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 5:1-3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저는 큰 용사나 문둥병자더라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작은 계집아이 하나를 사로잡으매 저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그 주모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왕하 5 : 1-3

아람 나라의 공로자인 나아만 장군은 말년에 문둥병에 걸려서 평생 동안의 공적과 명예가 수포로 돌아갈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아만의 집에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혀온 계집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작은 계집종은 주인의 불행을 보고 장군의 아내에게 이스라엘의 선지자를 소개하여 결국 나아만 장군의 병을 고침받게 하였습니다.

1.흑암의 세상

지금 세상은 나아만의 가정처럼 병이 들어서 근심의 흑암 중에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람들의 표정이나 거리의 모습이 밝아진 것 같지만 사실은 온갖 죄악으로 인하여 말할 수 없이 어두어져 있습니다.

요엘 2 : 1 이하에 보면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성산에서 호각을 불어 이 땅 거민으로 다 떨게 할지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빽빽한 구름이 끼인 날이라"는 말씀이 있고, 스바냐 1 : 14 과 2 : 1 에도 어둠에 처해 있는 백성들을 향하여 경고하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해가 어두워진다고 했습니다(마 24 : 29). 세상이 어두워지면 장애물을 보지 못하고 동서남북의 방향을 분간하지 못하며 선악에 대한 판단력을 잃고 맙니다. 지금 세상은 영적으로 흑암의 세상입니다.

2.세상은 불치병에 걸렸다

나아만이 불치의 병에 걸렸듯이 지금 세상은 고칠 수 없는 불치병에 걸려 있습니다. 이미 죄악으로 물든 세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던 본래의 모습을 잃은지 오랩니다. 즉 불치병을 앓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암이나 문둥병, 소경, 앉은뱅이, 백혈병 등을 불치병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육체적인 불치병은 예수님의 능력으로 모두 회복되고 치료될 수 있습니다(말 4 : 2). 뿐만 아니라 이러한 육적인 불치병으로 인하여 천국에 못가는 법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사는 동안 육신의 질병으로 불행한 삶을 산다고 해도 주님께 구원받고 천국에 가면 모든 질병의 문제가 해결되고 맙니다(계 21 : 4). 참으로 인간에 있어서 절망적인 불치병은 화인맞은 양심이며 마귀의 종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지금 영적으로 회복이 불가능한 불치병에 걸려 있습니다.

3.가장 작은 자를 통한 역사

아람 나라에 포로로 잡혀온 이스라엘의 작은 계집아이 하나가 나아만 장군의 아내 마음을 움직이게 했고, 그 아내는 장군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으며, 장군은 또 아람 나라 왕의 마음을 동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나아만 장군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만나게 되어 "요단강 물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는 처방을 받고 그래도 행하니 그 살이 어린아이의 살처럼 깨끗하게 되었던 것입니다(왕하 5 : 14).

하나님의 역사는 이처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요셉은 작은 소년이었을 때에 애굽에 팔려가서 그 나라와 자기 가족을 7년 가뭄에서 구원했습니다.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다니엘도 소년이었을 때에 바벨론을 움직이는 예언을 했으며, 어린 사무엘이 무너져가는 이스라엘을 회복시켰습니다(삼상 7 : 1). 큰 열매를 내는 거대한 과목도 아주 작은 씨앗에서 시작되며 코끼리와 같이 큰 동물도 아주 작은 세포에서 시작합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인 하나님의 씨가 우리 심령에 심기워졌을 때에(벧전 2 : 24), 지극히 작은 자요(고전 15 : 8),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요(고전 15 : 8). 가장 미말에 있었던 사울을 사도 바울이라는 위대한 인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크냐 작으냐가 아니라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있느냐 없느냐인 것입니다.

4.새생명의 역사

나아만 장군의 가정은 작은 계집종으로 인하여 새생명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불치의 병을 고침 받고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어두움의 권세가 물러가고 빛이 찾아 왔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살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살 길은 이 세상의 말에 움직여야 합니다. 사도행전 3 : 1 이하에서 베드로가 설교했을 때에 사실 베드로의 말에는 별로 권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에 3천 ∼ 5천 명이 회개하는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5.빛을 받아 들이자

나아만 장군의 집에 어둠이 몰려와서 방향을 잃고 근심에 싸였을 때에 작은 아이가 등불을 켰습니다. "이스라엘로 가서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시오". 나아만이 그 아이의 말을 듣지 않고 무시해 버렸다면 새 생명의 역사는 일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아만은 어린 계집종의 말을 받아들이므로 깨끗이 병을 고침 받았던 것입니다.

이 가정에 있어서 작은 계집종의 말은 빛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역시 세상의 빛입니다(요 1 : 9). 소경 바디매오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에 눈이 떠졌고(막 10 : 46), 의심 많은 도마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만남으로 의심의 안개가 물러 갔습니다(요 29 : 16). 나아만 장군이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작은 아이의 말을 받아들였을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고 어둠이 엄습한 가정에 빛의 환희가 도래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빛된 말씀을 받아들일 때 썩었던 심령이 고침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나아만 장군이 말씀에 순종하여 요단 강물에 일곱 번씩이나 들어갔다 나옴으로써 문둥병이 나았듯이(왕하 5 : 14) 우리도 교회에 와서 말씀에 푹 잠겼을 때 심령이 새롭게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나서 심령이 새롭게 되었다면 이제 그 말씀을 증거하는 작은 빛이 되어 흑암의 세상 속에서 문둥병에 걸려 근심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빛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