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23:22-26, 요19:25-27, 골3:18-4:1

1. 예수님의 사랑받은 제자, 요한의 이야기
예수님의 12제자 중에 첫 제자가 안드레와 요한이었습니다. 그들은 본래 세례요한의 제자였으나, 세례요한의 소개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아버지 요한과 세베데는 갈릴리 호숫가 마을 가버나움지방에서 고기 잡는 어부로서 동업자였습니다. 안드레와 요한은 부모님의 가업을 도우며 살던 어부였으나 예수님을 만난 후에 안드레는 형 베드로를 인도하였고, 요한도 형 야고보를 예수님께로 인도하여 모두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분부를 따라서 고기잡이하던 배를 버려두고 부모님을 떠나서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 운동에 전적 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12제자 중에 가장 연소한 제자로서 예수님의 사랑을 독차지 하였습니다. 그것은 요한의 적극적인 성격의 탓도 있었겠지만, 예수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하고, 순종한 결과였을 것입니다. 어떤 제자가 스승의 인정을 받는 애제자가 된다는 것은 대단히 귀한 일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생애 중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늘 거기에 동참하였습니다(막5:37, 막9:22, 막14:36, 눅22:8). 최후의 만찬시에 예수님의 품에 기대고 누워 있었던 제자가 요한이었으며(요13:23), 예수께서 십자가 상에서 고통당하실 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곁에서 함께 주님의 임종을 지켰습니다(요19:26-27). 요한은 부활의 빈 무덤 이야기를 듣고 제일 먼저 무덤으로 달려갔으며, 디베랴 바닷가에 서 계신 주님을 가장 먼저 알아보았습니다. 요한은 후에 베드로와 함께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 같은 지도자(갈2:9)가 되어서 박해시대를 살았습니다.

2. 사랑하는 제자에게 어머니의 후사를 맡기는 스승의 이야기(요19:26-27)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뒤로 두신 채 십자가의 형틀에 달려서 먼저 세상을 떠난다고 생각할 때 인간적으로는 불효가 된것 같았습니다만 죄 없는 몸으로 인류 구원의 대업을 성취하시는 대속적인 죽음을 떳떳하게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향한 마지막 효성을 다하시고 어머님의 노후를 믿을 수 있는 사람, 사랑하는 제자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에는 자신도 감당하기 어려운 어머님을 어느 누구에게 그 후사를 부탁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마리아에게는 다른 자녀들도 여럿이 있었으나 그들은 아직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기 때문에 가장 믿고 부탁할 수 있었던 사람, 끝까지 그 부탁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 어머님께 못다한 효성을 대신 해줄 수 있는 사람, 애제자 요한에게 부탁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와 같은 스승을 모신 제자와 이와 같은 제자를 둔 스승은 진정 행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아래, 모친 마리아 곁에 서있는 사랑하는 제자 요한을 어머니의 아들이라고 소개하시고, 요한에게도 네 어머니라고 선언하시므로 요한은 그 때부터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습니다(요19:26-27).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면서도 또한, 다정다감하시고 효성이 지극하신 인간 예수님과 믿을만한 제자 요한의 사람됨을 통해서 인간적인 따뜻한 사랑도 배우게 됩니다.

3. 스승의 유언을 따라, 대행 효도를 다하는 요한의 이야기
사도 요한은 십자가상에서 피 흘리시며 분부하신 거룩한 유언을 따라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집으로 모신 후 일평생동안 자신의 어머니로 봉양하며 효도를 다하였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요한은 예루살렘 박해가 극심해지자 마리아를 모시고 안디옥으로 갔다가, 다시 안디옥에서 에베소로 가서 마리아가 임종할 때까지 효성을 다하여 모셨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 뒷산에는 마리아가 살았다는 유적이 남아있고, 마리아가 그곳에 묻혔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리아 교리가 AD 431년 에베소 회의에서 채택된 것도 요한과 마리아와 에베소 교회와의 깊은 관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갈릴리 호숫가에서 고기잡이하던 한 청년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열심을 다하여 따라다니다가 십자가에서 사형당한 스승의 어머니를 위임받아 한 평생 스승의 효도를 대행하여 자기 어머니처럼 모셨다는 이야기는 성경의 많은 이야기 중에서도 영롱한 별빛처럼 빛나는 아름답고 흐뭇한 이야기입니다.

결론. 오늘의 삭막한 현실을 살펴볼 때,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가르치심이 허공을 치는 소리로 들리고, "성현(공자)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윤리적 선언이 박수를 받는 중에 있습니다. 부모의 자식 사랑이 옛날 같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부모의 사랑이 짝사랑으로 흘러서 그런 것인지는 의문입니다만 분명한 것 한가지는 인간의 마음이 강팍해지고 자기중심적으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자신의 부모를 공경할 뿐 아니라 사도요한처럼 이웃의 부모도 공경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나의 이야기로 만들어 봅시다(잠23:22-26).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