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990
(욘3:1~10)
오늘 우리는 구약성서 중에서 유명한 요나서 3장을 읽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너는 일어나 저 큰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해 외치라 그 악독함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는 사명을 맡겨 주셨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인데도 불구하고 순종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하나님께서 "가라" 명령하신 니느웨로 가질 않고 니느웨하고는 정반대의 방향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게 되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였을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유대인과 니느웨 사람들이 범죄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었고 그 결과로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이 사실은 요나에게는 쾌재를 부를 만큼의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같은 죄를 졌는데 이스라엘 사람은 놔두고 니느웨만 벌하신단다"
우와! 니느웨 사람들에게 유황불이 떨어진단다.
우와!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저렇게 되는거야
이스라엘 사람들이! 저런 모습을 봤으니 이제야 회개하겠지
그럼! 그렇지 니느웨를 심판의 불쏘시기로 쓰셔서
아! 이스라엘 사람들을 깨닫게 하시려는건데 내가 왜
왜? 무엇 때문에? 니느웨로 갈 필요가 있는가
괜시리 여기 있어서 다된 죽에 코를 빠뜨리기보다는 아예! 멀리 도망이나 가야지
어디로 갈까? 어디가 좋을까?
어디 어디. 여기 저기. 이리 저리 살펴보니 니느웨하고는 정반대 도시인 다시스 배를 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인간들은 자기가 계획하고 있는 일들이 이루어 만진다면!
하나님의 명령 어기는 것은 그저 식은 죽 먹는 것처럼 여깁니다.
여러분 기억하세요!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은 어기고 도망치려하면 사탄은 언제나 우리가 달아날 수 있도록 배를 다 준비해 놓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도망가는 처음에는 너무나도 순조롭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도망가면 처음에는 좋죠.
아! 잘했다.
야! 이렇게 이렇게 좋은데..
아! 물론 하나님의 명령은 좀 어기기는 했지만 아!
그거야 뭐 어때 지금 이렇게 편하고 좋은걸
아! 김집사 왜 저렇게 힘들게 하는 줄 몰라
나봐 안되면 멀리 도망가면 되는데
나봐 저녁예배 안드릴려고 멀리 이사했잖아.
아! 그래도 지금 멀쩡하잖아! 애 공부 잘하겠다.
뭐가 부족해서 저렇게 아직까지도 저녁예배 드리고 새벽까지 순탄하잖아 잘 나가잖아.
아! 그동안 저녁예배 드리고 어떻게 살았나 몰라!
야 저번에 개그 콘서트 출산드라 나왔다. 으히히히?
그래서 요나를 보세요!
1:5에 보면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였으나 "깊이 잠이 들었다" 하였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지금이 잠들 때입니까? 놀러나 다닐 때입니까?
잠들 시간이 아니에요!
저녁에 T.V보고 희희닥 거릴 시간이 아니에요!
집사님! 권사님! 하면서 끼리끼리 모여 아 닭다리 잡고 뜯어뜯어 할 때가 아니에요!
하나님은 새벽에 우릴 도와주시고 낮엔 졸지도 않으시고 밤엔 주무시지도 않으시는데 우린 어떤 상태입니까?
질문 하나 들어갑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피할 수 있습니까?"
시편을 기억하세요!
"내가 주의 길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찌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나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타고 저 먼 바닷가에 갈지라도 거기에도 주님이 계시나이다"
하나님을 피해서 도망할 곳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요나의 항해가 언제나 계속해서 평탄하던가요?
강풍이 불어옵니다.
바닷물이 점점 더 흉용하여 집니다.
그 커다란 배가 이리 저리 기우뚱거립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면! 나에게 주신 사명을 회피해 보세요.
영원한 행복! 영원한 평화! 영원한 기쁨이란 절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사실 다른 사람들은 왜 갑자기 이런 어려움이 닥쳐야 하는 지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풍습대로 사람들이 왜 이런 고통이 오는지 누구 때문인지 제비를 뽑았더니 요나가 걸렸습니다. 요걸 보고 뭐라 그래요 딱 걸렸어!
바로 걸렸죠.
사람들이 요나를 향해 둘러섰습니다.
왜! 당신이요?
왜! 당신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거요?
한번 말이나 들어 봅시다.
사실은요?
눈에서는 그제서야 눈물이 쏟아집니다.
그리고 울먹이면서 흘러내리는 눈물이 밀려오는 파도 물에 쓸리면서
제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그럼 당신을 우리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예! 저 바닷물 속에 던져 버리세요.
그래서 사람들이 요나를 들어서 바닷물 속에 던져 버리니 그제서야 조용해집니다.
그러나 그게 마지막입니까?
사람은 요나를 바다 속에 처넣지만 하나님은 그 순간 물 속으로 빠져드는 순간에도 커다란 물고기를 보내셔서 아마! 귀신 고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물고기가 요나를 입으로 물었고 사흘만에 다시 니느웨에 토해 내게 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두 번째 명령이 주어집니다. 뭐라 그러셨어요?
요나야! 메롱! 하셨나요?
4절을 보세요!
"요나야!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일어나 선포하라"
이것이 오늘 주어진 말씀의 내용입니다.
재미있으셨습니까?
한편의 영화를 보신 것 같죠
"내 이름은 김삼순 보다" 더 흥미 있죠.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오늘 여기에는 세 가지 종류의 회개한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사람! 요나의 회개입니다.
요나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사명자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 사명을 거부하고 피해가다가 풍랑을 만나게 되었고 물고기의 뱃속에도 돌아가게 되었다가 그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회개하고 다시 두 번째로 사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난 금요일 구국기도회로 모였습니다.
왜요? 어렵기 때문입니다.
내 아파트 안에서 화분의 꽃이 잘 자란다고 그저 평안하십니까?
좋은 자동차가 아니 지하의 대피소가 북한의 핵을 피할 수 있습니까?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대는 저 시뻘건 이리의 침을 흘리고 있는 일본 사람들이 우리 영해에서 우리 배를 나포하고 우리 민족을 두들겨 패도 우린 지금 어떤 모습입니까?
이게 왜 그래요?
누가? 왜? 무엇 때문에 이렇게 국적을 포기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습니까?
바로 요! 나! 때문입니다.
요나서 1:12에 보면 "그가 대답하되 나를!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이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줄을 내가 아노라" 하였습니다.
사명을 감당치 않고 못하겠다고 합니다.
왜냐고 묻습니다.
이유는 그럴 듯합니다. 그러나
그 이유가 과연 하나님이 주실 사명보다 더 큽니까?
차라리 달아나고 싶겠죠.
배 밑창에서 잠들고 싶었겠죠.
왜 잠이 듭니까?
사명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잊지 마세요!
우리 민족의 앞날을 정치하는 사람에게만 맡길 순 없습니다.
정치인들이 자녀와 손자들이 국적을 포기했답니다.
이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민족에게 소망을 주어야만 합니다.
왜요?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면 그 무엇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회개합시다.!
주여! 나 때문입니다.
바로 요! 나! 때문입니다.
우리 민족이 우리 교회가 요! 나! 때문입니다.
회개합시다.
"나 때문입니다." 회개하면 다시 사명을 주시며 살려 주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회개한 사람들이 바로 니느웨 사람들이었습니다.
"40일 후에는 망한다" 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남녀노소 상하를 막론하고 니느웨가 회개를 합니다.
잊지 마세요!
4천만 국민이 다 회개해야 합니다. 예외가 있을 수는 없습니다.
어느 특정한 사람만 죄인입니까?
얼마 전에 어떤 사기꾼이 당신을 몰래 찍은 비디오가 있는데 알려지면 좋겠어! 알아서 하라니까 거의 100%해당되는 전화를 받은 사람들이 500만원에서 몇 십 만원에 이르기까지 돈을 송금했다는 씁쓸케 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영국에서요 "어떤 사람이 정치인들에게 전화하면서 어서 도망가세요. 당신이 저질은 일들을 검찰에서 다 알고 있습니다"하고 장난으로 전화했는데 전화 받은 사람이 다! 그 다음날 국회에 안나오고 도망갔더랍니다.
그냥 웃기만 하겠습니까?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우리 모두다 회개해야 한단 말입니다. 죄 없다하면 그 속에 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니느웨의 회개가 백성 전체를 살렸듯이 국민의 ¼이 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회개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민족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실 줄 믿습니다.
세 번째로는> 니느웨 왕과 신하들의 회개입니다. 민족의 지도자들이 회개하였습니다.
사울이 왜? 죽고 망했습니까?
헤롯이 왜? 비참하게 죽었습니까?
바로가 왜? 망해야 합니까?
단 하나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간음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살인죄까지도 저지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왜 다윗을 살려 주셨습니까?
회개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나단 선지자의 꾸지람을 받으면서도 그 자리에서 꼬꾸라져서 회개하였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왕이 눈물을 흘리면서 베옷을 입고, 재를 머리에 부리면서 회개한단 말입니까?
체면이 있지
그래서 그 체면 때문에 회개를 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았더니 망했던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잘못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니 잘못 했다고 실수했다고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실망해선 안됩니다.
왜? 잘못한 일을 합니까?
바로 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죄를 범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저지른 죄악이 너무 큰 것만은 사실입니다.
민족의 지도자들이 회개해야 합니다.
그랜저를 탔든 티코를 탔든 죄는 죄입니다.
이제 며칠 있으면 민족 상잔의 날인 6·25가 다가옵니다.
회개합시다. 주여! 나 때문입니다. 바로 요! 나! 때문입니다.
먼저 내가! 그리고 온 민족이 나아가서 정치인들이 손에 손을 잡고 회개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통일을 선물로 안겨 주실 줄 믿습니다.
오 주여! 이 가슴속에 그리고 이 민족 위에 회개의 영을 부어주옵소서.
세상 모든 민족이 구원을 얻기까지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
주의 심장 가지고 이제 일어나 주 따르게 하소서
세상 모든 육체가 주의 영광 보도록 우릴 부르시는 하나님
주의 손과 발되어 세상을 치유하며 주 따르게 하소서
물이 바다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 가득하리라 물이 바다 덮음 같이
물이 바다 덮음 같이 물이 바다 덮음같이
그래서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그리스도의 사랑이 넘치는 민족이 되게 하소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11)
오늘 우리는 구약성서 중에서 유명한 요나서 3장을 읽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너는 일어나 저 큰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해 외치라 그 악독함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는 사명을 맡겨 주셨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인데도 불구하고 순종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하나님께서 "가라" 명령하신 니느웨로 가질 않고 니느웨하고는 정반대의 방향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게 되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였을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유대인과 니느웨 사람들이 범죄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었고 그 결과로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이 사실은 요나에게는 쾌재를 부를 만큼의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같은 죄를 졌는데 이스라엘 사람은 놔두고 니느웨만 벌하신단다"
우와! 니느웨 사람들에게 유황불이 떨어진단다.
우와!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저렇게 되는거야
이스라엘 사람들이! 저런 모습을 봤으니 이제야 회개하겠지
그럼! 그렇지 니느웨를 심판의 불쏘시기로 쓰셔서
아! 이스라엘 사람들을 깨닫게 하시려는건데 내가 왜
왜? 무엇 때문에? 니느웨로 갈 필요가 있는가
괜시리 여기 있어서 다된 죽에 코를 빠뜨리기보다는 아예! 멀리 도망이나 가야지
어디로 갈까? 어디가 좋을까?
어디 어디. 여기 저기. 이리 저리 살펴보니 니느웨하고는 정반대 도시인 다시스 배를 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인간들은 자기가 계획하고 있는 일들이 이루어 만진다면!
하나님의 명령 어기는 것은 그저 식은 죽 먹는 것처럼 여깁니다.
여러분 기억하세요!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은 어기고 도망치려하면 사탄은 언제나 우리가 달아날 수 있도록 배를 다 준비해 놓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도망가는 처음에는 너무나도 순조롭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도망가면 처음에는 좋죠.
아! 잘했다.
야! 이렇게 이렇게 좋은데..
아! 물론 하나님의 명령은 좀 어기기는 했지만 아!
그거야 뭐 어때 지금 이렇게 편하고 좋은걸
아! 김집사 왜 저렇게 힘들게 하는 줄 몰라
나봐 안되면 멀리 도망가면 되는데
나봐 저녁예배 안드릴려고 멀리 이사했잖아.
아! 그래도 지금 멀쩡하잖아! 애 공부 잘하겠다.
뭐가 부족해서 저렇게 아직까지도 저녁예배 드리고 새벽까지 순탄하잖아 잘 나가잖아.
아! 그동안 저녁예배 드리고 어떻게 살았나 몰라!
야 저번에 개그 콘서트 출산드라 나왔다. 으히히히?
그래서 요나를 보세요!
1:5에 보면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였으나 "깊이 잠이 들었다" 하였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지금이 잠들 때입니까? 놀러나 다닐 때입니까?
잠들 시간이 아니에요!
저녁에 T.V보고 희희닥 거릴 시간이 아니에요!
집사님! 권사님! 하면서 끼리끼리 모여 아 닭다리 잡고 뜯어뜯어 할 때가 아니에요!
하나님은 새벽에 우릴 도와주시고 낮엔 졸지도 않으시고 밤엔 주무시지도 않으시는데 우린 어떤 상태입니까?
질문 하나 들어갑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피할 수 있습니까?"
시편을 기억하세요!
"내가 주의 길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찌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나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타고 저 먼 바닷가에 갈지라도 거기에도 주님이 계시나이다"
하나님을 피해서 도망할 곳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요나의 항해가 언제나 계속해서 평탄하던가요?
강풍이 불어옵니다.
바닷물이 점점 더 흉용하여 집니다.
그 커다란 배가 이리 저리 기우뚱거립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면! 나에게 주신 사명을 회피해 보세요.
영원한 행복! 영원한 평화! 영원한 기쁨이란 절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사실 다른 사람들은 왜 갑자기 이런 어려움이 닥쳐야 하는 지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풍습대로 사람들이 왜 이런 고통이 오는지 누구 때문인지 제비를 뽑았더니 요나가 걸렸습니다. 요걸 보고 뭐라 그래요 딱 걸렸어!
바로 걸렸죠.
사람들이 요나를 향해 둘러섰습니다.
왜! 당신이요?
왜! 당신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거요?
한번 말이나 들어 봅시다.
사실은요?
눈에서는 그제서야 눈물이 쏟아집니다.
그리고 울먹이면서 흘러내리는 눈물이 밀려오는 파도 물에 쓸리면서
제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그럼 당신을 우리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예! 저 바닷물 속에 던져 버리세요.
그래서 사람들이 요나를 들어서 바닷물 속에 던져 버리니 그제서야 조용해집니다.
그러나 그게 마지막입니까?
사람은 요나를 바다 속에 처넣지만 하나님은 그 순간 물 속으로 빠져드는 순간에도 커다란 물고기를 보내셔서 아마! 귀신 고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물고기가 요나를 입으로 물었고 사흘만에 다시 니느웨에 토해 내게 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두 번째 명령이 주어집니다. 뭐라 그러셨어요?
요나야! 메롱! 하셨나요?
4절을 보세요!
"요나야!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일어나 선포하라"
이것이 오늘 주어진 말씀의 내용입니다.
재미있으셨습니까?
한편의 영화를 보신 것 같죠
"내 이름은 김삼순 보다" 더 흥미 있죠.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오늘 여기에는 세 가지 종류의 회개한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사람! 요나의 회개입니다.
요나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사명자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 사명을 거부하고 피해가다가 풍랑을 만나게 되었고 물고기의 뱃속에도 돌아가게 되었다가 그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회개하고 다시 두 번째로 사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난 금요일 구국기도회로 모였습니다.
왜요? 어렵기 때문입니다.
내 아파트 안에서 화분의 꽃이 잘 자란다고 그저 평안하십니까?
좋은 자동차가 아니 지하의 대피소가 북한의 핵을 피할 수 있습니까?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대는 저 시뻘건 이리의 침을 흘리고 있는 일본 사람들이 우리 영해에서 우리 배를 나포하고 우리 민족을 두들겨 패도 우린 지금 어떤 모습입니까?
이게 왜 그래요?
누가? 왜? 무엇 때문에 이렇게 국적을 포기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습니까?
바로 요! 나! 때문입니다.
요나서 1:12에 보면 "그가 대답하되 나를!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이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줄을 내가 아노라" 하였습니다.
사명을 감당치 않고 못하겠다고 합니다.
왜냐고 묻습니다.
이유는 그럴 듯합니다. 그러나
그 이유가 과연 하나님이 주실 사명보다 더 큽니까?
차라리 달아나고 싶겠죠.
배 밑창에서 잠들고 싶었겠죠.
왜 잠이 듭니까?
사명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잊지 마세요!
우리 민족의 앞날을 정치하는 사람에게만 맡길 순 없습니다.
정치인들이 자녀와 손자들이 국적을 포기했답니다.
이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민족에게 소망을 주어야만 합니다.
왜요?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면 그 무엇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회개합시다.!
주여! 나 때문입니다.
바로 요! 나! 때문입니다.
우리 민족이 우리 교회가 요! 나! 때문입니다.
회개합시다.
"나 때문입니다." 회개하면 다시 사명을 주시며 살려 주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회개한 사람들이 바로 니느웨 사람들이었습니다.
"40일 후에는 망한다" 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남녀노소 상하를 막론하고 니느웨가 회개를 합니다.
잊지 마세요!
4천만 국민이 다 회개해야 합니다. 예외가 있을 수는 없습니다.
어느 특정한 사람만 죄인입니까?
얼마 전에 어떤 사기꾼이 당신을 몰래 찍은 비디오가 있는데 알려지면 좋겠어! 알아서 하라니까 거의 100%해당되는 전화를 받은 사람들이 500만원에서 몇 십 만원에 이르기까지 돈을 송금했다는 씁쓸케 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영국에서요 "어떤 사람이 정치인들에게 전화하면서 어서 도망가세요. 당신이 저질은 일들을 검찰에서 다 알고 있습니다"하고 장난으로 전화했는데 전화 받은 사람이 다! 그 다음날 국회에 안나오고 도망갔더랍니다.
그냥 웃기만 하겠습니까?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우리 모두다 회개해야 한단 말입니다. 죄 없다하면 그 속에 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니느웨의 회개가 백성 전체를 살렸듯이 국민의 ¼이 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회개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민족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실 줄 믿습니다.
세 번째로는> 니느웨 왕과 신하들의 회개입니다. 민족의 지도자들이 회개하였습니다.
사울이 왜? 죽고 망했습니까?
헤롯이 왜? 비참하게 죽었습니까?
바로가 왜? 망해야 합니까?
단 하나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간음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살인죄까지도 저지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왜 다윗을 살려 주셨습니까?
회개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나단 선지자의 꾸지람을 받으면서도 그 자리에서 꼬꾸라져서 회개하였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왕이 눈물을 흘리면서 베옷을 입고, 재를 머리에 부리면서 회개한단 말입니까?
체면이 있지
그래서 그 체면 때문에 회개를 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았더니 망했던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잘못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니 잘못 했다고 실수했다고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실망해선 안됩니다.
왜? 잘못한 일을 합니까?
바로 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죄를 범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저지른 죄악이 너무 큰 것만은 사실입니다.
민족의 지도자들이 회개해야 합니다.
그랜저를 탔든 티코를 탔든 죄는 죄입니다.
이제 며칠 있으면 민족 상잔의 날인 6·25가 다가옵니다.
회개합시다. 주여! 나 때문입니다. 바로 요! 나! 때문입니다.
먼저 내가! 그리고 온 민족이 나아가서 정치인들이 손에 손을 잡고 회개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통일을 선물로 안겨 주실 줄 믿습니다.
오 주여! 이 가슴속에 그리고 이 민족 위에 회개의 영을 부어주옵소서.
세상 모든 민족이 구원을 얻기까지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
주의 심장 가지고 이제 일어나 주 따르게 하소서
세상 모든 육체가 주의 영광 보도록 우릴 부르시는 하나님
주의 손과 발되어 세상을 치유하며 주 따르게 하소서
물이 바다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 가득하리라 물이 바다 덮음 같이
물이 바다 덮음 같이 물이 바다 덮음같이
그래서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그리스도의 사랑이 넘치는 민족이 되게 하소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