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19:1-10, 눅22:14-23, 행2:37-47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강림의 결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간의 교제(코이노니아)(2:1-4)가 일어나고, 바벨탑 사건 이후(창11장) 생겼던 언어의 장벽이 무너져서 언어 소통이 되었으며(행2:5-14절),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적대시하여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던 원수관계가 해소되면서 회개하고 그들이 죽인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화해의 사건이 일어나고(36절), 성령의 능력을 받은 성도들이 자기자신을 비우고 서로서로가 유무상통하는 사랑의 역사를 통해서 나눔의 기적들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37-46절). 그리고 성령으로 총만한 에클레시아 공동체는 세상을 향하여 빛을 발하여서 교회를 싫어하거나 핍박하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교회 공동체를 흠모하며 찾아와서 한 가족이 되는 선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세상과의 화해가 이루어져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의 수가 날마다 더하여졌습니다.
이 때부터 교회는 여러가지 별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에클레시아,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전, 그리스도의 몸, 새로운 피조물 등으로 불리어 졌습니다. 이러한 모든 개념이 한결같이 영적인 공동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공동체 생활을 하였던 에세네 사람들이나 쿰란 공동체나, 세례요한의 제자들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새롭게 탄생한 그리스도의 제자 공동체를 '에클레시아'라고 부르게 된 것은 구약시대로부터 내려오는 '부름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개념과 아테네 시민들의 자원 모임의 성격을 띠고 있었던 용어를 채택한 것입니다. '에클레시아'라는 말 속에는 '위로부터 부름받았다'는 의미와 '그 부르심에 대한 응답의 자발성'이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에클레시아의 결속력은 대단한 것이었으며 그 에클레시아의 공동체성은 그 어느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는 '부르심과 자발적 응답'으로 이루어지도록 역사하시는 성령의 공동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쿰란 공동체가 대단한 결속력을 가지고 상당기간 광야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였지만 오래가지 못해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쿰란공동체는 다분히 강제성이 있었고, 의무적으로 그 규칙을 지켜야 했기 때문입니다. 쿰란공동체에는 개인소유의 재산이 있을 수 없었기에 모든 회원들이 공동으로 생산하고 소비하였으며 정해진 프로그램과 일과표대로 생활했습니다. 쿨란공동체는 엄격한 입회규정과 생활수칙이 있는 폐쇄적인 원시 공산주의(communism) 형태였기 때문에, 그 수명이 짧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에클레시아 공동체는 성령께서 부르시는 역사에 따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응답하여 서로 섬기고 나누는 생활을 몸소 실천하는 공동체주의(communalism)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기의 에클레시아 공동체가 그렇게 견고했던 것은 성령의 계시에 의한 종말적인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세례와 성만찬 예식을 통해서 부활의 그리스도께 연합된 성도들은 장차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고대하는 가운데 에클레시아 공동체에 속해 있어야만 했으며 지상의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에 이어진다는 신앙으로 더욱더 강력한 공동체를 이루어 나갔던 것입니다.
에클레시아 공동체에 속한 성도들은 서로서로 사랑하고 섬기고 나누며 기도하고 참여하는 공동체로 발전해 나갔습니다. 이들이 '서로 서로'라고 한 말이나 '형제, 자매'라고 말할 때에는, 유대인 공동체 안에서 사용한 말과는 그 의미가 다릅니다.
유대인들의 '형제, 자매'란 말 속에는 선택받은 백성들이라는 선민사상 안에서 자기들끼리 사랑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나 에클레시아 공동체 안에서 '서로 서로', '형제, 자매'라는 말에는 창조주 안에서 우주 만물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자매가 되었다는 열려있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 화려하고 찬란했던 서방의 기독교 왕국들이 쇠퇴해지고, 교회의 공동체성이 붕괴되기 시작한 것은 무슨 연고입니까? 피터 호지슨은 서구의 '부르조아 문화의 붕괴'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으며 에밀 부르너나 류벤같은 이는 '과학혁명' 때문이라고 지적하였으며 리차드 윌키는 '교회의 공동체성 상실'이 오늘의 서방 교회를 무기력하게 만들어가는 중요한 원인이라고 간파했습니다. 여기에 한가지 더 부언한다면 '개인주의'의 발달로 인한 모든 공동체의 약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데, 교회도 예외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결론. 세계 교회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교회의 공동체성이 회복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① 성령론에 근거한 교회의 이해를 새롭게 해야만 할 것입니다. ② 종말적인 신앙을 강조해서 공동체 의식을 강화해야만 할 것입니다. ③ 실제적인 작은 공동체 운동을 통해서 개인주의에 근거한 신앙을 공동체 중심의 신앙으로 세워나가야만 할 것입니다. ④ 교회의 코이노니아 사역을 강화해 나가면서 강력한 사랑의 실천운동(디아코니아)을 전개해야만 할 것입니다(레19:1-10). ⑤ 말씀의 예배와 함께 성찬의 예배를 강화해야 할 것입니다(눅22:14-23).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