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의 영광  (눅2:1-20)
  

성탄절은 하나의 휴일에 불과합니까, 아니면 거룩한 날입니까? 성탄의 이야기가 우리들이 성탄절을 즐거워하는 중요한 이유입니까? 한 아이가 성탄절날 엄마를 따라서 백화점에 갔습니다. 한 점포의 진열장에서 구유에 나신 아기 예수의 장식을 발견하고는 좀더 구경을 하려고 엄마손을 잡아당겼습니다. 그러자 그 엄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서 와. 그런 거 보고 있을 시간이 없어."
성경은 우리에게 성탄절의 기본 진리를 보게 해줍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구절들에 언젠가 오실 구세주에 대한 오랜 갈망, 그리스도 강림의 역사적 사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의 성탄절의 의미, 변화된 인생의 경험을 통한 성탄절의 개인적인 이해 등이 나타나 있습니다.
성탄절은 본래 기뻐해야 하는 날입니다. "보라, 내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눅 2 :10). 그러나 그것은 구세주에 대한 기쁨이지 구세주 없는 기쁨은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성탄절의 기쁜 이유를 말해 줍니다. 구세주께서 나셨기 때문입니다. 제임스 1세의 재판정에서 랜슬롯 앤드류스 주교가 말했듯이 "우리 환희의 이유는 예수님의 탄생이다. " 성탄에 대한 믿음이 우리가슴을 기쁨으로 가득 채웁니다. 구유의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진정 '메리 크리스마스'인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캐롤에도 나오듯이 "그리스도 우리 구세주가 성탄절에 나셨음을 기억합시다. " 크리스마스의 바쁜 일정 속에서 혼란에 빠졌을 때,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주시니라"(눅 2 : 11).

1.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사 9 :2).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우리의 가슴은 기쁨으로 쉽니다. 험하고 두려움으로 가득 찬 세상에 갑자기 희망이 나타난 것입니다. 곤경에 처한 인간들이 하나님의 능력과 만난 것입니다.
(1) 두려움의 세계에 살던 심약한 왕 아하스에게 소망의 말씀이 전해졌습니다. 이사야는 암흑의 시대에 예언을 했는데 그것은 빛의 예언이었습니다. 아하스는 도움을 구하려고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이사야는 하늘을 우러러보았습니다. 아하스는 앗시리아인들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재난을 낳았을 뿐입니다. 이사야는 하늘을 우러러보고 자기가 본 것을 확신했습니다. 이사야는 어려움 앞에서 겁을 먹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생의 폭력 앞에서 움츠러들지 않았습니다. 전망이 좋지 않을 때 그는 위로부터의 소망을 의지했습니다. 그 는 영원으로부터 온 빛이 유한한 세계에 사는 인간들의 소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는 한 아이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청사를 메었고"(사 9:6). 인간의 어둠 속에 비칠 하나님의 빛이요, 인간에게 참 된 소망을 안겨 줄 아기가 와야만 했습니다. 네 가지 이름을 가진 왕자는"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 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사 9:6). 기묘자와 모사로서 그는 하나님의 평원한 진리의 빛을 문제 많은 인간사 속으로 이끄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으로서 암흑을 쫓아내고 사람들의 곤경을 해결해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영원에서 시간 속으로 오셨습니다. 영존 하시는 아버지로서 사람들을 절망스러운 곤경 속에서 구해 내고 세상과 영원의 새로운 소망을 주시기 위해 최대한 많은 사람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열심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평강의 왕으로서 그는 새로운 평화를 주셨는데 그것은 갈등을 당분간 멈추게 하는 불안한 휴전협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하심으로부터 나온 진리와 정의 와 선의의 새로운 정신에 기반을 둔 것입니다.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는데 그의 통치하심과 평화는 끝없이 늘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아하스와 같이 믿음과 용기가 부족해서 재난과 재난사이에서 떨고 있을 것인가는 우리가 선택할 일입니다. 이사야는 인간의 소망의 깃발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의 탄생을 통해서 당신의 사랑과 돌보심을 증명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말씀을 믿을 수 있습니다.
(2) 누가복음 2 : 1∼20까지는 크리스마스의 이야기를 역사적인 사건의 관점에서 들려줍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사실로 성취되었습니다. 이사야가 예언했듯이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어둠의 세상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세상의 빛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시기 전에는 크리스마스란 없었습니다 .그 때는 두려움과 공포로 가득 찬 냉혹한 힘의 세계였습니다. 그것은 권력을 잡고 있고 간교하고 잔인한 헤롯 대왕의 세계였는데 그는 친구와 가족들을 살해했고 그 악명 높은 유아대학살을 통해 아기 예수를 죽이려 했던 자입니다.
(3) 그러나 그 때에도 소망은 있었습니다. 암울한 세상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크리스마스를 주셨습니다. 여기 모든 사람들을 위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 님이 찾아오신 세상이 되었습니다. '임마누엘'이 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 하시매"(요 1:14). 하나님께서 그렇게도 큰일을 해주셨는데 왜 우리 믿음은 이렇게도 약합니까? 우리의 구세주께서 오셨습니다. 그는 소망의 무지개를 가지고 오셔서는 이 땅과 하늘을 영원히 있게 하셨습니다. 여기 우리가 하늘로 갈 수 있는 길이 있으며, 영원히 빛나고 놀라운 우리 의 진정한 소망이 있습니다. 여기 그런 소망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실패와 두려움으로부터 자유 합니다. 갈망은 소속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필요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첫 번째 크리스마스에 주어졌습니다. 갈망의 세대는 소속의 세대로 바뀌었습니다. 크리스마스에 사랑이 내려왔고, 우리는 우리를 자기 것이라고 선포하시는 구세주로 인해 기뻐합니다 그에게 속한다는 것은 진정한 인생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속했는지를 알 때,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앎 속에 평화가 있습니다.

2. 오직 하나님만이 크리스마스를 주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직 우 리가 하나님께 향할 때에만 우리는 오늘 진정한 크리스마스를 가질 수 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우리 안에 다시 일어납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하실 일을 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세상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크리스마스를 주셨으며, 구세주를 보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우리의 반응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습니까? 구속자가 오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의지합니까? 우리의 어둠 속에 빛이 비취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바라봅니까 ?
(1) 목자들은 그들의 반응을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교훈을 줍니다 그것은 '가서 보자'는 반응이었습니다.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눅 2 : 15). 목자들은 두려웠지만 천사의 말을 믿었습니다.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눅 2:10).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알리신 것을 믿고 믿음의 모험을 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랐기 때문에 그들은 구세주 그리스도를 발견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큰일을 성취합니다. 만일 우리가 믿음 안에서 모험을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를 그렇게도 원하시는 축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믿음대로 행동한다면 모든 염려는 영광으로 바 필 것입니다.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좋은 소식이 바로 앞에 있습니다. 일어나서 베들레헴으로 가십시오. 구유를 찾으십시오. 크리스마스의 핵심인 사랑을 경험하십시오. 구원이 여기 있습니다. 이것이 사실 이기에는 너무 좋습니까 ? 아닙니다 ! 그것은 사실이 아니기에는 너무 좋습니다. 크리스마스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다가오는 세상일의 염려를 던져 버리고 이미 세상에 온 일을 기뻐하게 하신 날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없다면 인생에는 두려움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있다면 인생은 그의 사랑에 대한 놀라움으로 빛납니다.
(2)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해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갈 4 :4)라고 말하면서 기독교 신학에 있어서 크리스마스의 의미에 대해 명확히 기술했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은 하나님이시며, 여인에게서 나셨고, 거룩한 인생의 자유와 하나님의 선물인 구원을 주시 기 위해 오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의 영을 믿는 자 들의 마음에 보내 주셔서 그들이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 실을 알려 줍니다. 이제 더 이상은 율 법 아래 있는 종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이요 후사입니다. 축복된 세계가 앞에 있습니다.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기만 하면 그것은 우리 것이 됩니다.
(3) 디도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울은 크리스마스를 변화된 삶의 경험을 통해서 보았습니다. 비록 이전 생활 이 잘못으로 가득 차 있다 하더라도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치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한 자요 악독과 투기로 지낸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이었으나"-이제 변화 된 삶의 영광스러움을 경험한 후에는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뻐합니다-"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딛 3:3-5). 그래서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딛 2:11). 첫 번째 크리스마스를 돌아보고, 하나님이 주신 새 생활의 경험은 크리스마스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깊게 하며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뻐합니다.
사도 바울이 마게도냐에서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디도를 보내셔서 그를 위로하셨습니다.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 (고후 7 : 5).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디도의 인생에 영광을 가져왔고, 그는 바울과 같은 위대한 그리스도의군사에게도 위로와 격려를 전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바울이 디도에게그레데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사역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편지를 썼을 때, 그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가장 잘 해석하였습니다. 마틴 루터는 이 편지에 대해서 "이 책은 그리스도인의 지식과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 "고 말했습니다. 바울의 글은 우리의 영을 감동시키는데, 그 이유는 그가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3:5-7)는 구절을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베들레헴에 아기로 나신 구세주의 오심을 통한 새 생활의 선물이 크리스마스의 거룩함입니다. 좋은 소식의 기쁨은 우리가 함께 나눌 우리 것입니다. "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바울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하나님의 좋은 소식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