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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6:20
복음은 우리에게 명백한 결심과 분명한 입장을 요구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세례요한의 메시지 역시 회중들로 하여금 어떤 결정을 내리도록 분명한 반응을 요구했습니다. 명백한 결신(決信)이 없었던 유대 왕 헤롯은, 비록 그가 요한을 통하여 거의 구원의 문턱에 이르렀다 할지라도(막6:20), 결국 가엾은 사람으로 그치고 말았습니다.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느끼면서도 달게 들음이러라.” (막6:20)
오늘날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헤롯처럼 마음에 감동은 받으나 그리스도의 문턱에서 무용(無用)하게 끝나버리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헤롯은 요한의 생애와 인격에서 큰 감명을 받았고, 요한의 말 모두가 옳다는 것을 인정했으며, 그 위에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끌리기도 했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그의 생애에 조금도 보탬이 되지 못했습니다.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와의 불륜의 관계를 책망하는 요한, 요한을 증오하는 헤로디아, 그리고 둘 사이에서 주저하는 헤롯...
그는 환경의 노예로서, 단지 어떤 느낌만으로 만족해하는 피상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좇아 대담하게 논리적 결정에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헤로디아와의 관계 청산이 의로운 길이라면 그는 지체없이 결행해야 했습니다.
그는 몇몇 분야에서 죄를 사랑했고 그로 인해 번민까지 했습니다. 그의 생활 속에 많은 변화가 왔고, 여러 가지 선행을 베풀 각오를 가졌으나, 하나님은 오히려 그의 온전한 복종과 전적인 의지를 원하셨습니다. 세상적인 인기와 갈채 때문에 의도적으로 선을 희생시킨(막6:26) 헤롯이야말로 오늘날 숱한 핑계의 우산으로 자신을 가리는 발목신자들의 전형이기에 충분합니다.
형제여! 만일 우리가 정확하게 그리스도의 편을 택하기로 결심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훌륭한 느낌들이나 선행일지라도 결국 무용(無用)한 것임을 기억합시다. 우리가 한번 복음의 소식을 깨닫고 나면, 우리 자신을 전적으로 거기에 맡기기 까지는 결코 안식이나 화평을 누리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출처/박순호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