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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행할 바를 가르치라
잠 22:6
[1] 여호와의 기업인 자녀
한 사회학자가 지나간 19세기를 여성을 발견한 세기요,20세기를 어린이를 발견한 세기요, 21세기는 노인을 발견하는 세기가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린이를 발견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요? 그전까지는 어린이가 하나의 인간이나, 인격으로 간주되기 보다 부모나 사회의 부속물 정도로 취급되어 왔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그것은 한국의 현실도 마찬가지이었습니다. 1920년대 우리 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로 있을 때 만해도 어린이라는 말조차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어린이들은 이놈, 어린 것, 애새끼라는 말로 불리 우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일본 유학생이었던 소파 방정환 선생은 이를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민족의 미래는 다음세대를 귀히 여기는데 있다고 확신한 그는 여름방학을 맞아 귀국했을 때 존대 말 쓰기 운동을 벌렸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어린이'(어리신 이)라는 말을 사용했고 어린이도 하나의 인격체임을 선언했습니다. 이것이 1921년의 일이었고 ,다음해인 1922년 5월1일에 처음으로 '어린이 날' 제정을 제안하고, 1923년에는 순수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하게 됩니다. 그해 5월1일 아동문화운동단체인 '색동회'를 창설하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어린이날의 유래가 된 것입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잠언 22장 6절에는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어린아이를 기르는 부모는 농부의 마음으로 자녀를 양육해야 합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은 농부의 정성을 먹는 것이지 알곡 그 자체를 먹는 것이 아닙니다. 농부가 농사짓는 과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농부의 지극한 관심과 사랑과 헌신적인 돌봄이 없이 충실한 결실을 가져 올 수가 없습니다.
자식을 낳아서 기르는 정성이 농부의 마음과 같지 않고는 훌륭한 자녀를 성장시킬 수가 없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옷과 살 곳만 제공하면 부모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면 큰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그 때문에 오늘날 비행청소년들을 양산하게 된 것입니다.
자녀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내려주신 가장 큰 축복입니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복이 다 당대에 끝납니다. 그러나 신앙의 축복은 자녀를 통해서 계계승승 이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실 때에 그 첫째가 자녀의 복이요, 둘째가 땅의 복입니다. 자녀의 복은 영원성을 말하고, 땅의 복은 권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시편 127편 3절은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자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업이요, 또한 가장 귀한 기업입니다.
그럼 오늘 본문은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고 했는데 무엇이 마땅히 행할 것입니까?
[2] 자식에게 가르쳐야 할 마땅히 행할 길
1. 영혼의 중요성
우리들이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자녀의 영혼문제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죄중에서 잉태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남자의 씨로 태어나는데 그 남자의 씨는 죄성을 가진 씨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씨로 잉태된 분이기 때문에 죄성이 없지만, 인간은 죄성을 전가받아 태어나게 됩니다. 시편 51편 5절에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로 그 자손들은 이미 뱃속에 있을 때부터 죄인으로 잉태되고 죄인으로 태어납니다.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하면 어린아이라도 영원히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어려서부터 악하다고 말합니다.
창세기 8장 21절에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을 배울 때부터 예수님의 구원과 하나님에 대한 경배를 마땅히 가르쳐야 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그냥 두면 그 영혼은 영원히 멸망받게 됩니다.
우리는 계란과 같습니다. 수정되지 않는 계란은 겉모양은 같아도 무정란 계란은 결코 병아리가 되지 못합니다. 똑같은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어린아이 때부터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지 아니하면, 즉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아 그 속에 하나님의 성령이 없는 자의 그 영혼은 죽은 영혼입니다. 버림받은 영혼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녀들이 반드시 회개하여 죄사함받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구원받게 도와 주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거듭나서 중생해야 합니다.
많은 학자들의 보고에 의하면 지능은 네 살 때 이미 90% 이상이 형성이 되고, 한살부터 세살 이내에 어린아이의 정신 발달은 이미 결정이 되고, 여섯 살 이전에 인격적인 토대가 형성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도 예전에는 세 살이면 천자문을 가르쳤습니다. 어린아이는 이미 세 살이면 거의 모든 것이 완성되어 가는 단계입니다.
따라서 어릴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을 받고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멸망을 받는다’는 사실을 확실히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영혼의 사냥꾼인 마귀에게 미혹되어 더욱 이단 종교에 빠지거나 무신론에 빠져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의 도구로 쓰임 받다가 영원히 멸망하고 맙니다.
2. 삶의 우선 순서
다음으로 어린아이에게 삶의 우선 순서를 분명히 가르쳐야 합니다. 인간의 생활에는 반드시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할 일과 나중 할 일을 혼돈하면 크게 낭패하게 됩니다. 마6:33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잠언 1장 7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고 주일성수하며 예배가 모든 것의 최우선입니다.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온갖 과외를 다 시키지만 지식이 근본이요, 지혜의 근본인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을 가르치지 아니하면, 그 자녀의 인생은 결국 부패하고 낭패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밖의 인간의 지혜와 지식은 잘못하면 교만하게 만들어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고 하나님을 부인. 대적하는 것으로 쓰이기 쉽습니다. 이는 자멸하는 영적 독소이기 때문에 살리는 진리와 지식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4절에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노벨상 수상자의 3분의 1이 넘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인류에 공헌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성경을 배웠으며, 구원은 받지 못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에서 노벨상을 가장 많이 받은 민족이 되었습니다. 또 뉴욕 중·고등학교의 교사 중 절반이 유대인이고, 하버드, 스텐퍼드, 예일대학의 의과대학, 법대 교수의 절반이 유대인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말씀을 받아 들이면 그것이 지혜의 근본이 되고 지식의 근본이 됩니다. 말씀보다 위대한 지혜와 지식의 교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관해서 가르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인 주일에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주일성수는 신약시대의 선악과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역사가 토인비는 ‘문명의 흥망성쇠는 도전과 응전에 의한 것인데 유대민족의 생존은 도저히 역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망하고 온 세계에 뿔뿔이 흩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성을 유지하고 1948년 5월 15일에 나라로서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전세계 어디에 흩어져 있어도 구약 성경을 통해 민족성을 유지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느 곳에 가든지 토요일 안식일을 준수했는데 유대인이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유대인을 지켰던 것입니다. 그들은 나라 없이 2천년동안 유랑하는 민족이었지만 구약 성경을 공부하고 토요일 안식일을 지켰기에 온 세계에 흩어져 수없이 짓밟히고 핍박을 받아도 국가와 민족을 형성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귀중히 여기고 성수 주일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복 받는 가장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 예배의 중요성을 가르쳐야 합니다. 가정은 또 하나의 작은 천국이요. 가정 예배는 하나님과 만남의 시간입니다. 가족이 모두 모일 수 있는 시간에 가능한 아버지를 중심으로 예배를 인도하고 가족끼리 교제를 나누는 기회로 삼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녀에게 나눠줄 가장 큰 유산은 제물도 아니고 이 세상 학력도 아닙니다. 제물과 세상 학력은 시간이 지나가면 다 사라집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아들 예수를 믿는 이 신앙을 유산으로 남겨 주는 것은 가장 큰 축복인 것입니다.
다음으로 물질과 하나님 섬기는 일을 분명히 가르쳐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십일조를 가르쳐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가르치면 늙어도 거기를 떠나지 않습니다. 물질이 하나님의 주권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십일조는 물질에 대한 신앙고백이기 때문에 물질의 축복을 받는 열쇠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할 때 하나님은 축복을 부어 주십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자 록펠러는 여섯 살 때 어머니에게 용돈을 받아 십일조를 드린 이후로 아흔 두 살이 되어 죽을 때까지 십일조를 도적질한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미국 최대의 부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자인 콜게이트는 어린시절 비누 공장 직공으로 일하면서도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 결과 콜게이트라는 위대한 기업을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감사의 예물을 드릴 때 부모의 손을 빌리지 말고 고사리 손이라도 직접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식에게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시편 50장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에게 감사 제물을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임하게 한다는 것을 분명히 체험하게 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섬기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정의를 먼저 생각하고 택하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세상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가 있을 때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생각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5절에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 119편 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미국 초기 건국 이념은 청교도 사상에 기초한 사상이었습니다. 교회를 먼저 짓고 후세 교육을 위해서 성경 학교를 먼저 세웠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하버드 대학, 예일대학, 프린스턴 대학 등이 모두 성경 학교로 세운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이 복을 주어서 세계적인 교육 기간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지폐에는 “인 갓 위 트러스트(In God we trust)”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미국이 많이 타락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떠나갔지만 그래도 근본 사상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흐르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때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가르쳤기 때문에 오늘날 미국이라는 문화가 존속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어린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택하고 세상 나라를 먼저 택하지 않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정의를 먼저 택하고 세상의 정의를 먼저 택하지 말 것을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에게 마땅히 행할 바를 가르치면 거기에서 지혜와 지식과 총명을 얻습니다.
3. 기도의 중요성
기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교통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문제해결의 열쇠입니다. 사람과 사람만 이야기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과 이야기하고 그 다음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따라서 골로새서 4장 2절에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손은 하나님이 성령으로 기름 부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행하고 나중에는 데릴라와 부정한 관계 때문에 파멸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하나님 앞에서 기도를 쉬는 죄를 범치 않았습니다. 엘리 대제사장 때 한나라는 여인이 아들을 주시면 평생 주님께 바치겠다고 기도했는데 그 응답으로 사무엘이 태어났습니다. 사무엘이 젖을 떼자 한나는 그를 엘리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하여 사무엘은 어릴 때부터 성소를 지키며 밤에도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고 이스라엘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신앙으로 이기는 지도자로 쓰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기도함을 가르치고 성령 충만한 생활을 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15절로 18절에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게 되면 평생토록 성령의 도우심으로 크면서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과 능력을 받아, 세상과 걸음을 걷더라도 주님 안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은 성령의 생각과 능력을 공급해 줍니다.
따라서 요셉이나 다윗 그리고 다니엘같은 인물이 되게 됩니다.
소원의 응답을 받고 도움을 받는 길이 기도의 길이라는 것을 알고 어린아이들에게 하나님께 소원을 아뢰고 하나님의 도움을 청하는 길을 가르쳐야만 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비전과 변화를 가져다 주시는 것입니다.
마귀와 세상의 길을 이기는 길도 기도하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을 어린 아이에게 가르쳐야 됩니다. 요한일서 5장 4절로 5절에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무엇으로 정욕을 제거하고 세상을 이길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초립동 다윗에게 곰과 사자는 가공할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알고 믿었기 때문에 용기 충천하여 곰과 사자를 이겼고 훗날 골리앗을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에게는 거대한 유혹과 죄악의 곰과 사자들이 덤벼들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에 더구나 젊은이들을 짓누르는 교육 제도, 입시제도는 마치 골리앗과 같습니다. 이러한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고통을 젊은이들이 어떻게 이기고 나갈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기도함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서 영화와 만화, 음악, 오락물 등 얼마나 많은 부패와 폭력이 홍수처럼 젊은이들을 휘몰아쳐 가고 있습니까? 이 무시무시한 세상을 이기고 나갈 수 있는 길은 부모님들이 기도해 주고 그들에게 기도의 길을 가르쳐 주는 길 밖에 없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매일 이기고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과 환경의 변화를 가져오는 유일한 길이 기도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폭력과 인간의 힘이 아니라 기도의 힘으로 이웃과 환경이 변화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로 2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기록했는데 이 변화는 마음에 예수를 믿고 말씀을 공부하고 기도함으로 성령이 새롭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4. 사랑의 중요성
어린 자녀에게 사랑의 중요성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세상과 돈을 사랑하면 파멸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을 몸에 체득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찌하든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광받으실 일만 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하면 인생이 평탄하고 형통하게 됩니다.
또 부모를 사랑하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에베소서 6장 1절에서 3절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하나님의 대권자이기 때문에 부모를 공경하고 효도하는 것이 윤리와 도덕의 근본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지 아니하면 선생도 존경하지 아니하고, 선생을 존경하지 아니하면 사회 지도층도 존경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 마땅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부모를 사랑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것을 확실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보이는 부모도 공경하지 않는 자가 어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자식들이 잘 되고 하나님께 복 받는 길이 라는 것을 하나님은 천명하십니다.
그리고 이웃 사랑을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의 하나님의 뜻입니다.
마태복음 22장 39절에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로마서 12장 10절에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아무리 사랑하려고 해도 사랑은 이웃을 사랑할 때 그 사랑이 우리 자신을 사랑하도록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지만 자기를 어떻게 사랑합니까? 이웃을 사랑할 때 그 사랑이 나를 사랑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웃 사랑은 자기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남편을 사랑하는 것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고 하신 주님의 뜻을 따라 마음껏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시기 바랍니다.
[3] 결 론
자녀는 말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생활로 키운다고 합니다. 원만한 부부 사랑, 부모의 신앙적 자세, 안정된 가정, 교회를 바로 섬기는 경건과 그 가치관--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자녀는 귀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배운다고 합니다. 모든 가치관과 기준이 부모로부터 그대로 물려받은 것입니다. 은혜와 감사, 은혜로 주신 바에 대한 감사한 그런 신앙태도를 부모가 자식에게 본을 보여야 합니다.
얼마전 저는 두 신문에서 각기 다른 가계도 비교를 읽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하나는 미국의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가문이고, 다른 하나는 언더우드 선교사의 가문입니다.
미국의 최고 실력자로 군림하다 미국의 케네디 왕실이란 칭호를 만들어 낸 케네디 가문과, 당시 미개한 땅 한국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평생을 주님을 위해 헌신하다 죽은 언더우드의 가문!
외견상으론 비교가 될 만하지 않습니다. 전 미국의 대통령과 일개 작은 목사가 어디 비교가 되겠습니까? 하지만 그 후손들의 이야기는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외견상으로 성공했다고 보이는 대통령 가문은 완전 실패작이며, 외견상으로 초라한 목사의 가문은 지금도 살아서 주님을 증거하며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실 수도, 저주를 베풀 수도 있는 분입니다. 축복을 받느냐, 저주를 받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사람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그 축복과 저주는 자신의 대에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자손들에게 전달됩니다.
주님의 축복은 천 대에 이릅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20:6)" 하지만 주님의 저주는 삼 사 대에 이릅니다.
"인자를 천 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 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출34:7).
그나마 천 대가 아니니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케네디가는 완전히 실패한 가문이 되었습니다.
케네디가의 비극은 무엇입니까?
존 에프 케네디 아버지는 미국에 이민와서 술 공장을 차려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남의 영혼에 해독을 주는 직업은 좋지 않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자녀들이 직업을 가질 때는 항상 남에게 생명과 유익을 주는 직업을 갖도록 교육시켜야 합니다.
또한 미국 교육을 보면 1960년대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때 공립학교에서 기도와 성경 공부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한 뒤부터 신앙 교육을 소홀히하고 세상 학문에 치중했습니다. 그 결과 청소년들이 타락하고 대도시마다 범죄율이 급증하게 된 사실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미국의 도덕적인 타락은 공립학교에서 기도하는 것과 성경 공부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한 다음부터입니다. 교내에서 총기 사건이 일어나고, 젊은이들이 마약 중독과 도덕적인 부패와 타락이 일어난 것입니다.
따라서 케네디가는 그 대가로 온통 피살, 각종사고, 스캔들로 얼룩져 있습니다. 이 가계도를 보십시오.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63년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리 하비 오스왈드에 의해 암살당하면서 꼬리를 무는 비극의 역사는 전개됩니다. 암살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68년 6월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지명을 위한 예비선거운동에 나섰던 그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암살 당했습니다
막내인 에드워드 케네디(상원의원·매사추세츠)는 69년 7월 채퍼퀴딕섬의 한 다리에서 차를 몰고 가다 강으로 추락했으나 가까스로 살았습니다. 차 안에서 여비서가 숨진 채 발견돼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전대통령의 형 조지프 케네디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비행기조종사로 베를린 공습에 참가했다가 영국해협 상공에서 피격돼 시신조차 찾지 못했습니다. 여동생 캐슬린도 48년 비행기 추락사고로 28세의 짧은 인생을 마감했고, 캐슬린의 언니 로즈메리는 지능장애와 뇌전엽 수술 실패로 41년 이후 공공시설에 수용돼 있습니다.
케네디 전대통령의 형제자매 9남매 가운데 2명이 암살당하고 2명이 비행기 사고로 숨졌으며 1명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
케네디가의 비운은 후대에도 이어졌습니다.
전대통령의 차남 패트릭 부비어는 아버지 암살 3개월전 조산아로 태어나 생후 3일만에 숨졌습니다. 로버트 케네디의 아들인 데이비드는 84년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휴양지에서 가족들에게 쫓겨난 뒤 부근 호텔에서 약물과다 복용으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데이비드의 동생 마이클은 97년 12월 콜로라도주 아스펜 스키장에서 스키를 타다 사고로 숨졌고, 형인 조지프는 여성 1명을 하반신 불수로 만든 교통사고를 냈습니다. 에드워드 케네디 2세는 73년 암으로 오른쪽 다리를 절단했고, 차남 패트릭은 10대이던 86년 코카인 중독에 빠져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존 에프 케네디 2세는 후세대 미국 지도자라고 세인의 관심을 끌었으나 최근 경비행기 사고로 죽고 말았습니다.
자! 이 모든 것이 우연이겠습니까? 우연이란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 주관은 한 치도 빈틈이 없으십니다. 우주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가문의 역사는 주관하지 못하시겠습니까?
케네디가의 몰락을 두고 세계가 눈물을 짖고 있지만, 우리는 이 가문을 보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공한 가문인 언더우드 가문을 볼 수 있습니다.
언더우드 목사와 후손들은 비록 떠들썩한 무엇을 남기진 못했지만, 생명 어린 일들을 했고, 지금도 그 일들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언더우드(Underwood)목사는 연희전문학교, 새문안교회, 대한기독교서회, 그리스도신문을 창간, 첫 고아원 설립, 기독청년회 설립, 한영사전과 한국어문법 등을 출간해 전도와 교육 문서선교에 일생을 바친 분입니다.
31년 동안 한국을 위해 일하다 발진티푸스에 걸려 요양차 미국으로 떠났다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연세대학교에 있는 동상에 새겨진 글귀대로 진정 '하나님의 사자(Messenger of God)'로 우리 나라에 와서 '그리스도의 제자(Follower of Christ)'로 살다가 '한국인의 친구(Friend of Korea)'가 된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의 아들 원한경도 한국에서 태어나 연세대에서 교수로 헌신하다 한국에 묻혔습니다. 그의 아들 원일한이 지금까지 연세대 재단이사로 헌신하고 있다가 지난 2004.1.16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들의 조선민족 복음화를 위한 열정은 우리 교회사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사람의 성공과 하나님의 성공이 같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케네디 가문은 사람으로는 성공했지만, 하나님께는 실패한 가문입니다. 언더우드 가문은 사람에게는 대단할 것 없지만 하나님께는 성공한 가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가문이 되시기를 원하십니까?
성경은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 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씀합니다. 선조가 심으면 후손이 거둡니다. 이 엄연한 진리를 외면하면 안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녀들에게 영혼의 문제와 신앙 생활의 문제만큼 일생과 영생에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을 믿고 섬기는 것이 마음에 확실하면 일생동안 어떤 일을 당해도 감당할 수 있는 마음의 바탕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일생동안 누릴 수 있고 영생토록 누릴 수 있는 제일의 재산이 신앙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 127편 3절에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허락하신 기업인 자녀, 잘 키워 놓으면 여러분 상급 중에 제일의 상급이 될 수 있는 자녀들을 마땅히 행할 길로 가르치는 부모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홍요셉 목사 (브리스베인 순복음교회)
잠 22:6
[1] 여호와의 기업인 자녀
한 사회학자가 지나간 19세기를 여성을 발견한 세기요,20세기를 어린이를 발견한 세기요, 21세기는 노인을 발견하는 세기가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린이를 발견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요? 그전까지는 어린이가 하나의 인간이나, 인격으로 간주되기 보다 부모나 사회의 부속물 정도로 취급되어 왔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그것은 한국의 현실도 마찬가지이었습니다. 1920년대 우리 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로 있을 때 만해도 어린이라는 말조차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어린이들은 이놈, 어린 것, 애새끼라는 말로 불리 우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일본 유학생이었던 소파 방정환 선생은 이를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민족의 미래는 다음세대를 귀히 여기는데 있다고 확신한 그는 여름방학을 맞아 귀국했을 때 존대 말 쓰기 운동을 벌렸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어린이'(어리신 이)라는 말을 사용했고 어린이도 하나의 인격체임을 선언했습니다. 이것이 1921년의 일이었고 ,다음해인 1922년 5월1일에 처음으로 '어린이 날' 제정을 제안하고, 1923년에는 순수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하게 됩니다. 그해 5월1일 아동문화운동단체인 '색동회'를 창설하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어린이날의 유래가 된 것입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잠언 22장 6절에는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어린아이를 기르는 부모는 농부의 마음으로 자녀를 양육해야 합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은 농부의 정성을 먹는 것이지 알곡 그 자체를 먹는 것이 아닙니다. 농부가 농사짓는 과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농부의 지극한 관심과 사랑과 헌신적인 돌봄이 없이 충실한 결실을 가져 올 수가 없습니다.
자식을 낳아서 기르는 정성이 농부의 마음과 같지 않고는 훌륭한 자녀를 성장시킬 수가 없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옷과 살 곳만 제공하면 부모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면 큰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그 때문에 오늘날 비행청소년들을 양산하게 된 것입니다.
자녀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내려주신 가장 큰 축복입니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복이 다 당대에 끝납니다. 그러나 신앙의 축복은 자녀를 통해서 계계승승 이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실 때에 그 첫째가 자녀의 복이요, 둘째가 땅의 복입니다. 자녀의 복은 영원성을 말하고, 땅의 복은 권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시편 127편 3절은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자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업이요, 또한 가장 귀한 기업입니다.
그럼 오늘 본문은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고 했는데 무엇이 마땅히 행할 것입니까?
[2] 자식에게 가르쳐야 할 마땅히 행할 길
1. 영혼의 중요성
우리들이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자녀의 영혼문제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죄중에서 잉태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남자의 씨로 태어나는데 그 남자의 씨는 죄성을 가진 씨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씨로 잉태된 분이기 때문에 죄성이 없지만, 인간은 죄성을 전가받아 태어나게 됩니다. 시편 51편 5절에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로 그 자손들은 이미 뱃속에 있을 때부터 죄인으로 잉태되고 죄인으로 태어납니다.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하면 어린아이라도 영원히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어려서부터 악하다고 말합니다.
창세기 8장 21절에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을 배울 때부터 예수님의 구원과 하나님에 대한 경배를 마땅히 가르쳐야 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그냥 두면 그 영혼은 영원히 멸망받게 됩니다.
우리는 계란과 같습니다. 수정되지 않는 계란은 겉모양은 같아도 무정란 계란은 결코 병아리가 되지 못합니다. 똑같은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어린아이 때부터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지 아니하면, 즉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아 그 속에 하나님의 성령이 없는 자의 그 영혼은 죽은 영혼입니다. 버림받은 영혼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녀들이 반드시 회개하여 죄사함받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구원받게 도와 주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거듭나서 중생해야 합니다.
많은 학자들의 보고에 의하면 지능은 네 살 때 이미 90% 이상이 형성이 되고, 한살부터 세살 이내에 어린아이의 정신 발달은 이미 결정이 되고, 여섯 살 이전에 인격적인 토대가 형성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도 예전에는 세 살이면 천자문을 가르쳤습니다. 어린아이는 이미 세 살이면 거의 모든 것이 완성되어 가는 단계입니다.
따라서 어릴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을 받고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멸망을 받는다’는 사실을 확실히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영혼의 사냥꾼인 마귀에게 미혹되어 더욱 이단 종교에 빠지거나 무신론에 빠져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의 도구로 쓰임 받다가 영원히 멸망하고 맙니다.
2. 삶의 우선 순서
다음으로 어린아이에게 삶의 우선 순서를 분명히 가르쳐야 합니다. 인간의 생활에는 반드시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할 일과 나중 할 일을 혼돈하면 크게 낭패하게 됩니다. 마6:33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잠언 1장 7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고 주일성수하며 예배가 모든 것의 최우선입니다.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온갖 과외를 다 시키지만 지식이 근본이요, 지혜의 근본인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을 가르치지 아니하면, 그 자녀의 인생은 결국 부패하고 낭패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밖의 인간의 지혜와 지식은 잘못하면 교만하게 만들어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고 하나님을 부인. 대적하는 것으로 쓰이기 쉽습니다. 이는 자멸하는 영적 독소이기 때문에 살리는 진리와 지식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4절에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노벨상 수상자의 3분의 1이 넘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인류에 공헌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성경을 배웠으며, 구원은 받지 못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에서 노벨상을 가장 많이 받은 민족이 되었습니다. 또 뉴욕 중·고등학교의 교사 중 절반이 유대인이고, 하버드, 스텐퍼드, 예일대학의 의과대학, 법대 교수의 절반이 유대인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말씀을 받아 들이면 그것이 지혜의 근본이 되고 지식의 근본이 됩니다. 말씀보다 위대한 지혜와 지식의 교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관해서 가르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인 주일에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주일성수는 신약시대의 선악과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역사가 토인비는 ‘문명의 흥망성쇠는 도전과 응전에 의한 것인데 유대민족의 생존은 도저히 역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망하고 온 세계에 뿔뿔이 흩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성을 유지하고 1948년 5월 15일에 나라로서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전세계 어디에 흩어져 있어도 구약 성경을 통해 민족성을 유지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느 곳에 가든지 토요일 안식일을 준수했는데 유대인이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유대인을 지켰던 것입니다. 그들은 나라 없이 2천년동안 유랑하는 민족이었지만 구약 성경을 공부하고 토요일 안식일을 지켰기에 온 세계에 흩어져 수없이 짓밟히고 핍박을 받아도 국가와 민족을 형성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귀중히 여기고 성수 주일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복 받는 가장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 예배의 중요성을 가르쳐야 합니다. 가정은 또 하나의 작은 천국이요. 가정 예배는 하나님과 만남의 시간입니다. 가족이 모두 모일 수 있는 시간에 가능한 아버지를 중심으로 예배를 인도하고 가족끼리 교제를 나누는 기회로 삼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녀에게 나눠줄 가장 큰 유산은 제물도 아니고 이 세상 학력도 아닙니다. 제물과 세상 학력은 시간이 지나가면 다 사라집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아들 예수를 믿는 이 신앙을 유산으로 남겨 주는 것은 가장 큰 축복인 것입니다.
다음으로 물질과 하나님 섬기는 일을 분명히 가르쳐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십일조를 가르쳐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가르치면 늙어도 거기를 떠나지 않습니다. 물질이 하나님의 주권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십일조는 물질에 대한 신앙고백이기 때문에 물질의 축복을 받는 열쇠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할 때 하나님은 축복을 부어 주십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자 록펠러는 여섯 살 때 어머니에게 용돈을 받아 십일조를 드린 이후로 아흔 두 살이 되어 죽을 때까지 십일조를 도적질한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미국 최대의 부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자인 콜게이트는 어린시절 비누 공장 직공으로 일하면서도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 결과 콜게이트라는 위대한 기업을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감사의 예물을 드릴 때 부모의 손을 빌리지 말고 고사리 손이라도 직접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식에게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시편 50장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에게 감사 제물을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임하게 한다는 것을 분명히 체험하게 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섬기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정의를 먼저 생각하고 택하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세상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가 있을 때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생각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5절에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 119편 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미국 초기 건국 이념은 청교도 사상에 기초한 사상이었습니다. 교회를 먼저 짓고 후세 교육을 위해서 성경 학교를 먼저 세웠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하버드 대학, 예일대학, 프린스턴 대학 등이 모두 성경 학교로 세운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이 복을 주어서 세계적인 교육 기간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지폐에는 “인 갓 위 트러스트(In God we trust)”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미국이 많이 타락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떠나갔지만 그래도 근본 사상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흐르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때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가르쳤기 때문에 오늘날 미국이라는 문화가 존속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어린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택하고 세상 나라를 먼저 택하지 않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정의를 먼저 택하고 세상의 정의를 먼저 택하지 말 것을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에게 마땅히 행할 바를 가르치면 거기에서 지혜와 지식과 총명을 얻습니다.
3. 기도의 중요성
기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교통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문제해결의 열쇠입니다. 사람과 사람만 이야기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과 이야기하고 그 다음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따라서 골로새서 4장 2절에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손은 하나님이 성령으로 기름 부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행하고 나중에는 데릴라와 부정한 관계 때문에 파멸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하나님 앞에서 기도를 쉬는 죄를 범치 않았습니다. 엘리 대제사장 때 한나라는 여인이 아들을 주시면 평생 주님께 바치겠다고 기도했는데 그 응답으로 사무엘이 태어났습니다. 사무엘이 젖을 떼자 한나는 그를 엘리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하여 사무엘은 어릴 때부터 성소를 지키며 밤에도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고 이스라엘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신앙으로 이기는 지도자로 쓰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기도함을 가르치고 성령 충만한 생활을 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15절로 18절에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게 되면 평생토록 성령의 도우심으로 크면서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과 능력을 받아, 세상과 걸음을 걷더라도 주님 안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은 성령의 생각과 능력을 공급해 줍니다.
따라서 요셉이나 다윗 그리고 다니엘같은 인물이 되게 됩니다.
소원의 응답을 받고 도움을 받는 길이 기도의 길이라는 것을 알고 어린아이들에게 하나님께 소원을 아뢰고 하나님의 도움을 청하는 길을 가르쳐야만 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비전과 변화를 가져다 주시는 것입니다.
마귀와 세상의 길을 이기는 길도 기도하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을 어린 아이에게 가르쳐야 됩니다. 요한일서 5장 4절로 5절에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무엇으로 정욕을 제거하고 세상을 이길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초립동 다윗에게 곰과 사자는 가공할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알고 믿었기 때문에 용기 충천하여 곰과 사자를 이겼고 훗날 골리앗을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에게는 거대한 유혹과 죄악의 곰과 사자들이 덤벼들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에 더구나 젊은이들을 짓누르는 교육 제도, 입시제도는 마치 골리앗과 같습니다. 이러한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고통을 젊은이들이 어떻게 이기고 나갈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기도함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서 영화와 만화, 음악, 오락물 등 얼마나 많은 부패와 폭력이 홍수처럼 젊은이들을 휘몰아쳐 가고 있습니까? 이 무시무시한 세상을 이기고 나갈 수 있는 길은 부모님들이 기도해 주고 그들에게 기도의 길을 가르쳐 주는 길 밖에 없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매일 이기고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과 환경의 변화를 가져오는 유일한 길이 기도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폭력과 인간의 힘이 아니라 기도의 힘으로 이웃과 환경이 변화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로 2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기록했는데 이 변화는 마음에 예수를 믿고 말씀을 공부하고 기도함으로 성령이 새롭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4. 사랑의 중요성
어린 자녀에게 사랑의 중요성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세상과 돈을 사랑하면 파멸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을 몸에 체득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찌하든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광받으실 일만 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하면 인생이 평탄하고 형통하게 됩니다.
또 부모를 사랑하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에베소서 6장 1절에서 3절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하나님의 대권자이기 때문에 부모를 공경하고 효도하는 것이 윤리와 도덕의 근본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지 아니하면 선생도 존경하지 아니하고, 선생을 존경하지 아니하면 사회 지도층도 존경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 마땅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부모를 사랑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것을 확실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보이는 부모도 공경하지 않는 자가 어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자식들이 잘 되고 하나님께 복 받는 길이 라는 것을 하나님은 천명하십니다.
그리고 이웃 사랑을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의 하나님의 뜻입니다.
마태복음 22장 39절에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로마서 12장 10절에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아무리 사랑하려고 해도 사랑은 이웃을 사랑할 때 그 사랑이 우리 자신을 사랑하도록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지만 자기를 어떻게 사랑합니까? 이웃을 사랑할 때 그 사랑이 나를 사랑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웃 사랑은 자기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남편을 사랑하는 것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고 하신 주님의 뜻을 따라 마음껏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시기 바랍니다.
[3] 결 론
자녀는 말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생활로 키운다고 합니다. 원만한 부부 사랑, 부모의 신앙적 자세, 안정된 가정, 교회를 바로 섬기는 경건과 그 가치관--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자녀는 귀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배운다고 합니다. 모든 가치관과 기준이 부모로부터 그대로 물려받은 것입니다. 은혜와 감사, 은혜로 주신 바에 대한 감사한 그런 신앙태도를 부모가 자식에게 본을 보여야 합니다.
얼마전 저는 두 신문에서 각기 다른 가계도 비교를 읽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하나는 미국의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가문이고, 다른 하나는 언더우드 선교사의 가문입니다.
미국의 최고 실력자로 군림하다 미국의 케네디 왕실이란 칭호를 만들어 낸 케네디 가문과, 당시 미개한 땅 한국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평생을 주님을 위해 헌신하다 죽은 언더우드의 가문!
외견상으론 비교가 될 만하지 않습니다. 전 미국의 대통령과 일개 작은 목사가 어디 비교가 되겠습니까? 하지만 그 후손들의 이야기는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외견상으로 성공했다고 보이는 대통령 가문은 완전 실패작이며, 외견상으로 초라한 목사의 가문은 지금도 살아서 주님을 증거하며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실 수도, 저주를 베풀 수도 있는 분입니다. 축복을 받느냐, 저주를 받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사람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그 축복과 저주는 자신의 대에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자손들에게 전달됩니다.
주님의 축복은 천 대에 이릅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20:6)" 하지만 주님의 저주는 삼 사 대에 이릅니다.
"인자를 천 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 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출34:7).
그나마 천 대가 아니니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케네디가는 완전히 실패한 가문이 되었습니다.
케네디가의 비극은 무엇입니까?
존 에프 케네디 아버지는 미국에 이민와서 술 공장을 차려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남의 영혼에 해독을 주는 직업은 좋지 않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자녀들이 직업을 가질 때는 항상 남에게 생명과 유익을 주는 직업을 갖도록 교육시켜야 합니다.
또한 미국 교육을 보면 1960년대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때 공립학교에서 기도와 성경 공부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한 뒤부터 신앙 교육을 소홀히하고 세상 학문에 치중했습니다. 그 결과 청소년들이 타락하고 대도시마다 범죄율이 급증하게 된 사실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미국의 도덕적인 타락은 공립학교에서 기도하는 것과 성경 공부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한 다음부터입니다. 교내에서 총기 사건이 일어나고, 젊은이들이 마약 중독과 도덕적인 부패와 타락이 일어난 것입니다.
따라서 케네디가는 그 대가로 온통 피살, 각종사고, 스캔들로 얼룩져 있습니다. 이 가계도를 보십시오.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63년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리 하비 오스왈드에 의해 암살당하면서 꼬리를 무는 비극의 역사는 전개됩니다. 암살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68년 6월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지명을 위한 예비선거운동에 나섰던 그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암살 당했습니다
막내인 에드워드 케네디(상원의원·매사추세츠)는 69년 7월 채퍼퀴딕섬의 한 다리에서 차를 몰고 가다 강으로 추락했으나 가까스로 살았습니다. 차 안에서 여비서가 숨진 채 발견돼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전대통령의 형 조지프 케네디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비행기조종사로 베를린 공습에 참가했다가 영국해협 상공에서 피격돼 시신조차 찾지 못했습니다. 여동생 캐슬린도 48년 비행기 추락사고로 28세의 짧은 인생을 마감했고, 캐슬린의 언니 로즈메리는 지능장애와 뇌전엽 수술 실패로 41년 이후 공공시설에 수용돼 있습니다.
케네디 전대통령의 형제자매 9남매 가운데 2명이 암살당하고 2명이 비행기 사고로 숨졌으며 1명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
케네디가의 비운은 후대에도 이어졌습니다.
전대통령의 차남 패트릭 부비어는 아버지 암살 3개월전 조산아로 태어나 생후 3일만에 숨졌습니다. 로버트 케네디의 아들인 데이비드는 84년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휴양지에서 가족들에게 쫓겨난 뒤 부근 호텔에서 약물과다 복용으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데이비드의 동생 마이클은 97년 12월 콜로라도주 아스펜 스키장에서 스키를 타다 사고로 숨졌고, 형인 조지프는 여성 1명을 하반신 불수로 만든 교통사고를 냈습니다. 에드워드 케네디 2세는 73년 암으로 오른쪽 다리를 절단했고, 차남 패트릭은 10대이던 86년 코카인 중독에 빠져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존 에프 케네디 2세는 후세대 미국 지도자라고 세인의 관심을 끌었으나 최근 경비행기 사고로 죽고 말았습니다.
자! 이 모든 것이 우연이겠습니까? 우연이란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 주관은 한 치도 빈틈이 없으십니다. 우주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가문의 역사는 주관하지 못하시겠습니까?
케네디가의 몰락을 두고 세계가 눈물을 짖고 있지만, 우리는 이 가문을 보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공한 가문인 언더우드 가문을 볼 수 있습니다.
언더우드 목사와 후손들은 비록 떠들썩한 무엇을 남기진 못했지만, 생명 어린 일들을 했고, 지금도 그 일들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언더우드(Underwood)목사는 연희전문학교, 새문안교회, 대한기독교서회, 그리스도신문을 창간, 첫 고아원 설립, 기독청년회 설립, 한영사전과 한국어문법 등을 출간해 전도와 교육 문서선교에 일생을 바친 분입니다.
31년 동안 한국을 위해 일하다 발진티푸스에 걸려 요양차 미국으로 떠났다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연세대학교에 있는 동상에 새겨진 글귀대로 진정 '하나님의 사자(Messenger of God)'로 우리 나라에 와서 '그리스도의 제자(Follower of Christ)'로 살다가 '한국인의 친구(Friend of Korea)'가 된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의 아들 원한경도 한국에서 태어나 연세대에서 교수로 헌신하다 한국에 묻혔습니다. 그의 아들 원일한이 지금까지 연세대 재단이사로 헌신하고 있다가 지난 2004.1.16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들의 조선민족 복음화를 위한 열정은 우리 교회사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사람의 성공과 하나님의 성공이 같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케네디 가문은 사람으로는 성공했지만, 하나님께는 실패한 가문입니다. 언더우드 가문은 사람에게는 대단할 것 없지만 하나님께는 성공한 가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가문이 되시기를 원하십니까?
성경은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 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씀합니다. 선조가 심으면 후손이 거둡니다. 이 엄연한 진리를 외면하면 안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녀들에게 영혼의 문제와 신앙 생활의 문제만큼 일생과 영생에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을 믿고 섬기는 것이 마음에 확실하면 일생동안 어떤 일을 당해도 감당할 수 있는 마음의 바탕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일생동안 누릴 수 있고 영생토록 누릴 수 있는 제일의 재산이 신앙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 127편 3절에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허락하신 기업인 자녀, 잘 키워 놓으면 여러분 상급 중에 제일의 상급이 될 수 있는 자녀들을 마땅히 행할 길로 가르치는 부모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홍요셉 목사 (브리스베인 순복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