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990
* 본문 : 느12:43, 막10:13-16, 엡6:1-4
1. 어린 아이들을 금했던 시대
예수께서는 어린 아이들을 금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시대에는 어린 아이들은 거부했던 시대였고, 심지어는 학대하고 인권을 유린했던 시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애굽왕 바로가 히브리민족의 아이들이 태어날 때 남자 아이는 모두 죽이도록 산파에게 명령한 일(출1:16), ‘어린아이가 태어날 때 아들은 나아 강 던지라(출1:22)’고 명령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또 신약시대에는 예수님 탄생시에 헤롯왕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두 살 아래 사내아이들을 다 죽였습니다(마2:16-18).
어린아이들은 연약하기 때문에 질병과 굶주림과 모든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가장 먼저 피해를 입게 되어 있고, 특별히 보호하지 않으면 희생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은 분별력이 부족하고 의사발표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공적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였고, 종교의식에도 떠든다는 이유로 언제나 쫓겨났으며 인구계수에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어린아이들은 인격적인 대접을 받지 못했고,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2. 어린 아이들을 주께로 데리고 오는 사람들(13절)
여기에 ‘어린이’라는 말을 ‘젖먹이 어린이’로 해석하는 경우는 아주 어린 아기들을 데리고 온 어머니들의 모성애와 종교적 열심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머니들은 모성애로 자식을 생명처럼 사랑하고, 자식이 복을 받아 잘되도록 본성적으로 기도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께서 손을 들어 축복하시면 오병이어의 기적도 일어나고, 그 손으로 눈먼 사람을 만지면 눈을 뜨게 되고, 그 손으로 복을 빌면 모든 고통과 불안이 사라져서 평안을 얻게 되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께서 능력의 손을 자녀들에게 얹어 축복해주시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3. 사람들이 예수님께 접근하는 것을 책망하여 물리치는 제자들(1절)
여기에 나타나는 제자들은 거칠고 엄격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선생님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얼마나 피곤하신지도 알았고 예수께서 기도해주시고 축복하시고 병자를 고치실 때 엄청난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것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가끔 십자가를 지실 것을 말씀하셨고, 고뇌에 찬 모습을 자주 보이셨기 때문에 제자들도 예수님을 최대한 보호해 드리겠다는 의무감 때문에 거칠고 엄격한 행동을 하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기본적으로 어린아이들의 소중함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였기 때문에 어린 아이들을 귀찮게 생각한 것도 사실입니다.
4.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시고 축복하신 예수님(14-16절)
예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어른과 똑같은 인격체로 인정하시고 받아들이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의 표준이라는 것과 하나님의 나라가 어린아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라는 특별헌장을 공표하셨습니다.
‘용납하신다’는 뜻은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뜻과 장려하고 존중하여 받들어준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어린아이들의 순수성과 신뢰성과 겸손함이 천국백성이 갖추어야 할 개본 덕성이라는 사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어른들에게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교훈하신 것입니다(요3:3-5, 마18:3).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기독교가 로마 세계속에서 급속도로 확산된 것은 예수님의 하나님의 나라 운동에 근거한 남녀노소 어린이까지 함께 온 가족이 참여한 공동생활체로서의 가족교회 덕분이었습니다. 특별히 어린이들을 신앙으로 양육하는 교육공동체의 노력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로마 사회에서는 남자 성인들을 위한 종교(미트라 종파), 여자 성인들을 위한 종교(보나 데아종파)가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젼이 얼마나 위대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결론. 어린이들을 거부하는 가정이나 교회나 국가는 쇠퇴할 수밖에 없고, 어린이들을 용납하는 모든 공동체는 흥왕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이름으로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요, 어린 아이 하나를 실족케 하는 자는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하셨습니다(마18:3-6).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07)
1. 어린 아이들을 금했던 시대
예수께서는 어린 아이들을 금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시대에는 어린 아이들은 거부했던 시대였고, 심지어는 학대하고 인권을 유린했던 시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애굽왕 바로가 히브리민족의 아이들이 태어날 때 남자 아이는 모두 죽이도록 산파에게 명령한 일(출1:16), ‘어린아이가 태어날 때 아들은 나아 강 던지라(출1:22)’고 명령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또 신약시대에는 예수님 탄생시에 헤롯왕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두 살 아래 사내아이들을 다 죽였습니다(마2:16-18).
어린아이들은 연약하기 때문에 질병과 굶주림과 모든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가장 먼저 피해를 입게 되어 있고, 특별히 보호하지 않으면 희생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은 분별력이 부족하고 의사발표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공적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였고, 종교의식에도 떠든다는 이유로 언제나 쫓겨났으며 인구계수에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어린아이들은 인격적인 대접을 받지 못했고,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2. 어린 아이들을 주께로 데리고 오는 사람들(13절)
여기에 ‘어린이’라는 말을 ‘젖먹이 어린이’로 해석하는 경우는 아주 어린 아기들을 데리고 온 어머니들의 모성애와 종교적 열심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머니들은 모성애로 자식을 생명처럼 사랑하고, 자식이 복을 받아 잘되도록 본성적으로 기도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께서 손을 들어 축복하시면 오병이어의 기적도 일어나고, 그 손으로 눈먼 사람을 만지면 눈을 뜨게 되고, 그 손으로 복을 빌면 모든 고통과 불안이 사라져서 평안을 얻게 되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께서 능력의 손을 자녀들에게 얹어 축복해주시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3. 사람들이 예수님께 접근하는 것을 책망하여 물리치는 제자들(1절)
여기에 나타나는 제자들은 거칠고 엄격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선생님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얼마나 피곤하신지도 알았고 예수께서 기도해주시고 축복하시고 병자를 고치실 때 엄청난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것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가끔 십자가를 지실 것을 말씀하셨고, 고뇌에 찬 모습을 자주 보이셨기 때문에 제자들도 예수님을 최대한 보호해 드리겠다는 의무감 때문에 거칠고 엄격한 행동을 하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기본적으로 어린아이들의 소중함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였기 때문에 어린 아이들을 귀찮게 생각한 것도 사실입니다.
4.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시고 축복하신 예수님(14-16절)
예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어른과 똑같은 인격체로 인정하시고 받아들이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의 표준이라는 것과 하나님의 나라가 어린아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라는 특별헌장을 공표하셨습니다.
‘용납하신다’는 뜻은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뜻과 장려하고 존중하여 받들어준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어린아이들의 순수성과 신뢰성과 겸손함이 천국백성이 갖추어야 할 개본 덕성이라는 사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어른들에게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교훈하신 것입니다(요3:3-5, 마18:3).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기독교가 로마 세계속에서 급속도로 확산된 것은 예수님의 하나님의 나라 운동에 근거한 남녀노소 어린이까지 함께 온 가족이 참여한 공동생활체로서의 가족교회 덕분이었습니다. 특별히 어린이들을 신앙으로 양육하는 교육공동체의 노력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로마 사회에서는 남자 성인들을 위한 종교(미트라 종파), 여자 성인들을 위한 종교(보나 데아종파)가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젼이 얼마나 위대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결론. 어린이들을 거부하는 가정이나 교회나 국가는 쇠퇴할 수밖에 없고, 어린이들을 용납하는 모든 공동체는 흥왕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이름으로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요, 어린 아이 하나를 실족케 하는 자는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하셨습니다(마18:3-6).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