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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하는 사람이 되라 (에베소서 4:1-3)
물이 귀한 지역에 어떤 왕이 생수의 근원을 발견하고 샘을 파습니다. 왕은 대단히 기뻐하고 만족해하면서 백성들은 얼씬도 못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못가서 그 샘이 마르고 말았습니다. 왕은 학자들을 모아 그 이유를 찾도록 명령하자, 물을 많이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 중에 한 모사는 왕이 백성들에서 샘물을 공개해서 같이 마셔야만 양질의 생수를 보존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왕은 고민 끝에 낮 동안은 궁궐에서 샘물을 사용하고 해진 뒤부터 해뜰 때까지 백성들이 사용하도록 명령 했습니다. 그러자 샘물이 밤에는 너무나 좋은 생수인데 낮이면 침전물이 생기며 좋은 않은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왕은 하는 수 없이 물을 백성들과 함께 나누어 마시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위하고 축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거기에 풍성함이 함께 합니다. 우리들이 다른 사람을 축복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사명감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를 지으신 분의 뜻에 합당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는 나만이 잘되기를 바라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사명감을 가지고 이웃을 축복해야 합니다. 어느 가게 주인이 자기 스승을 찾아가서 맞은편에 큰 연쇄점이 생겨 자기는 망하게 되었다는 고민을 이야기 했습니다. 자기 가정이 10년 동안 지켜 온 가게를 잃어버린다면 자기는 다른 기술도 없으니 파멸할 것이라고 걱정했습니다. 그러자 스승은 이렇게 충고를 했습니다. “그 연쇄점 주인을 두려워한다면, 그를 증오하게 될 것이고, 그 증오는 자네가 파멸하는 원인이 될 것이니, 매일 아침 가게 앞에 나가서 자네 가게를 축복하고, 돌아서서 길 건너 연쇄점도 축복하게.” 그는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와 그대로 실천했습니다. 여섯 달 후, 그 가게 주인은 다시 자기 스승을 찾아와서 자기가 그 가게를 인수하는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삶에는 이러한 하나님의 위로가 있습니다.
둘째, 용납하는 자세로 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겸손과 온유로 서로를 용납해야 합니다. 온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 원망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엡 4:2)라고 말씀합니다. 이 세상에 허물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물론 이 사실이 오용되어 범죄와 실수를 저질러도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잘못이 생겼을 때는 서로 바로잡아 주고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 사실을 ‘서로 용납하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용납하는 자세로 다른 사람을 축복해야 합니다. 바르게 함도 축복 속에서 이루어지고, 책망도 축복 안에서 이루어 져야 합니다. 축복은 지혜의 온유함으로 해야 합니다. 이기적인 축복이나 선행은 가식을 만듭니다. 위선과 가식이 가득하게 됩니다. 우리는 상대의 유익을 주기 위한 선행과 축복을 해야 합니다. 거기에는 서로 용납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셋째, 평안의 연합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연합해야 하는 이유는 교회의 기본적인 요소가 다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즉 주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것’이 마땅합니다. 중국에 한 나이 많은 황제가 있었습니다. 황제는 변방에 있는 적을 정복하고 적국 사람들 모두를 섬멸하는 것을 거국적 목표로 정하고 강조해 왔습니다. 마침내 적을 섬멸하고 왕과 대신들을 다 사로잡았습니다. 그런데 왕은 적국 포로들을 선대하더니 마침내 식사도 하고 농담도 하게 되었습니다. 불안을 느낀 신하들은 황제를 향하여 근심하며 적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죽이도록 권면했습니다. 그러자 황제는 그들을 이미 섬멸한지 오래 되었다고 하면서 그들을 친구로 만들었노라고 했습니다. 왕은 적국 백성들의 마음까지 정복해서 하나 되게 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하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웃을 축복하기 위해 축복받는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은혜가 함께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