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3:1-10  

서론
사람은 생각하는 것이 육(肉)적인 것이 아니면 영(靈)적인 것을 생각하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하였습니다(5). 바울은 현재 고난은 장차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롬 8:18).

1.따뜻함을 하늘에 펴셨기 때문입니다.
시 19:4-6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 따뜻한 해를 두셨으니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이 있는 곳이 위라는 것입니다.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그 온기에 피하여 숨은 사람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을 받지 않고 사는 사람은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햇빛과 비와 공기의 혜택을 보지 않고 사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은 몇몇 특정한 사람에게만 국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데리고 나가서 하늘을 바라보게 했습니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하였습니다(창15:5). 야곱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으로 하여금 하늘을 바라보도록 했습니다. "꿈에 본 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하였습니다(창28:12). 모세가 시내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산꼭대기에 강림하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여호와께서 시내산 꼭대기에 강림하시고 그리로 모세를 부르시니"하였습니다(출19:20).


예수님도 하늘을 바라보면서 기도도 하시고 축사도 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요17:1).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하였습니다(마14:19). 그리고 스데반도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면서 순교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베드로도 사도 요한도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면서 살았습니다. 해는 생명을 살리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은 인류의 생명을 살리시는 것입니다.


2.우리 아버지가 계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마 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하늘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계시는 분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들을 주의 권능과 지혜로 친히 통치하시며 심판하시는 초월적인 분이심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하늘에 계신 이란 기도의 문두(文頭)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하여금 전지전능하시며 초연하여 계신 하나님께 대한 무한한 소망과 깊은 신뢰를 안고, 또한 하늘나라가 진정 자신들의 본향(本鄕)임을 인식하고 기도할 것을 바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깊은 뜻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는 한 아버지만이 계시는 곳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아버지고 우리를 구원하여주신 아버지며 영원히 영생복락을 누리게 하시는 아버지께서 그곳에 게십니다. 다시 말하면 육신이 몸을 담고 있는 지구 즉 땅을 세상이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게시는 영의 세계를 하늘이라고 통칭하는 것입니다. 땅은 세상 임금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통치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영원한 나라를 말하기 때문에 아버지가 계신 곳을 바라보고 사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히스기야는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었습니다(대하 32:20).  


3.하늘은 우리가 돌아갈 본향이기 때문입니다.
히 11:16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찾는 고향은 지상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보다 더 좋은 곳 즉 하늘에 있는 고향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나그네라 하고 세상을 여관이라 하며 인생을 과객인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하늘을 본향이라고 믿어지는 것입니다. 찬송가 작가는 이렇게 노래하고 있는데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평안히 쉬 일 곳 아주 없네 걱정과 고생이 어디는 없으리 돌아갈 내 고향 하늘 나라"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하기를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하였습니다(빌 3:20). 미국의 시민권을 가져도 기뻐하는데 하물며 하늘의 시민권을 가졌으니 얼마나 기쁩니까? 우리의 본향은 하늘이라 하늘의 시민으로서 세상 어디에 살아도 반드시 우리의 본향인 하나님의 나라에서 반드시 만나게 될 것을 생각하면서 사는 인생이라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사는 것입니다.
연어는 회귀본능(回歸本能)에 의하여 죽을 때는 제가 태어난 곳으로 죽자살자 찾아오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인생들은 돌아갈 내 고향이 하늘에 있기 때문에 하늘을 생각하면서 살다가 하늘로 돌아가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결론"
골 3:1-2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하였습니다. 바울은 3층 천에 다녀왔습니다(고후 12:1-4). 그는 낙원에 다녀와서 하는 말이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하였습니다(고후 12:4).


낙원은 구원받은 자들만이 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구원받은 자로서 미리 가보고 온 것입니다. 바울이 경험한 환상과 계시는 너무도 신비로운 것이어서 그것을 인간의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들은 말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서는 안 되는 신적 비밀이기 때문에 발설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찌되었던가에 우리가 돌아갈 고향인 하늘나라는 낙원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을 생각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출처/이윤근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