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804
너희 부모를 공경하라 (엡 6:1-3)
설교 제목을 “너희 부모를 공경하라”로 정하고, 설교 원고를 쓰려고 하다가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이런 제목으로도 설교해야 싶은 겁니다. 왜냐하면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이걸 해라, 말아라 그래야 되나 싶은 겁니다. 부모공경이라는 것이 누군가 해야 한다고 하니까 하는 거냐 싶은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모두 어디서 만들어졌습니까? 그래요. 어머니입니다. 어머니에게서 만들어지고,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걸 무시할 수 있어요? 그것을 멸시할 수 있어요?
부모를 공경한다고 하는 것은 필수입니다. 이건 선택이 아닙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해야 하나 싶은데, 성경에도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20장에 나오는 십계명에 보면 1부터 4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계명입니다. 그리고 5부터 10까지의 계명은 사람 사이의 계명입니다.
그 사람 사이의 계명을 중 첫째 계명이 “너희 부모를 공경하여라. 그래야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이 너희에게 준 땅에서 오래도록 살 것이다.”는 겁니다. 그리고 나머지 계명은 그냥 계명뿐입니다. “살인하지 못한다.” “간음하지 못한다.” “도둑질하지 못한다.” “너희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하지 못한다.” “너희 이웃의 집을 탐내지 못한다. 너희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소나 나귀나 힐 것 없이, 너희 이웃의 소유는 어떤 것도 탐내지 못한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부모를 공경하지 않았으면, “너희 부모를 공경하라” 그렇게 말씀하시고, 다른 데는 없는 복을 약속하셨겠습니까?
부모를 공경하십시오. 그래야 주 하나님께서 준 땅에서 오래도록 살 것입니다.
미국의 제20대 대통령은 제임스 가필드(James A. Garfield, 1831-1881)입니다. 그가 대통령에 취임할 때, 나이가 많아 잘 걷지도 못하는 그의 늙은 어머니를 취임식에 모시고 나가려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극구 만류했지만, “어머니가 취임식에 안 가시면 저도 취임식에 안 나가겠습니다.” 하고 고집하면서, 결국 어머니를 업다시피 해서 취임식에 모셨습니다. 그리고는 군중들 앞에서 대통령 추임의 모든 영광을 어머니께 돌렸습니다.
이 광경은 지켜 본 모든 사람들은, “가필드는 과연 효자구나. 그러기에 대통령에 취임하는 축복을 받았구나.” 하며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율곡선생의 이야기에서도 그런 효성을 보게 됩니다.
율곡의 나이 5살 때, 그의 어머니가 병환으로 위독하게 되자 밤중에 사당에 나아가서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신이여, 내 몸을 바쳐 어머니 병환이 나을 수 있다면 기꺼이 드리겠습니다.”
또한, 11살 때에는, 아버지가 병환으로 눕게 되자, 대꼬챙이로 자신의 팔을 찔러 피를 뽑아 아버지께 먹이기도 했답니다.
이러한 종류의 효도를 가리켜서 헬라어로 ‘안티펠라르기아’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한 가지 선을 또 다른 선으로 보답하는” 의미로, 특히 어릴 때 자신을 키워준 분들을 부양하고 귀하게 모시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놀라운 것은 이 ‘안티펠라르기아’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어느 이방인들에게는 “효도의 법”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법에 따르면, 자녀들은 부모를 부양하여 잘 모시든가, 아니면 감옥에 들어가 쇠고랑을 차든지 둘 중에 한 가지를 택하도록 되었다고 합니다.
디모데후서 3:1-5에 보면, “그대는 이것을 알아두십시오. 말세에 어려운 때가 올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뽐내며, 교만하며, 하나님을 모독하며, 부모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감사할 줄 모르며, 불경스러우며, 무정하며, 원한을 풀지 아니하며, 비방하며, 절개가 없으며, 난폭하며, 선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무모하며, 자만하며,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며, 겉으로는 경건하게 보이나 경건함의 능력은 부인할 것입니다. 그대는 이런 사람을 멀리하십시오.”
말세에는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겁니까? 당연한 일들이 당연히 되어지지 않고, 당연히 되어지지 말아야 할 일들이 공공연하게 되어진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말세에는 그렇다니까 그런가보다 하자는 거 아닙니다. 그렇기에 우리 그리스도인의 가정만이라도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가 자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그런 가정이 되자는 겁니다. 예수님과 함께 행복한 가정이 되어보자는 겁니다.
부모공경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은 사람이 지녀야할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그 말씀은 법이나 어떤 규칙보다도 더 인간의 도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이 부모를 공경하라는 겁니다. 그렇기에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크게 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라”는 것과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지 말라”는 것은 잘 지키려 합니다. 그리고 “하지 말라”는 것을 했을 때는 죄책감을 가집니다. 그러나 “하라”고 하신 말씀은 잘 안 지킵니다. 그리고 “하라”는 말씀대로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잘못했다는 죄책감이 없는 겁니다.
하지 말라는 것 하고서는 죄책감 때문에 울기도 했지만, 하라고 하는 것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서 울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그렇게 예수께서 말씀하셨는데, 그래서 그렇게 이웃을 사랑하지 못했기에, 하나님께 용서를 빌며 울어본 적 있습니까?
부모 공경도 그렇습니다. 부모를 때리지 않았다고 여러분 스스로 난 잘한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부모를 학대하지 않았다고 여러분 스스로 난 잘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부모를 좀 더 사랑하지 못한 것도 큰 잘못임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사랑 때문에 부모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그런데, 부모님의 사랑이 실감납니까? 부모님이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생각이나 납니까?
늘, 어머니의 말을 거스려서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딸이 있습니다. 그 딸에게 어머니가 이렇게 말합니다. “너도 이담에 시집가서 너 같은 딸 나아보아라.” 하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딸을 저주하는 말은 아닙니다. 너도 자식을 키워보면 이 어미 속을 알게 될 거라는 말입니다. 자기가 겪어 보아야 비로소 알 수 잇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꼭 겪어보아야만 아는 겁니까? 이미 우리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았고, 또 받고 있습니다. 이미 받은 사랑도 어마어마한 겁니다.
사무엘하 15장 이하에 보면,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압살롬은 그 아버지 다윗이 도망한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 그 아버지의 자리를 차지했고, 백주 대낮에 그 아버지의 여자들을 범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못된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사무엘하 18:19 이하에서, 압살롬이 다윗의 장군 요압의 손에 의해 죽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은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파서 성문 위 다락방에 올라가서 울었습니다. 그는 올라갈 때,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에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고 울부짖었습니다.
그것이 아버지 마음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솔로몬의 지혜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두 여인이 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서로 자기 아들이라고 우기는 겁니다. 그러자 솔로몬은 칼로 그 아이를 반으로 잘라서 나누어 주라고 명령합니다. 그랬더니 한 여인이 울면서 그냥 그 아이를 저 여인에게 주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자기가 거짓말 했다는 것이고, 그럴 경우 그 여인은 왕을 속인 죄로 죽음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그 아이를 반으로 나눌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곧 그 아이의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자기가 죽으면 죽었지, 아이를 죽일 수 없다는 이 어머니의 사랑이 있었고, 솔로몬은 그 어머니의 사랑을 보고 그 여인이 친 어머니인 것을 알아낸 것입니다.
부모는 그런 분입니다.
자식들은 “부모가 내게 해 준 게 뭐 있느냐” 말하지만, 부모는 자식에게 뭐든 해주고 싶은 겁니다.
인터넷 설문조사 기관인 폴에버(pollever.com)에서 전국 부모 1,308명을 대상으로 4월 28일부터 5월 3일까지 조사를 했습니다.
“이럴 때 자싱이 밉다.”에서 1) 거짓말 할 때(37.2%), 2) 말 안 듣고 대들 때(36.5%), 3) 공부 취직, 일 등을 제대로 안 하고 빈둥거릴 때(11.9%), 4) 부모님보다 배우자나 이성 친구를 더 생각할 때(6.0%), 5) 집에 늦게 들어올 때(4.1%), 6) 다른 부모와 비교할 때(3.9%), 기타 0.4%입니다.
그리고 부모가 자녀에게 가장 미안할 때를 물었는데, 1,308명 중 821명 곧 62.8%가 “경제먹인 문제로 자녀가 하고 싶은 것을 다 못해 줄 때”이었습니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사실 우리가 보다 나은 뭔가를 기대하며 그것에 비교하다 보면 부모를 원망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를 위한 부모님의 사랑과 그 희생을 생각하면 그 은혜는 한이 없습니다.
말할 수 없는 아픔으로 나아주셨습니다. 그리고 키워주셨습니다. 그 키워주시는 과정은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단순히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나으시고, 키워주신 그 은혜는 당신들의 생명과 맞바꾸는 그런 희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지만,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부모도 그렇습니다. 한 평생, 자식을 위하여 희생하고, 끝없이 자녀들이 잘 되기만을 기원합니다. 그래서 마틴 루터는 우리가 부모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높여야 된다.”고 강조했던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부모를 공경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이 땅에서 여러분은 오래오래 잘 되는 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공경할 것입니까?
동양의 효는 유교의 영향을 받아서 그저 부모님의 말씀에 절대 복종하도록 하였습니다. 그것이 충효사상입니다. “나라에 충”하면 자기 생명도 바쳐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부모에 효”하면 그 부모의 말씀이 옳고 그르든 그대로 순종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갈등합니다.
특히 믿지 않는 부모의 가정에 자녀들이 신앙생활 하는 것은 엄청난 갈등입니다. 부모를 속이고 교회를 다녀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 앞에서 복음을 전하실 때, 예수님의 어머니와 누이가 찾아왔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누가 내 어머니며, 누이며, 형제냐?” 그러시면서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니라”(마 12:50)고 하셨습니다.
혈육보다 하나님이 먼저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머니는 내가 만들어진 곳입니다. 그곳이 나의 근원입니다. 나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먼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과 사람을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나의 나 됨은 부모님에 의해서입니다. 그러나 나와 나의 부모님이 계시게 된 것은 바로 하나님에 의해서 입니다. 하나님이 아니시면 내 부모님도 계실 수 없고, 나 역시 여기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섬기니까 부모는 아무렇게 해도 된다는 것 아닙니다.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주님을 섬기듯 부모님을 섬기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듯 부모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고르반’을 책망하신 겁니다. ‘고르반’은 “하나님께 다 드려졌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경해야 할 부모님께도 드릴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데, 모두 다 하나님께 드려졌기에 부모에게 줄 것이 없다는 겁니다. 그리곤 그 모든 것을 자기가 씁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곳으로 가서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묶어서 제단의 장작 위에 올려놓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반항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아들 이삭이 장작을 메고 산에 오른 것을 보면 제법 힘 쓸 수 있는 나이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반항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 아버지께서 하는 일이 곧 하나님께 향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주 안에서” 되어지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자녀 되는 여러분!
부모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는 일이라면 그대로 하십시오. “왜 그래야 하느냐?” 따지지 마십시오.
부모 된 이들이여! 주 안에서 자녀를 양육하십시오.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하십시오.
자녀 되는 이들이여!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십시오. 주님을 사랑하듯 부모를 사랑하십시오. 주님께 순종하듯 부모님께 순종하십시오.
동양의 격언에, 나무가 고요히 있고자 하되 바람 때문에 그대로 서있지 못하고,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고자 하되 어버이가 기다리고 있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살아 계실 때 잘 하십시오.
잠언 23:22, “너를 낳아준 아버지에게 순종하고 늙은 어머니를 업신여기지 말아라.” 25절, “너의 어버이를 즐겁게 하여라. 특히 너를 낳은 어머니를 기쁘게 하여라.”
신명기 5:16, “너희 부모를 공경하여라. 주 너희 하나님이 명하신 것이다. 그래야 너희는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에게 준 땅에서 오래 살면서 복을 누린다.”
부모를 공경하십시오. 그래서 주님께서 하신 약속대로 이 땅에서 오래 살면서 복을 누리십시오.
08.05.2005 주일 낮 (이영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