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9:4-10, 마22:23-33, 벧전1:3-9

솔로몬은 인생의 허무를 이야기하면서 산 자보다 죽은 자를 더 예찬한 일이 있었습니다(전4:2). 그러나 그는 창조주의 섭리 안에서 생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추구할 때에 살아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의미와 보람이 있다는 것을 증거하 고 있습니다.
왜 살아있는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는 것입니까?
첫째는 생명의 가치가 천하보다 귀하기 때문입니다(마16:26, 전9:4).
전도자는 먼저 개와 사자의 가치를 대비시키면서 사자의 우월성을 암시합니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늘날 우리들처럼 개를 값이 비싼 동물로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개는 귀찮고 천하며 항상 버림받고 멸시받는 천덕꾸러기였습니다(삼상17:43, 삼하3:8).
반면에 사자는 가장 존귀한 짐승으로 모든 동물의 왕이며 권능의 상징으로 사랑받아 왔습니다(잠30:30, 사31:4). 전도자는 가장 천한 개와 가장 귀한 사자를 대비하면서 생명의 가치와 죽음의 의미를 가르치려고 합니다.
아무리 고귀한 가치를 지닌 사자라 할지라도 살아있어야 가치가 있는 것이지 죽어버리면 오히려 기피하고 혐오감을 주며 더욱 심한 부패와 악취를 풍길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쓸모없이 보이는 한 마리의 개라고 할지라도 살아있다는 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고귀한 가치가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생명은 창조주 하나님의 생명에서 나왔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 생명들을 사랑하시고 그 생명들과 함께 활동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창조자이시면서 생태학적 경영자로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들을 한결같이 사랑으로 돌보시고 계시기 때문에 모든 생명은 창조주께서 부여하신 존엄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둘째로는 생명이 있는 곳에는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전9:3, 벧전1:3-9).
모든 생명체는 호흡하는 동안에 희망이 있습니다. 아무리 나쁜 상황이라 할지라도 생명이 있는 한 그 상황이 바뀔 수 있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은 곧 희망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시기에(마22:32) 부활생명이 있는 곳에는 희망이 있고(벧전3:3), 희망이 있는 곳에는 구원의 가능성이 있습니다(롬8:24). 이스라엘 민족의 '남은 자 사상'은 이새의 그루터기에서 새싹이 나서 장차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야가 나온다는 '희망의 신앙'을 가르치는 내용입니다(롬15:12-13).
사자와 같은 권세와 영광을 지니고 있는 영웅 호걸들도 살아있을 때 말이지 죽은 후에는 찬란했던 영광과 꿈도 모두가 허망한 것이 되고 맙니다. 생명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희망도, 명예도, 애정도, 미움도, 부귀영화도 모두를 다 잃어버리는 것입니다(6절). 그러므로 인간들은 자고로 영원한 생명을 갈구했으며(눅10:25) 소망이 넘치는 삶을 소원했습니다.

셋째는 생명이 있는 동안에 열심히 활동함으로 가치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할지어다'(10절). 생명이 있으면 살아움직이게 되고 번식하고 생명들과 연대하여 보다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됩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생명을 유지하게 되고, 많은 열매를 맺게 되고(요15:5) 포도나무가 풍성한 열매를 맺으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요15:8).
생명이 있는 동안에 일을 해야하며, 일하는 사람들은 생명의 가치와 존엄성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면전에서 모름지기 힘을 다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 세상은 봉사하는 일터이고 하나님의 나라는 보상의 세계입니다. 우리가 일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기회를 잡는대로 실천해야만 결실이 생기는 법이요, 낮은 일하는 시간이요, 밤은 일할 수 없는 안식의 시간입니다.

마지막으로 전도자는 인생을 될 수 있는대로 즐겁게 살도록 노력하라고 가르칩니다(9절).
왜냐하면 일생동안 부부가 함께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기 때문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람이 수고한 것을 누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허락하신 분복이기 때문입니다(시128:1-2, 사65:21-23). 여기에서 즐겁게 살아라는 말씀은 향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보람있는 삶을 통해서 기쁘게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