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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잠 23:22~26)
새 중에서 까치를 길조라고 부릅니다. 아침에 까치가 울면 좋은 일이 있든지 반가운 손님이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까마귀는 흉조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흉조인 까마귀가 어미에게 효도를 잘 하는 새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미 까마귀는 새끼가 태어나면 한번도 먹을 것을 물어다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새끼 까마귀들은 스스로 먹을 것을 찾아 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어미 까마귀가 늙어 날개 털이 빠져 날지 못하게 되면 어미로부터 아무런 은혜도 입지 못한 새끼 까마귀가 먹을 것을 가져다가 어미를 봉양한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반포지효(反哺之孝)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어미 까마귀에게 한번도 먹을 것을 받아먹지 못한 까마귀 새끼도 늙은 어미가 죽기까지 먹을 것을 날라다 주는데, 어찌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이 그 어미나 아비를 조롱하며 봉양치 않을 수가 있습니까?
청와대가 위치하고 있는 동네는 효자동입니다. 동네이름이 효자동이 된 유래가 있습니다. 어떤 시아버지가 실수하여 이불 밑의 손자를 깔아 죽였답니다. 며느리는 죽은 아들을 안고 남편에게 가서 자초지종을 말했습니다. 아내에게 설명을 들은 남편은 죽은 아들의 빰을 후려치면서, "왜 너는 죽어서 할아버지의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불효자식 같으니라구" 라고 하더랍니다. 그런데 빰을 맞고 죽은 아들이 살아났답니다. 이 일을 아신 임금이 그 동네를 효자동이라 이름했답니다. 죽은 아이에게도 효는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어버이를 무시하지 아니하고 공경하는 효도의 생활이 축복을 이루며 축복을 지속하게 하는 조건이 됨을 보여주는 교훈입니다.
어버이를 공경하는 생활은 축복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요즘처럼 가정이 파괴되며 가족관계에 적신호를 보여주는 때가 역사적으로 없었다고 합니다. 가정의 위기는 문명의 몰락을 가져온다고 합니다. 히브리민족의 조상들이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라" 고 가르쳤던 본문의 말씀에 주목하여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어버이를 경히 여기지 말라는 뜻은,
첫째 어버이에게 청종하여야 합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은 어린 시절 뱃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준비를 갖추고 선원으로 취직하여 짐을 배에 싣고 어머니께 작별 인사를 하러 갔습니다. 그 때 어머니께서 배타는 것을 말렸습니다. 그러자 워싱턴은 배에 가서 짐을 가지고 와 버렸습니다. 어머니의 뜻을 거역하면서까지 꿈을 이루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에 부모에게 순종하는 아들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워싱턴은 고백하기를 "나보다 어머니에겐 인생의 살아오신 경륜이 있으니까 어머니의 명예를 높이고 어머니의 인격을 높이기 위하여 순종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효도입니다.
본문 22절에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고 하였습니다. '청종하라' 는 말은 현대인의 성경에 '순종하라' 고 번역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절은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골로새서 3장 20절은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고 하며 부모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존경과 경외로 섬기듯이 하나님의 대리자인 부모도 존경과 경외로 섬겨야 된다" 고 말했습니다. 부모님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 세상에서 보내주신 분이기에 어버이를 존경하고 경외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요즘의 시대는 부모 소외와 노인학대의 위기시대입니다. 노인문제연구소 발표에 따르면, "동양의 노인들 특히 한국, 일본, 대만, 홍콩, 말레이시아 등 유교문화권에 속해있는 지역의 노인들은 1950년도까지 만해도 가정에서 권위 있는 존재로 존경받아 왔고 자녀에 대한 영향력도 막강했다. 그러나 지금은 노인존중의 기풍이 감퇴되어 노인들은 고독과 소외감에 시달리며 생계의 위협과 함께 병고로 고통받는 노인들이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 고 개탄했습니다. 부디 여러분들은 어버이를 존경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레위기 19장 32절에 보면 "너는 센머리 앞에서 일어나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공경하라" 고 했습니다. 노인 공경과 하나님 경외가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버이를 존경하며 사는 자의 생애에 축복으로 채워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어버이를 기쁘게 하여야 합니다
월간지 낮은 울타리에 신월동의 한 주부가 글을 실었습니다. "우리 어머니 이야기를 듣는데는 커다란 오해가 필요합니다. 말하자면 귀를 거꾸로 달든지 뇌를 거꾸로 조직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아가, 나 지금 느네 집으로 간다. 그런데 나 저녁 먹고 갈란다." "아니 어머니 왜요? 어서 오셔서 저희랑 같이 드세요." "아니다 그냥 물 말아먹고 간다." 전화는 그렇게 일방적으로 끊깁니다. 그리고 먹고 오시는 줄 알고 있으면 어머니가 들이닥치시는데 보따리 가지고 오신 것 받아 내려놓고 "어머니, 저녁을 왜 물 말아 드셨어요" 하였는데, 아뿔싸 속았구나 저녁을 안 드시고 오신 것입니다. 어머니의 반어법에 속은 것입니다. 이젠 어머니에게 속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합니다. "얘 아가, 이번 어버이날에는 절대로 선물 같은 거 사지 말거라" 그러면 꼭 선물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얘 아가, 길도 막히는데 오지 마라" 그러면 꼭 가야 한다고 다짐한다는 것입니다. "얘 아가, 이번 아버지 생신 때 아버지랑 여행 간다. 그러니 오면 헛걸음이다. 무거운 것 들고 왔다가 그냥 가야 한다." 그렇다고 안가면 큰일 날 줄 알고 반드시 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전화해 놓고도 어머니는 하루종일 길에 나와 기다리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추어탕 끓여 놨다. 와서 먹고 가라" 하면 이것은 반어법이 아니라 직설법이라 하나도 안 무섭다는 것입니다. 그냥 가면 되니까요. 그러나 "고기 같은 거 사 올 필요 없다. 많이 있으니까?" 이럴 때는 고기 잔뜩 사 가지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반어법은 어머니가 자식을 골탕먹이려는 것이 아니라 자식을 향한 어머니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런 어머니의 표현 속에 당신이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잘 파악하여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자식의 지혜로운 행동입니다.
진수성찬을 해드려도 즐겁고 기쁘지 않으면 불효요, 돈 다발을 갖다 드리고, 보약 지어드려도 그것을 받는 어버이가 즐겁고 기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효도는 어떤 공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을 즐겁게 해 드리고 기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잘 파악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고, 많은 대화와 상당한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자식들이 부모님들에게 세대차이 난다고 지저분하다고 고리타분하다고, 뭐가 안 통한다고 무시하고 업신여기며 경히 여기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얼마나 부모님의 속마음을 얼마나 알고 있으며, 알려고 노력합니까? 24절에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로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고 합니다. 무릇 부모는 자녀들이 인생을 바르게 살며 지혜롭게 살아갈 때 마음을 놓습니다. 그런 자녀를 가진 어버이는 근심대신 평화를 누리며 수치대신 영광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은 자신들이 올바르게 살 때 그것이 어버이를 기쁘게 하는 효도임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셋째로 어버이에게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어느 도시 효자가 시골에 이름난 효자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습니다. 쓰러져 가는 시골 효자 집에 도착하여 잠시 있으니 누추한 옷을 입은 한 청년이 나뭇짐을 가득 짊어지고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부엌에서 일하던 늙은 어머니가 뛰어나와 아들의 나뭇짐을 받쳐 내려놓고 급히 부엌으로 다시 들어가더니 대야에 뜨거운 물을 가지고 나와 마루에 아들을 앉히고 아들의 발을 씻기며 즐겁게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도시효자는 시골효자에게 "여보게, 어찌 기력이 없으신 노모께 발을 씻기게 하는가? 자네가 효자라는 소문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시골효자는 "저는 효도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다만 저는 내 어머니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이라면 무엇이나 순종하며 기쁘게 해드립니다" 라고 하더랍니다. 이 말을 들은 도시 효자는 "나는 효도를 잘못했구나. 지금까지 나는 내 생각대로 효도하려 했구나. 좋은 잠자리, 좋은 음식, 많은 용돈을 드렸지만 내 어머님의 얼굴에는 저 시골효자의 어머니 같은 웃음이 없으셨지 않은가?" 라고 깊이 깨달았답니다.
26절에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자녀들의 마음을 어버이에게 달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자녀들의 마음을 세상에 주지말고 어버이의 가르침에 마음을 다하여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창세기 22장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는 사건이 나옵니다. 이 사건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바치며 순종한 아브라함의 믿음은 칭찬하셨으나, 한 마디의 반항도 없이 자기목숨을 내어놓은 아들 이삭의 순종에 대해서는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왜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버이에게 자식이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녀들이 어버이에게 순종하는 것은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오죽이나 순종을 안 하면 마땅히 해야할 효를 했음에도 효행으로 표창을 하겠습니까?
순자는 어버이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도 될 경우가 셋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순종하면 어버이가 위태로워지고 불순종하면 어버이가 편안해 질 때, 다른 하나는 따르면 어버이에게 욕이 되고 따르지 아니하면 어버이가 영화롭게 될 때, 또 하나는 따르면 어버이가 금수같이 되고 따르지 않으면 어버이가 빛나게 될 때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자녀 된 자들은 어찌하든지 어버이께 순종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여러분은 어버이를 경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어버이를 공경하라는 말의 '공경하다' 는 '카베드' 인데 '가치 있게 여기다' 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어버이를 공경하라는 말은 경히 여겨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버이는 구제의 대상이 아닙니다. 측은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효가 아닙니다. 어버이는 공경의 대상입니다. 이후로 어버이의 말씀을 청종 하시기 바랍니다. 기쁘게 해드려야 합니다. 마음을 드리며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효도를 이루는 지름길입니다. 그리할 때 이 땅에서 잘되며 장수하는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될 줄로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