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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택 (두레교회 목사)
1. 한국 교회 재정지출 어떻게 볼 것인가?
한국 교회의 재정이 바르게 쓰이고 있는지의 문제는 정확한 통계가 없는 것과 개 교회에 따라 재정지출의 유형과 내용이 천차만별이라는 점 때문에 뭐라고 한마디로 단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 교회들이 예배당과 부속건물 건립과 유지보수, 그리고 목회자 및 직원 인건비와 사무비로 재정의 대부분을 사용하고 있는 현상 - 많은 부분이 특별예.결산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공식적인 일년 예. 결산안으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을 직시할 때 한국 교회의 재정지출은 위기상황에 봉착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2. 한국 교회 재정지출을 위기상황이라고 보는 근거는?
무엇보다도 헌금에 대한 성경적인 가르침과 상반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헌금에 대해서 한국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인식하거나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에 대한 간구의 수단 내지는 교회라는 조직과 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구성원으로서의 기본 의무라고 인식하고 있다.
이와 같은 헌금에 대한 인식은 구약에 나타난 십일조의 전통과 의미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신12:5-19, 레27:30-33, 민18:21-32). 구약에 나타난 십일조에는 적어도 세 가지 의미가 있었다. 먼저 그 해 소출의 1/10을 제사업무와 성전 업무를 전담하고 있는 레위인과 제사장들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해서 드렸다. 그리고 레위인들을 위한 십일조를 제외한 나머지에서 다시 1/10을 가족이나 친지, 남녀 종들과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함께 감사제사(축제)를 드리기 위해 바치는 십일조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안식년을 기준으로 매 3년마다 감사제사 대신에 가난한 자, 고아와 과부, 나그네를 위해 십일조가 있었다. 이와 같이 구약의 십일조는 제사와 성전 업무를 수행하는 레위인들의 생계와 성전을 중심으로 한 축제와 백성들을 물질적 고통을 들어주기 위한 구제의 목적으로 드려졌던 것이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헌금이 십일조의 개념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다. 신약에서의 헌금이란 어떤 특정 목적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모아지는 현금이라는 의미가 두드러진다. 신약에는 헌금에 대한 언급이 아홉 번 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 중에 예수님이 두 번 언급하시는데(막12:11-44, 눅21:1-4) 여기서는 헌금에 대한 의미보다는 헌금에 대한 자세를 교훈하셨다. 그 나머지 부분은 주로 바울 서신에 언급되는데 고전16:1에서 처음 언급이 되고 나머지는 고후8,9장에서 집중적으로 언급이 된다. 바울이 언급한 헌금에 대한 단어들을 정리해 보면 ''모금''(collection, 고전16:1), ''은혜의 표현''(grace, 고전16:3), ''선물''(gift, 고후8:1,6,7), ''연보''(generosity, 고후8:2), ''성도를 섬기는 일''(고후8:4,9:1),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는 것''(고후8:8), ''물질적으로 평균케 하는 것''(고후8:13, 14)으로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표시라기보다는 어떤 특정한 목적을 위한 성령의 은혜와 감동으로 행해지는 모금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특정한 목적이란 이미 위에서 언급했던 바울 서신에 잘 나타나 있는데 가난한 성도를 돕는 일이다. 특별히 가난한 성도들을 돕는 일에 대한 교회적인 이해가 있었는데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거룩성을 지키기 위한 물질적 공유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인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요구되는 덕목이 있다면 의롭게 살며 거룩하게 사는 것이다. 그런데 물질의 부족과 그로 인한 고통으로 거룩을 유지할 수 없는 성도가 있다면 교회가 공동체적으로 책임을 느끼며 그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 실천된 것이 헌금이었다.
신, 구약에 나타난 헌금의 의미로 미루어 볼 때 교회 재정은 가난한 성도들의 물질적 고통을 들어주는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 말은 재정지출의 있어서 소위 구제비 혹은 나눔비에 가장 높은 비중을 두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 교회 재정지출의 현실의 위기상황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적합한 통계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1994년에 발간된 대한예수교 장로회(통합) 총회 설립 80주년 기념 자료집인 ''교회 사회 봉사 총람''에 의하면(교회 사회봉사 사업의 실태, 약 2000교회 설문응답) 교회 재정 가운데 사회 봉사비의 비율을 어느 정도 책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73.6%가 10%미만으로 답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51%이상 책정해야 한다고 답한 비율은 0.2%에 지나지 않았다. 사회봉사 사업에 대한 실시가 어려운 이유로 61.3%가 재정을 부족을 들고 있었다. 연간 사회봉사비 지출액으로는 92.1%가 천만 원 미만인 것으로 답했다.
헌금에 대한 기본 인식과 실천이 성경의 가르침과는 완전히 빗나가 있음을 보게 된다.
3. 어떻게 교회의 재정지출을 건강하게 할 것인가?
첫째로 교회 지도자들이 성경적인 헌금의 의미를 바로 가르쳐야 한다. 물질적 공평을 위한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은사라는 개념을 심어야 한다. 사실 헌금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성도의 인식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시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성도들은 헌금을 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의미를 부여하고 적극적으로 동참하지만 헌금이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예배시간에 엄숙하고 경건하게 헌금을 드리는 행위 자체로 만족해 버린다. 이런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성경적인 헌금의 의미를 강조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헌금''이나 ''연보''란 말보다 ''나남비''나 ''사랑의 물질''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
만약 성도가 헌금을 나눔의 수단이나 평균케 하는 은사라는 인식을 가지게 될 때 헌금을 한다는 행위 자체에 대해서 상당한 사회적 자긍심과 소망을 갖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헌금을 통해서 사회가 겪고 있는 부의 분배나 소유로 인한 갈등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헌금에 대한 이런 인식을 갖고 재정지출을 실천한다고 생각해 보라. 어느 역사 어는 이념이나 체제가 이루지 못한 물질로 인한 갈등과 분쟁이라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세상을 충만케 하는 충만으로서의 교회의 본래 존재가치를 회복하게 될 것이며, 교회가 세상 가운데 높이 들리워져서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에서는 헌금에 대한 적극적인 권면들이 많다. 극한 가운데서도 풍성한 헌금을 강조했으며(고후8:2), 장사하여 남긴 이, 즉 잉여가치를 다 바치라는 권면도 있다(고전16:1). 그리고 헌금에 대해서 부요하고 너그러워야 할 것을 권면한다(고후9:1). 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헌금을 가르치고 권하는 사명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바른 헌금을 가르치고 적극적인 헌금생활을 실천하도록 권면한다는 것은 성도들로 하여금 물질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갖게 할 뿐만 아니라 경제활동에 대한 바른 판단을 갖게 하여 건강한 국가 건설과 세계 경제 질서를 회복하는데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재정지출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헌금을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구조 내지는 체제를 갖는 것이다. 토지와 건물에 대한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체제를 갖는 것이다.
이 부분을 아직 연구되지 않았지만 교회의 본질을 담아내고 그러면서도 전투적이고 건강한 교회를 이루기 위한 교회의 외적인 크기(size)를 규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필요 이상으로 교회가 커지면 분립개척과 같은 방법으로 건물과 체제 유지를 위한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성경에는 나눔과 평균케 해는 부분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하지만 이 외에는 어떤 물질적인 부담도 주지 않고 있다. 이것은 신구약을 통틀어 일관되게 강조되는 부분이다. 모세에게 성막을 세우라고 명령하시면서 그 규모를 작게 정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막을 모세에게 알아서 지으라고 하셨다면 틀림없이 피라밋보다 더 크게 지으려고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를 이기신 하나님이시기에 그 권위와 위상을 생각해서 웅장하게 지어야 한다는 이론이 지배적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을 짓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평생을 소모했을 것이며 재원과 노동력을 동원하기 위해서 성전(聖戰)이란 명분으로 침략을 계속했을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는 철저하게 왜곡되었을 것이다. 이런 어리석음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직접 식량을 정하시고 그 규모를 제한하셨다. 이와는 반대로 안식년 제도나 대물림이나 희년에 관한 명령은 아주 엄격하다.
일전의 어떤 선교단체에서 봉사한 적이 있는데 그 선교단체가 선교와 교육의 효율성을 내세워 건물을 연이어 짓고 직원들의 수를 늘려나갔다. 그러나 몇 년이 못되어 건물과 직원들의 인건비를 충당하느라 본질에서 빗나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지금 대부분의 한국 교회들은 체제를 유지하느라 헌금의 본질을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교회가 재정을 바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성공과 성장주의라는 이념을 허물고 화려하고 웅장한 교회와 기도원 건물들을 허물어야 한다. 대형교회라야만 선교를 포함한 구제사업이나 사회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은 ''작지만 연합하는 교회운동''이라는 철학과 실천을 통해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셋째로 교회 재정에 대한 정책결정과 재정지출에 대한 감시에 성도들이 민주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대부분의 대형교회에서는 헌금의 주체가 되는 성도들이 교회재정의 정책결정과 재정지출의 감독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심지어 이런 부분에 있어서 관심을 갖는 것은 교회의 전통적인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 교회에서는 제직회를 통해서 정책결정과 감독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상당히 제한된 실정이다. 평소에 재정에 관한 자세한 상황을 교회 홈페이지에 올려놓아 모든 성도들이 언제든지 관찰할 수 있고 자신들의 생각을 개진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재정에 대한 최고 의결조직인 공동의회 때 재정에 관한 정책과 예결산 세부 사항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도록 사전에 모든 자료를 제시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4. 마치는 말
현재 한국 교회의 재정지출은 앞에서 살펴 본대로 위기상황이다. 재정지출의 위기는 재정수업의 위기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이 말은 헌금이 성경적으로 바로 쓰이지 못하면 성도들이 헌금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된다는 뜻이다. 성경의 권면처럼 인색함으로나 억지로가 아니라 자발적이고 너그럽게 헌금할 수 있기 위해서는 헌금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재정지출에 대한 과감한 제도적 혁신이 있어야 한다. 하루 속히 한국교회의 재정지출이 개선되어 만물을 충만케 하는 충만으로서의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