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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을 축복합시다 (창 48:8-22)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그들에게 제일 먼저 하신 일이 무엇이며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무슨 말씀이겠습니까? 제일 먼저 하신 일은 그들에게 복을 주신 일입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과 공중의 새와 땅의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하신 축복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그 후로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때에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신 것처럼 직접 주신 때도 있었지만 부모를 통하여서 축복하신 경우가 참 많이 있습니다.
노아가 자녀들을 축복할 때 셈과 함과 야벳에게 한 축복과 저주가 그대로 이루어져서 지금까지 이루어졌고, 또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노아가 함에게 저주를 했습니다. 함은 이프리카에 살고 있는 인종인데 <종의 종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종만 되어도 참 답답한 일인데 <종의 종>이라니 참 끔찍한 말입니다만 그대로 되지 않았습니까?
셈에게 말했습니다. 셈은 아시아에 살고있는 인종인데 우리도 셈족에 속합니다. 노아는 셈에게 <셈의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셈을 통하여서 하나님이 찬송을 받으시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신앙의 불길이 얼마나 뜨겁게 일어나고 있는지 모릅니다. 지금까지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셨지만, 아시아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하여서 하나님이 더 크게 영광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야벳을 창대케 하리라>고 하셨는데 야벳의 족속은 구라파에 살았습니다. 유럽 쪽에 퍼져있는 야벳 족속을 예언대로 창대케 하셨는데 20세기까지는 이들이 창대했습니다. 그런데 셈의 장막에 거하듯이 그들이 지금 아시아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환태평양(環太平洋)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들 하고 있지 않습니까?
1. 자녀를 축복합시다
이처럼 부모를 통하여서 하나님이 축복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축복하고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고 야곱은 그의 열두 아들을 축복하였는데 그 내용이 창세기 49장에 나와 있습니다. 구약성경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열두지파가 어떻게 아버지 야곱이 예언한, 축복한 그대로 되어가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야곱이 생명을 걸고 장자가 되려고 했던 것도 장자에게 축복권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족장시대에는 주로 부모님을 통하여서 자손을 축복하셨는데 족장시대가 지나가고 난 다음 율법시대가 되면서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축복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라 네가 그들을 축복하면 내가 그대로 복을 주마>고 약속하셨습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고 복을 빌면 내가 너희들이 빈 복대로 그대로 복을 주마>고 약속하셨습니다.
제사장이 축복한 그대로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신약시대에 오면서 하나님은 우리를 <왕같은 제사장들>이라고 불러주셨습니다. 우리들도 자녀들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축복하는 축복의 권세가 다 있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남의 집에 들어가서 평안을 빌면 그 집안이 받을만하면 너희가 빈 모든 평안이 그 집에 임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부모를 통하여 축복하여 자녀가 복을 받고, 제사장이 세상을 축복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복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에는 야곱이 자녀 요셉과 그 손자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축복하는 모습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이제 야곱처럼 자녀들을 위하여 축복하고, 손자들을 위하여 축복하여서 하나님의 축복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성도들, 좋은 부모님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두 아들을 데리고 아버지를 찾아갔습니다. 그때는 이미 야곱의 눈이 어두워서 사람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소리를 듣고 요셉이 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 소리가 들리니까 “너하고 같이 온 사람은 누구냐?”고 물으니까 요셉이 “예, 제 아들입니다.” 그랬더니 야곱이 어떻게 했습니까?
9절에 보면 <아비가 가로되 그들을 이끌어 내게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 야곱은 자녀와 손자를 만나자마자 이리오너라 하고 그들의 머리 위에 손을 얹어서 축복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야곱처럼 자녀와 손자들을 만날 때 내 앞으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축복하리라하고 자녀들을 위하여 축복하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녀들에게 잔소리하기 전에, 용돈주기 전에 먼저 야곱처럼 자녀들을 축복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야곱은 만나자마자 축복했습니다. 야곱이 건강할 때 축복한 것이 아닙니다. 병상에 누웠다가 아들과 손자가 왔다는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나서 그들에게 입맞추고 그들을 안고 손을 그 머리에 얹고 안수하고 축복의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그 축복기도의 내용은 그대로 이루어 졌습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곱도 에서의 미움을 받아서 외삼촌 집으로 가려고 할 때 그 아버지 이삭이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어 너로 번성하고 번성케 하사 너로 여러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그 복을 다 주시기를 원하노라>하고 축복을 해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자녀에게 축복한 그대로 그도 그 자녀에게 축복을 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이런 부모의 축복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그래서 축복권이 있다는 장자(長者)가 되기 위해서 생명을 걸고 장자권(長者權)을 얻으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야곱은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축복한 것이 다 이루어진 것을 그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축복하는 이 축복도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믿고 자기의 아들과 손자에게 축복의 기도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을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는 줄 아십니까? 22절을 보면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일부분을 더 주었나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자에게 두 몫을 줍니다. 요셉에게 두 몫을 주어서 요셉이 실질적으로 야곱의 장자가 되어집니다.
그런데 여기에 야곱이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일부분을 더 주었나니>했는데 이것은 앞으로 이루어질 것이지 지금 주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앞으로 그들이 광야생활을 지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요셉의 아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두 몫을 차지할 것을 미리 바라보면서 <내가 주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치 야곱 자신이 주는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내가 자녀들을 위해서 한 기도는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가졌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모들에게 자녀를 축복할 권세를 주셨음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축복의 기도를 하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믿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매일 자녀를 위하여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기도를 해 주는 부모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손자들을 만날 때 마다 축복기도 해 주는 것이 하나의 습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녀와 손자를 만나면 당연히 조부모께서 축복해 줄줄 믿고 머리를 내밀 수 있는 아름다운 분위기를 만들 수 있기바랍니다.
장차 그들이 그 축복의 기도대로 복을 받아서 ‘내가 이렇게 복을 받게 된 것은 내 부모님께서 나를 축복기도 해 주셨기 때문에 내가 이런 복을 받았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또 자기의 자녀들에게 축복을 계속해 주어서 축복하는 문화가 되어져서 약속하신대로 천대까지 복을 이어갈 수 있는 가문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왜 자녀를 축복하며 잘 키워야 합니까?
왜 자녀를 축복하고 잘 키워야 합니까? 내 가정에 있는 자녀는 내 자녀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가정에 경건하게 키워달라고 맡겨놓은 자녀입니다. 우리 가정의 자녀도 잘 키워야겠지만 만약에 대통령이 자녀를 우리에게 맡기면서 ‘내가 바쁘니까 잘 키워주세요’하고 맡긴다고 하면 내 자식보다도 더 잘 키우려고 노력할 것 아닙니까?
자식은 내가 결혼했기 때문에 당연히 얻는 자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셔서 내가 키우고 있을 뿐입니다. 9절에 보면 요셉이 뭐라고 합니까? 야곱이 “이 아이들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입니다.”라고 합니다. 내가 결혼했으니까 내가 만들어 낸 자녀가 아닙니다. 내 자녀가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한강에 던질 수도 있고 동반자살도 할 수 있지만 이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 고귀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하면 그 자식하고 그렇게 끝을 낼 수가 없습니다. 라헬이 결혼했는데 언니는 아이를 잘 낳는데 자기는 아이를 못 낳아요. 그래서 야곱에게 대듭니다. “나로 아기를 낳게 하라, 그러지 않으면 내가 죽어버리겠다.” 그러니까 야곱도 화를 냅니다. “아기를 낳고 못 낳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지 내가 하나님이냐?”고 화를 내지 않습니까?
이처럼 자식은 하나님이 주셔야만 얻어지는 자식이지 내가 얻겠다고 내가 노력한다고 얻어지는 자식이 아님을 아시기 바랍니다. 결혼해서 일반적으로 자식을 낳으니까 당연히 낳을 것이다하겠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안주시면 낳을 수 없습니다. 시편 127편 3절에 보면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라>고 했습니다. 자식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기업으로 상속물로 주어진 자녀라는 말입니다.
기업을 잘 일으키면 자신에게 복이 됩니다. 상속받은 것을 잘 관리하면 복이 됩니다. 그래서 젊을 때는 힘들고 어려워도 자식 잘 키워놓으면 노년이 아주 복된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런데 젊을 때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어도 자녀 잘 못 키워놓으면 노년이 되어서 어려움을 당하는 가정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이 기업, 상속물인 이 귀한 자녀를 잘 키워서 하나님께 경건한 자녀를 드릴 뿐만 아니라 우리의 앞날도 더 복되게 살아갈 수 있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라기 2장 15절에 보면 <하나님에게는 많은 영이 있을지라도, 영이 유여하실지라도 한 남자와 한 여자로 가정을 이루게 하신 것은 경건한 자손을 얻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정에 기업으로 주신 자녀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실 수 있는 경건한 자녀로 키우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 가정에 보냈다는 말입니다. 경건한 자녀로 키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자녀를 위해서 축복기도하며 키우는 방법입니다. 이것이 자녀를 잘 키우는 비결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이제 믿음의 선진들처럼 나도 자녀를 위해서 늘 축복기도하면서 자녀를 키우리라고 다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야곱이 기도하는 하나님
야곱이 자녀를 위해서 축복기도한 기도의 내용을 한번 살펴 보십시다. 15절에 보면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가로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께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시오며...>야곱이 기도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야곱이 태어날 때부터 147세가 되는 지금까지 기르신 하나님, 그리고 모든 환난에서 나를 건지신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했습니다. 야곱이 기도한 하나님, 야곱이 믿었던 하나님, 야곱이 신뢰했던 그 하나님은 야곱의 출생 때부터 지금까지 야곱의 목자가 되어주시고 야곱을 보호하시고, 야곱을 인도하시고, 먹이시고, 기르신 양육하시는, 목자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건져주시는, 나를 속량하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야곱의 생애가 참 파란만장합니다. 바로가 야곱에게 물었습니다. “나이가 몇이냐?” 그러자 “예, 내 나이가 130년이지만 실로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에서의 칼날 속에서 건져서 외삼촌 집으로 피하게 만들었습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 동안 고생고생하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그를 건져서 금의환향하게 만들었습니다. 디나의 사건으로 인하여서 당시 주변의 사람들이 야곱 가문을 몰살하려고 했습니다. 그럴때에도 하나님은 그 가정을 건져 주셨습니다.
요셉을 잃은 슬픔과 절망 때문에 살아갈 수가 없었지마는 하나님께서 그 절망가운데서 그를 건져주셨습니다. 흉년가운데서 죽음 직전까지 갔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통하여서 야곱의 가문을 다시 건져 주셨습니다. 야곱은 이러한 환난가운데서도 순간순간 건져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이런 하나님의 축복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이런 하나님의 축복이 최고의 축복임을 믿고 “나의 하나님, 나를 인도하시고 기르시고 나를 건져주신 하나님이시여, 이 아이에게 이런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그래서 나를 기르시고 건지신 하나님께서 이 아이에게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부모님들이 이런 하나님에 대한 체험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에 대한 어떤 고백을 할 수 있습니까? 야곱처럼 이런 고백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이 최고의 축복이요, 하나님의 축복만 있으면 된다고 믿고 축복의 기도를 쉬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실 사람의 도움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물질의 유산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만 그것이 참 복임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만 그것이 진정한 복임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 내 자녀에게 복을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복주시면 되겠습니다하고 기도를 많이 심어서 그 축복의 밑거름을 먹고 성장하는, 그래서 큰 나무가 되어지는 가정의 자녀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이름있는 자녀가 되게 하옵소서
두 번째로 16절에 보면 <이들로, 요셉과 그 자녀들로 내 이름과 아브라함의 이름과 내 조부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라고 했습니다. 얼핏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지만 쉬운말 성경에는 이렇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제 이름이 이 아이들을 통해서 알려지게 해 주시옵소서. 자녀의 이름이 유명하게 되기를 바라고 그 유명하게 된 이름 때문에 나의 이름도 알려지게 해 주시옵소서>.
어떤 자녀가 잘 되면 신문사나 방송국에서 와서 인터뷰하지 않습니까? 자녀만 그런 것이 아니고 어떻게 이렇게 잘키웠습니까하고 그 부모까지 이름이 알려지는 것처럼 그렇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식량 때문에 애굽에 내려갔습니다. 애굽에서 야곱은 요셉 때문에 알려진 인물이 되었습니다.
애굽에 내려가서 바로를 만났는데 야곱이 바로에게 무엇을 했는지 아십니까? 당시의 바로가 어떤 사람입니까? 세계에서 최고의 권력자인데 이런 바로에게 야곱이 가서 축복했다고요. 비교되지 아니하는 일개 노인이 세계에서 최고의 권력자인 바로에게 축복을 했습니다.
왜 그런줄 아십니까? 그 아들 요셉 때문에 그렇습니다. 요셉 때문에 그 어마어마한 바로 궁에 가서 환대를 받았습니다. 바로를 축복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요셉 때문에 야곱의 이름이 이렇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아마 야곱이 애굽에서 길을 걸어간다든지 나들이를 하면 주변사람들이 “저 분이 요셉의 아버지래.”하면서 알아주고 존경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자녀를 위한 축복의 기도인 동시에 그 자녀로 인하여서 부모까지 알려지고 존경받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자녀가 잘되기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녀가 존경받는 인물되기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자녀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경건한 자녀가 되기를 위하여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자녀 때문에 부모까지 존경받고 알려지게 될 줄 믿습니다.
예수님 보세요. 예수님 때문에 마리아란 이름이 얼마나 높임을 받던가요. 예수님이 아니었으면 마리아는 그의 존재가 전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때문에 마리아는 ‘성모 마리아’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신(信),불신(不信)간에 마리아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고 어머니들이 딸을 낳게되면 마리아와 같은 인격과 신앙이 되라고 메어리(Mary)라고 이름을 지어주지 않습니까? 천주교인들은 마리아를 숭배하기까지 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어머니 마리아의 이름이 이렇게 높임받게 된 것입니다.
‘제 이름이 이 아이들을 통해서 알려지게 해 주옵소서.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사람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했던 것입니다. 훌륭하게 자녀 키워서 부모까지 알려지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자식키우는 부모의 영광입니다.
이것은 어찌보면 하나님 아버지의 소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 사랑하는 자녀들이 이 땅에서 생활 잘하여서 어떻게 저렇게 잘 되어졌는가, 다 하나님 잘 믿어서 그렇다는 말을 듣고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받고 영광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이 오늘 본문 가운데 포함되어 있는 줄 믿습니다.
5. 번성한 자녀되게 하옵소서
다음은 ‘이들로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여기 ‘번식’이라는 히브리말 ‘다그’는 물고기라는 말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물고기떼처럼 급속도로 팽창하고 증가되기를 축복했습니다. 여러분, 물고기 한번 보세요. 잡아내고 또 잡아내도 바다에는 물고기가 번성하지 않습니까? 알밴 물고기의 알집을 한번 보세요. 수천 개의 알이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번성하고 생육하는 것은 창조때부터 주어진 축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00년 동안 애굽에서 70명이 200만 명이 되었다는 것은 정말 물고기처럼 불어나는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자녀가 번식되게 기도해야 합니다. 가문도 번식하고, 재산도 번식하고, 신앙도 번식하고, 하나님의 자녀도 번식하도록 축복하여서 자녀들의 삶이 창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위축되는 삶이 아니라 번식하고, 모자라는 삶이 아니라 풍성하고, 넉넉한 삶을 살도록 늘 자녀를 위해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그 축복을 그대로 이루어주실 줄 믿습니다.
6. 내 자녀가 복의 모델되게 하옵소서
다음은 20절에 보면 <이스라엘 족속이 너로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에브라임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고 축복했습니다.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인가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차 자기 자식들을 향해서 복을 빌 때에 ‘하나님께서 너를 에브라임같이 축복해 주고 므낫세와 같이 되도록 해 달라’는 것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우리가 기도할 때에 이런 말을 많이 쓰지요.“하나님이여! 우리 아무개에게 아브라함과 같은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데 바로 이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아브라함같이 그렇게 복의 모델이 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누구처럼 복받으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까? 만약에 우리 친척 가운데 훌륭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너 아무개처럼 그렇게 복받아야 돼. 그렇게 잘 살아야 돼. 그렇게 유명해 져야 돼.”라고 말하는 것처럼 누구처럼 잘 되라, 누구처럼 예수 잘 믿어라고 할 때 ‘누구’가 바로 네가 되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복받은 모델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신앙의 모델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다른 사람에게 축복의 목표가 되는 인물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야곱의 기도대로 정말 에브라임은 복을 받았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이스라엘이라는 말대신에 ‘에브라임’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에브라임은 단순한 지파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 전체를 대표하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야곱의 기도가 그대로 이루어 졌습니다. 자녀가 축복의 모델되도록 날마다 그렇게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앙의 본이 되라고, 축복의 본이 되라고 늘 축복의 기도를 하게 되면 자기도 마음 속에 그런 믿음이 생기게 되고, 그렇게 살게 되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복받은 사람의 주인공이 되게 될 줄 믿습니다.
7. 내 자녀와 함께 하옵소서
다음 21절에 보면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축복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시도록...> 하면서 기도합니다. 야곱은 이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 것이라고 확신을 주고 있습니다. 부모가 영원히 자식과 함께 살 수 없습니다. 최고의 축복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축복입니다. 요한 웨슬레는 학자요, 저술가요, 부흥사요, 전도자요, 목회자요, 다재다능한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를 통해서 감리교가 만들어지지 않았습니까? 그는 86세에 세상을 떠나면서 이렇게 말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일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 자기의 일생을 통하여서 종합된 한 마디 말은 “최고의 복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인생 최고의 축복은 오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돈을 많이 가진 것이 아닙니다. 많은 지식을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높은 권세를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 것, 이것보다도 더 큰 축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그것을 위하여서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오래사는 것도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돈 많은 것도 의미가 있고,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만 지식과 권세있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지,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아니하시면 모든 것이 다 의미가 없어집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해야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가장 큰 일 중의 하나가 ‘경건한 자녀를 키워 내는 것’입니다. 내 자녀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면 됩니다. 그런 자녀되도록 오늘부터 자녀를 위해서 축복기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모에게 축복권이 있음을 믿고 매일 마다 자녀를 찾아가던지, 자녀에게 오라고 해서 안고 안수하고 축복기도 해주리라 다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녀들은 의례히 부모의 기도를 받아야 되는 줄 알고 머리를 내밀 수 있기를 바랍니다. 16절에 보면 <이 아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아이가 누군 줄 아십니까? 요셉입니다. 아이가 아닙니다. 그때는 요셉의 나이가 벌써 50이 넘었습니다. 그런 나이일지라도 부모가 자식에게 손을 얹어서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그 부모의 기도를 받으려고 했습니다.
우리가 나이가 들었다고 할지라도 우리를 위해서 가장 축복할 수 있는 분은 부모인줄 알고 부모의 기도를 받으려고 하고 우리들도 우리 자녀를 위해서 기도해 줄 수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방법으로 우리를 축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에게로 오는 어린아이들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귀찮다고 오지말라고 했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어른들은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바뀌어져서 아이들은 자꾸 가르치려고 주일학교에 집어넣고 어른들은 안 배워요. 그리고 복준다고 하면 “아멘, 아멘”합니다. 이제부터 우리 자녀들은 복을 빌고 어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서 배운 이 말씀을 자녀들을 위해서 잘 축복할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축복의 기도를 하되 야곱처럼 다섯가지 기도의 원리를 따라 기도해야 겠습니다.
1. 하나님, 내 자녀에게 하나님의 복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2. 하나님, 내 자녀의 이름이 창대케 하여 주시옵소서.
3. 하나님, 내 자녀를 번식케 하여 주시옵소서.
4. 하나님, 내 자녀를 축복의 모델로 삼아 주시옵소서.
5. 하나님, 내 자녀와 영원토록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이 다섯가지의 축복의 기도의 원리를 따라서 내 자녀들에게 하나하나 접목되는 기도문을 작성해 보세요. 그리고 날마다 기도 해 보십시다. 그리고 어느날 기도문을 꺼내어서 하나님 앞에 갈 때가 가까워졌을 때에 그 기도대로 이루어진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하나님 앞에 영광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말 자녀를 위해서 기도한 그대로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번성케 하여서 복을 주셔서 복의 모델되고 자신 뿐 아니라 부모의 이름까지, 하나님의 이름까지 영광을 드러내는 자녀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언젠가 내가 복받은 것은 나를 위해서 날마나 축복해 주신 부모님의 기도 때문입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자녀들, 이렇게 좋은 부모님을 만나게 해 주신 하나님 참으로 감사합니다라고 감사할 수 있는 자녀를 두었다면 인생을 성공적으로 산 사람이 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 오늘부터 자녀를 위해서 매일 축복의 기도를 해주리라고 다짐하고 실천하여서 야곱의 자녀들이 그 축복대로 복을 받았던 것처럼 복을 물려줄 수 있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출처/윤성진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