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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들에 대한 전도방법 (요1:12)
북한 주민들에 대한 전도 방법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994년 7월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 남한 사람들은 북한 주민들이 통곡하는 모습을 보고 당혹감을 금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의 김일성은 전설적인 항일 독립 운동가인 김일성 장군의 이름을 사칭한 사기꾼이요 한국전쟁을 일으킨 전범으로 잔학무도한 독재자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한 체제가 제아무리 독제라 하더라도 어떻게 북한 주민들이 김일성의 죽음에 혼절 할 정도로 슬퍼할 수 있는가?
1. 북한 주민들에게 김일성은 어떤 존재인가?
남북한 주민들 간에 가장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면 바로 김일성에 대한 이해와 평가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반공 교육을 받은 탓으로 대부분의 남한 주민들은 북한 주민들에게 김일성은 위대한 지도자요, 인자한 할아버지요, 자비로운 산과 같은 존재이다.
★ 항일 투사 김일성
무엇보다도 먼저 김일성은 1930년대와 1940년대초 중국 만주 지역에서 항일 무장 투쟁에 참여한 경력이 있다는 것이다. 많은 남한 사람들이 날조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김일성은 남의 이름을 도용한 가짜가 아니며, 그의 항일 투쟁 경력은 분명한 사실이다.
★ 위대한 지도자 김일성
김일성은 해방 후 한반도에 들어와 북한의 지도자가 되었다. 김일성은 한 편으로 소련의 절대적인 지지와 권력 투쟁으로 북한의 정권을 장악했으며, 다른 한 편으로 토지개혁을 포함한 일련의 민주화 조치를 실시하고 군대와 경찰 등 국가 폭력 기구를 장악함으로 정권의 기반을 공고하게 다졌다. 또 한국전쟁 후에는 경제 재건과 철저한 정적 제거로 유일체제를 확립해 정권을 안정시켰다.
또 김일성은 1960-80년대 활발한 외교 활동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1960년 북한의 전체 수교 국가는 알제리와 기니, 쿠바와 말리를 포함해 15개국에 지나지 않았지만 1970년에는 잠비아와 수단, 몰디브와 스리랑카를 포함해 35개국으로 많이 늘어났다.
또 1970년대 중반 북한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해 엄청난 원조를 했다. 그 당시 아프리카 국가 수반치고 북한을 방문하지 않은 나라가 없었다.
그 결과 1975년 12월말 북한과 외교 관계를 맺은 나라의 수는 90여개 국에 달했으며, 1970년대 중반에 북한은 국제연합에서 위세를 떨칠 수 있었다.
김일성은 1980년대 초반에는 비 동맹권 정치 지도자들을 북한에 초청해 적극적으로 제3세계 외교를 펼쳐 나갔다.
★ 수령교 교주 김일성
김일성은 이 같은 역사적 사실과 경력을 과장하고 왜곡해 자신을 신격화하고, 광범위한 평생 교양 및 학습 체계를 통해 북한 주민들을 철저하게 신민화 했다.
그 결과 북한 주민들은 '조선 사람들의 구세주, 탁월한 수령, 민족의 태양, 백전불굴의 강철 령장', '전세계 피압박 민족과 인민의 붉은 태양". "하늘에서 내리신 세계 혁명의 지도자','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는 분' 으로 김일성을 추앙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북한은 김일성 수령을 교주로 하는 수령교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전지전능한 우리의 아버지 김일성 수령 동지 이 땅에서 일제의 앞잡이들을 모두 물리쳐 주시고 흡혈귀 같은 미제놈들을 쫓아내신 영원한 영웅 우리에게 매일 양식과 입을 것, 살 곳을 마련해 주신 어버이 수령 그는 나의 신이었다."
★ 수렁에 빠진 수령교 주민들
북한 주민들이 신처럼 숭배하던 김일성도 마침내 1994년 7월 82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김일성이 사망하자 북한 지도부는 김일성이 생전에 집무하던 금수산 의사당(주석궁)에 방부 처리한 김일성의 시신을 안치하였다.
그 후 8억9천만 달러라는 거금을 들여 대대적으로 확장 공사를 한 금수산 의사당과 그 앞 광장은 이제 금수산 기념 궁전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묘지가 되었다.
북한 주민들은 이곳에 와 죽은 김일성의 시신 앞에 경배를 드려야 하며 외국의 방문객들도 이곳을 찾아와 머리를 숙이도록 만들어 놓았다.
또 북한 지도부는 1997년 4월15일 김일성의 85회 생일을 기념하는 85미터 높이의 대형 기념비를 포함하여 수 십 개의 기념물을 건축하였다. 게다가 북한 전역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도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구호를 담은 영생탑을 세웠다.
하지만 김일성 사후 북한 주민들은 다른 것에는 관심을 갖지 못할 정도로 모두 허탈감에 빠졌다. 게다가 북한의 경제 사정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북한 주민들은 심각한 허무주의에 빠져들고 있다. 현재 북한 사회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고 절망의 깊은 수렁에 빠져 침몰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사이비 교주 김일성의 카리스마는 더욱 약화되고 말 것이다.
출처/ 방광현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