밥티스마)의 양식은 몸 전체를 물 속에 완전히 잠긴 후
물 속에서 다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요한 3/23 요한도 살림에 가까운 애논에서 침례를 주니 이는 거기에 물들이 많기 때문이더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침례를 받으니

마가 1/9~10 그때에 예수님께서 갈릴리의 나사렛으로부터 오사 요르단 강 속에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 속에서
올라오시는데 하늘들이 열리고 성령께서 비둘기같이 자기 위에 내려오시는 것을 보시더니

사도행전 2/41  그때에 그의 말을 기쁘게 받아들인 사람들이 침례를 받으매 바로 그 날에 삼천 혼(魂) 가량이 그들에게
더해지니라.

사도행전 8/38~39 이에 명령하여 병거를 멈추게 하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 속으로 내려가 빌립이 내시에게 침례를
주니라. 그들이 물 속에서 나와 올라올 때에 주의 영께서 빌립을 채어 가시니 내시가 그를 더 이상 보지 못하더라. 내시는
기뻐하며 길을 가되

사도행전 18/8 회당의 우두머리 치리자 그리스보가 자기의 온 집과 함께 주를 믿으며 많은 고린도 사람들도 듣고 믿어
침례를 받더라.

사도행전 19/5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니

침례인 요한은 물들이 많은 곳에서 침례를 주었고, 예수님은 요한으로부터 침례를 받으시고 물 속에서 올라 오셨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베드로로부터 복음을 전해 들은 삼천명의 유대인들은 모두 물 속에 잠기는 침례를 받았습니다.
빌립이 이디오피아 내시에게 침례를 줄 때에도 물 속으로 들어가 침례를 주고, 물 속에서 나와 올라왔습니다.
이 밖에도 초대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로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로마서 6/4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와 함께 장사되었으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인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지심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생명의 새로움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골로새서 2/12 너희가 침례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도 그와 함께 살아났느니라.

초대교회 때에는 몸을 물에 완전히 담갔다가 꺼내는 침례였는데, 카톨릭이 유아에게 물을 뿌리는 유아세례나 성인에게
물을 뿌리는 세례로 형식을 바꾸었고, 침례교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독교회도 이를 답습하고 있습니다.
몸이 물에 잠기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었듯이 내 몸도 예수님과 함께 죽는 것을 의미하며, 물에서 꺼냄을 받는
것은 예수께서 무덤 속에서 부활하셨듯이 나 역시 예수님과 함께 부활해 새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전 1/17 그리스도께서 침례를 주게 하려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게 하려고 보내셨느니라.

사도행전 8/36~37 그들이 계속 길을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메 내시가 이르되, 보라, 여기에 물이 있으니 내가 침례를
받는데 무슨 거리낌이 있으리요! 하매 빌립이 이르되, 만일 그대가 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받을 수 있느니라. 하니 내시가
대답하여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노라, 하고

사도 바울의 가장 큰 사명은 구원을 위해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지, 침례를 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직접 침례를 준 적이 거의 없는데 이는 형식적 침례가 구원의 필수요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침례의 영적인 의미를 모르고 단지 물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만으로는 내 근본적인 심성은 변화되지 않습니다.
이디오피아 내시는 빌립으로부터 복음을 전해 듣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한 후에 침례를 받았습니다.

마태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며,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시더라. 아멘.

사도행전 2/38 베드로가 그들에게 답변하기를 "회개하라. 그리고 죄들을 사함 받은 것으로 인하여 너희 각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

그러나 침례는 예수님이 신약시대 성도들에게 주신 명령이므로 되도록 받는 것이 좋습니다.
베드로의 연설에는 구원의 과정인 회개, 죄들의 사함, 침례(죽음과 부활), 성령 받음(거듭남)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꼭 침례교회가 아니더라도 물이 많은 곳에서 인도자에 의해 물 속에 잠기면서 내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장사되었고, 인도자에 의해 물 속에서 꺼내지면서 예수님과 함께 죽음에서 부활하고 하늘로 승천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된
새사람(새생명)이 되었다고 믿으시면 됩니다.



6. 그리스도의 대리자 교황 (The Pope: Vicar of Christ)


천주교에서는 교황이 우주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합니다.

사실 로마 교황은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전 교회의 목자로서 교회에 대하여 직책상으로 완전한 최상 전권을 가지며,
언제나 자유로이 이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제 1편 p.342)

하지만 그 누구도 감히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교황처럼 정치권력을 휘두르거나, 부를 축적하거나, 화려한 옷을 입고 다니지 않으셨습니다.

고린도전서 8/6 우리에게는 오직 한 분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분으로부터 났고, 우리도 그 분 안에
있으며, 또 한 분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니, 만물이 그 분을 통하여 있고, 우리도 그 분을 통하여 있느니라.

하나님 아버지가 한 분이듯이 독생자 그리스도이신 예수님도 한 분이시며 만물이 예수님을 통하여 창조되었고,
인간 또한 예수님으로부터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성령님과 예수님이 함께 이 우주와 인간을 창조하셨고, 이 분들은 함께 생각하시고 행동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누구도 예수님을 대신할 수 없고, 그 보좌를 탐내서도 안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사 엄청난 고초를 감수하시면서 우리의 죄에 대한 저주를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 누구도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을 따라갈 수 없고, 예수님에 비하면 인간은 보잘 것 없는 한낱 미물에 불과합니다.

교황은 또한 자신이 교회의 머리라고 주장합니다.

교황은 하나님께서 제정해 주신 대로 직접적이며 보편적인 최고 전권을 가지고 영혼들을 보살피는 것이다.
(제 1편 p.358)

그러나 오직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 되십니다.

골로새서 1/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는 시작이시며 죽은 자들로부터 첫 번째로 나셨으니 이는 그가
만물 안에서 으뜸이 되려 하심이라.

교회는 몸이고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이므로, 모든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수족처럼 움직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가지이니 예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고, 모든 행동이 무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들로부터 첫 번째로 부활하셔서 구원의 표적이 되셨고, 성도들도 주님의 뒤를 따라 부활할 것입니다.

교황은 그리스도의 자리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리까지 넘봅니다.
교황은 하나님에게만 쓸 수 있는 '거룩한 아버지'(Holy Father)라는 칭호를 쓰고 있습니다.

마태 23/9 땅에 있는 자를 너희 아버지라 일컫지 말라. 이는 너희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분이시기
때문이라.

예수님은 이런 일을 미리 아시고 우리에게 경고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아버지는 오직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한 분이기 때문에 땅에 있는 자를 절대 아버지라
부를 수 없습니다. (종교적 측면에서)
에큐메니칼 운동에 동참하는 것은 하나님과 예수님 대신에 교황을 믿겠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7. 오류가 없는 교황 (The Pope: Infallible)

카톨릭 교리에 의하면 교황은 믿음과 도덕, 교리문제에 대해 결코 오류가 없는 무오한 존재입니다.

로마 교황이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의 최고 목자와 스승으로서 형제들의 신앙을 견고케 하기 위하여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를 정의하여 선포할 때에, 교황은 직무상의 무류성을 향유한다.
이러한 무류성은 하나님 계시 유산의 범위와 동등하게 광범위하게 미친다.(제 1편 p.344)

교리에 따르면 교황이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시를 선포할 때는 절대로 잘못이나 오류가 있을 수 없는 절대적인
권한이 있다고 합니다.
또한 이러한 교황의 무오성은 하나님이 계시한 것과 동등하며 전세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인간은 죄인이며 하나님과 같이 온전하지 못하다고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3/10 기록된 바, 의로운 자는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으며

역사적으로 수 많은 교황이 불륜, 치부, 정치적인 실수, 학살 등에 연관되어 있습니다.
2차대전 당시 교황청은 나찌와 협력했고, 유대인 학살 등을 묵인했습니다.
로마 카톨릭은 산하 단체인 예수회를 통해 세계정복을 위한 정치적인 음모를 꾸며 왔습니다.
교황은 보통 사람보다 실수와 오류와 죄악이 더욱 많은 구원받아야 할 죄인일 뿐입니다.

교황은 절대 무오하며 교황이 내린 결정은 번복할 수 없다는 것은 1870년 바티칸 공회에서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교황은 수 많은 실책과 죄악을 저질렀으며, 교황끼리 서로 정죄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교황 스테파노 6세(A.D. 896~897)는 죽은 전임 교황 포르모수스(A.D. 891~896)의 썩은 시신을 무덤에서 끌어내
교황의 의복과 왕관을 씌우고 고소해 심판이 내려 마차에 시신을 매달아 로마 시내를 끌고 다니다 강에 버렸습니다.

교황 호노리우스 1세는 사 후 A.D. 680년에 개최된 제6차 공회에서 이단자로 규정되었습니다.
교황 비질리우스는 어떤 책들을 정죄하였다가 무효화하였고, 다시 정죄하였다가 철회했다가 다시 정죄하였습니다.
교황 유진 3세(A.D. 1145~1153)는 결투를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였지만, 교황 율리우스 2세(A.D. 1503~1513)는
결투를 금지시켰습니다.

11세기에는 서로 라이벌인 3명의 교황이 존재하였는데 헨리 3세가 소집한 공회에서 이 세 사람은 서로를
정죄하였습니다.
14세기에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교황 우리반 6세를 선출하였고, 프랑스 추기경들은 교황 클레멘스 7세를 선출했으며,
공회에서 두 교황은 서로를 정죄하였고, 매년 서로 저주하였습니다.

교황 하드리안 2세(A.D. 867~872)는 교회가 주관하지 않은 시민결혼이 유효하다고 선포했지만, 교황 비오 7세
(A.D. 1800~1823)는 그 결정을 무효화시키고, 교회 허가 없이 결혼한 자들을 정죄했습니다.
교황 유진 4세(A.D. 1431~1447)는 잔 다르크를 마녀로 정죄해 화형했지만, 교황 베네딕트 4세는 1919년에 그녀를
성인으로 추대했습니다.

딤전 1/15 신실하도다 이 말이여, 온전히 받아드리기에 합당하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 함이로라. 죄인들 중에 내가 우두머리니라.

사도들 중 가장 우두머리였던 사도 바울조차 자신이 죄인들 중 우두머리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던 자였으나 예수님을 만나 회개하고 담대히 주를 증거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구원 받은 것은 자신의 의가 아니라 오로지 주님의 은혜로 인함이며, 이는 하나님이 자신의
의로써 구원받았다고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8. 성사를 통해서 얻는 구원 (The Sacraments Save)

카톨릭은 성사가 구원 받는데 필수적인 요소라고 가르칩니다.

교회는 신약의 성사들이 신자들의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한다.(제 2편 p.426)

천주교회에는 7가지 성사가 있습니다.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 고해성사, 병자성사, 신품성사, 혼인성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적인 의식은 구원 받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갈라디아서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제사의식이나 여러 형식적인 의식 때문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습니다.
예를 들어 남녀가 결혼해서 사는데 중요한 것이 결혼식입니까? 서로에 대한 사랑과 믿음입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고 의지하는 것을 원하시지 의미 없는 형식에 얽매이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은 인간이 자신의 영과 혼과 몸을 하나님께 산 제사로 바치기를 원하십니다.
내 고집과 자만과 욕심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영화롭게
하시고, 지혜롭게 하시며, 강건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기뻐하는 대상체로 삼으실 것입니다.
이 우주 만물이 하나님 소유인데 우리가 물질적으로 하나님께 드려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마가 12/38~40 예수께서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예복을 입고 다니기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고, 잔치에서는 윗자리에 앉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삼키고, 남에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한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더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 없이 형식주의에 치우친 율법학자들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그들은 화려한 예복을 입고, 높힘 받는 것을 좋아하고, 가난한 자들의 재산을 삼키고, 스스로 경건한 채 하지만
오히려 하나님께 보통 사람보다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근거 없이 인간이 만들어 낸 전통과 유전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지 못하며, 오직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합니다.



9. 유아세례 (Infant Baptism)

카톨릭에서는 유아세례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구원의 은총이 완전히 무상으로 주어진다는 것은 특히 어린이 세례에서 드러난다.
그러므로 출생 후 가까운 시일에 아이에게 세례를 베풀지 않는다면 교회와 부모는 그 아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무한한 은총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제 2편 p.465)

그러면서 유아세례는 교회의 전통에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어린아이들에게 세례를 주는 것은 오랜 옛날부터 내려오는 교회의 전통이다.
이것은 2세기부터 분명히 확인된다. (제 2편 p. 466)

교리문답서는 유아세례가 성경에 기초한 것이 아님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조심하라. 이것은 사람들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들을 따르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니.

사도바울은 사람이 세운 전통이나 원리를 따르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니 조심하라고 경고했습니다.
예수님은 성인이 되어서, 광야에서 40일 시험을 마치신 다음에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이디오피아 내시 또한 믿음을 확인 받은 다음에 빌립에게 침례를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18/8 회당의 우두머리 치리자 그리스보가 자기의 온 집과 함께 주를 믿으며 많은 고린도 사람들도
듣고 믿어 침례를 받더라

고린도 사람들도 사도들로부터 복음을 듣고 믿은 다음에 침례를 받았습니다.
어떠한 전통과 의식도 내 심성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합니다.
오직 주를 시인하고 죄사함을 받을 때 성령이 내 마음에 오셔서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십니다.



10. 죄의 경중 (Degrees of Sin)

카톨릭은 큰 죄와 작은 죄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죄는 그 경중에 따라 평가해야 한다. (제 3편 p. 657)

작은 죄는 용서 받을 수 있는 가벼운 죄로 소죄라고 합니다.

가벼운 문제에 대해 윤리법이 정한 기준을 지키지 않거나 중대한 문제에 대해 윤리법을 어겼지만 완전히 인식하지
않거나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경우에는 소죄가 된다. (제 3편 p.659)

큰 죄는 구원의 자격을 박탈 당하는 죄로 지옥의 형벌을 맞게 하는 '죽을 죄'입니다.

죽을 죄는 사랑의 상실과 성화 은총의 박탈 곧 은총지위의 박탈을 초래한다.  만일 죽을 죄가 뉘우침과 하나님 자비로
속죄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추방되고 지옥의 영원한 죽음을 당한다. (제 3편 p.659)

그러나 이렇게 죄의 경중을 나누는 것은 전혀 성경에 근거가 없습니다.
일단 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국가에 법이 있는데 개인이 법을 어기면 범법행위로 간주되 처벌을 받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에 하나님의 계명이 있는데 이를 어겼다면 죄를 지은 것입니다.

요일 3/4 누구든지 죄를 범하면 율법도 범하는 것이니 이는 죄가 율법을 범하는 것이기 때문이라.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계명을 범한 것이고, 누구든 죄를 지으면 그에 대한 처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죄의 경중에 관계 없이 죄를 지으면 그로 인해 흑암의 권세에 갖히게 되고,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어린양에게 내 죄를 안수하여 전해준 다음 속죄제사를 드려 죄를 사함받았습니다.

에베소서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신약시대에는 내 죄를 대신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고, 십자가 보혈로 내 죄가 눈보다 더 희게
씻어진다는 것을 믿음으로써 죄사함을 받습니다.



11. 화체설: 실체 변화 (Transubstantiation)

카톨릭에서는 미사 중에 사제가 초자연적인 힘을 이용하여 성찬에 쓰이는 빵과 포도주를 실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바꿀 수 있다고 합니다.
이는 성경에 근거 없이 A.D. 1215 에 트렌트 공의회에서 결정된 내용입니다.

성찬례 거행의 중심인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 청원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환된다.
(제2편 p.490)

그럼 우리가 식인종 같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실제로 먹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성경의 내용을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요한 6/3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명의 빵이니라. 내게 오는 자는 결코 배고프지 아니하며,
또 나를 믿는 자는 어느 때나 결코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께서 본인이 생명의 빵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빵을 먹으면 영원히 배고프지 않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생명의 빵이란 무엇일까요?

마태 4/4 그러나 주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빵(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느니라." 하시더라.

요한 1/14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므로,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으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생명의 빵은 영혼의 양식 되는 말씀을 의미합니다.(상징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의 신이신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내가 생명의 빵이니 나를 먹으라."고 한 것의 의미는 "내가 말씀(진리) 그 자체이니, 내 말을 믿고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피는 무엇을 말합니까?

레위기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피를 생명을 상징하며, 속죄제 때 양의 피를 뿌리는 것은 생명으로써 죄에 대한 보응을 하는 것입니다.

마태 26/27~28 또는 잔을 가지고 감사를 드린 후에 그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이것을 모두 마시라. 이는 이것이
죄를 사하심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언약의 피이기 때문이다."

포도주는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십자가 보혈로 죄사함 받지, 포도주를 마신다고 죄사함 받지는 않습니다.
성찬은 예수님의 우리를 위한 희생을 기념하는 의식이지, 구원의 요소가 되거나 특별한 의미를 갖지는 않습니다.

레위기 17/12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였나니, 너희 가운데 아무도 피를 먹지 말며, 너희 가운데
기거하는 어떤 타국인도 피를 먹지 말라.

성경은 분명히 피를 먹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화체설을 통해 실제 피를 먹는다면 이는 오히려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일이 됩니다.

요한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전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은 영이요, 생명이라.

예수님은 영에 관한 말씀을 전하셔서 우리를 구원하려고 오셨습니다.
따라서 어차피 썩어 없어질 육신에 관한 말씀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 후에 구원 받는 것은 내 영이지, 육이 아닙니다.
따라서 빵과 포도주는 영혼에 관한 말씀과 생명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카톨릭에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직접 먹어야 한다고 주당하는 것은 이교도들의 식인 제사 풍습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바알의 제사장들은 인신제사로 바친 사람의 살을 먹어야만 했습니다.
바알의 제사장이란 뜻의 '칸나-발'(Cahna-Bal)은 식인종을 의미하는 캐너벌(Cannibal)이란 단어의 어원입니다.



12. 죄로부터 신자를 보호해 주는 성체성사 (Eucharist: Preserves from sin)

카톨릭은 성체성사에 참여하면 과거의 죄를 씻음 받고, 미래의 죄로부터도 보호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체성사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결합시키는 동시에 우리가 전에 지은 죄를 정화하고, 앞으로 죄를 짓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준다 (제 2편, p.513)

성체성사는 우리 안에서 불러 일으키는 그 사랑으로 우리를 미래의 죽을 죄에서 보호한다. (제 2편 p.514)

그러나 성경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죄를 씻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에베소서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예수님은 어린 양으로 오셔서 인류의 모든 죄를 가져가시고, 그 죄에 대한 벌로 대신 저주 받으시고, 피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돌아가셨고, 그 피로써 죄인된 우리를 사셨으니, 우리 모두 예수님께 빚진 자입니다.
이런 역사가 있는데 아무 의미 없는 얇은 과자 한 조각 먹는다고 우리 죄가 사해지겠습니까?

고전 6/11 너희 가운데도 이런 일을 행하였던 자들이 더러 있었으나, 너희가 주 예수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영으로 씻음을 받았고, 거룩하게 되었으며, 의롭게 되었느니라.

죄사함 받으면, 내 모든 죄가 사해져 하나님 앞에 의롭다 칭함을 받을 것입니다.
죄사함은 온전한 하나님의 은혜로 그 어떤 행위로도 우리의 죄를 스스로 사할 수 없습니다.


고전 11/24 감사를 드린 후 떼어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쪼개진 나의 몸이니 받아 먹으라.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고 하셨으니

성찬은 예수님의 희생을 기억하기 위해서 하는 기념 의식일 뿐입니다.
우리가 광복절 때 8·15 기념 행사를 치루지 않아도 마음으로 그 날의 의미를 되 새기면 되는 것입니다.



13. 죽은 자들에게도 유익한 성체성사 (Eucharist: Helps the Dead)

카톨릭은 또한 성체성사를 통해 죽은 자를 도와줄 수 있다고 선전합니다.

성찬례의 제사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지만 아직 완전히 정화되지는 못한'(트리엔트 공의회) 죽은 신자들을
위해서 그들이 그리스도의 빛과 평화를 얻을 수 있도록 바치는 것이기도 하다. (제 2편 p.504)

카톨릭은 정말 성경에 근거 없는 교리를 잘도 만들어 냅니다.
성체성사를 통해 아직 구원 받지 못한 영혼을 천국으로 보내준다는 것인데, 흡사 불교의 천도제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카톨릭이 이러한 의식을 많이 만들어 내는 이유는 죽은 자의 구원을 핑계로 더 많은 기부금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히브리서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뒤에는 심판이 있는 것같이

인간이 죽으면 그 사람의 살아온 믿음과 행위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때 남은 가족이 아무리 성체성사를 하고, 굿을 하고, 천도제를 지내도 하나님의 심판에는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전지전능하시고 공의로운 하나님이 부족하고 결점투성이인 사람의 말을 들으시겠습니까?
우리가 살면서 행한 모든 일은 하늘 생명책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판결은 배심원도 필요 없고, 3심제도 필요 없는 즉결심판입니다.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살아난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영혼이 분리되면 불과 2~3초만에 자신이 살아온 모든 과거가
스쳐 지나 가면서 선악이 구분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어떤 판결을 내리시던 그에 순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살았을 때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주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이 중요하지, 죽고 나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14. 마리아: 또 다른 구원자 (Mary Save)

카톨릭에서는 마리아가 구원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고 합니다.

성 이레네오의 말씀대로 동정녀 마리아는 순명함으로써 자신과 인류전체를 위한 구원의 원인이 되신 것이다.
(제1편 p.185)

마리아는 순명과 믿음과 희망과 불타는 사랑으로써 영혼들의 초자연적인 생명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구세주의 구세
사업과 비길데 없는 협력을 해 드렸다. 이 때문에 은총의 세계에서 우리의 어머니가 되었다. (제1편 p.367)

카톨릭은 마리아가 구원의 원인이고, 마리아가 예수님과 버금 가는 구원의 업적을 남겼기 때문에 은총의 어머니가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의 주체가 된다고 가르칩니다.

요한 14/6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

사도행전 4/12 그러므로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없나니, 이는 하늘 아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을
인간에게 주신 적이 없음으라. 하더라.

예수님만이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요, 문입니다.
또한 예수님 자체가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에 누구도 예수님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 이외에 다른 이에게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잘라 말하며, 하나님은 예수님 이외에 다른 구원자를
주신적이 없다고 강변하였습니다.

마가 3/31~35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와, 바깥에 서서, 사람을 들여보내어 예수를 불렀다.
무리가 예수의 주위에 둘러앉아 있다가, 그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선생님의 어머니와 형제들과 누이들이 바깥에서
선생님을 찾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 그리고 주위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말씀하셨다. "보아라,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

예수님 가족은 예수님이 메시야인지 잘 믿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족이 찾아 왔을 때 그들을 외면하고, 하나님 뜻을 행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가족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몸을 빌어서 태어났을 뿐 영적으로 마리아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 이외에 인간 좋은대로 만들고 섬기는 것은 명백한 우상이며, 마리아 숭배는 이교의 여신숭배사상에서
따 왔을 뿐입니다.



15. 마리아: 무염시태 (Mary: Saved from Birth)

어릴 때 성당 다닐 때 주보 위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란 어구가 있었는데 그 땐 그 뜻을 잘 몰랐습니다.
카톨릭은 마리아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구원 받았고, 전혀 죄를 짓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1854년 교황 피오 9세가 선언한 마리아의 무염시태 교리입니다.
천주교는 성경에 근거 없이 소설 쓰듯이 교리를 잘도 만들어 냅니다.  

은총이 가득한 마리아는 구속의 가장 빼어난 열매이다. 그녀는 잉태되는 순간부터 원죄에서 완전히 보호되고,
일생동안 죄에 물들지 않았다. (제1편 p.184)

마리아가 원죄 없이 태어났고, 일생동안 죄 짓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고전 15/22 이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게 하려 함이라.

아담의 육적 후손인 인류는 아담의 원죄를 상속 받아 근본적으로 죄 아래 있고,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끊어지고, 대신 마귀 사탄의 지배하에 있습니다.
이로 인해 모든 사람은 사망 아래 있지만 예수님 안에서 죄사함 받음으로써 흑암의 주관권 안에서 벗어나고,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회복됨으로써 영생에 이를 수 있습니다.

또한 성경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명시합니다.

로마서 3/10~11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없도다, 한 사람도 없도다.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도다.

하나님 앞에 죄 없이 의로운 사람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죄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요일 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야고보서 4/17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마태 22/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살아 오면서 아무리 죄 짓지 않으려고 몸부림 친 사람이라 할지라도 형제를 미워한 적이 있거나, 선을 알고도
행치 않았거나,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런 즉, 어느 누가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인간인 마리아 역시 절대로 예외일 수 없습니다.

역사 안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마리아가 잉태되는 순간부터 구속된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제 1편 p.184)

천주교도 무염시태 교리는 좀 무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 교리가 새롭게 깨달은 교리라고 합니다.

계시록 22/18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예수님은 요한에게 성경 이외에 말씀이나 교리를 더하면 그에게 성경에 기록된 모든 재앙을 받게 하실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근거 없이 추가한 교리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일입니다.

누가 11/27~28 주께서 이런 일을 말씀하고 계실 때 한 여인이 무리 속에서 목청을 높혀 주께 말씀드리기를 "당신이
낳은 태와 당신이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라고 하니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정녕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지키는 사람들이 오히려 복이 있느니라."고 하시더라.

이런 일을 아셨는지 예수님께서는 미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 한 여인이 "예수님을 낳은 모친이 복이 있다."고 소리 높혀 말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예수님의 혈통적 가족이 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때문에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6. 마리아: 평생 동정녀 (Mary: Perpetual Virgin)

카톨릭은 마리아가 평생 동정녀로 지냈다고 주장합니다.

마리아는 동정으로 당신의 아드님을 잉태하고, 동정으로 그 분을 낳고, 동정으로 그 분을 길렀으며, 동정으로 당신의
젖을 먹였고, 항상 동정이었다. (제1편 p.191)

교회 전례는 마리아를 '평생 동정녀'로 찬미한다. (제1편 p.188)

마리아가 예수님을 처녀 잉태한 것은 사실이나, 예수님 형제는 자연적으로 잉태했습니다.

마태 13/55 이는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 그의 동생들은 야고보와 요세와 시몬과 유다라 하지
아니하냐? 그의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의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데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에서 났느냐? 하고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의 형제 자매가 있다고 알려줍니다.
그렇다면 카톨릭은 성경에 명백하게 모순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인데, 카톨릭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변명합니다.

종종 성서가 예수님의 형제 자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어 이를 반박하는 사람이 있다. 교회는 항상
이 대목들이 동정녀 마리아의 다른 자녀들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고 이해해 왔다. 사실 예수님의 형제들
야고보와 요세는 다른 마리아라고 명시된 예수님의 제자 마리아의 아들들이다. (제1편 p.188)

예수님의 형제가 예수님의 어머니와 이름이 같은 다른 마리아의 자녀라고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의 동생들이 있다고 하는데, 명백한 사실을 왜곡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는 무리를 해서라도 마리아의 신성을 부각시켜, 숭배 받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또한 독신 생활을 하는 사제나 수녀에게 모범을 보여 주고, 이방의 처녀 여신과도 비슷하게 만들려 하기 때문입니다.



17. 마리아: 성덕의 근원 (Mary: Source of Holiness)

카톨릭은 동정녀 마리아가 성덕 즉 거룩함의 본보기요, 근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교회에서 성덕(Holiness)의 모범을 배우며,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 마리아 안에서 성덕의 본보기와
근원을 알아보고 (제1편 p.706)

거룩함의 근원이라고 칭함을 받을 수 있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구원 받아야 할 인간을 거룩함의 근원이라고 합니다.

누가 1/47~48 내 영이 하나님 곧 내 구원자를 기뻐하였나니, 이는 그 분께서 자신의 여종의 낮은 처지를
돌아보셨음이라.

마리아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잉태하고 기뻐하며, 자신이 여종과 같은 낮은 처지라고 하였습니다.

계시록 4/8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계시록 15/4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하나님 주위의 그룹천사(케루빔)는 끊임 없이 영원한 하나님을 거룩하다고 찬양합니다.
하늘나라에서 의로운 성도들도 오직 주 하나님만이 거룩하시다고 합니다.
성경에 '거룩함'이란 단어가 600번 이상 사용되지만 마리아 보고 거룩하다고 한 구절은 한 구절도 없습니다.
카톨릭은 교황에 이어 마리아마저도 하나님의 위치에 올려 놓음으로써 우상숭배 종교란 오명을 피할 수 없습니다.



18. 마리아: 또 다른 중재자 (Mary: The Intercessor)

카톨릭 교인들은 마리아가 신자들을 위해 하나님께 대신 기도해 주는 중보자라고 믿으며 마리아에게 열렬히
기도합니다.

그 때문에 교회에서는 복된 동정녀를 변호자, 보조자, 협조자, 중재자라는 명칭으로 부른다. (제1편 p.367)

천주교 신학자도 성경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는지 예수님의 직분을 죄다 마리아에게 갖다 붙혔습니다.
마리아에게 4가지 특별한 칭호가 붙었는데 하나씩 살펴 보겠습니다.

a) 변호자

카톨릭은 마리아가 하나님 앞에 자신을 변호하는 변호자라고 하나, 성경에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요일 2/1 나의 어린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범죄하여도 우리에게 아버지와 함께 계신 변호자가 계시니, 곧 의로우신 분 예수 그리스도시라.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계셔서 우리를 변호해 주신다고 합니다.


b) 보조자

카톨릭은 마리아가 하나님 곁에서 그의 일을 보조하는 위치에 있다고 하나, 죄 많은 인간이 하나님 옆에 서면
강한 빛에 타버립니다.

사도행전 7/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스데반이 유대인에게 주 예수를 증거하며 영안으로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심을 보았습니다.
스데반은 담대하게 주를 증거하다 순교하였습니다.


c) 협조자

카톨릭은 우리가 어려울 때 마리아가 도와줄 수 있는 협조자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13/6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분이시니, 사람이 내게 무엇을 행하든지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라 하노라

예수님을 내가 어려울 때 도와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니, 예수님을 믿고 나아가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d) 중재자

중재자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관계를 좋게 하고, 다리 역할을 하는 존재를 말합니다.
천주교회에 가면 예수님 십자가상보다 마리아상 앞에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모여 기도하고, 촛불을 키고, 헌화합니다.

딤전 2/5 이는 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한 중재자(Mediator)가 계시기 때문이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니라.

로마서 8/27 죽으신 분은 그리스도시요, 참으로 다시 일어나신 분도 그리스도시니, 그 분께서는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시며 또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느니라.

출처:카페 /정지봉목사님 카페에서 퍼온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