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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중심을 뜨겁게하자 (요엘2:15-18)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고하고
백성을 모아 그 회를 거룩케 하고 장로를 모으며 소아와 젖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골방에서 나오게 하고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으로 욕되게 하여 열국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말하게 하겠나이까 할찌어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 땅을 위하여 중심이 뜨거우시며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
-요엘 2 : 15 - 18
요엘 1장 12절에 "포도나무가 시들었고 무화과나무가 말랐으며 석류나무와 대추나무와 사과나무와 및 밭의 모든 나무가 다 시들었으니 이러므로 인간의 희락이 말랐도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어떻게 하면 말라버린 인간의 희락을 회복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인간의 희락이 말랐다
오늘 본문 12절에 보니 "인간의 희락이 말랐다"고 기록되어 잇습니다. 이 말씀처럼 오늘날 인류의 기쁨과 세계의 평화는 말랐습니다. UN이 평화를 주는 게 아니요. 미국과 소련이 세계 평화를 위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그들에 의하여 세계 평화는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들 강대국이 평화를 주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평화는 하나님이 주십니다. 평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지 않는 평화는 사실 평화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평화만이 참된 평화인 것입니다(요 14 : 27).
국가마다 애국심이 말랐고, 가정마다 기쁨과 희락이 말랐습니다.
물질적인 풍요와 발전이 가져다주는 편함은 있어도 참된 만족이 없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마른 것보다 사실 우리 자신의 심령이 마른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자신의 믿음으로 역사가 나타나고, 자신의 기도로 응답을 체험하며, 자신의 찬송으로 하나님의 화답을 받을 수 있다면 이 세상 모든 것이 말라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심령 속에 이런 것들이 살아나도록 해야 합니다. 위로부터 성령의 은혜가 쏟아져 내리고 심령에는 은혜의 생수가 터져야 합니다.
그런데 왜 이처럼 인간의 희락이 말라버린 시대가 되었을까요?
2. 그 이유는 이족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요엘 1장 6절 "한 이족이 내 땅에서 올라왔음이로다. 그들은 강하고 무수하며 그 이는 사자의 이 같고 그 어금니는 암사자의 어금니 같도다"라고 했습니다.
이족이 무엇입니까? 이상한 족속을 말합니다. 인간 같은데 인간이 아니고, 신자 같은데 신자가 아닌 자를 말합니다. 인간 같은데 인간이 아닌 자를 성경은 "이성 없는 짐승"이라고 표현합니다(유 1 : 10, 벧후 2 : 12). 유다서에 보면 이성 없는 짐승 같은 인간들에게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을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라고 저주하고 있습니다(유 1 : 11). 또한 16절에서는 "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내며 이를 위하여 아첨하느니라"고 했으며, 19절에는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근거하여 볼 때 우리가 성령으로 모이지 아니하면 우리의 모임은 짐승의 집단에 불과합니다. 오늘날 사람 같지만 사람이 아닌 이족-이상한 사람-이 많습니다. 호적에는 분명히 남편인데 벌써 다른 데로 떠나 있고, 결혼 사진에는 분명히 아내인데 아내가 아닙니다. 자식 중에도 말만 자식이지 짐승만도 못한 자식들이 수두룩한 세상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족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인데 사람이 아니고, 신자인데 신자가 아닌 사람들 말입니다. 분명히 입으로는 성경 말씀을 말하고 찬송가 기도를 하지만 사실 그리스도인이 아닌 이단에 속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마태복음 24장 5절에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고 했습니다. 어느 책자를 보니 우리나라에 자칭 재림 예수라고 하는 자가 서른 일곱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마태복음 24장 11절에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라고 기록되어 있고, 24절에는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수만 있다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케 하리라. 사람들이 너희에게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고 하여도 나가지 말고 골방에 있다고 하여도 믿지 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족이 많이 나와 무슨 권능으로 무슨 힘으로 역사하고 있습니까? 바로 마귀의 힘으로 역사하고 있습니다. 가정이나 교회, 국가나 사회에서 참된 신앙을 찾으려면 마귀의 역사를 거꾸러뜨릴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된 복음, 진리의 말씀 위에 서야 합니다.
요엘서 1장 7절에 보니 이족은 "내 포도나무를 멸하며 내 무화과 나무를 말갛게 벗겨서 버린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포도나무 가지는 성도를 지칭합니다. 또한 누가복음 13장 6절에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과원지기에 이르되 내가 삼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고 했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오늘날 한국 교회를 지칭할 수 있겠습니다. 한국 교회는 역사만 자랑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참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지금 북한에는 김일성이라는 이족이 나타나서 무화과나무와 포도 나무를 멸하고 있습니다. 남한에는 하나님의 크신 축복으로 교회가 놀랍게 부흥했으나 영적으로 수많은 도전이 있습니l다. 이족들이 우리의 신앙을 긁어 먹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세에 이러한 이단들이 발도 못 붙이게 기도하며, 진리 안에 견고히 서야 합니다.
3. 이족들은 소제와 전제를 끊어 놓았다
이족들은 나타나서 무슨 일을 도모하겠습니까? 요엘 1장 9절에 "소제와 전제가 끊어졌고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은 슬퍼하도다"라고 기록되어 있듯이, 이족들이 나타나서 소제와 전제를 끊어 놓았습니다.
소제와 전제는 제사를 말합니다. 제사 중에 우리가 잘 아는 번제는 소나 양 혹은 비둘기를 잡아 드리는 것이지만 소제는 곡식을 빻아 기름을 발라서 태우거나 번철에 부쳐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족들이 나타나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소제와 전제, 번제를 끊어 놓았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이단의 술책입니다. 제사와 예배가 끊어진다는 것은 곧 패망과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패망시키기 위해서는 예배를 소홀히 하게 하고 제사를 끊어버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끌려가서 칠십년 동안이나 포로생활을 한 것도 성전에 제사가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해방하셨던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제사 드리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이 자기의 백성들을 살리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26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명했습니다. 열왕기상 6장 37, 38절에는 솔로몬이 7년 동안 성전을 건축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막과 성전은 하나님께 제사함으로써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곳입니다. 인간은 하나님 없이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인간은 죄악된 상태에 있기에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제사라는 방법을 통하여 죄악된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제사는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서 교제할 수 있는 수단인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인간이 하나님을 못 만나게 하려고 획책합니다.
오늘날도 마귀는 이 음모를 쉬지않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하나님께 대한 제사가 끊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 저녁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새벽제단이 끊어진 곳이 많습니다. 한 주간에 한 번 예배드리는 것으로 하나님께 해야할 일을 다한 것으로 생각하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바로 한국 교회에 마귀가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할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족들이 기뻐 뛸 상황들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마귀의 궤계와 이족들의 역사를 깨닫고 제사를 회복하며 거룩한 예배를 일으켜야 합니다. 찬양의 향기를 올리고 기도의 손을 드러야 합니다. 이것이 한국 교회가 이족의 역사 앞에서 살아남는 길인 줄 믿습니다.
성전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하늘의 성전입니다. 하늘의 성전은 곧 전능하신 주 하나님과 그 어린 양입니다(계 21 : 22). 하늘에는 건물로서의 성전이 없습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을 직접 뵐 수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열왕기상 6 : 37, 38에 나와 있는대로 유형의 성전을 말합니다. 솔로몬에 의하여 건축된 건물로서의 성전을 말합니다.
셋째로,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는 말씀처럼 곧 우리의 심령 성전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2장 14 - 20절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쫓으시며 "너희가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1절에서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은 무너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헐리지 않는 성전이 있으니 그것은 마음의 성전인 것입니다.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우리의 심령이야말로 참으로 영원히 헐리지 않는 성전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 받는 것이 방언이나 하고 예언이나 하며 환상이나 보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받으면 바로 에베소서 2장 21 - 22절의 말씀처럼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그 심령이 성령의 처소가 아니라 사단의 처소가 되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2절에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롯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27절에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 간지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5장 3절에 보면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는 감추었느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처럼 가롯 유다와 아나니아는 그 마음을 사단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람들의 심령은 사단의 처소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거듭나서 심령이 성령의 거처로 바뀌어야 합니다.
북한에는 이족인 무신론자 김일성이 유형적인 교회를 무너뜨렸으나 심령성전은 무너뜨릴 수 없기에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유형교회도 중요하지만 심령성전이 더욱 중요합니다.
예배는 찬송이요, 기도요, 말씀이요, 감사입니다. 찬송이 있는 곳에 슬픔이 없고 기도가 있는 곳에 실망이 없습니다. 말씀이 있는 곳에는 영적인 영양실조가 없습니다. 감사가 있는 곳에는 저주가 없습니다. 이러한 생활이 있을 때 우리의 성전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우리 심령에 제사가 살아나야 합니다. 왜 제사를 못드립니까? 제물이 없어서입니다. 소제의 제물은 곡식과 기름과 새포도주입니다. 요엘 1장 10절에 보면 "밭이 황무하고 토지가 처량하니 곡식이 진하여 새포도주가 말랐고 기름이 다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곡식은 말씀이요, 기름은 믿음이요, 포도주는 성령의 은혜입니다. 믿음이 마르고, 은혜가 마르고, 성령이 마르니, 무슨 말씀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마음에 찬송과 기도와 말씀이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한국 교회가 다시 살려면 저녁 예배가 부활되어야 합니다. 오후 예배로 드리는 교회는 첨단을 걷는 교회로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새벽 제단으로부터 아침 제사, 저녁 제사까지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족들의 궤계를 물리치고 한국 교회가 사는 길입니다.
4. 이를 다시 찾기 위해서는 회개하는 하나님의 중심을 뜨겁게 해야 합니다
요엘1장 13 - 14절에 "제사장들아 슬피 울어라. 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포하라"고 했습니다.
요엘서는 말세에 대해서 예언하면서 캄캄하고 어두운 여호와의 날이 임하기 전에 회개하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욜 2 : 1). 2장 3절에 보면 "불이 그들의 앞을 사르며 불꽃이 그들의 뒤를 태우니 그전의 땅은 에덴동산 같았으나 그 후의 땅은 황무한 들 같으니 그들을 피한 자가 없도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13절에 "너희는 옷을 찢지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라고 했고, 15절에도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을 정하고 성회를 선포하고 백성을 모아 그 성회를 거룩케 하고 장로를 모으며 소아와 젖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골방에서 나오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7절에서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으로 욕되게 하여 열국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말하게 하겠나이까 할지어다"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결사적이고 뜨거운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생사를 내건 회개를 의미합니다. 이렇게 뜨거운 회개가 있을 때에 하나님의 중심이 뜨거워져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18절에 보면 "그때에 여호와께서 자기 땅을 위하여 중심이 뜨거우시며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함으로 그 땅을 열국으로 하여금 관할하게 할것이라고 예언하면서 만약에 이스라엘이 이 예언을 듣고 뜨겁게 회개한다면 하나님께서 자기 땅을 위하여 긍휼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남북이 분단되어 서로 대치 상태에 있습니다. 해방과 함께 삼팔선이 생기고 북쪽에는 소련이 관할하고 남쪽은 미국이 관할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이 하나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요엘이 이스라엘에게 촉구했듯이 민족적으로 결사적인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뜨겁게 회개하면서 "여호와여 우리를 다른 백성이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라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관할은 통제요 지배입니다. 하나님의 선민이 왜 이방 민족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지배하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미국이 지배해서도 않되고 소련이 통치해서도 안됩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우리 민족을 관할하시고 통치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뜨겁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것은 진정한 회개뿐입니다. 민족적으로 뜨겁게 회개하는 백성이 됩시다. 할렐루야!
5. 이러한 회개가 있을 때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참된 회개가 있을 때 하나님은 응답하시고 회복해 주십니다.
요엘 2장 19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곡식과 새포도주와 기름을 주리니 너희가 이로 인하여 흡족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기를 다시는 열국 앞에서 수욕을 당치 않게 해주시고,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힘을 내어 열매를 맺으며,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히 주심으로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포도 주와 기름이 넘치도록 축복해 주신다고 했습니다(2 : 20 - 24).
앞에서 우리가 함께 살펴 보았듯이 회개하기 전에는 밭이 황무하여 곡식이 진하고 포도주와 기름이 말랐으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어서 인간의 희락이 말랐다고 했습니다(1 : 10 - 12). 그래서 소제와 전제가 여호와의 전에 끊어져서 제사장들이 슬퍼했다고 했습니다(1 : 9). 그런데 우리가 회개하여 하나님의 중심을 뜨겁게 하면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는 위에서 말하는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회복만이 아니라 더 중요한 영적인 회복의 역사도 있습니다. 요엘 2장 28절이하에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예언은 사도행전을 통해서 실제적으로 성취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행 2 : 17이하). 여기서 "내 신"은 하나님의 성령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로 회복된 모습은 성령충만의 모습입니다. 성령충만했을 때에 장래 일을 말하고 이상과 꿈을 보게 됩니다. 죄를 이기고 이족의 도전을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역사로 회복된 모습은 죄의 권세에 사로잡힌 자가 해방되는 것입니다. 요엘 3장 1절에 "그날 곧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발하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되리로다. 그러나 나 여호와는 내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리로다. 그런즉 너희가 나는 내 성산 시온에 거하는 하나님 여호와인 줄 알 것이라. 예루살렘이 거룩하리니 다시는 이방 사람이 그 가운데로 통행하지 못하리로다. 그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며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여호와의 전에서 샘이 흘러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 그러나애굽은 황무지가 되겠고 에돔은 황무한 들이 되리니 이는 그들이 유다 자손에게 강포를 행하여 무죄한 피를 그 땅에서 흘렸음이니라. 유다는 영원히 있겠고 예루살렘은 대대로 있으리라. 내가 전에는 그들의 피흘림 당한 것을 갚아주지 아니 하였거니와 이제는 갚아주리니 이는 나 여호와가 시온에 거함이니라"고 회복의 약속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약속의 말씀은 이스라엘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께 회개하여 하나님의 중심을 뜨겁게 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중심을 뜨겁게 합시다. 하나님의 중심이 뜨거워서 우리에게 축복하시지 않을 수 없도록 합시다. 하나님은 중심이 뜨거우시면 가만히 계시지 못하십니다. 능력의 손을 펴서 축복하시고, 은혜의 얼굴을 드셔서 긍휼을 베푸십니다.
우리에게 수많은 고통과 어려움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중심이 뜨거우시면 회복될 줄 믿습니다. 분단된 조국이 하나로 회복되고, 혼란한 이 사회에 질서가 회복됩니다. 파괴된 가정이 회복되고, 분열된 교회가 하나로 회복되며, 병든 육신이 건강하게 회복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중심을 뜨겁게 하는 백성이 됩시다. 할렐루야!
출처/김충기목사 설교 중에서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고하고
백성을 모아 그 회를 거룩케 하고 장로를 모으며 소아와 젖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골방에서 나오게 하고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으로 욕되게 하여 열국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말하게 하겠나이까 할찌어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 땅을 위하여 중심이 뜨거우시며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
-요엘 2 : 15 - 18
요엘 1장 12절에 "포도나무가 시들었고 무화과나무가 말랐으며 석류나무와 대추나무와 사과나무와 및 밭의 모든 나무가 다 시들었으니 이러므로 인간의 희락이 말랐도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어떻게 하면 말라버린 인간의 희락을 회복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인간의 희락이 말랐다
오늘 본문 12절에 보니 "인간의 희락이 말랐다"고 기록되어 잇습니다. 이 말씀처럼 오늘날 인류의 기쁨과 세계의 평화는 말랐습니다. UN이 평화를 주는 게 아니요. 미국과 소련이 세계 평화를 위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그들에 의하여 세계 평화는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들 강대국이 평화를 주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평화는 하나님이 주십니다. 평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지 않는 평화는 사실 평화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평화만이 참된 평화인 것입니다(요 14 : 27).
국가마다 애국심이 말랐고, 가정마다 기쁨과 희락이 말랐습니다.
물질적인 풍요와 발전이 가져다주는 편함은 있어도 참된 만족이 없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마른 것보다 사실 우리 자신의 심령이 마른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자신의 믿음으로 역사가 나타나고, 자신의 기도로 응답을 체험하며, 자신의 찬송으로 하나님의 화답을 받을 수 있다면 이 세상 모든 것이 말라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심령 속에 이런 것들이 살아나도록 해야 합니다. 위로부터 성령의 은혜가 쏟아져 내리고 심령에는 은혜의 생수가 터져야 합니다.
그런데 왜 이처럼 인간의 희락이 말라버린 시대가 되었을까요?
2. 그 이유는 이족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요엘 1장 6절 "한 이족이 내 땅에서 올라왔음이로다. 그들은 강하고 무수하며 그 이는 사자의 이 같고 그 어금니는 암사자의 어금니 같도다"라고 했습니다.
이족이 무엇입니까? 이상한 족속을 말합니다. 인간 같은데 인간이 아니고, 신자 같은데 신자가 아닌 자를 말합니다. 인간 같은데 인간이 아닌 자를 성경은 "이성 없는 짐승"이라고 표현합니다(유 1 : 10, 벧후 2 : 12). 유다서에 보면 이성 없는 짐승 같은 인간들에게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을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라고 저주하고 있습니다(유 1 : 11). 또한 16절에서는 "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내며 이를 위하여 아첨하느니라"고 했으며, 19절에는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근거하여 볼 때 우리가 성령으로 모이지 아니하면 우리의 모임은 짐승의 집단에 불과합니다. 오늘날 사람 같지만 사람이 아닌 이족-이상한 사람-이 많습니다. 호적에는 분명히 남편인데 벌써 다른 데로 떠나 있고, 결혼 사진에는 분명히 아내인데 아내가 아닙니다. 자식 중에도 말만 자식이지 짐승만도 못한 자식들이 수두룩한 세상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족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인데 사람이 아니고, 신자인데 신자가 아닌 사람들 말입니다. 분명히 입으로는 성경 말씀을 말하고 찬송가 기도를 하지만 사실 그리스도인이 아닌 이단에 속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마태복음 24장 5절에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고 했습니다. 어느 책자를 보니 우리나라에 자칭 재림 예수라고 하는 자가 서른 일곱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마태복음 24장 11절에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라고 기록되어 있고, 24절에는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수만 있다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케 하리라. 사람들이 너희에게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고 하여도 나가지 말고 골방에 있다고 하여도 믿지 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족이 많이 나와 무슨 권능으로 무슨 힘으로 역사하고 있습니까? 바로 마귀의 힘으로 역사하고 있습니다. 가정이나 교회, 국가나 사회에서 참된 신앙을 찾으려면 마귀의 역사를 거꾸러뜨릴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된 복음, 진리의 말씀 위에 서야 합니다.
요엘서 1장 7절에 보니 이족은 "내 포도나무를 멸하며 내 무화과 나무를 말갛게 벗겨서 버린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포도나무 가지는 성도를 지칭합니다. 또한 누가복음 13장 6절에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과원지기에 이르되 내가 삼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고 했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오늘날 한국 교회를 지칭할 수 있겠습니다. 한국 교회는 역사만 자랑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참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지금 북한에는 김일성이라는 이족이 나타나서 무화과나무와 포도 나무를 멸하고 있습니다. 남한에는 하나님의 크신 축복으로 교회가 놀랍게 부흥했으나 영적으로 수많은 도전이 있습니l다. 이족들이 우리의 신앙을 긁어 먹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세에 이러한 이단들이 발도 못 붙이게 기도하며, 진리 안에 견고히 서야 합니다.
3. 이족들은 소제와 전제를 끊어 놓았다
이족들은 나타나서 무슨 일을 도모하겠습니까? 요엘 1장 9절에 "소제와 전제가 끊어졌고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은 슬퍼하도다"라고 기록되어 있듯이, 이족들이 나타나서 소제와 전제를 끊어 놓았습니다.
소제와 전제는 제사를 말합니다. 제사 중에 우리가 잘 아는 번제는 소나 양 혹은 비둘기를 잡아 드리는 것이지만 소제는 곡식을 빻아 기름을 발라서 태우거나 번철에 부쳐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족들이 나타나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소제와 전제, 번제를 끊어 놓았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이단의 술책입니다. 제사와 예배가 끊어진다는 것은 곧 패망과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패망시키기 위해서는 예배를 소홀히 하게 하고 제사를 끊어버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끌려가서 칠십년 동안이나 포로생활을 한 것도 성전에 제사가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해방하셨던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제사 드리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이 자기의 백성들을 살리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26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명했습니다. 열왕기상 6장 37, 38절에는 솔로몬이 7년 동안 성전을 건축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막과 성전은 하나님께 제사함으로써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곳입니다. 인간은 하나님 없이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인간은 죄악된 상태에 있기에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제사라는 방법을 통하여 죄악된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제사는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서 교제할 수 있는 수단인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인간이 하나님을 못 만나게 하려고 획책합니다.
오늘날도 마귀는 이 음모를 쉬지않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하나님께 대한 제사가 끊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 저녁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새벽제단이 끊어진 곳이 많습니다. 한 주간에 한 번 예배드리는 것으로 하나님께 해야할 일을 다한 것으로 생각하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바로 한국 교회에 마귀가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할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족들이 기뻐 뛸 상황들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마귀의 궤계와 이족들의 역사를 깨닫고 제사를 회복하며 거룩한 예배를 일으켜야 합니다. 찬양의 향기를 올리고 기도의 손을 드러야 합니다. 이것이 한국 교회가 이족의 역사 앞에서 살아남는 길인 줄 믿습니다.
성전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하늘의 성전입니다. 하늘의 성전은 곧 전능하신 주 하나님과 그 어린 양입니다(계 21 : 22). 하늘에는 건물로서의 성전이 없습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을 직접 뵐 수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열왕기상 6 : 37, 38에 나와 있는대로 유형의 성전을 말합니다. 솔로몬에 의하여 건축된 건물로서의 성전을 말합니다.
셋째로,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는 말씀처럼 곧 우리의 심령 성전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2장 14 - 20절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쫓으시며 "너희가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1절에서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은 무너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헐리지 않는 성전이 있으니 그것은 마음의 성전인 것입니다.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우리의 심령이야말로 참으로 영원히 헐리지 않는 성전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 받는 것이 방언이나 하고 예언이나 하며 환상이나 보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받으면 바로 에베소서 2장 21 - 22절의 말씀처럼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그 심령이 성령의 처소가 아니라 사단의 처소가 되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2절에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롯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27절에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 간지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5장 3절에 보면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는 감추었느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처럼 가롯 유다와 아나니아는 그 마음을 사단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람들의 심령은 사단의 처소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거듭나서 심령이 성령의 거처로 바뀌어야 합니다.
북한에는 이족인 무신론자 김일성이 유형적인 교회를 무너뜨렸으나 심령성전은 무너뜨릴 수 없기에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유형교회도 중요하지만 심령성전이 더욱 중요합니다.
예배는 찬송이요, 기도요, 말씀이요, 감사입니다. 찬송이 있는 곳에 슬픔이 없고 기도가 있는 곳에 실망이 없습니다. 말씀이 있는 곳에는 영적인 영양실조가 없습니다. 감사가 있는 곳에는 저주가 없습니다. 이러한 생활이 있을 때 우리의 성전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우리 심령에 제사가 살아나야 합니다. 왜 제사를 못드립니까? 제물이 없어서입니다. 소제의 제물은 곡식과 기름과 새포도주입니다. 요엘 1장 10절에 보면 "밭이 황무하고 토지가 처량하니 곡식이 진하여 새포도주가 말랐고 기름이 다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곡식은 말씀이요, 기름은 믿음이요, 포도주는 성령의 은혜입니다. 믿음이 마르고, 은혜가 마르고, 성령이 마르니, 무슨 말씀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마음에 찬송과 기도와 말씀이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한국 교회가 다시 살려면 저녁 예배가 부활되어야 합니다. 오후 예배로 드리는 교회는 첨단을 걷는 교회로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새벽 제단으로부터 아침 제사, 저녁 제사까지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족들의 궤계를 물리치고 한국 교회가 사는 길입니다.
4. 이를 다시 찾기 위해서는 회개하는 하나님의 중심을 뜨겁게 해야 합니다
요엘1장 13 - 14절에 "제사장들아 슬피 울어라. 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포하라"고 했습니다.
요엘서는 말세에 대해서 예언하면서 캄캄하고 어두운 여호와의 날이 임하기 전에 회개하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욜 2 : 1). 2장 3절에 보면 "불이 그들의 앞을 사르며 불꽃이 그들의 뒤를 태우니 그전의 땅은 에덴동산 같았으나 그 후의 땅은 황무한 들 같으니 그들을 피한 자가 없도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13절에 "너희는 옷을 찢지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라고 했고, 15절에도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을 정하고 성회를 선포하고 백성을 모아 그 성회를 거룩케 하고 장로를 모으며 소아와 젖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골방에서 나오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7절에서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으로 욕되게 하여 열국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말하게 하겠나이까 할지어다"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결사적이고 뜨거운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생사를 내건 회개를 의미합니다. 이렇게 뜨거운 회개가 있을 때에 하나님의 중심이 뜨거워져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18절에 보면 "그때에 여호와께서 자기 땅을 위하여 중심이 뜨거우시며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함으로 그 땅을 열국으로 하여금 관할하게 할것이라고 예언하면서 만약에 이스라엘이 이 예언을 듣고 뜨겁게 회개한다면 하나님께서 자기 땅을 위하여 긍휼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남북이 분단되어 서로 대치 상태에 있습니다. 해방과 함께 삼팔선이 생기고 북쪽에는 소련이 관할하고 남쪽은 미국이 관할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이 하나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요엘이 이스라엘에게 촉구했듯이 민족적으로 결사적인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뜨겁게 회개하면서 "여호와여 우리를 다른 백성이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라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관할은 통제요 지배입니다. 하나님의 선민이 왜 이방 민족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지배하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미국이 지배해서도 않되고 소련이 통치해서도 안됩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우리 민족을 관할하시고 통치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뜨겁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것은 진정한 회개뿐입니다. 민족적으로 뜨겁게 회개하는 백성이 됩시다. 할렐루야!
5. 이러한 회개가 있을 때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참된 회개가 있을 때 하나님은 응답하시고 회복해 주십니다.
요엘 2장 19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곡식과 새포도주와 기름을 주리니 너희가 이로 인하여 흡족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기를 다시는 열국 앞에서 수욕을 당치 않게 해주시고,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힘을 내어 열매를 맺으며,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히 주심으로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포도 주와 기름이 넘치도록 축복해 주신다고 했습니다(2 : 20 - 24).
앞에서 우리가 함께 살펴 보았듯이 회개하기 전에는 밭이 황무하여 곡식이 진하고 포도주와 기름이 말랐으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어서 인간의 희락이 말랐다고 했습니다(1 : 10 - 12). 그래서 소제와 전제가 여호와의 전에 끊어져서 제사장들이 슬퍼했다고 했습니다(1 : 9). 그런데 우리가 회개하여 하나님의 중심을 뜨겁게 하면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는 위에서 말하는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회복만이 아니라 더 중요한 영적인 회복의 역사도 있습니다. 요엘 2장 28절이하에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예언은 사도행전을 통해서 실제적으로 성취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행 2 : 17이하). 여기서 "내 신"은 하나님의 성령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로 회복된 모습은 성령충만의 모습입니다. 성령충만했을 때에 장래 일을 말하고 이상과 꿈을 보게 됩니다. 죄를 이기고 이족의 도전을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역사로 회복된 모습은 죄의 권세에 사로잡힌 자가 해방되는 것입니다. 요엘 3장 1절에 "그날 곧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발하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되리로다. 그러나 나 여호와는 내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리로다. 그런즉 너희가 나는 내 성산 시온에 거하는 하나님 여호와인 줄 알 것이라. 예루살렘이 거룩하리니 다시는 이방 사람이 그 가운데로 통행하지 못하리로다. 그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며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여호와의 전에서 샘이 흘러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 그러나애굽은 황무지가 되겠고 에돔은 황무한 들이 되리니 이는 그들이 유다 자손에게 강포를 행하여 무죄한 피를 그 땅에서 흘렸음이니라. 유다는 영원히 있겠고 예루살렘은 대대로 있으리라. 내가 전에는 그들의 피흘림 당한 것을 갚아주지 아니 하였거니와 이제는 갚아주리니 이는 나 여호와가 시온에 거함이니라"고 회복의 약속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약속의 말씀은 이스라엘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께 회개하여 하나님의 중심을 뜨겁게 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중심을 뜨겁게 합시다. 하나님의 중심이 뜨거워서 우리에게 축복하시지 않을 수 없도록 합시다. 하나님은 중심이 뜨거우시면 가만히 계시지 못하십니다. 능력의 손을 펴서 축복하시고, 은혜의 얼굴을 드셔서 긍휼을 베푸십니다.
우리에게 수많은 고통과 어려움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중심이 뜨거우시면 회복될 줄 믿습니다. 분단된 조국이 하나로 회복되고, 혼란한 이 사회에 질서가 회복됩니다. 파괴된 가정이 회복되고, 분열된 교회가 하나로 회복되며, 병든 육신이 건강하게 회복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중심을 뜨겁게 하는 백성이 됩시다. 할렐루야!
출처/김충기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