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6:14-18


본문 말씀은 ① 용서에 관한 말씀(14-15절)과, ② 금식기도에 관한 말씀(16-18절)으로 되어있습니다.
1. 용서에 관한 말씀에서
1) “성도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해야 하나님께서도 그 성도의 과실을 용서하신다”고 하셨습니다(14절).
2) 이 말씀의 “너희”란 성도를 뜻하고 “사람의 과실”이란 모든 사람의 자기에 대한 잘못을 뜻합니다. 그 이유는 성경에서 성도와 의 관계를 말씀하실 때는 꼭 “형제”란 용어를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마5:24).

3) 또 “사람의 과실”이란 막연한 잘못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피해를 끼친 과실, 즉 자기와 관계되는 불법이나 잘못을 뜻합니다.

4) 그런 과실에 대하여 성도는 용서를 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도가 모든 이의 잘못에 대하여 용서해야 함은

① 기독교가 용서의 종교이기 때문이요,

② 자신도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았기 때문이며

③ 인간에게 보복하는 권세가 없기 때문이요(롬12:19),

④ 하나님께서만 모든 것을 판단하시고(시7:11),

⑤ 공의롭게 신원해 주시기 때문입니다(살전4:6).

5) 또 이런 용서의 의미는 시벌과 관계되는 사항에서의 용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생명이나 명예나 신체나 물질에 손해가 가해졌을 경우에 “용서”란 명목으로 모든 것을 다 불문에 붙여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경우에 정당한 법절차를 따라 손해를 보충할 수 있습니다(마5:25). 그러나 성도는 반드시 공평성과 사랑을 잃지 않는 범위에서 시행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6) 15절 말씀에서 “만일 성도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성도의 과실을 용서하시지 않는다”고 하셨으니 만일 성도가 이웃의 죄를 용서하지 못했을 때 구원을 받지 못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겠지요.

① 그러나 이 말씀의 “성도의 과실”이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요일5:16)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불신자의 죄는 사망(지옥)에 이르는 죄입니다. 그러나 성도의 죄는 그 전체의 죄책을 주께서 담당하셨기 때문에 이미 처리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가 생활 중에 범하는 과실에 대하여 하나님은 진노하시고 징계하실 수 있으므로(히12:8), 이런 경우에 그 성도가 이웃의 죄를 용서하는 조건으로 “자신의 과실도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징계 받을 일을 면제해 주실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② 만일 성도가 다른 이의 과실을 용서해 주지 않는 상태라면 마땅히 자신의 과오에 대한 용서도 받을 체를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마18:21-35). 따라서 성도는 모든 이와의 화합을 위하여 용서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③ 용서의 뜻은 보복성이나 미움을 피하는 것입니다. 결코 진위(잘잘못)를 가리는 것이나 법률적 배상까지도 피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혹 법률적 배상을 포기했다면 그것은 더욱 잘한 일일 것이나 한편으로 악을 통제 하는데는 미흡할 것입니다.

2. 금식기도에 대하여

1) 예수님은 외식으로 금식 기도하는 자들의 잘못을 지적하셨습니다.

① 지적을 받은 사람들은 사람에게 보이고 자랑하기 위한 상태를 보였으니 그것이 곧 얼굴을 흉하게 하고, 슬픈 기색을 드러낸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사람의 동정을 사고, 관심을 얻고, 금식기도를 하였다는 명분으로 인기를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 그는 하나님의 상을 다 받은 것이 되어서 사람이 알아주는 것 이상 더 은혜 받을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이런 금식은 하나님 앞까지 상달되지 않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② 모든 기도는 사람에게 나타내지 않고 자랑하지 않는 상태에서 효력이 크기 때문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 슬픈 기색과 흉한 얼굴을 나타내지 말라”고 교훈하셨습니다(16절). 하나님은 은밀한 중에서 하는 일도 다 보시고 갚아주시기 때문에 혹 “기도를 많이 안 한다”는 취급을 받더라도 기도를 많이 한다는 인정을 피하기 위하여 은밀한 기도를 하도록 노력하셔야 할 것입니다.

3. 참고로 성경에 나타난 금식기도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1) 금식기도의 실례를 살펴보면,

* 모세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으려 했을 때 40일을 금식 하였고(출34:28,신9:18),

* 범죄 한 동족 베냐민지파와 전쟁을 하려 할 때 승리할 목적으로 한 일이 있으며(삿20:26)

* 사울왕의 시체를 장사하고 7일을 금식한 일이 있고(삼상31:13),

* 요나 선지자의 심판선언을 들은 이방족 니느웨 백성들이 금식기도로 하나님의 심판을 모면한 일이 있었으며(요3:5-8)

* 다윗왕이 아들의 병 낫기를 위하여 금식기도를 했으나 그 아들이 죽은 일이 있었고(삼하12:16),

* 아합왕이 나라의 불길한 소식을 듣고 금식한 사실이 있었으며(왕상21:27)

* 여호야김왕 때에 바벨론의 침략이 있으므로 예레미야 선지자의 권고로 금식한 일이 있었고(렘36:6-9),

* 이스라엘이 망한 후 다니엘이 바벨론에서 민족의 회복을 위하여 금식기도한 일이 있었으며(단9:3)

* 이스라엘이 해방되어 본토로 돌아올 무렵에 무사히 여행할 수 있기를 위하여 금식한 일이 있었고(스8:21),

*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황폐소식을 듣고 금식한 일이 있었으며(느1:4)

* 그 후 바사왕국 통치 때 유대인의 멸절 위기를 만나므로 이스라엘 백성들과 에스더가 금식하여 위기를 모면한 일이 있었고(에4:3,16),

* 신약에 와서 안나가 금식하며 하나님을 섬겼다 하였으며(눅2:37)

* 예수님이 마귀의 시험을 이기시기 위하여 40일을 금식하셨고(마4:2)

* 요한의 제자들이 자주 금식하였으며(마9:14,막2:18)

* 안디옥 교회 성도들이 선교사를 파송할 때 금식하였고(행13:2-3),

* 선교 도중 핍박을 인하여 각 교회가 금식기도한 일이 있었습니다(행14:23).

2) 이상의 내용에서 ① 금식기도는 주로 어려운 일이나 중대한 일이 있을 때 개인이나 단체가 하나님께 힘 있는 기도를 드리기 위하여 시행되었으며, ② 어려운 일은 나라의 위기나 생명의 위기와 핍박 등이었고, ③ 중대한 일은 말씀을 받는 일과, 긴 여행, 그리고 선교사 파송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④ 모세와 예수님의 40일 금식기도는 특수한 사례로 여겨야 할 것이며, 이와 같은 경우로 엘리야도 큰 체험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왕상19:8). ⑤ 또 성경에는 외식적으로 행한 잘못된 금식기도도 있습니다(왕상21:12). 그들은 7일중 2일을 관례적으로 금식하기도 하였습니다(막2:18,눅18:12).

3)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기도를 하지 않았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마9:14에서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습니까?”하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슬픈 일이 있을 때 금식할 수 있지만 주님과 함께 있을 때는 슬픔이 있을 수 없으며 주님과 멀어질 때는 금식을 하여야 한다”고 하시므로 금식의 필요성은 슬픔과 역경의 경우요, 주님을 믿음으로 모시고 평화롭게 사는 생활에서는 금식이 필요하지 않다고 하셨습니다(마9:14-15). 그러므로 저희들은 주님을 가까이 모시고 평강과 기쁨과 감사를 누리면서 생활하셔야 하겠고, 혹 연약하고 나태하여 주님이 심령에서 멀어져 계시다고 생각되면 주님을 더 가까이 하고 또 어려운 문제들이 잘 해결되게 하기 위하여 금식기도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4) 결론적으로 사58:3-7에서는 금식기도의 전제조건을 말씀하셨습니다. 즉 오락이나 압제하는 일, 다투며, 싸우고 폭행하는 일이 없어야 하고, 오직 스스로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겸손을 차리며, 회개하며, 이웃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일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금식은 기도의 형식과 정성을 가세하는 최후 수단이므로 기도자가 일반적 요건(신앙적, 도덕적)을 갖춘 다음에 마지막으로 시행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시35:13). 어떤 명예나, 큰 것을 탐하는 것이나, 모방을 목적으로 하지 마시고 꼭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신앙적, 도덕적 조건을 갖춘 다음 더욱 간절하고 정성되게 힘들여 기도하는 방법으로 하실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출처/지영근 목사 설교 중에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