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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사랑과 교육 (엡6:1-4)
오늘은 교회가 어린이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어린이들은 한 가정을 위해서나 한 사회를
위해서나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복된 선물입니다. 그래서 감사의 제목입니다. 어린이들은
가정이나 사회에서 기쁨과 희망과 기대감을 주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랑해야할 대상입니
다. 어린이들은 아직 자신의 삶의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없는 약한 존재입니
다. 그래서 책임지고 보호해야할 대상입니다. 어린이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생명들이
고 각 가정과 사회를 책임질 미래의 일꾼들입니다. 따라서 바른 교육과 훈련으로 그 가능
성을 최대한 현실적 역량으로 개발해주어야 할 인격자원입니다. 어린이들은 각 가정과 사
회와 나라와 교회가 공동적으로 책임져야 할 지구촌의, 아니 하나님나라의 소중한 구성원입
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를 위시한 세계 곳곳에서 어린이들은 무시와 착취와 학
대와 납치와 매매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세상이 타락하면 타락할수록 어린이들은 성추행
또는 성폭행의 주된 희생이 되고 있습니다. 어린이주일을 맞은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어린이들을 포함하여 아직 성년에 이르지 않은 자녀들을 우리가 어떻게 사랑하며 교육할 것
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중 자녀교육에 직접 관계되는 구절은 4절입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한 말씀입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먼저 부모들에게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앞선 1절에서는 "자녀들
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했습니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
종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면 부모들에게는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도록 가르칠 책임이 있
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게 하려면 부모에게 부모로서의 권위가 있
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권위를 마구 휘두름으로써 자녀들을 노엽게 해서는 안 됩니다. 권
위는 지녀야 하지만 그 권위를 휘두르기를 잘 절제할 때에 오히려 자녀들을 감동시킬 수 있
을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자녀들을 노엽게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봅니다. 첫째는 과보호입니
다. 아이들을 제일 짜증나게 하는 것이 과보호일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과한 것은 좋지 않
지만 이 과보호는 정말 교육적으로 좋지 않은 것입니다. 과보호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
로나 자녀의 정상적인 성장을 가로막는 것입니다. 커서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며 난
관을 헤쳐 나갈 능력을 키울 기회를 박탈하는 것입니다. 과보호는 자유에 대한 바른 인식
과 자유에 따르는 책임의식이 건강하게 자리 잡지 못하게 만들어 자녀를 정신적 장애자로
만드는 일입니다.
둘째는 편애입니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의 창조이며 그 창조의 손길 아래서 다양성을
부여받았습니다. 생김새의 차이, 성격의 차이, 재능의 차이, 능력의 차이, 기호의 차이, 성장
과 발전에 있어서 속도와 방식의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다양성을 무시하고 획일적인 기준에 따라 자녀들을 판단하고 편애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
님께서 부모에게 맡기신 자녀들은 그 누구나 꼭 같은 부모의 사랑을 받을 가치와 권리가 있
는 것입니다. 무의식중의 언행으로 표출되는 편애는 자기가 사랑받지 못한다고 여기는 자
녀에게 얼마나 깊은 마음의 상처를 주는지 모릅니다. 일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남길 수
도 있는 일입니다.
셋째는 자녀의 의욕을 꺾거나 찬물을 끼얹는 부모의 말이나 태도입니다. 어린이들은 아
직 어른이 아닙니다. 아직 경험과 지식과 사물을 전체적으로 보는 안목이 부족한 연령입니
다. 또 어른들의 고정관념과는 전혀 다른 발상을 할 수 있는 나이이며 그것이 오히려 어린
이의 장점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조건 기존의 개념과 가치의식에 따라 자녀들의 생각과
제안에 단정적인 비판을 가함으로써 그들의 의욕을 꺾고 더 이상 부모를 대화와 상담의 상
대로 여기지 않게 만드는 것은 스스로 자녀가 멀어지게 만들고 부모의 즐거움과 기쁨의 기
회를 박탈하는 일입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일도 늘 긍정적으로 말해주며 칭찬하고 격려
해주는 습관은 자녀들로 하여금 부모를 언제나 마지막 기댈 이해자요 위로자요 후원자로 여
기며 무슨 일에도 낙심하지 않게 만드는 힘입니다. 밖에서 모든 꿈이 깨져 집에 돌아온 자
녀가 부모 때문에 언제나 꿈이 다시 살아나게 만드는 그런 부모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자녀들을 노엽게 하는 것 넷째는 아이들은 계속 자라며 변화한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로 여기는 것, 자식들이 부모의 복사판이 되기를 바라는 것 등입니다.
어른들은 어린 자녀들을 현재보다는 미래를 내다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얼마든지 달라지고
좋아질 가능성을 안고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커서 무엇이 될지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은 그들의 선택에 맡겨야 할 것입니다. 부모의 꿈을 자녀들의 꿈으로
강요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자녀들이 그들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살아가는 방식도 그들의
책임 하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변화된 여건 속에 사는 자녀들에게 반드시 옛날 부
모가 살아온 방식으로 살 것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바른 삶의 정신을 가르치되 부모의
삶을 외형적으로 모방하기를 강권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자기의
고유한 삶을 살도록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 각자가 자기의 삶을 살기
를 원하시지 부모의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부모는 자녀들이 하나님께
서 원하시는 삶을 살게 해야지 부모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살게 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다섯째는 무시와 무관심입니다. 무시와 무관심은 사랑이 없는 증거입니다. 무시와 무관
심은 멀쩡한 자녀에게 소외감과 고독감과 버려진 느낌을 안겨주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자녀는 부모에게 존중의 대상이며 책임 있게 관심을 기울여야 할 대상입니다.
자녀를 어리다고 무시하거나 무관심 속에 방치하는 부모는 부모의 자격과 의무를 내동댕이
친 사람입니다. 그것은 나중에 자녀에 의해 무시당하고 무관심 가운데 버려질 준비를 하는
일입니다.
여섯째는 난폭한 언사나 체벌입니다. 어린이들은 아직 스스로를 방어할 힘이 없지만 하
나님 앞에서는 어른들과 꼭 같은 인격적 존재입니다. 어리다고 해서 비인격적으로 대하며
약한 존재에게 폭력을 자행하는 부모는 스스로 사람이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
녀를 훈계하며 교육하느라면 엄한 말로 꾸짖기도 하고 때로는 매를 들어야 할 때도 있을 것
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녀들 스스로 그 타당성에 이의를 제기할 여지가 없어야 합니다.
비인격적인 언사나 비상식적인 폭력의 행사는 아무리 부모라 해도 용납될 수 없는 것입니
다. 그것은 자녀사랑과 교육을 포기할 뿐 아니라 파괴하는 일입니다. 자녀의 존경과 효행
의 대상이 될 자격을 스스로 박탈하는 일입니다.
훈계와 교육은 부드러움 가운데 행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난폭한
언사나 체벌의 자제는 우유부단함과는 다릅니다. 부모의 자녀사랑과 교육은 부드러움 가운
데서도 단호함과 일관성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자녀에게서 부모의 사랑과 교육에
대한 이해와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모들의 자녀사랑과 교육에 관해서 사도 바울은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소
극적인 형태로 말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곧 이어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적극적인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양육한다는 말 속에는 한편으로는 칭
찬하고 격려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잘못하는 것을 질책하고 시정하게 해주며 훈련한다는 뜻
이 들어있습니다. 이 권면은 부모는 자녀에 대하여 열심히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을 내포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녀를 양육하되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것은 자녀
들을 가르치고 훈육하는 일 뒤에 주님 자신이 서계시게 하라는 뜻입니다. 주님 자신이 진
정한 교사와 훈시자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녀를 가르치되 주님의 말씀을 따라
가르치고 부모는 그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의 모범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과 일
치하지 않는 부모 자신의 생각을 따라 가르치며 또 스스로 본이 되지 못하는 삶을 살면서
자녀들을 기르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모의 말이나 행동이 언제나 주님에 의해 인정
받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교육은 궁극적으로는 자녀의 마음을 그리스
도 예수의 마음에로 인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자녀의 마음에 품
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교육은 자녀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함에 이르게 하려
는 것이지 부모를 앵무새나 원숭이처럼 흉내 내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들은 자녀들
이 하나님 앞에서 각각 고유한 인격체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녀들을 독자적인 인격체
로서 언제 어디서 무슨 일에나 바른 판단을 하고 자기의 언행에 대하여 책임질 수 있는 성
숙함에 이르게 해주어야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감시함으로써 무엇 하나 스스로 생각하
고 판단하며 행동할 수 없고 자기의 의지와 감정과 욕구를 스스로 표현하고 다스릴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바른 자녀사랑과 교육이 아닙니다. 자녀로 하여금 주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하는 것이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부모자신의 욕심대로 자녀를 억
압하고 구속하는 것은 주님의 뜻에 거스르는 잘못된 자녀사랑의 표현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사랑과 교육이 우리 자녀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고 그의 마음을 심
어주며 그가 인정하실 삶을 살게 하는 교육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교회와 우리 교회
에 속한 모든 가정에서 이러한 자녀사랑과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며 힘과
지혜를 모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학교의 모든 교사들뿐 아니라 우리 교회의 모
든 교역자와 제직들 그리고 각 가정의 부모들이 다 우리의 참된 교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진실한 제자들이 되고 충직한 보조교사들이 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어린이들이
행복한 교회 되고 어린이들이 행복함으로써 미래가 밝고 희망이 가득 찬 이 교회 되도록 최
선의 노력을 다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출처/이수영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