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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2:22~31
성경에는 해야 할것과 해서는 안될 것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살아가
는 현실과는 또 다른 기준에 의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본문에도 예수님은 단호하게 명령
하셨습니다.
첫째, 주님은 염려하지말라. 근심하지말라고 하셨습니다.
1.염려의 일들이 있어도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22).
염려하지 말라는 말은 헬라어 “매림나테”이고, 근심하지 말라는 말은 헬리어 “메테오리
제스테”인데 둘다 명령형으로 이는 주님께서 권면이 아닌 명령하신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
다. 단호하고 분명한 이 명령은 그리스도인들의 염려와 근심을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혹 누구든지 염려되는 일을 만나게 되었을 때는 무엇이든지 염려하지 말라
는 것입니다. 사람의 입장에서야 염려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염려하지 말라
는 것은 책임져 주시겠다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누군가 반문할 지도 모릅니다. 내 어려움을
모르기 때문에 남의 일처럼 쉽게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 30절에 “아시느니
라”는 말의 원뜻은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뜻으로 주님은 이미 우리의 형편을
아시고 또한 염려하여서 되는 것이 아님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염려될 일일지라도
결코 염려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2.염려를 해도 유익이 없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25-26)
염려하므로 키를 한자나 더 할 수 있을까요? 이는 하나님께는 지극히 작은 것인데도 우리가
염려하여서 이룰 수가 없다면 그 어떤 일이라도 염려로 이룰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
다.
살아왔던 인생을 되돌아 보십시오. 염려로 인하여 당신이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오히려 염려는 모든 일들을 무익하게 합니다.
마13장과 눅8장에 있는 씨뿌리는 비유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세상의 염려는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똑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많은 열매를 맺는 사람도
있지만, 염려와 근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그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연 염려로 인하여 얻을 수 있는 유익은 무엇이 있다는 말입니
까?
3.염려는 더 큰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염려는 상황을 더 악화시키거나, 새로운 문제를 만듭니다. 심령을 상하게하여(잠15:13) 결국
건강을 상하게 합니다. 누구도 염려로 인하여 일그러진 얼굴을 좋아할 리 없으니 인간관계
에도 문제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제에 대한 해답은 염려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문제로인한 염려와 근심은 문제를 악화 시키는 결과만 초래하게 됩니? ? 근심이 사
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케하여(잠12:25) 즐거움을 잃게도 합니다. 또한 근심은 시
력이 쇠하여지게(시6:7)도 하고, 마침내는 사망에 이르게(고후7:10)도 합니다. 염려와 근심으
로 인하여 오히려 있는 것 마져 잃지 않도록 하십시오.
4.그러나 예수님께서 명령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염려하는 것이 문제 입니다.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경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28). 이는 염려하게 되는 것
은 믿음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염려하거나 근심하는 것이 문제자체가 어렵다든
지, 상황이 위급하여서가 아니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으므로 발생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믿음이 적은 사람은 뭇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일에도 공연히 염려하고 근심합니
다. 그것을 보면 문제를 만나서 염려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크고 작음을 떠나 믿음
에 좌우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만났을 때는 하나님께 맡겨버리는 믿음
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너희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 버리라[벧전5:7]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여야 합니다. 그 분에게는 나와다른 방법과 길이 있음을 확신하여야
합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이 땅에 못하실 일은 결코 없으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확
신과 더불어 그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자녀는 아버지에게
모든 필요를 얻습니다. 때로는 멀리 있는 아버지의 음성만 듣는 것도 자녀에게는 위로가 되
고 용기가 됩니다. 어느 때는 아버지의 빛 바랜 사진 한 장이 어려운 위기를 극복하게 하는
힘을 주기도 합니다. 뭇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비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하나
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근심과 염려의 문제 앞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곤경에 처했을 때는 변함없이 사랑하는 자녀에
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하늘 아버지를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둘째, 주님의 명령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24, 27).
이는 염려하는 모든 일을 믿음으로 극복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염려하고 있는 사람들
에게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염려극복의 방법입니다.
그것은 생각하는 것입니다. “ 생각하라”의 헬라어로 “카타노에사테”인데 이는 명령형으
로서 과거를 생각해보라는 단어입니다. 이는 지나간 많은 일들을 생각하라는 말씀으로 먼저
까마귀를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까마귀는 늘 썩은 것만 찾아 다니는 날 짐승으로 유대인들
은 부정한 동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 까마귀도 자상하게 돌보아 주신
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일방적막?택하여 주시고 자녀 삼아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욱 섬
세하고 자상하게 돌보아 주시지 않으시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또 백합화를 생각하
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이땅에 전무후무한 부귀와 영화를 누렸던 솔로몬의 옷보다도 아름다
운, 그러나 하루아침에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도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시는 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보다도 더 귀한 우리를 반드시 책임져 주실 것으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염려하는 문제 앞에서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갖는 다면 얼마든지 평안한 마음
과 후회함이 없는 일들을 선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번 더 생각할 수 있다면 감사
할 일들을 찾게 될 것입니다. 또 좀 더 많은 시간을 깊이 생각할 수 있다면 상황을 더욱 좋
게 할 수 있는 더 나은 방법도 얻게 될 것입니다.
셋째, 주님의 명령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31).
만약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염려의 일들 만나게 되면 기도로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
는 것입니다.
기도하라는 말은“ 제테이테”로 명령형인 이 단어는 지금 당장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빌4:6-7에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
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염려하는 것보다 더욱 생산적인 일은 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도 때가 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은 피곤에 지쳐
잠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있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기도의 때를 놓친 대가를 혹독하게 치루어야 했습니다.
기도는 지금해야 합니다. 기도의 일은 결코 뒤로 미루어서는 안될 일입니다. 더 더욱 근심된
일을 만났을 때에는 잊어서 아니 될 일입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
의 영광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는 근심이 되는 처지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뜻이 차질
없이 이루어지기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근심하고 염려하는 우리의 필
요까지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일에 대한 염려와 근심은 주님께서 단호하게 금하시는 일입니다. 이유와 핑계를 앞세운
어떤 염려도 하나님께도 그리고 우리자신에게도 바람직한 일이 될 수없습니다. 염려하지 말
라는 것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염려는 믿음으로 극복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막상 극복할 만
한 믿음이 없다면 진솔하게 무릎으로 나아가 도움을 청하며 지난날 보았고 들었던 일들을
생각하며 기도하여야 합니다. 이 역시 우리에게 그 모든 것을 더 해주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단호한 명령입니다.
출처/조성근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