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8:14-27


이 본문은 3대지로 내용을 분류 할 수 있습니다. ① 병을 고치신 예수님(14-17절) ② 제자 되려는 자에게 교훈하심(18-22절) ③ 자연을 지배하신 예수님(23-27절)입니다.

1. 병을 고치신 예수님(14-17절)

1) 예수님은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주셨습니다.

① “가버나움”에는 베드로 장모의 집이 있었고(마 8:5) 예수님도 그곳에서 사신 일이 있었으나(마 4:13)예수님은 공생애가 시작되면서 일정한 거주를 하시지 않았습니다(20절).

② 예수님은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누운 것을 보셨는데 이 사실은 ㉠ 베드로가 아내를 취한 사실(천주교에서는 독신을 주장함)과 ㉡ 그 장모의 열병이 심하여 누워서 앓고 있었음을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③ 이 말씀에서 베드로 장모의 신앙적 형편이나 병 고침을 위한 간청이 없었지만 예수님이 그의 손을 만져서 열병을 떠나게 하시니 그는 즉시 일어나서 예수님께 수종을 들었습니다.

④ 따라서 이 병 고치심은 “예수님 자신의 뜻”으로 베푸신 것이며 “손을 만져 낫게 하심”은 위로를 나타낸 것일 뿐 병 고침의 능력은 초자연적으로 역사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초자연적 능력은 손으로 만지는 촉감를 통해서 전달되는 것은 아닙니다(마 8:8).

⑤ 또 열병으로 앓아 누었던 병자가 나음을 받자 즉시 일어나서 예수님께 수종을 든 것은 그 고침의 은사가 신속하고 확실하였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2) 많은 귀신 들린 자와 다른 병든 자를 다 고쳐 주셨습니다.

① 본문에서 귀신 들린 자의 형편을 말씀하시지 않았지만 이는 미친 사람으로 단정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귀신은 세 가지 상태로 역사합니다. ㉠ 귀신에 의하여 정신상태가 미친 사람 ㉡ 귀신에 의하여 진리를 받지 못하고 잘못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 ㉢ 귀신과 때때로 타협하여 성령을 거스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② 예수님은 이런 모든 상황에서 말씀으로 귀신과 병을 물리치셨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모든 능력과 함께 귀신과 병을 물리치는 능력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뜻이요, 명령이며 능력임을 믿으셔야 하겠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믿고 그 말씀에 붙잡혀 살면 귀신이 범접하지 못할 것이며 또 말씀을 멀리하므로 당하는 질병도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예수님이 이런 능력을 행하실 것에 대하여 구약시대의 이사야 선지자가 이미 예언한 것을 인용하셨으니 곧 사53:4 에서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함을 이루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사 53:4 에서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담당하셨다” 고 하셨는데 예수님은 그 의미를 “연약을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신 것”으로 설명하셨습니다. 따라서 “질고와 슬픔이란 바로 죄로 인한 육체의 연약과 질병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도가 “죄로 인한 육체의 연약과 질병을 당했다” 고 할 때에 예수님은 그 성도의 죄책을 담당하신 분이므로 그 병을 처분해 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죄로 인한 질병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므로 (신 28:60) 하나님은 이를 간과하여 (시 32:1,롬 3:25) 병을 안 주실 수도 있고 또 임의로 낫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15절). 따라서 병중에 있는 성도가 신앙적으로 할일이란 확실한 회개와 긍휼을 구하는 기도를 할 것 뿐입니다.

2. 제자 되려는 자에게 교훈하심(18-22절)

1) 무리가 에워싼 것을 보시고 예수님은 가버나움에서 건너편으로 갈 것을 명하셨습니다.

① 무리가 에워싼 것은 병 고침 등의 은혜를 사모하였기 때문이며

② “가버나움” 건너편은 갈릴리 바다 동남쪽 언덕에 있는 동리를 가리킵니다(8:28).

③ 예수님은 한곳에서 전도하신 후 다른 마을로 가시는 것이 관행이었습니다(막1:38).

2) 이때에 한 서기관이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였습니다(19절).

① 서기관이란 글자대로 사무직인바 처음에는 다윗 왕궁에서 서기관을 책봉하므로 시작되어(삼하 8:17) 예수님 당시에는 제사장들과 함께 성전 사무 및 성경을 연구하는 종교적 직임으로 바뀌었습니다(마 2:4,13:52,15:1,16:21).

② 이런 서기관이 “예수님을 따르겠다” 고 했을 때 예수님은 머리 둘 곳이 없음을 말씀하셨으니 이 의미는 가난한 예수님을 따를 각오가 있어야 함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할 곳이 있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실만한 집도 없고 또 거처도 일정하지 않다는 사실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따르려는 제자는 모든 것을 버리고(눅 5:11) 또 물질의 탐심이 없이 가난을 각오하고 따라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③ 또 한 제자는 예수님을 따름에 있어서 “먼저 부친의 장례를 치르도록 기다려 달라” 는 부탁을 했을 때 예수님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죽은 자들이란 불신자를 뜻함).

㉠ 이것은 “죽은 자 장례식 문제로 생명을 구원하려는 전도의 발걸음을 늦출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 이 말씀 속에 “불효해도 된다”는 뜻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죽은 시체를 땅속에 묻는 일”이 생명을 구원하는 일만큼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속히 전도하러 가셔야하고, 또 제자 되겠다는 사람이 그만한 일에 얽매여서는 안 될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마 10:37). 요즈음 많은 성도들이 장례식 절차를 큰 일로 여기는 경우가 있으나 이런 일도 세상 전통을 따르려 하지 말고 자기의 형편에 따라 간소하게 치르는 생활을 하셔야 할 것입니다.

3. 자연을 지배하신 예수님(23-27절).

예수님은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가다라 쪽을 향하여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떠나셨습니다.

1)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었으나 예수님은 배 뒤에서(막4:38) 주무셨습니다.

① 바다에 바람이 불고 큰 놀이 일어난 것은 “하나님이 바람 날개로 다니신다”(민11:31,시 104:3)고 하셨으므로 하나님이 지배하신 일임을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② 그래서 예수님은 염려 없이 그 배에서 주무실 수 있었습니다.

③ 자연의 지배자인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성도는 어떤 자연계의 변화나 환난 중에서라도 평안히 잠을 잘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시 27:1-3).

2) 그러나 함께 탄 제자들은 물결이 배에 덮힘을 인하여 두려워하였고(26절) 결국은 예수님을 깨우며 구원을 호소하였습니다.

① 이것은 자연계로 인한 환난에서 주님을 의지한 태도입니다.

② 주무시는 예수님은 깨웠음은 바로 성도의 기도를 의미하며 또 하나님의 말씀으로 경성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③ 이때에 예수님은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책망을 하셨습니다.

㉠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하심은 천지의 주재자이신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 무서워함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며

㉡ “믿음이 적은 자들아”란 뜻은 주님 앞에서 무서움을 갖는 그 자체가 믿음이 적은 연고란 뜻입니다. 누구든지 염려와 무서움이 많으면 이는 믿음이 충실치 못한 자라 할 것입니다.

④ 제자들을 책망하신 예수님은 곧 일어나셔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잔잔케 하셨습니다.

㉠ 예수님은 창조자이시며(요 1:3) 자연의 통치자이심을 단적으로 나타내주신 것입니다.

㉡ 예수님이 바람과 바다를 꾸짖은 것은 자연계가 예수님의 뜻을 불순종했음이 아니고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서 자연의 지배자이신 위엄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바람이 예수님의 명령을 불복 했을리 없고 또 바람으로 인하여 놀을 일으킨 바다가 꾸짖음을 받아야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제자들을 괴롭힌 자연이 예수님의 지배의 대상임을 알게 하신 것뿐입니다.

이상과 같이 귀신과 질병을 처리하시고 자연을 명하신 주님은 만인들로부터 하나님 곧 절대자의 인정을 받으셔야하고 성도는 하나님의 통치하시는 자연 앞에서 감사와 극기의 적응을 잘 하셔야 할 것이며 주님을 따르려는 사명이 있는 성도들은 그 사명의 시급함을 깨닫고 헌신을 함에 있어서 사사로운 문제들을 최대한으로 제거하여야할 것입니다.

출처/지영근 목사 설교 중에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