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990
하나님 나라의 복음 (마11:28-29)
지난 시간에도 말씀 드렸습니다만, 많은 사람들은 좋아하는 성경구절들이 있습니
다. 저도 좋아하는 구절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이 나쁘다거나 잘못되었다는것이 아
니라 문제는 자의적 해석 자구적 해석을 하고 어떤구절의 앞뒤 문맥은 살펴보지 않
고 일방적으로 해석하여 하나님의 복음을 내가복음화 하는데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했
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우리는 28절의 말씀을 좋아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얼마나 큰 위로가 되고 평안을 주는 말씀인
지 모릅니다. 실제로 구원이란인간의 여러가지 무거운 짐들로 즉 문제들로 부터의 해
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무거운 짐들로 부터의 자유로와 진다는 것에대해 얼마나 실
감을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군대생활하는 젊은 시절에 훈련소에서 3개월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때 훈련소에서의 비인간적인 대우 그런 분위기에서 훈련을 3개월 받는
다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시간 이었습니다. 성격이 내성적인데다가 집에서 자유분
방하게 지내고 거칠것이 없이 행동하던 저로서는 적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거기다가
훈련이 끊나고 의장대에 배치되서 비인간적인것뿐만 아니라 잔혹할정도의 매질을 하는
것은 참으로 견딜수 없는 형벌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일년을 고생하다가 그곳
에서 빠져 나올수 있는 기회가 왔을때의 감격이란 것은 죽음에서 해방되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세상에서의 짐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특별히 죄짐에 대
하서는 심각한 고통 짐으로 느끼지 않으면 안될것 입니다. 또 이죄에 대해서 심각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이 죄짐을 주님앞에 내려놓고 나서의 위로와 평안과 축복을 맞보
게 되리라 봅니다.
헌데 오늘 본문을 살펴보건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무거운 짐들로 부터
자유로와 지는것과 동시에 대신해서 지어야 하는 멍에가 있다는것 입니다. 즉 예수님
의 멍에를 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당신의 나라를 위해 우리는 쓰시려
고 우리의 옛짐들을 벗겨주신 대신에 새로운 짐들을 우리에게 지워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의 원어를 살펴보면 아주 은혜스럽고 재미가 있습니다. "쉬게 하
리라"라는 말씀은 헬라어로 '아나 파우소' 라는 말인데 너희들을 젊게 하여 주리라 는
말입니다. 곧 휴식만을 주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힘을 더하여 주시겠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를 불러 젊게 하시므로 다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할수 있는 멍에를 메도록 하신것 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그분의 명령앞에는 어떤 경우도
아니오가 있을수 없습니다. 제가 지난 시간에 전도 왜하느냐고 말씀드리면서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니까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배를 왜 드려야 합니까
여기에는 타협의 여지가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강제적인 것보다는 자발적인것을 원
하시지만은 어떻거나 우리은 하나님의 말씀에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꼭기억 해
야 합니다.
눅 19장에 보면 삭개오 사건이 나오는데 예수님게서 지금 우리의 방식대로 접근하
여 삭개오에게 가셨다면 어땠을까? "당신이 삭개오씨 입니까?"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 만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삭개오씨 바쁘신줄 압니다만 몇말씀 드리고 싶은데 시간을 내주실수 있겠습니까? 이
렇게 하셨다면 선택의 여지가 삭개오에게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번주는 시간이 없
습니다.다음주나 시간을 내보겠습니다. 이런식이 되었을런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분은 왕이십니다. 그분에게는 절대권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분에게 선택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
에 유하여야 하겠다." 예수님은 선택권을 사람에게 주지 않습니다. 왜? 구원은 선택이
아니라 명령이기 때문 입니다.
삭개오는 이명령앞에 어떻게 반응 할것인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와
함께하지 않는자는 나를 대적하는자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삭개오는 대적이
되느냐 아니면 그를 왕으로서 모시고 따르느냐를 결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삭개오가 나무에서 내려온후 예수님과 사도들을 자기집으로 영접하였습니다. 삭개
오가 예수님 일행을 모시고 들어설때에 그의 아내가 '여보 손님을 초대하셨다면 진작
에 말씀하셔야 하지않아요 그래야 준비할것 아닙니까?" 라고 했을런지 모릅니다. 그랬
을때 삭개오가 무엇이라고 대답헀을까요?...
여보 내가 그분들을 초대한것이 아니요 그냥 그분이 오신것이요....스스로 오신것
이요.!라고 할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왜 그렇습니까? 사실 예수님은 어떠한 초
대도 필요로 하지 아니하신분 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모든 가정과 모든 사람의 주
인 이시기 때문 입니다. 요한복음 1장11절에 보면 "자기 땅에 오매 자기백성이 영접
지 아니하였으나"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신후 잠시후에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라고 선언 하셨습니다. 자 ! 물어 보겠습니다. 삭개오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습니까
?....누가 가서 4영리를 설명해 주었습니까 누가 전도 했습니까?.. 언제 삭개오가 구
원을 받았는가? 그것은 예수님께 순종 했을때, 자기자신을 예수그리스도의 주님되심
의 그이래 복종시길때 그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 봅시다. 마태가 세리로서 자리를 지키고 앉았을때 , 예수님은
마태에게 한가한 시간이 날때를 기다리고 있다가 기회를 보아서 시간이 있으면 나하고
이야기좀 할수 있껬나? 하고 그에게 선택권을 주고 기다리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마태여 " 나를 따르라 이것이 초대입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명령 입니다. 마태는
순종하던지 아니면 거역하던지 해야하는것입니다. '회개하고 믿으라' 이것이 하나님나
라의 복음입니다.
젊은 부자 관원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 났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네가 오히려 한가지 부족
한 것이 있으니 네게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그리고 와소 나를
쫒으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이 젊은이는 그심하며 집으로 돌아가
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만약 저와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했을것 같습니까...아마도 이렇게 위로했
을런지도 모릅니다. 아! 이사람아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머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는가? 자네가 너무 물질에 집착할까 봐서 그렇게 말씀한것이니 물질에 노예
가 되지 말고 예수님을 따라 나서면 되지안나하고 위로 했을런지 모릅니다. 만약 그렇
게 했다고 하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사람이 예수님을 따르기는 할런지는 모르나, 예수님이 원하시는 방법대로 따르
는 것이 아니라 자기방식대로 예수님을 따를것 입니다. 즉 예수님의 복음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복음을 따르는 것이 되고 맙니다.
예수님은 그를 사랑하셨지만, 그를 가도록 내버려 두셨던 것을 보게 됩니다. 왜
예수님은 자신의 방법을 완화 시켜주시지 않았을까요? ...그것이 예수님이 주시는 구
원이 아니기 때문 입니다.
눅9장에보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사람이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 하소서"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같으면 어
떻게 할까요?.....
예수님은 다르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윤리적이고 사회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할것인
가를 따져보자는 것이 아닙니다. 왜 예수님은 우리가 생각할때 무리한 요구를 하셨을
까요?... 이것은 그 사람이 죽은 그의 아버지보다 또는 다른 어떤 사람보다 더 중요
했기 때문 이라는 사실 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이 사람이 제안 한 방식을 허락 했다
하면 이 사람은 자기 방식대로 예수님을 따를 것입니다 . 그러나 예수님은 너는 내 방
식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의 젊은이들을 결혼을 위해 배필을 구합니
다 그러나 주님의 그 결혼 까지도 자신의 열광을 위해서 하라고 하십니다 . 그러나 우
리는 어떻습니까 솔직히 누가 우선 순위에 있으며 과연 주님의 방식대로 인가?..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교리나 공인된 사실에 동조하는것으로 구원을 받는것이 아
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동조하는 정도가 아니라 순종할때에 구원을 받는 것
입니다. 구원은 권유정도가 아닙니다. 명령입니다. 회개하라 이것은 명령입니다. 권유
가 아니라 명령 입니다.
젊은 관원에게 그렇게 하는것이 좋겠다고 권유하신것이 아니라 명령 하신것입니
다.
사랑하는 여러분 구원은 복종입니다. 그리스도께 무릎을 꿇는것입니다. 그래야 그
분의 나라 사람이 됩니다. 그래야 그분의 보호를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주님이라고 부르신다면 여러분은 절대로 그분의 뜻이나 말씀에 절대 복종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뜻이나 명령 앞에 우리의 변명이나 다른 어떤것을 달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것 같은데 ,..십일조 왜 드립니까 ?..교회유지 위해
서 저 목사밥 못 먹을까봐서 아닙니다. 주일 왜 지킵니까?.. 십일조를 내면 물질 축
복을 주신다고 했기때문에 주일을 지키지 않으면 징벌을 받을까봐..
예수님은 먼저 그나라와 그의를 구하라 했는데 ,솔직히 우리가 어떤것을 먼저 구
하는가 ?...우리는 먼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어떤 집을 살까, 어떤 직업을
택할까, 어떤남자 어떤여자와 결혼할까를 생각하고 그리고 나머지 시간 있으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까 하는 사람 아닙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사도 바울은 먹든지 마시든지 살던지 죽든지 라고 했스ㅂ니다.
먹는것도 공부를 하는것도 집을 사는것도 이사를 하는것도 결혼을 하는것도 직장을 갖
는것도 장사를 하는것도 예수님을 위하여 하는것이 어야 합니다.
여러분 이와같은 자세 정신으로 살지 않는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향하여 주님이라는
호칭을 함부로 쓰지말아야 할것 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것을 행치
아니하느냐?"라고 책망 하실것이기 떄문 입니다.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26)
지난 시간에도 말씀 드렸습니다만, 많은 사람들은 좋아하는 성경구절들이 있습니
다. 저도 좋아하는 구절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이 나쁘다거나 잘못되었다는것이 아
니라 문제는 자의적 해석 자구적 해석을 하고 어떤구절의 앞뒤 문맥은 살펴보지 않
고 일방적으로 해석하여 하나님의 복음을 내가복음화 하는데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했
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우리는 28절의 말씀을 좋아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얼마나 큰 위로가 되고 평안을 주는 말씀인
지 모릅니다. 실제로 구원이란인간의 여러가지 무거운 짐들로 즉 문제들로 부터의 해
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무거운 짐들로 부터의 자유로와 진다는 것에대해 얼마나 실
감을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군대생활하는 젊은 시절에 훈련소에서 3개월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때 훈련소에서의 비인간적인 대우 그런 분위기에서 훈련을 3개월 받는
다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시간 이었습니다. 성격이 내성적인데다가 집에서 자유분
방하게 지내고 거칠것이 없이 행동하던 저로서는 적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거기다가
훈련이 끊나고 의장대에 배치되서 비인간적인것뿐만 아니라 잔혹할정도의 매질을 하는
것은 참으로 견딜수 없는 형벌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일년을 고생하다가 그곳
에서 빠져 나올수 있는 기회가 왔을때의 감격이란 것은 죽음에서 해방되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세상에서의 짐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특별히 죄짐에 대
하서는 심각한 고통 짐으로 느끼지 않으면 안될것 입니다. 또 이죄에 대해서 심각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이 죄짐을 주님앞에 내려놓고 나서의 위로와 평안과 축복을 맞보
게 되리라 봅니다.
헌데 오늘 본문을 살펴보건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무거운 짐들로 부터
자유로와 지는것과 동시에 대신해서 지어야 하는 멍에가 있다는것 입니다. 즉 예수님
의 멍에를 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당신의 나라를 위해 우리는 쓰시려
고 우리의 옛짐들을 벗겨주신 대신에 새로운 짐들을 우리에게 지워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의 원어를 살펴보면 아주 은혜스럽고 재미가 있습니다. "쉬게 하
리라"라는 말씀은 헬라어로 '아나 파우소' 라는 말인데 너희들을 젊게 하여 주리라 는
말입니다. 곧 휴식만을 주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힘을 더하여 주시겠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를 불러 젊게 하시므로 다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할수 있는 멍에를 메도록 하신것 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그분의 명령앞에는 어떤 경우도
아니오가 있을수 없습니다. 제가 지난 시간에 전도 왜하느냐고 말씀드리면서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니까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배를 왜 드려야 합니까
여기에는 타협의 여지가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강제적인 것보다는 자발적인것을 원
하시지만은 어떻거나 우리은 하나님의 말씀에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꼭기억 해
야 합니다.
눅 19장에 보면 삭개오 사건이 나오는데 예수님게서 지금 우리의 방식대로 접근하
여 삭개오에게 가셨다면 어땠을까? "당신이 삭개오씨 입니까?"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 만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삭개오씨 바쁘신줄 압니다만 몇말씀 드리고 싶은데 시간을 내주실수 있겠습니까? 이
렇게 하셨다면 선택의 여지가 삭개오에게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번주는 시간이 없
습니다.다음주나 시간을 내보겠습니다. 이런식이 되었을런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분은 왕이십니다. 그분에게는 절대권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분에게 선택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
에 유하여야 하겠다." 예수님은 선택권을 사람에게 주지 않습니다. 왜? 구원은 선택이
아니라 명령이기 때문 입니다.
삭개오는 이명령앞에 어떻게 반응 할것인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와
함께하지 않는자는 나를 대적하는자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삭개오는 대적이
되느냐 아니면 그를 왕으로서 모시고 따르느냐를 결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삭개오가 나무에서 내려온후 예수님과 사도들을 자기집으로 영접하였습니다. 삭개
오가 예수님 일행을 모시고 들어설때에 그의 아내가 '여보 손님을 초대하셨다면 진작
에 말씀하셔야 하지않아요 그래야 준비할것 아닙니까?" 라고 했을런지 모릅니다. 그랬
을때 삭개오가 무엇이라고 대답헀을까요?...
여보 내가 그분들을 초대한것이 아니요 그냥 그분이 오신것이요....스스로 오신것
이요.!라고 할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왜 그렇습니까? 사실 예수님은 어떠한 초
대도 필요로 하지 아니하신분 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모든 가정과 모든 사람의 주
인 이시기 때문 입니다. 요한복음 1장11절에 보면 "자기 땅에 오매 자기백성이 영접
지 아니하였으나"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신후 잠시후에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라고 선언 하셨습니다. 자 ! 물어 보겠습니다. 삭개오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습니까
?....누가 가서 4영리를 설명해 주었습니까 누가 전도 했습니까?.. 언제 삭개오가 구
원을 받았는가? 그것은 예수님께 순종 했을때, 자기자신을 예수그리스도의 주님되심
의 그이래 복종시길때 그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 봅시다. 마태가 세리로서 자리를 지키고 앉았을때 , 예수님은
마태에게 한가한 시간이 날때를 기다리고 있다가 기회를 보아서 시간이 있으면 나하고
이야기좀 할수 있껬나? 하고 그에게 선택권을 주고 기다리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마태여 " 나를 따르라 이것이 초대입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명령 입니다. 마태는
순종하던지 아니면 거역하던지 해야하는것입니다. '회개하고 믿으라' 이것이 하나님나
라의 복음입니다.
젊은 부자 관원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 났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네가 오히려 한가지 부족
한 것이 있으니 네게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그리고 와소 나를
쫒으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이 젊은이는 그심하며 집으로 돌아가
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만약 저와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했을것 같습니까...아마도 이렇게 위로했
을런지도 모릅니다. 아! 이사람아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머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는가? 자네가 너무 물질에 집착할까 봐서 그렇게 말씀한것이니 물질에 노예
가 되지 말고 예수님을 따라 나서면 되지안나하고 위로 했을런지 모릅니다. 만약 그렇
게 했다고 하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사람이 예수님을 따르기는 할런지는 모르나, 예수님이 원하시는 방법대로 따르
는 것이 아니라 자기방식대로 예수님을 따를것 입니다. 즉 예수님의 복음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복음을 따르는 것이 되고 맙니다.
예수님은 그를 사랑하셨지만, 그를 가도록 내버려 두셨던 것을 보게 됩니다. 왜
예수님은 자신의 방법을 완화 시켜주시지 않았을까요? ...그것이 예수님이 주시는 구
원이 아니기 때문 입니다.
눅9장에보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사람이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 하소서"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같으면 어
떻게 할까요?.....
예수님은 다르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윤리적이고 사회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할것인
가를 따져보자는 것이 아닙니다. 왜 예수님은 우리가 생각할때 무리한 요구를 하셨을
까요?... 이것은 그 사람이 죽은 그의 아버지보다 또는 다른 어떤 사람보다 더 중요
했기 때문 이라는 사실 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이 사람이 제안 한 방식을 허락 했다
하면 이 사람은 자기 방식대로 예수님을 따를 것입니다 . 그러나 예수님은 너는 내 방
식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의 젊은이들을 결혼을 위해 배필을 구합니
다 그러나 주님의 그 결혼 까지도 자신의 열광을 위해서 하라고 하십니다 . 그러나 우
리는 어떻습니까 솔직히 누가 우선 순위에 있으며 과연 주님의 방식대로 인가?..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교리나 공인된 사실에 동조하는것으로 구원을 받는것이 아
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동조하는 정도가 아니라 순종할때에 구원을 받는 것
입니다. 구원은 권유정도가 아닙니다. 명령입니다. 회개하라 이것은 명령입니다. 권유
가 아니라 명령 입니다.
젊은 관원에게 그렇게 하는것이 좋겠다고 권유하신것이 아니라 명령 하신것입니
다.
사랑하는 여러분 구원은 복종입니다. 그리스도께 무릎을 꿇는것입니다. 그래야 그
분의 나라 사람이 됩니다. 그래야 그분의 보호를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주님이라고 부르신다면 여러분은 절대로 그분의 뜻이나 말씀에 절대 복종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뜻이나 명령 앞에 우리의 변명이나 다른 어떤것을 달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것 같은데 ,..십일조 왜 드립니까 ?..교회유지 위해
서 저 목사밥 못 먹을까봐서 아닙니다. 주일 왜 지킵니까?.. 십일조를 내면 물질 축
복을 주신다고 했기때문에 주일을 지키지 않으면 징벌을 받을까봐..
예수님은 먼저 그나라와 그의를 구하라 했는데 ,솔직히 우리가 어떤것을 먼저 구
하는가 ?...우리는 먼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어떤 집을 살까, 어떤 직업을
택할까, 어떤남자 어떤여자와 결혼할까를 생각하고 그리고 나머지 시간 있으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까 하는 사람 아닙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사도 바울은 먹든지 마시든지 살던지 죽든지 라고 했스ㅂ니다.
먹는것도 공부를 하는것도 집을 사는것도 이사를 하는것도 결혼을 하는것도 직장을 갖
는것도 장사를 하는것도 예수님을 위하여 하는것이 어야 합니다.
여러분 이와같은 자세 정신으로 살지 않는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향하여 주님이라는
호칭을 함부로 쓰지말아야 할것 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것을 행치
아니하느냐?"라고 책망 하실것이기 떄문 입니다.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