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슥9:9-10, 마21:6-11, 행2:36
1. 메시야를 기다리는 사람들
히브리인들에게는 아주 오래된 옛날부터 메시야 사상이 싹트고 있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속에서 어떤 위대한 인물들을 통해서 특별한 활동을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역사 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께 모세나 다윗과 같은 위대한 인물을 보내주시기를 기도하면서 나라를 번영의 길로 인도할 지도자를 기다렸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지도자를 세울 때 기름을 부었기 때문에 이상적 지도자를 <기름 부은 자>라는 뜻의 "메시야"로 불렀습니다. 이러한 메시야 사상의 첫 근거는 창3:15에서 시작합니다만 본격적으로 메시야 사상이 발전한 것은 이스라엘과 유다가 멸망한 후 포로생활을 할 때부터입니다. 포로기 이후에 활동했던 예언자들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하였고, 암흑 속에서 빛을 찾아 헤매던 이스라엘은 더욱 열렬히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예언자들의 메시야 사상은 세 가지 갈래로 나뉘어져 있어서 예수님의 제자들까지도 혼돈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현세적이고, 정치적이며 군사적인 메시야' 와 '구름타고 오시는 종말적이고 우주적이며 초월적인 영적인 메시야'와 '고난의 종으로서의 메시야'를 기다리는 세가지 메시야 사상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같은 배를 타고 항해를 하면서도 각각 다른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백성들간에도 동상이몽(同床異夢)과 같은 특이한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2. 예수님을 열광적으로 환영한 사람들(마21:8)
예수님께서 생애의 마지막 주간에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실 때 예루살렘 시민들은 손에 손에 종려나무가지를 꺾어들고 "호산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환호하며 예수님을 메시야를 환영하였습니다.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야는 다윗과 같은 정치적인 메시야,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독립시킬 수 있는 메시야로 예수님을 환영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3년동안 기사와 이적을 많이 행하시면서 이스라엘의 고통을 해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도 대부분 이러한 정치적 메시야 사상에 도취되어서 환호하는 군중들과 함께 영광스러운 왕궁을 향하여 개선장군과 같은 기세로 입성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과 무리들은 궁전을 향하여 황홀한 영광의 자리를 꿈꾸며 행진하고 있었으나 예수님은 다른 생각을 하시며 어지러워진 성전을 향하여 묵묵히 행진하셨습니다.
3. 고난의 종으로서 십자가를 향하여 행진하는 사람들(마20:18-19)
예수께서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능욕하며 채찍질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리니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마20:18-19)고 말씀하신대로 주님께서는 묵묵히 십자가를 항하여 환호하는 무리들 속에서 고독한 행진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평소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를 따르려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 오라"고 하셨고(마16:24),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막10:45)"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히려 자신을 "인자"라고 부르시기를 즐겨하셨지 "메시야(그리스도)"라는 호칭을 꺼려하셨습니다. 이사야 53장의 "고난의 종"이라고 생각하시며 예루살렘 도성으로 입성하셨고, 왕궁이 아닌 골고다 언덕을 향해 행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초림(初臨)은 고난의 종으로 오셨고, 재림(再臨)때에는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구름타고 오시는 영광스러운 메시야로 왕권을 가지고 오실 것입니다.
결론. 예수님과 열 두 제자들이 항상 동고동락하면서 같은 배를 타고 다니셨지만, 전혀 다른 꿈을 꾸고,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가룟 유다같은 사람이 노출되면서 불행한 일이 일어났습니다(눅22:21-23). 예루살렘의 시민들 중에는 예수님을 환영하는 순진한 사람들과 십자가에 못 박으려는 유대교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인류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예수님의 생애 마지막 주간에 불거진 동상이몽(同床異夢)의 가장 슬픈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도 슬픈 이야기가 삼일 후에는 가장 기쁘고, 복된 부활 이야기로 바뀌어져서 땅끝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모시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제자들은 한 덩어리가 되어서 주님의 뜻을 품고 제자 공동체가 하나되어 땅끝까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