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어떻게 공경할까? (출 20:12)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10계명 중 다섯째 계명이지만 대인관계의 계명으로는 첫째 계명입니다. 첫째부터 넷째 계명은 대신계명 즉 하나님께 대하여 지켜야 할 계명이고 다섯째부터 열째까지는 대인계명 즉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계명입니다. 그런데 대인계명 중에는 제일 첫째 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입니다. 이 계명은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보다도 앞서 있고 “도적하지 말라”는 계명보다도 앞선 계명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6장 2-3절에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계명은 대인계명의 첫째 계명일 뿐 아니라 축복의 약속이 붙은 계명입니다. 대인계명 중에 “부모를 공경하라”고 한 이 계명에만 축복의 약속이 붙어 있습니다.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축복을 약속했습니다.

1. 왜 이 첫째 계명을 주셨는가?

하나님이 왜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첫째 계명으로 주셨을까요? ① 부모의 권위는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입니다. 부모라고 하는 권위는 어느 사람이 준 것도 아니고 어느 인간의 제도가 만든 것도 아닙니다. 부모의 권위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그 누구도 이 부모의 권위를 거역할 수 없는 계명이며 이 하나님의 권위를 거역하면 곧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무식해도, 부모가 자식을 호의호식 못 시키고 많은 교육을 받게 하지 못했어도 부모는 부모라는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에 반드시 공경해야 하고 또 이 계명대로 순종할 때에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신 계명입니다.

노아는 홍수 심판 때 유일하게 구원받은 의인이었지만 그도 실수를 범했습니다. 하루는 포도주를 많이 마시고 취해서 그만 벌거벗은 하체를 드러내놓고 잠을 자다가 셈, 함, 야벳 세 아들 중 가운데 함이 이를 보았습니다. 이때 함은 허물을 덮어드릴 생각은 하지 않고 입을 삐죽이고 비웃고 떠들고 흉을 보았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노아는 이 사실을 알고 저주하기를 “가나안(함)은 종의 종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함은 아프리카의 선조가 되어 그 후손들이 종 노릇하며 헐벗고 굶주리며 고생을 합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그 사실을 알고 홑이불을 가져다가 아버지의 허물을 안 보려고 뒷걸음을 쳐 들어가 허물을 가리우고 덮어드렸습니다. 노아는 이 사실을 알고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영적인 축복을 했습니다. 예수님도 셈족에서 태어났습니다. 또 “야벳은 창대케 하시리로다” 하고 물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대체로 백인들은 유색 인종보다 문명하고 잘사는 백성이 되었습니다.

노아가 실수한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무시하고 도전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요,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죄이기 때문에 노아가 윤리, 도덕으로 지은 죄보다 열 배 백 배 큰 죄를 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화가 어떻게 변하든지, 윤리, 도덕이 어떻게 바뀌든지 이 계명은 영원불변한 하나님의 명령이고, 이 계명을 지킬 때 그 가정과 그 나라가 잘 되고 장수하게 됩니다.


② 완전한 부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노아가 홍수 심판 때 구원받은 당대의 의인이었지만 포도주를 마시고 그런 창피스런 실수를 범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며 독자라도 하나님의 명령대로 제단에 바치는 믿음의 사람으로 큰 축복을 받은 사람이지만 그도 여종 하갈을 취하여 아들을 낳기도 하고 아비멜렉 추장한테 예쁜 아내를 빼앗길까봐 자기 누이라고 거짓말도 한 일이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은 완벽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모형이며 선민 이스라엘이 가장 존경하고 높이는 다윗왕도 자기 부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고 이를 숨기려고 살인죄까지 지었습니다. 인간은 다 실수가 있고 죄가 있습니다. 완벽한 인간은 아무도 없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이 세상에 완벽한 부모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잘못이 있건 없건, 훌륭하든 못하든, “자기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나님은 명령하셨습니다. 부모는 부모라는 이유 때문에 공경해야 합니다. 자격이 없어 보이는 부모일수록 효도하고 공경하면 더 복을 받습니다.


③ 부모와의 관계가 다른 모든 관계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부모를 공경할 줄 모르면 사회생활에서 상사를 존경할 줄 모르고, 따라서 인정받지 못하고 성공적인 생활을 못합니다. 부모와의 관계가 바르지 못하면 직장생활도 잘하지 못하고 가정도 행복하지 못합니다.


2. 어떻게 공경할까요?

① 어린 아이 때는 순종을 배워야 합니다.

어렸을 때는 무엇보다도 순종하고 존경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어려서 부모에게 순종할 줄 모르면 커서도 부모에게 순종할 줄을 모릅니다. 에베소서 6장 1절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했습니다. 우상숭배나 기타 죄짓는 일 외에는 부모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부모가 또 순종하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존 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는 19남매를 키우면서도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운 분인데, 그 분은 자녀들이 어려서 자기 고집을 꺾고 부모에게 순종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제멋대로 하게 버려두는 부모는 그 자식을 마귀의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부모가 먹여 주고, 입혀 주고, 교육시켜 주었기 때문에 간섭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이 무질서하고 살벌하고 죄악이 관영한 세상이 된 것은 자식을 하나, 둘만 키우면서 과잉보호하고 제멋대로 하게 버려두었기 때문입니다. 체벌이 없어졌기 때문이고, 자유방임주의 교육철학의 영향 때문입니다.


② 청년 때에는 용납하고 감사함으로

공경해야 합니다.

어렸을 때에는 자기 부모가 최고로 보이다가도 자라면서 사춘기가 되고 청년기에 접어들면서부터는 부모의 잘못과 결점을 보게 됩니다. 공부를 좀 해서 지식이 들어가면서 부모의 행실을 비평하게 됩니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부모가 약점이 있고 실수가 있어도 이를 이해하고 용납하고 감사하면서 공경해야 됩니다. 공경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부모를 통해서 이 땅에 태어났고 부모를 통해서 먹고 입고 양육되었으며 많게든 적게든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반드시 용납하고 감사하며 공경해야 합니다.

용납이란 용서하고 이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부모가 지나친 것 같고 잘못하는 것 같아도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잠언 23장 22절에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요사이 도덕이 땅에 떨어져서 학생이 선생을 구타하고 자식이 부모를 갖다버리고 구타까지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수가 자기 아버지를 죽이기도 합니다. 상상도 못할 죄악들입니다.

부모에게 죄가 있고 실수가 있고 결점이 있어도 용납하고 감사함으로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존경이 안 가고 감사할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부모일지라도 그런 부모를 공경하면 그 자식은 더 복을 받습니다.


③ 성인이 되어서는 부모를 인정하고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요사이 부모를 모시고 제주도나 해외여행 가서 늙은 부모를 버리고 오는 자식들이 일 년에 800건이나 된다고(10년 전 통계) 합니다. 믿어지지 않는 통계입니다. 자식을 어렸을 때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씻겨 주었으니 성인이 되면 입장이 바뀌어서 늙은 부모를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씻겨 주는 것이 당연합니다. 늙으면 자식이 부모의 희생과 노고를 알아주기 원합니다.

디모데전서 5장 8절에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했고, 디모데전서 5장 4절에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가족이나 친족을 돌아보지 않는 자도 믿음을 배반한 자라고 했는데 하물며 자기를 낳고, 먹여 주고, 입혀 주고, 키워 주신 부모를 돌아보지 않는 것은 얼마나 더 큰 죄겠습니까?


④ 부모의 영혼을 구원하고 영혼이 잘되도록 돌보아 드리는 것이 가장 큰 효도입니다.

어느 부흥 강사님은 부모가 안 믿으면 한 달만 금식하고 기도하면 믿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옥갈 부모를 구원하여 천국에 가시게 하기 위해서는 무슨 노력인들 아끼겠습니까? 육신이야 아무리 잘 먹고 잘 입고 행복하게 해드려도 100년 미만에 끝나지만 영혼이 잘되는 것은 천 년 만 년이 아니라 영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지 못한 부모님이 계시다면 어찌하든지 예수님 믿고 구원받아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면하고 천국에 들어가 영생복락을 누리게 해드리는 것이 세상에서 고대광실 높은 집을 사드리고 호의호식하게 해드리는 것보다 억만 배 더 큰 효도입니다. 만일에 믿는 자녀를 둔 부모가 이 다음에 지옥불에 떨어진다면 얼마나 그 자식이 원망스럽겠습니까? “이런 고통의 장소가 있는 것을 알았다면 내가 싫다고 해도 억지로라도 잡아끌어서 교회로 데려 갔어야지, 내가 싫단다고 그대로 두었느냐, 못된 자식아!”라고 할 것입니다. 일본에 강도질하는 아버지에게 예수님을 잘 믿는 19세 소녀가 있었습니다. 이 소녀는 아버지를 위해 기도도 많이 하고 눈물로 호소도 해 보았으나 도무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히브야 공원으로 칼을 들고 강도질하러 나가는 것을 그 딸이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소녀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입던 숙녀복으로 갈아입고 어머니가 들고 다니던 핸드백을 들어 아버지의 뒤를 몰래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컴컴한 곳에서 살해할 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한 숙녀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자기 딸인 줄 모르고 칼로 찌르고 핸드백을 빼앗아 도망갔습니다. 집으로 달려가 돈이 얼마나 들었나 보려고 불빛 아래서 자세히 보니 많이 보던 핸드백이었습니다. 그 백을 열어보니 편지 한 장이 들어 있었는데 바로 자기 딸의 편지였습니다. 읽어보니까 “아버님 전상서. 아버지, 이 불효한 여식의 잘못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오늘밤 아버지의 칼날에 죽어 쓰러지는 것이 아버지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잘못인 줄 모르는 바 아니오나 아무리 생각해도 아버지의 영혼을 구원하여 천국으로 모시는 길은 이 길밖에 없는줄 알고, 저는 지금 죽어도 천국에 갈 준비가 되어 있으므로 최후로 이 길을 택하였으니 나를 자식으로 아시거든 불쌍하다 보시고 회개하고 예수님 믿으시다가 천국에서 하나님 보좌 앞에서 만나뵙기를 바랍니다. 불효 여식 올림”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편지를 읽고 통곡하며 가슴을 치다가 그 길로 달려가 자수하였다고 합니다. 형무소 생활을 하면서 신앙생활을 잘 하여 모범수로 출감되어 신앙생활을 잘 하였다고 합니다.

부모님이 구원받고 또 그 영혼이 잘 되기 위해서 은혜받는 길로 인도하고 교회에 잘 모시고 다니는 일과 교회에 나오시는 것이 불가능하면 설교 테이프나 비디오 테이프를 들려드리며 기도해 드리는 것이 진정한 효도라고 봅니다. 영혼이 잘 되는 것이 제일 큰 효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