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410
홍정근목사 (연동교회)
느헤미야는 변화를 관리하고 주도하는데 탁월한 지도자였다. 변화의 과정에 발생하는 저항과 갈등을 처리하고 다루는데도 탁월한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의 재가를 얻어 이스라엘로 돌아와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고 영적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많은 저항과 장애에 부딪히게 된다. 그 저항은 안팎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비범한 영적 지도력을 발휘하여 슬기롭게 모든 저항을 마무리하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성벽을 건축하고 영적 개혁을 완수한다. 느헤미야가 개혁의 과정에 만났던 방해나 저항을 어떻게 처리하고 해결해 나갔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시대적 배경
이스라엘이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갈라진 후, 북 왕국 이스라엘이 주전 722년에 앗시리아에 의해 포로로 끌려가므로 먼저 멸망하게 된다. 그 후, 남 왕국 유다도 주전 586년에 바벨론 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게 된다. 북 왕국 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 멸망당하고 포로로 끌려간 후, 결국 앗시리아를 중심으로 한 문화권에 동화되고 만다. 한편 남 왕국 유다는 비록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하고 포로로 끌려가기는 했으나 바벨론의 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자신의 문화를 지켜가기 위해 노력했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여 이스라엘의 회당제도가 바로 바벨론 포로라는 역사적 아픔 속에서 이교적인 문화적 충격과 도전에 직면한 유다 백성들이 자신의 신앙과 문화를 지켜내기 위한 돌파구로 만들었다고 보고 있다. 바벨론이 주전 539년에 메데와 페르시아에 의해 무너지게 되면서 유대인들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페르시아와 고레스의 배려로 많은 유대인들이 고국 땅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주전 538년에 스룹바벨을 지도자로 한 제1진이 유다로 돌아오게 된다.(스 1:1-2:2) 고국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은 수년이 넘도록 사마리아인들의 방해를 받으면서도 기어코 주전 515년에 예루살렘 선전을 재건하는데 성공한다. 소위 스룹바벨 성전이 세워진 것이다. 그리고 수년이 지난 후 주전 458년에 두 번째 유대인들의 귀환이 이루어진다. 이때는 에스라가 인도자로 선두에 섰다.(스 7:1-10) 하지만 에스라가 돌아왔을 때, 유대인들은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타락에 빠져 있었다. 심지어 주변의 이방인들과 통혼을 일삼고 이방 제사에 참여하는 등 극도의 타락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에스라는 힘을 다해 말씀을 중심으로 영적 부흥 운동을 일으킨다. 백성들은 다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부흥의 기회를 맞게 된다. 하지만 스룹바벨의 노력으로 성전은 재건이 되었으나 성전을 보고할 수 있는 예루살렘 성벽은 여전히 재건되지 못하고 무너져있는 상태로 있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라는 꿈을 품고 기도하며 그 꿈을 키우며 기회를 찾고 있었다. 이에 에스라가 귀한 한지 14년이 지난 주전 444년에 아닥사스다 왕의 술 맡은 관원으로 있던 느헤미야가 왕의 허락을 받고 예루살렘성벽 재건이라는 꿈을 품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된다.
느헤미야에 대한 인물 이해
느헤미야는 유다지파에 속한 사람이다.(느 2:3) 느헤미야는 수룹바벨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즈음이나 그 이후에 페르시아에서 태어났을 가능성이 있다.(존 마틴, 진 게츠, 에스라.느헤미야.에스더, 69) 어린 시절이나 청년 시절 그리고 그의 가문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단지 그의 아버지의 이름이 ‘하가랴’(느 1:1)이며 그의 형제 이름이 ‘하나니’(1:2)라는 사실만 밝혀져 있다. 아마도 느헤미야의 집안은 조부대에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점령당할 때 포로로 잡혀간 듯 하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의 왕궁에서 아닥사스다 왕의 술맡은 관원의 지위게 있었다. 당시 술맡은 관원이라는 위치는 왕의 최측근에 있는 지위로 상당히 높은 지위에 해당한다. 특히 페르시아 왕같이 막강한 권력을 가진 군주들은 자신의 술관원을 선택할 때, 지혜롭고 식견이 있으며 성품이 정직하고 신뢰할 만한 사람을 뽑았다. (존 마틴, 진 게츠, 69) 여기서 우리는 느헤미야의 사람됨됨이가 어떠했는지를 가름해 볼 수 있다. 특히 느헤미야서가 보여주는 느헤미야의 리더십의 모습은 그가 상당한 공부와 경험을 갖고 있었음을 쉽게 짐작하게 한다. 더욱이 지도자로써의 그의 모습을 보면서 탁월한 성품과 자질을 엿볼 수 있다.
느헤미야가 직면한 안팎의 저항들
느헤미야는 외부적으로 내부적으로 많은 저항에 부딪혔다. 밖으로는 산발랏과 도비야의 끈질긴 조롱과 방해가 있었다. 심지어 군대를 규합하여 공격하려고 하기도 하고 느헤미야를 제거하기 위한 암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그것도 안 되자 도비야는 유다 진영의 사람들을 매수하여 느헤미야가 반역을 획책한다고 모함하기도(6:1-9) 하고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성전으로 유인하기도(6:10-14) 했다. 느헤미야의 개혁사업에 대한 방해는 그기에 거치지 않았다. 내부적으로도 많은 저항이 일어났다. 연일 계속되는 힘든 부역에 백성들은 탈진하여 힘들어하기도(4:10) 하고, 외부의 적대자들의 위협에 백성들이 사기를 잃고 낙심하기도(4:14) 했다. 경제적으로 힘든 백성들은 높은 세금과 이자에 못살겠다는 원성이 여기 저기에서 터져 나오면서(5:1-5) 개혁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숱한 방해과 저항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의 비범한 영적 지도에 힘을 입어 성벽 재건이 성공적으로 끝난 후에도 저항은 계속되었다. 지도자들 중에 외부의 적대자들과 내통하여 영적 기강이 해이해 지기도 했다.(6:17-19) 공사를 마치고 영적 개혁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느헤미야가 잠깐 바사 본국으로 돌아가 있는 사이에 제사장 엘리아십이 도비야와 내통하고 결탁되어 있었다. 도비야는 온갖 악랄한 방법으로 성벽공사를 저지하고 방해했던 민족적인 원수요 방해꾼이다. 그럼에도 제사장이라고 하는 엘리아십이 도비야가 성전의 방에서 살림을 차리고 살도록 방까지 내어 주었다.(13:1-9) 개혁과 변화가 완전히 뿌리내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이 모든 악랄하고 교묘하고 끈질긴 저항과 방해를 성공적으로 해결하고 마침내 성벽공사와 이스라엘의 영적 재건을 이루어 내었다.
느헤미냐의 저항 관리
우리는 느헤미야로 부터 저항관리에 필요한 성경적 원리들을 배울 수 있다. 느헤미야의 개혁과정을 저항관리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몇 가지 중요한 원리를 찾아 볼 수 있다.
1. 기도의 원리
느헤미야는 기도하는 지도자였다. 저항과 위기의 순간마다 기도했다.(4:4, 9, 6:9, 14, 13:14, 22, 29) 행동하기 전에 기도했다. 지시를 내리기 전에 기도했다. 느헤미야의 기도는 거의 조건 반사적이었다. 문제가 터지면 거의 반사적으로 기도에 들어갔다. 느헤미야는 기도가 체질화되어 있는 지도자였다.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 인도하심을 구했다. 기도하지 않아도 될 만큼 탁월한 리더십은 없고, 기도하지 않아도 될 만큼 만만한 문제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기도는 저항을 잠재우고 처리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2. 방비의 원리
느헤미야는 그렇다고 기도만 하고 있지는 않았다. 치밀하고 철저한 방비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4:9, 13, 16-18) 작전을 짜고, 보초를 세우고, 무장을 하고, 조사를 했다. “중심에 계획하고”(5:7) 용의주도한 준비와 치밀한 계획에 기초한 리더십이었다. 순간 순간 일어나는 저항이나 방해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기도만 하고 앉아 있지도 않았다. 저항은 철저하게 대비하는 만큼 줄어들기 마련이다. 또한 치밀하게 대비하는 만큼 저항을 효과적으로 잠재우고 처리할 수 있다.
3. 적시성의 원리
저항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지체함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항을 다루는데 있어서 타이밍은 참으로 중요하다. 타이망을 놓치면 감당하기 힘들어 진다. 느헤미야는 저항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주저함이 없다. 순발력 있는 수습은 효과적인 저항관리를 위한 핵심적인 원리이다. 저항 수습과 게으른 지도자는 일만 키운다.
4. 격려와 책망의 원리
백성들이 너무 탈진한 나머지 낙담했다. “힘이 쇠약하였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4:10) 이때 어리석은 지도자들은 책망한다. ‘왜 그렇게 부정적이냐, 이 못난 사람들아!’하고 나무란다. 느헤미야는 백성들을 모아 격려했다. 그리고 영적으로 재무장을 시켰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4:20) 낙심은 변화의 과정에 우리가 자주 만나는 저항이다. 지도자는 이런 낙심의 말, 원망의 말을 들을 때, 쉽게 꾸짖는다. 우리는 주가마필 즉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라’는 가르침에 익숙해 있다. 채찍도 필요하다. 그러나 당근도 필요하다. 당근과 채찍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지혜이다. 꾸짖기는 쉬워도 격려하기는 어렵다. 책망은 두렵게 하지만 격려는 사기를 앙양시킨다. 한편 도비야가 엘리아십 제사장과 결탁하여 성전에 방을 얻고 기거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느헤미야는 단호하게 도비야를 쫓아내었다.(13:8) 아닌 것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5. 경청과 공감의 원리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는 백성들의 이야기를 들었다.(5:1-6) 백성들의 불평과 하소연을 듣는 것에 대해 인색하지 않았다. “내가 백성의 부르짖음과 이런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5:6) 느헤미야는 백성들의 원망을 듣었다. 그리고 공감했다.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저항의 상당 부분을 잠재울 수 있다. 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해소가 되고 치료가 된다. 지도자는 잘 들어야 하다. 끝까지 들어야 한다. 공감해 주어야 한다. 들어주지 않고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아서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저항을 키우는 지도자가 의외로 많다. 어리석은 지도자들은 듣는 것을 두려워한다. 저항을 반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항과 반대는 다르다. 저항은 기회다. 저항은 재결집의 기회요, 방향확인의 기회요, 동기부여의 기회다. 잘 들어주고 공감해 줄 줄 아는 지도자에게 저항은 기회다.
6. 고통분담과 솔선수범의 원리
백성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했을 때, 느헤미야는 지체 없이 귀인들과 민장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궐기 대회를 열었다.(5:7) 그리고 유대 지도자들에게 고통의 분담을 호소했다. 뿐 만 아니라 자기의 월급도 내어놓고(5:14), 자기 자신도 기꺼이 곡간을 열었다.(5:10-11, 17) 고통의 분담과 솔선수범의 리더십니다. 이는 자기를 비우는 케노시스(kenosis)의 리더십이다. 지도자가 먼저 희생할 때, 웬만한 저항은 사라진다. 지도자는 고통분담에 대한 동참하지도 않고 지도자가 솔선수범을 하지도 않으면서 변화를 외치고 헌신을 외친다면 이는 공허한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이것은 하나님이 보여 주신 리더십이요, 예수님이 실천하신 리더십니다. 지도자는 더 높은 책임과 헌신을 요구받고 있다.
7. 책임의 원리
느헤미야는 자기가 해결해야 한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미루지 않았다. 백성들의 탈진이나 경제적인 어려움 또는 도비야의 문제 등 모든 문제에 대해 느헤미야가 스스로 총대를 메고 수습에 앞장섰다. 다른 사람을 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자기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와 그렇지 않는 문제를 분별력 있게 처리했다. 우리는 가끔 책임자가 점면에 직접 나서서 해결해야 한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대신 하게 하므로 문제를 더 크게 만드는 경우를 보게 된다. 지도자는 위기의 순간에 책임을 질 수 알아야 한다. 때로는 변화를 어렵게 만들고 방해하는 저항세력과 대면하여 담판을 지어야 할 때가 있다. 이를 회피하는 지도자는 저항에 걸려 넘어질 수밖에 없다.
8. 영적 쇄신의 원리
영적 쇄신 없이 변화는 성공할 수 없다. 목회 현장에서 추구하는 변화와 개혁은 영적 쇄신없이는 불가능하다. 느헤미야는 에스라를 앞세워 백성들을 말씀으로 새롭게 하는 일에 앞장섰다. 절기와 안식일을 회복했다. 해이해진 영적 기강을 바로 잡아 나갔다. 영적 해이는 곧 변화와 개혁의 실패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저항을 해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영적 각성과 부흥을 일으키는 것이다. 영적 부흥은 저항을 잠재운다. 이를 위해 지도자는 눈앞에 보이는 문제보다는 문제 뒤에 숨어 있는 영적 실체를 보아야 한다. 문제만 보고 배후를 보지 못하면 저항의 뿌리를 뽑아 낼 수 없다. 보이는 세계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지배를 받는다. 현실의 문제는 영적은 문제에서 기인한다. 느헤미야는 이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방해나 저항은 지도력을 시험하는 중요한 관문이 된다. 존 화이트는 느헤미야의 지도력을 다루는 책에서 “지도력을 시험하는 방법으로 반대 세력을 통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고 했다. 저항은 우리의 지도력을 시험하는 시험대요, 우리의 지도력을 연마하는 훈련장이다. 느헤미야는 이를 우리에게 잘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