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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의 고통과 불효 (디모데후서 3:1-5)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름다운 4계절을 주셨습니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입니다. 봄에
는 꽃이 피어서 화려할 뿐 아니라, 모든 나무들이 초록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생명의 푸름을
마음껏 뽐내는데 정말 멋있습니다. 봄이 참 좋다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해 봅니다. 봄의 아
름다움은 가정의 아름다움과 비교됩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한 가정을
이루어 사는 모습이 봄 동산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부부, 사랑하는 자녀, 공경하는 부모, 이
모든 것이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동산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아름다운 봄 동산과 같이
우리 가정이 아름다운 가정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말세의 고통과 불효
우리가 사는 시대를 말세라고 합니다. 말세라는 말의 뜻이 무엇입니까? 말세는 예수님의 재
림이 임박한 때라는 말입니다. 특정한 때를 의미하기보다는 예수님을 기다리면서 살아가는
평범한 하루 하루가 다 말세입니다. 말세는 하나님 섬기기를 거부합니다. 죄짓기를 좋아합
니다. 말세에는 사단의 활동이 강력해서 믿는 자들도 사단의 유혹을 받고 넘어집니다.
말세는 고통의 때라고 합니다. 말세에는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많은 고통이 있는 때입니
다. 바울은 말세의 고통을 여러 가지로 말합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
며 자긍하며 교만하여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
하여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
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딤후3:2-5)." 우리는 바울이 말하는 고통을
경험하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달해서 이전에 비하면 정말 살기 좋은 세상
입니다. 이전에 없던 좋은 것들을 얼마든지 누리는 세상입니다. 그렇다고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병중에도 암이나 에이즈 그리고 요즘 유행하는 사스 같은 고약한 병이 있습니다.
말세의 고통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병으로 신음합니까? 경제생활이 윤택해지긴 했어
도 돈 때문에 받는 고통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경제활동을 하며 산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실직을 당하거나 사업에 부도라도 나면 회복하기가 어렵습니다. 신용불량이라도
되면 사회에서 퇴출당합니다. 자기 사랑으로 인한 고통이 큽니다. 말세에는 사람들이 이기
적입니다. 다른 사람은 죽어도 모릅니다. 자기 이익에는 목숨을 걸지만, 다른 사람의 이익이
나 관심에는 미련할 만큼 둔합니다. 쾌락으로 인한 고통이 큽니다. 쾌락은 순간적으로 즐거
움을 주지만 결국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줍니다. 우리 주변에는 마약이나 도박 같은 것으로
중독 된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말세의 일반적인 고통이 아닙니다. 주제로 돌아가서, 말세의 고
통 중에 부모를 거역하는 불효를 주목합시다. 이전에는 불효로 인해 고통이 크지 않았습니
다. 부모를 잘 공경한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세에는 부모 공경의 문제가 가정의 근본을 흔
듭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가족 간의 관계가 변합니다. 부부의 관계도 달라져야 합니다. 맞벌
이 부부에게는 더욱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남편이 권위만 내세워서 안 됩니다. 자녀들 관
계도 달라져야 합니다. 아들 딸 차별도 없어야 합니다. 개방적이고 창의적으로 키워야 합니
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강남 간다는 말은 옛말입니다. 이제는 조기 유학을 보낸 기러기 아
빠가 많습니다. 가족 간에 이런 저런 변화가 있지만, 정말 심각한 것이 부모 섬기는 문제입
니다.
부모 섬기는 문제가 얼마나 달라졌고 심각한가를 말 해 주는 간단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이전에는 "어떻게 하면 사랑 받는 며느리가 될 것인가?" 이것이 관심이었다면, 이제는 "어떻
게 하면 며느리에게 눈치 안 보이는 시어머니가 될까?" 이것이 관심입니다. 이전에는 시집
간 딸이 혹이 보따리 싸서 친정에 돌아오면 어떻게 할 것인지 걱정했다면, 이제는 장가간
아들이 혹시 이혼을 당해서 보따리 싸서 집으로 돌아오면 어떻게 하나 이것이 걱정입니다.
김치 담아서 아들집을 찾아가는 시어머니는 인기 없습니다. 아들 집 문 앞에 김치 놓고 간
다고 메모하고 돌아가는 시어머니가 좋은 시어머니라고 합니다. 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이지
만, 속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가정을 흔드는 것은 부부 당사자의 문제나 자녀만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와 자녀의 관계, 곧 부모를 어떻게 섬길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평안하고 잘사는 가정이 됩니까? 부모를 잘 섬기는 자녀가 되는 것이 첩경입
니다. 말세를 살면서 우리가 겪는 고통이 무엇입니까? 쓴 뿌리가 무엇입니까? 다 원인이 있
습니다. 돈이든 정욕이든 나쁜 습관이든 다 원인이 있습니다. 특별히 가정에 무슨 고통이
있습니까? 가정 문제의 근본은 부모 섬김에서 나온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부모를 순종
하고 공경하면 다 치료됩니다. 부모를 순종하고 공경하는 것이 말세를 행복하게 사는 비결
입니다.
2. 네 부모를 공경하라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문화에나 보편적인 진리입니다. 부모 공경
은 진리 중에 진리이고 상식 중에 상식입니다. 부모는 자녀의 생명의 근본입니다. 부모 섬
김은 인간 근본의 문제입니다. 부모와 관계를 바로 갖지 못한다는 것은 인간으로 기본적인
도리를 져 버리는 패역입니다.
예수님도 육신의 부모를 순종하고 공경했습니다. 12살 때 예루살렘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부모와 잠시 헤어져서 부모에게 근심을 끼쳐드렸습니다. 예수님은 랍비들과 성경을 토론하
다가 부모님과 함께 동행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부모님의 선한 꾸중을 달게 받았습니
다. 나사렛에서 항상 부모에게 순종하며 생활했습니다. 예수님은 목수 요셉의 아들로 부모
섬김의 책임을 다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도 제자들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셨습니
다.
성경은 부모 공경을 십계명 중 제5계명으로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십계명은 하나님
에 관한 의무 계명과 사람에 대한 의무 계명으로 성격상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
님만 섬기라는 제1 계명이 하나님에 대한 기본 계명이라면,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5 계명은
인간에 대한 기본 계명입니다. 하나님 섬김과 부모 섬김은 모든 계명의 두 기둥입니다. 모
든 계명의 요약입니다.
부모를 섬기지 못하면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를 섬기지 못하는데,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까? 부모를 섬기지 못하면 모든 인간관
계도 잘못됩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 남의 생명을 존중히 여길 수 없습니다. 부
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 가정의 순결을 존중히 여길 수 없습니다. 부부 간의 문제나 자
녀의 문제는 부모 공경이 없을 때 나타나는 2차적인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
은 남의 재산을 존중히 여길 수 없습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은 남의 명예를 존중
히 여길 수 없습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탐욕이나 정욕으로부터
지킬 수 없습니다. 모든 인간관계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 곧 부모 공경에서 출발합니다. 유
교가 모든 윤리의 출발점으로 효를 중심으로 삼은 것은 옳습니다. 기독교의 효는 유교보다
더 차원이 높습니다. 인간 중심의 효보다는 하나님 중심의 효를 가르치는 기독교는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서 가장 탁월한 진리 체계입니다.
3. 부모 공경의 참 의미
부모 공경은 죽은 조상을 제사로 모시는 것이 아닙니다. 왜 제사를 드립니까? 내가 복 받겠
다고 제사를 드립니까? 이것은 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모독하는 것입니다. 조상을 이용
해서 자기 욕심을 채우는 것 아닙니까? 부모의 재산이나 명성을 이용해서 나 잘되자는 것
은 부모 섬김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부모를 섬겨야 합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부모님을
위해 섬겨야 합니다. 지금까지 부모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았으니 이제는 우리가 부모님을 섬
길 차례입니다.
부모를 섬긴다는 것은 부모를 책임지는 것입니다. 자식이 부모의 품안에서 도움을 받은 것
처럼, 이제는 자식이 부모님을 돕는 것입니다. 물질로 섬겨야 합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
이 부모 공경의 물질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고르반"을 악용하는 것을 책망하셨습니다.
고르반은 하나님께 바쳤다는 뜻인데, 바리새인들은 부모 섬김을 회피하기 위해 자기 재산을
하나님께 바쳤다고 핑계했습니다. 고르반을 악용했습니다. 부모를 섬기기 위해 반드시 물질
의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이 아버지 야곱을 애굽으로 모신 것처
럼, 자녀들이 물질의 책임을 감당할 때가 있습니다. 굳이 한 집에서 한 밥상에서 먹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요즘은 생활의 방식이 다양해짐으로 얼마든지 부모 섬김의 책임을 다르게
이행할 수 있습니다. 병원에 입원하여 모실 수도 있고, 양로원에 모실 수도 있고, 세대를 달
리해서 모실 수도 있습니다. 혹 옛날처럼 한 집에서 모실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자
식이 부모를 섬기는 관계만큼은 돈독해야 합니다. 요즘은 사회 복지가 발달해서 국가나 기
관에서 물질 문제를 감당할 수도 있습니다. 자녀들은 관심과 사랑으로 부모님을 잘 섬겨야
합니다. 100살이 넘은 어머니가 장애인 딸을 50년 이상 보살핀 이야기가 신문에 보도되어
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자녀들도 부모님과 물심양면으로 좋은 관계를 가져서
세상사는 날 동안 잘 모셔야 합니다.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혈육에만 호소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부모를 출발로 섬기지만, 내
부모가 끝이 아닙니다. 남의 부모도 부모입니다. 윗분이 다 부모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부모
는 선생님이나 목사님이나 나라의 통치자를 비롯한 모든 윗분을 다 부모라고 합니다. 보모
를 잘 섬겨야 합니다. 이것이 유교의 가르침과 다른 것입니다. 유교는 혈육 관계의 부모만
섬기라는 제한적 성격이 강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부모 공경은 윗분들과 관계만 아니라, 크
게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관계를 말합니다. 부모 공경은 결국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부모 공경은 윗분과의 관계인데, 이것은 결국 권위와 질서의 문제입니다. 복종할 만한 권위
에 복종하고, 순종할 만한 질서에 순종합시다. 권위에 복종하고 질서에 순종하는 것이 부모
공경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부모를 거역하면 가정에 어려움이 생깁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
습니다. 인간관계 전반이 다 잘못됩니다. 부모 모르는 사람이 선생님과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없습니다. 부모 모르는 사람이 목사님과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없습니다. 부모 모르는 사
람이 직장 상사와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없습니다. 부모 없이 성장한 사람이 사회 질서에 잘
적응할 수 없습니다. 순종과 공경 대신에 무례함과 비판과 거역과 불평과 불만으로 점철되
는 가시밭길을 걸었다면 좋은 인간관계나 사회적인 삶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위가 없으면
아래도 없습니다. 친구끼리 놀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취미가 같은 동호인들이
배울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선배와 후배로 이어지는 동아리에서 인생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동아리는 친구끼리 모임과 다릅니다. 선배가 있고 후배가 있다는 것이 큰 차
이입니다.
가장 유익하고 좋은 관계는 윗사람들과 관계입니다. 요즘 제일 안 되는 관계가 바로 이것입
니다.
부모 공경은 통해 우리가 얻는 유익 중에 가장 큰 것은 하나님에 대한 공경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육신의 부모를 섬기지 않고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고 합니다. 삶의 가장 기본 관계가 결혼 관계입니다. 결혼 관계는 언약의 관계인데,
이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언약적 관계를 육성합니다. 좋은 부부 관계는 하나님과 좋은 영적
관계를 경험하게 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가
하나님을 공경하고,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는 부모를 공경합니다. 비슷한 경험입니다.
처자식 아들 자랑하면 바보라고 하는데, 아들 자랑합니다. 용서하시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아들이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어디서나 호감을 산다고 합니다. 저보다 성격이
좋습니다. 친구들만 아니라(친구들 중에도 공부 못하는 친구들), 교회 집사님들도 좋아하고,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선생님도 아들을 좋아한답니다. 수학 선생님 말씀으로는 돈을 아
무리 많이 주어도 가르치기 싫은 학생도 있는데, 우리 아들은 반대로 안 보면 보고 싶을 정
도라고 합니다.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은혜를 입으라고 은(恩)규라고
지었더니 이름대로 되는 것 같습니다. 어디가나 속내를 잘 보이지 않고 대들지 않으니까 어
른들 눈 밖에 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아이들에게는 발랄함과 패기와 의욕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윗분들에게 인정받고 호감을 사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것이 축복의 그릇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어른 가르치려들고, 거역하지 맙시다.
4. 부모 공경 어떻게 합니까?
경건의 모양이 아니라 경건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누구나 부모 잘 섬기고 싶습니다. 윗
분들과 좋은 관계를 갖고 그분들 잘 섬기고 싶습니다. 그런데 안 됩니다. 안 될 이유가 다
있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유교의 효는 인간의 힘으로 합니다. 도덕적 훈련으로 합니다. 물
론 옳습니다. 기독교의 효는 인간의 노력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신앙의 힘으로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아브라함이 어떻게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
제단에 바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힘이 독자 이삭을 바치게 했습니다. 부
모 공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못합니다. 부모에게 은혜를 받은 것은 기억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기적입니다. 자기 생활, 자기 자식에 신경 쓰다 보면 부모님 생각은 잊
어버립니다. 부모의 혜택을 받지 못한 분도 있을 것입니다. 받은 것이 없으니 기억할 것도
없습니다.
성경에 대표적인 효부가 룻입니다. 룻은 모압 여인으로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으
로 왔습니다. 남편은 죽고 시어머니는 가난합니다. 그러나 룻은 하나님 섬기고 시어머님 섬
기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신앙으로 시어머니를 잘 섬길 때 다윗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누렸
습니다. 이방인이고 젊은 과부인 룻이 무엇으로 시어머니를 섬깁니까? 가진 것이 없습니다.
남편도 없습니다. 아직은 젊어서 세상적인 유혹도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행할 때, 하나님
이 크게 역사하셔서 그녀를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없으면 부모를 섬길 수
없습니다. 핑계하면 부모 공경할 수 없습니다. 세상과 타협하고 마귀와 타협하면 부모 공경
할 수 없습니다.
믿는 사람 중에 부모 없는 사람이 꽤나 많은 것 같습니다. 부모님과 등지고 사는 분들이 있
는 것 같습니다. 회복합시다. 세례를 베푼 목사님도 모릅니다. 믿음의 아버지도 모릅니다.
박사가 되고 남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사회적으로 출세를 하였지만, 막상 찾아볼 선생님
이 없습니다.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염려해 주신 장로님 권사님이 없지 않을 터인데, 손잡
을 만한 분이 없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육신으로 행한 때문입니다. 신앙으로 행합
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푼 은혜는 얼마나 많습니까? 그 은혜를 기억 못하는 것처럼, 우
리가 부모와 윗분들에게 받은 은혜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므로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합시다. 늘 부모님을 위해 기도합시다. 하나님을 만나듯이,
기도 가운데 부모님을 만납시다.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읍시다. 부모님을 통해 하
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은혜를 깨달읍시다.
한나는 아들 사무엘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제 사무엘이 한나를 위해 기도할 차례입니다.
야곱은 생사가 불명한 요셉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제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이 아버지 야
곱을 위해 기도할 차례입니다. 기도 가운데 부모님을 만나면 불효할 수 없습니다. 기도 가
운데 목사님과 선생님과 직장 상사와 윗분들을 만나면 거역할 수 없습니다. 육신의 공경 이
전에 영적으로 관계를 새롭게 합시다.
신앙의 유업을 계승합시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신앙의 대장부가 되라고 유언했습니다. 우리
부모님들의 신앙의 유언이 무엇입니까? 부모님의 소원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면 충실하
게 이행합시다. 거기에 영생이 있는 줄 믿습니다. 대를 잇는 가업, 대를 잇는 하나님 나라
섬김. 이것이 명문 가문입니다.
작은 것부터 합시다. 부모님이 우리를 사랑할 때 작은 것부터 주셨듯이, 우리도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실천합시다. 관계는 작은 것으로부터 변합니다. 탁구공 하나가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개선했습니다. 말 한마디, 작은 정성 하나가 큰 능력입니다.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
다. 윗분들과 좋은 관계를 위해 작은 실천이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