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통하는 축복의해   (시118:24-26)

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케 하소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시편 118:24-26

지금 미국은 불통입니다. 강추위에 지진으로 말할 수 없는 불통에 처해 있습니다. 캐나다에도 폭설이 내려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세계 어디를 보아도 불통입니다. 우리는 형통하는 축복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형통하기를 원합니다. 예수를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모두 원합니다. 형통이라 함은 모든 것이 잘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 내 마음대로 되는 것, 내 소원대로 되는 것이 형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불신자들의 생각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의 혈통은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한다"고 기도했던 것처럼 우리의 삶 속에 우리의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이 형통입니다. 금년 한 해는 형통하는 축복이 성도들 가정 가정마다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악인도 형통할 때가 있다.

지금은 악인이 형통하는 시대입니다. 고춧가루에 불순물을 집어넣고 팔아도 돈을 잘 법니다. 가짜 참기름을 진짜 참기름으로 속여 팔아도 형통합니다. 물론 오래 가다보면 모든 것이 드러나게 마련이지만 당장에는 형통합니다. 오늘 세상은 거짓말하고 속여먹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히려 진실하고 정직하게 사는 사람보다 더 잘 됩니다. 이렇듯 악인이 형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악인의 형통은 형통이 아닙니다. 악인의 형통함은 반드시 끝이 날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속여 먹는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악인은 미련한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드러난다고 하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기만은 그렇지 않겠다고 생각하니 더욱 미련한 것입니다. 오늘 공산주의 종주국이었던 소련이 무너졌습니다. 몇 나라만 제외하고 공산주의 국가가 모두 무너졌습니다. 지금 북한이 형통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결국은 불통입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악인의 형통은 형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악인이 형통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불통임을 알아야 합니다. 결국 불통으로 끝이 나기 때문입니다(시1:5). 그러므로 우리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자기 조국과 자기 백성을 위해서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악인의 형통함이 하나님의 뜻이냐고 물었습니다(렘12:1).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악인의 형통함은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탈출시켜 자유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은혜로 구출된 백성들은 마땅히 하나님을 섬겨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과 규례를 지켜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고 죄만 짓는 것입니다. 그러니 악인이 득세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면 악인이 어떻게 형통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악인의 형통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렘11장).

그러면 하나님은 왜 악인의 형통함을 그대로 놔두시는 것입니까? 첫째는 가라지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듯이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까지 다칠 염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가라지를 내버려두는 것은 가라지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알곡이 뽑히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악인의 형통함을 그대로 내버려 두시는 것은 의인을 깨우기 위함입니다. 6.25전쟁 당시 우리 나라는 매우 부패했습니다. 주일만 되면 놀러 다니기 바빴습니다. 전세는 계속해서 불리해져 낙동강까지 밀리게 되었습니다. 이 때 목회자들이 부산에 모여 하나님께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회개를 받으시고 다시 전세를 바꾸어 주셨습니다. 악인의 형통함은 의인을 깨우기 위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믿는 우리가 깨면 악인은 날뛸 수가 없습니다.

2. 의인의 형통이 형통하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롬5:1).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 것입니다(롬1:17, 히10:38). 믿음으로 사는 자가 곧 의인입니다. 노아는 악인이 득세하던 때에 하나님께 의롭다함을 얻었습니다(창7:9).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습니다(창7:8).

그러면 의인의 형통은 어떤 것입니까? 첫째로, 의인의 형통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모세의 뒤를 이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지도자로 세우심을 받았으나 두려워하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수1:5)."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해주십니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지극히 담대히 하라...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수1:6-8)."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시면서 말씀을 지켜 행하라고 교훈하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지켜 행하는 자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시려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해야 합니다.

둘째로, 의인의 형통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죽기 전에 사랑하는 아들 솔로몬에게 간곡히 부탁하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대로 지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디를 가든지 형통하리라고 했습니다(왕상2:1-3).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형통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도 모세에게 명한 율법을 지켜 행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지켜 행하면 반드시 형통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라고 했습니다(요14:21).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고, 뿐만 아니라 형통하는 축복을 받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형통하는 축복을 받습니다. 엄밀하게 보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 자체가 형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면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충만은 내 생각과 마음이 하나님께 정복된 것을 말합니다. 성령충만은 "찌르륵"이 아닙니다. 순간적인 감정도 아니고 뜨거움도 아닙니다. 성령충만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의인의 형통은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연합한 자가 형통한 자입니다. 그는 곧 히스기야입니다(왕하18:6-7). 히스기야는 하나님과 연합함으로 형통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히스기야가 하나님과 연합하니 앗수르의 산헤립이 쳐들어왔을 때 기도하여 승리하였고(왕하19:20,35).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에 기도하여 15년이나 생명연장을 받았습니다(왕하20:1-6). 우리도 하나님과 연합한 자가 되어 형통하는 축복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는 것입니다(왕하18:3). 각종 우상을 찍어버리는 것입니다(4). 즉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것은 모두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연합된 자가 됩니다.

3. 의인의 불통은 형통을 가져온다.

의인의 불통은 혈통을 가져온다는 말은 기적을 가져온다는 말입니다. 의인의 불통은 기적을 낳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인도로 출애굽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셨으면 모든 것이 잘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조금 가니까 앞에 홍해가 가로막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뒤에서는 애굽의 군대가 추격해 옵니다. 진퇴양난의 위기에 빠졌습니다. 애굽에서 탈출을 시작했으면 막힘이 없이 가야 하는데 왜 이런 장애물이 있느냐 말입니다. 이런 환경은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하기 위해서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리고 확신합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출14:13-14)." 기적이 일어납니다. 모세가 지팡이로 홍해를 치니 물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의인의 불통은 그 속에서 오직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하나님의 기적을 낳습니다.

욥은 처음에 형통한 사람입니다(욥1:1-3). 그런데 불통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때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욥이 말할 수 없는 불통 속에 있을 때 그의 친구 빌닷이 말합니다. 하나님께 구하면 형통할 것이라는 것입니다(욥8:1-6). 욥은 결국 형통을 가져왔습니다(욥42:10-17). 의인의 불통은 형통을 가져옵니다. 악인의 형통은 불통이지만 의인의 불통은 곧 형통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불통 속에 있어도 그 속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면 곧 형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평할 것이 아닙니다.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할 것이 아닙니다. 다만 믿음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의인의 불통은 우리를 깨우기 위해 있고 또한 주님을 깨우기 위해 있습니다(막4:35-41). 주님을 모신 배가 바다 한 가운데서 풍랑을 만났습니다. 제자들은 주무시는 주님을 깨웠습니다. 주님이 일어나셔서 바다를 잔잔케 했습니다. 의인의 불통은 우리를 깨워 주님을 깨우기 위해 있습니다. 주님을 깨우시기만 하면 형통으로 바뀌게 됩니다. 의인의 불통은 회개하게 하고, 진실하게 하고, 믿음으로 맡기게 합니다. 하나님께 부르짖게 합니다. 그러므로 의인의 불통은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금년에는 형통하는 축복의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현재 불통 중에 있다 하더라도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자신을 깨우고 주님을 깨웁시다. 반드시 형통하는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형통한 자는 더욱 힘써 하나님과 연합한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실 것입니다.


출처/김충기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