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804
마27:56-61
아리마데 요셉은 빌라도의 허락을 받아 예수 님의 시체를 무덤에 안장시킨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날이 저물었을 때 예수 님의 시체를 장사 지냈습니다. 유대인들은 저녁을 "이른 저녁과 늦은 저녁"으로 나누는데 본문에는 이른 저녁으로 오후3시 이후를 말합니다. 늦은 저녁은 6시 이후를 말하며 해가 지면 곧 다음날로 계산합니다. 그래서 안식일이 되기 전에 시체를 처리하려고 아리마데 요셉은 "이른 저녁"부터 서둘렀습니다. 요셉은 막15:43에 보면 존귀한 공회의원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고 했으며, 눅23:50-51에서 보면 의로운 사람으로 예수에 대한 결의에 가담치 않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유대의 율법으로는 시체를 밤새도록 방치해서는 안되며 당일에 매장토록 되어 있습니다(신21:22-23). 로마의 법률에는 시체를 청하여 매장할 친척이 없을 때는 그냥 썩을 때까지 방치해 두는데 아라마데 요셉이 이일을 자진해서 행했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은 오늘날도 세계 도처에 어디서든지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열심을 다하여 주님을 위해 헌신하여 사람들 앞에서나 주님 앞에서 충성스러운 사람으로 인정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열심이 그 사람의 참된 신앙을 평가하는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주님의 제자들이 그랬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나타난 여인들과 아리마데 요셉은 주님의 위험에서 그들의 신앙적 자세를 저버렸던 예수 님의 제자들과는 정반대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그들을 살펴봄으로서 참된 신앙의 자세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예수 님을 끝까지 따랐습니다.
마27:55절에 보면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좇아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라고 함을 봐서 이 여인들은 예수 님이 십자가 못 박히시는 형장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예수 님의 제자들은 한결같이 자기들의 모든 것을 내어버리고 예수를 좇았던 사람들입니다. 베드로 같은 제자들은 그것을 자랑으로 삼기까지 했습니다(마17:17). 그러나 가롯 유다를 제외한 11제자들 중에서 무덤 앞까지 따라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무덤은 고사하고 대부분의 제자들은 십자가 아래까지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십자가 형장까지 따라간 사람은 요한 한사람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를 따랐던 여인들과 아리마데 요셉은 무덤까지 따라 갔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위해서라면 목숨 잃는 것도, 그리고 사회적으로 매장 당하는 것까지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들에게서 참된 신앙의 용기를 배워야 합니다. 우리들의 신앙에 그와 같은 신앙적 용기가 없으면 참된 신앙이라고 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2, 예수를 장사 지냈습니다.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새 무덤에 넣어 두고 ...가니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앉았더라" 예수 님의 공생애 기간동안 그의 능력과 이적을 많이 체험했고 그로 인해 예수 님을 자기들의 왕으로 삼으려 했던 무리들은(요6:15) 예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는 순간 온데간데없이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싸늘한 시체로 변했을 때는 그를 모셔다가 장사를 지내려는 사람조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인들과 아리마데 요셉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많은 능력과 이적을 행하실 때 그를 따라다니면서 환호하지는 않았지만 예수께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을 때는 십자가 아래와 무덤에까지 따라 갔습니다. 그것도 단순히 장례 행렬에 끼여서 따라 간 것이 아니라 그들의 손으로 직접 장사지내기 위해서 따라갔던 것입니다. 이를 볼 때 이들은 예수 님을 진실로 사랑했던 사람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진실 된 사랑은 싸늘한 시체를 바라보면서도 사람으로 하여금 실망치 않게 하는 위대한 힘을 가졌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3, 예수 님께 새것을 드렸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자기가 묻히려고 준비해 두었던 "새 무덤에" 예수 님의 시체를 안장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새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누구나 다 새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므로 새것은 좋은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귀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만큼 이 새것은 언제나 나만을 위해서 쓰려고 하는 것이 사람들의 본능입니다. 그런데 아리마데 요셉은 자기를 위해서 준비해 둔 이 "새것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여인들도 "귀한 것", "좋은 것"을 주님께 드렸습니다(마26:6-13, 막16:1).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신앙의 올바른 자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비싼 것, 많은 것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눅12:41-44). 또한 물질 자체를 요구 하시지도 않습니다. 단지 귀한 것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바치고자 하는 신앙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인들이나 아리마데 요셉과 같이 가장 귀하고 좋은 것을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릴 줄 아는 자들에게 당신의 소유를 맡기는 것입니다.
4, 예수 님의 참 제자였습니다.
"그도 예수 님의 제자" 제자란 스승의 사상에 영향을 받고 그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스승의 사상과 지식만을 전수 받고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 제자라면 우리는 그를 참다운 제자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그에게는 제자 된 자에게 있어야 할 진실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아리마대 요셉은 어느 제자 못지 않은 그리스도의 참 제자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예수 님께서 가르쳐 주셨던 사랑과 용기를 직접 실천하였습니다. 아마 바로 이런 측면에서 마태는 "그도 예수의 제자"라고 주석을 달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여인들도 같은 차원에서 이 말씀에 해당된다고 봐야 옳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우리는 머리로만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아 드리고 입술로만 그것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손으로 보여주고 발로 실천하는 진실 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