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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표 목사 (역대상 29 : 10 - 17)
사람이 사는 날이 길지 않습니다. 인생의 연수가 70십, 강건하면 80십을 산다고 말하지만, 그 사는 날 우리는 사는 맛을 느끼며 살아야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 사는 맛이 뭐냐고 그러면 죽을 맛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는 맛이 달고 또 즐겁고 오묘한 맛을 지니고 살아야 됩니다. 우리의 사는 나날이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우리 사는 맛이 살맛이 난다는 생각이 들어야 합니다. 밥을 먹을 때에 밥맛이 나야되고 직장생활하면서 직장생활하는 맛이 나야되고 그리고 우리가 예수 믿으면서 예수 믿는 맛이 있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를 믿으면서 맛을 모르고 그저 수없는 세월을 보내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수 믿는 맛이 뭐냐고 묻는다면, 무슨 맛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무슨 대답을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가지 대답을 할 수 있겠지만 한마디로 가장 정확한 대답은, 은혜받는 맛으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지 못하면 믿는게 고역입니다. 저는 오늘 사랑하는 성도들과 함께, 무슨 맛으로 예수를 믿나? 이렇게 묻는다면, 은혜받는 맛으로 믿습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은혜를 받지 못하면 참 믿는게 일생동안 고생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은혜는 특수한 사람들이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깨달으면 됩니다. 다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코로 숨을 쉬고 있습니다. 그러나 숨쉬는 걸 모르면 은혜를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숨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 숨쉰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우리가 흔히 은혜라는 말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갑없이 주시는 선물, 사랑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사랑을 은혜라고 말합니다. 나같은 죄인을 주님께서 사랑하셔서 내 대신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이 사실 하나를 생각하면, 내게 은혜가 넘치게 됩니다. 우리가 구약에서 헤세대라고 하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란 뜻인데, 하나님의 은혜는 모두 하나님의 긍휼과 인자에서 흘러나오는 행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은혜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은혜는 믿음으로 받고 사랑으로 풍성해지며 그리고 소망으로 우리에게 결실된다라고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무엇으로 갚냐면, 믿음으로 갚습니다. 이 은혜는 사랑으로 풍성해집니다. 그리고 이 은혜는 소망을 가지고 날마다 고백되고 결실하게 됩니다. 나같은 죄인, 죽어마땅한 이 몸을 살리신 하나님의 은혜에 고마워 하면서 우리는 하나님께 날마다 감사한 마음으로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은혜를 받으면 어떠한 증거가 있을 수 있냐면, 첫째는 감사가 솟아오릅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역대상 29 : 13)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서 모든 재물을 준비한 이후에 하나님께 이러한 기도를 드립니다. “주여,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건축할 수 있는 모든 예물을 준비케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모든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의 부와 권세와 능력 성전건축의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은혜로 받은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 (역대상 29 : 16)
다 주의 손에서 왔습니다. 그래서 주의 것입니다. 그래서 모두다 주께로부터 왔기 때문에 주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는 날이 주께로부터 왔다고 믿습니까? 그러면 하루하루 사는게 감사합니다. 여러분, 옆에 사랑하는 아내가 있습니까? 남편이 있습니까? 부모님이 계십니까? 자녀가 있습니까? 쳐다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십시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분을 주셨지." 옆에 있는 분이 친구라고 해도 이분을 만나게 한 분이 하나님시다라는 고백이 될 때 하나님께 감사가 흘러나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하늘을 보나 땅을 보나 서로 가족들을 쳐다볼 때, “아, 하나님이 나에게 선물로 은혜를 주셨지", 이렇게 생각하면 감사가 샘물처럼 흐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을 쳐다보는 제 마음에 무슨 생각이 드는지 아십니까? “아, 창세전부터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을 나에게 이렇게 만나게 했지." 이렇게 생각하면 눈에서 눈물이 흐릅니다. 감사한 마음에서 눈물이 흐릅니다. 아마, 여러분들이 설교를 들으면서 은혜를 받아야 되겠지만, “아, 저 목사님을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로 주셨지." 이렇게 생각하면 아마 제가 부족하지만 마음으로는 감사하는 마음이 흐를겁니다. 어떤 자매가 저에게 이런 간증을 합니다. “목사님, 제가 은혜를 모르고 다닐때에는 그져 다녔는데, 은혜를 받고 보니까 그렇게 교회가 좋고 목사님이 좋고 또 가정에 들어가니까 자기 남편을 보면서도 눈물이 나고 자녀를 보면서도 눈물이 납니다." 너무너무 감사한 생각이 솟아오른다는 겁니다. 인생을 살면서 어떤 고난도 나에게 고난이 올 때도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한다면 그 고난자체가 감사로 주어집니다.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도 “아,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은혜를 주실려고 그러지." 이렇게 생각하면 그 고난자체에 괴롭히는 것 까지도 자기에게 감사가 됩니다. 그래서 운명을 바꾸는 것입니다. 인간의 최대의 축복이 무엇입니까? 자기 삶의 현장에서 모든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받고 감사할 수 있는 것이 최대의 축복입니다. 두번째로 은혜를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역대상 29 : 14)
하나님에게 바칠 힘이 어디에서 솟았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 받으면 하나님 앞에 바칠 힘이 솟아 오릅니다. 이게 바로 은혜입니다. 하나님 앞에 바칠 수 있는 힘, 더군다나 즐거운 마음으로 바칠 수 있는 힘이 솟아오릅니다.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자기 존재가 빛진자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바칠수 있는 감동이 우러나옵니다. 은혜를 은혜 되게 받으려면 반드시 은혜를 빛으로 받아야 되고 은혜받은 자는 빛진자로 고백되어야 합니다. 은혜가 빛이 되었다면 그 은혜를 보답하지 않고는 견딜수가 없습니다. 은혜를 참으로 받으면 빛진자의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시간과 물질과 마음을 바치지 않고는 견딜수가 없습니다. 내 주위에서 주신 은혜 한없건만 나주위에 갚은 것은 참 적다고 자기 자신을 고백하게 됩니다.
한 사업가 성도가 IMF으로 부도가 난 후에 기도원에 숨어 있다가 이 찬송을 들으면서 자신이 깨어지는 것을 들었습니다. “주님께 받은 것은 한없건만 주님을 위해 한 일은 없구나. 사업이 잘될때 교만했고 결국 망하면서 바친 것이 없었구나. 남은 것은 빛이요." 은혜를 모르고 망하면서 깨닫지 못한것을 그는 슬퍼하면서 통곡을 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은혜는 한없는데, 나는 보답을 못했구나." 저는 지난주간 이수중앙교회 우리 시찰회 교회, 부흥회를 인도하면서 그 교회 장로님 한분을 만났습니다. 장로님 한분이 저를 인도하면서 밤에 집으로 함께 왔는데 그분이 그럽니다. “목사님, 저는 이수중앙교회 성전부지를 살때 집을 바쳤습니다." 그러면서 너무너무 은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목사님, 저는 그 후에 부도가 나서 뉴코아 부도날때 저의 재산이 다 넘어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10억을 날렸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무슨 은혜를 받았냐고 했더니 하는 말이, 그때에 하나님 앞에 바쳤기 때문에 바친 것만 남았다는 것입니다. 뉴코아 넘어갈때 다 넘어갈 것인데 하나님 앞에 바친 그 집이 하나님께 살아있는 것을 생각한다면 너무 너무 은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번에도 건축헌금을 3억을 작정하면서 바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가 하는 말이 이렇습니다. “목사님, 바친 것만이 남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저는 바치는 즐거움으로 살고 있습니다. 감동이 됩니다."
저는 몇일전에 우리교회 최순일 권사님이 소천하셔서 하늘나라 가셨는데, 제가 장례식에 가서 그렇게 울어본적은 처음입니다. 왜 이렇게 눈물이 나나? 그래서 제가 입관식 하는 날 시신을 열고는 그 얼굴을 만지면서 그 얼굴에 눈물을 쏟으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여종이 나를 왜 이렇게 울게 하시나. 한번은 그 권사님이 권사임직을 하면서 제 방에 들어옵니다. 무릎을 끓면서 봉투를 들면서, “목사님, 제가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면서 많이 바치고 싶지만 이거 제 어려운 살림에 하나님 앞에 바칩니다." 무릎을 딱 끓고 제 방에 들어오더니 봉투를 이렇게 올리는데요. 제 눈에는 하늘에 올라가는 빛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제가 머리에 손언고 기도를 하는데 눈물이 주루룩 흐릅니다. 그 분이 위암 수술 마치고 연약한 몸으로 오시면 제방에서 기도를 받고 가셨는데, 이번에 그만 세상을 끝내셨습니다. 그리고 하늘나라를 가셨습니다. 그런데 그저께 장례식을 마쳤는데 한 집사님이 와서는 그럽니다. “목사님, 그 최순일 권사님의 남편 김호일 집사님이 그러는데, 우리 최권사는 목사님을 사랑하고 아끼다가 일찍 가셨습니다." 여기 조영기 목사님이 부흥회 할때, 곽선희 목사님이 부흥회 할때 비바람이 쳤습니다. 위암 수술을 받고 몸이 연약했는데 “아이구, 우리 목사님, 이 큰 교회당 지어 놓고 자리 비우면 마음이 아프겠지. 병든 몸이라도 내가 가서 앉아야지." 그 생각을 가지고 신림동에서 버스타고 오고 또 버스타고 밤 늦게 가면서 몸살이 났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병이 깊어갔던 것입니다. 그 얘기를 제가 듣고 얼마나 눈물이 쏟아지든지, 그 사실은 몰랐는데 이 종을 울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중요한것은 한가지가 분명합니다. 우리 마음을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합니다. 오늘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9절을 보겠습니다.
“백성이 자기의 즐거이 드림으로 기뻐하였으니 곧 저희가 성심으로 여호와께 즐거이 드림이며 다윗 왕도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니라“ (역대상 29 : 9)
여기보면 백성이 자기의 즐거이 드림으로 기뻐했습니다. 자기들이 즐겁게 드리는 것을 하나님께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즐거이 드린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이냐? 하고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저희가 성심으로 즐거히 드렸다. 마음을 다해서 드렸다. 그래서 다윗 왕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예수 믿고 즐거운 마음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즐겁게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즐거운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누가 즐거운 예수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한번 마음속에 스스로 물어보십시오. 나는 과연 즐거운 예수냐? 괴로운 예수냐?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무덤덤한 예수냐? 나는 예수님을 보면서 즐거워 하는가? 지금 예수님이 나타났다면 즐겁게 달려갈 것인가? 아니면 모른체 하고 지날 것인가? 제가 외국에 가서 한 3주동안 있다보면 달려오는 교인이 있고 멀리서 눈만 흘터 보고는 지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인도 여러 형이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주님께서 여기 나타나셨다 할때, 어떻게 주님을 맞이하는 것을 기뻐하시겠습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주님께 향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누가 즐겁게 주님을 맞을 수 있겠습니까? 바친 사람만, 시간 바치고 마음 바치고 여기 다윗이 말한데로 성심을 바치고 그리고 물질 바친 사람만이 즐거움을 얻습니다. 여러분, 천국을 즐겁게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기왕에 부부가 만나서는 즐겁게 사십시오. 그럭저럭 세월 보내지 마십시오. 한번 만났는데 그럭저럭 세월 보내면 그렇다고 헤어지는것도 아니고 어디로 가지 못할 바에야 즐겁게 살아야지요. 어디 3일동안 떠날때에는 사랑하는 부인을 품에 안고 기도해주십시오. 그 감격은 하늘과 땅이 만나는 신비를 체험합니다. 품에안고 내가 잠시 떠나옵니다. “주여, 여종을 편안케 하옵소서." 눈물이 안나겠습니까? 저도 목사지만 교인들이 저를 즐겁게 맞이하면 좋습니다. 그런데 즐겁게 맞이하는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저에게 무엇을 준 사람입니다. 다 즐겁습니다. 그런데 한번도 안준 사람은 즐거움이 없는것 같습니다. 한번 냉수를 딱 드고 와서 준다든지, 차한잔이 휴게실이 있으니까, “목사님, 마시지요." 하고 가져와 보세요. 즐거움이 찾잔속에 담아서 옵니다. 인생을 살면서 즐겁게 사는 남편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자기 아내를 위해서 사랑을 쏟아주는 남편입니다. 즐겁게 집에 들어갑니다. 즐거운 아내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남편을 위해서 마음을 다해서 사랑을 고백하면서 그 마음을 드릴때, 그마음이 즐거움이 샘물처럼 솟아오르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바친자, 무엇인가 물질을 바치고 있는자, 즐거운 마음으로 씁니다. 즐거운 예수를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세번째 은혜를 받으면 성경은 15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 (역대상 29 : 15)
내가 은혜를 받으면 자기가 무엇가 같이 되겠습니까? 여러분, 성경을 보면서 내가 은혜를 받으면 어떤 사람이 되겠습니까? 나그네와 우거하는 자, 나그네가 된다는 것입니다. 은혜 못받으면 세상에 천년, 만년 사는 것 같고 은혜를 받으면 인생은 나그네다라고 고백합니다. 여러분, 은혜를 받고나면 인생은 나그네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요, 그림자처럼 살아짐을 깨닫게 됩니다. 은혜를 모르면 모든 것이 내것입니다. 영혼이 살것처럼 탐욕의 눈에 어두워집니다. 그러면 이세상에서 자유하면서 살기를 원한다면 인생은 나그네다라고 고백을 해야 됩니다. 별세의 싱앙이 곧 뭐냐면, 제가 수없는 나그네임을 고백하지 않습니까? 인생은 나그네, 이 지구는 여관방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여관방 주인이십니다. 어떤 사람은 60십년, 주께서 허락하신 전세기간을 살다 떠납니다. 길게 살면 90십년, 어떤 사람은 또 짧게 인생의 전세기간을 마치고 갑니다. 모두다 인생은 나그네, 지나갈 뿐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호화로운 왕궁에 거하면서도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우거한 자다. 잠시 머물다 간다. 하나님께로." 이게 바로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입니다. 다윗은 왕권의 족보를 자랑하지 아니했고, 자기의 어떤 호화로운 영화를 자랑하지 아니했고 끝까지 나는 나그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왕이 어떻게 챙피한줄 모르고 그런 말을 합니까? “나는 인생의 나그네다. 우리 열조와 같이, 우리 조상 아브라함, 이삭과 야곱과 그리고 수많은 모세와 여호수와 종들이 나그네로 살다가 간것처럼," 나도 나그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그네로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 대하여 미련이 없습니다. 언제나 떠날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할 뿐입니다.
한형제가 IMF로 많은것을 깨닫고 고백하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업이 무너지면서 공장도 문닫고 별장도 넘어가고 빌딩도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고 없어지지만 자기가 하나님 거룩한 성전건축 헌금에 바친 것만이 내것으로 영원히 남는 것을, 그는 곧 깨달았다고 고백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하나님께 바친것만이 남은 것이다. 이런경지에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요즘 미국에 베스트셀러가 나왔는데 제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다 쓰고 죽자, 다 쓰고 죽자, 전부다 못쓰고 죽습니다. 서울 장안에 한 할머니는 130억을 가졌는데 살아서 못썼습니다. 아까워서, 그리고 지금 의식이 없어졌습니다. 이제는 누구도 줄수가 없습니다. 살았을때 인심좀 썼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 돈 가주고 선한 일을 하고 썼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가운데 지금 집을 몇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죽으면 자식들이 가져갈 것입니다. 정신차리세요. 하나님을 위해서 선하게 써본다는게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아무것도 가져온것이 없으면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할 것인데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선한 일을 위해 쓰면 얼마나 복되겠습니까? 여러분, 돈도 명예도 다 떠납니다. 몸도 가고 세월도 가고 다 지나갑니다. 그래서 여기 보면 머무름이 없나이다. 머무름이 없습니다. 이 세상이 다 갑니다. 지금 우리가 여기 앉아있는 시간이 다 가는 것입니다. 세월이 갑니다. 돈이라는 뭡니까? 돌고 돈다해서 돈입니다. 돌고 돌아 내곁에 떠나기 전에 있을때 하나님을 위해서 쓴것만이 남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17절에 중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즐거이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 (역대상 19 : 17)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기의 정직한 고백이 어디서 흘러나오는지 아십니까? 은혜받은자의 정직한 고백, 정직한 것을 감찰하시고 기뻐하신다고 했는데, 우리 그리스도인이 정직한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물질로 나타납니다. 참 신기합니다. 진실한 사람은 돈을 주어보면 압니다. 돈을 주면 돈을 받고 깨끗한 사람이 정직한 사람입니다. 목사도 돈만 주어보면 압니다. 이 사람이 정말로 하나님 앞에 진실한 사람인가? 목사가 돈을 받아보면 돈가지고 이사람이 흔들리지 않으면 정말로 하나님의 종입니다. 교인들도 돈을 주었다 뺏어보면 압니다. 그때 흔들리지 아니하면 진실한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사는 신앙고백이 여기 다윗은 헌금으로 표현했습니다. 십일조 온전하게 바치는 사람은 정직한 사람입니다. 일반적으로 물질은 그 사람을 시험하는 하나의 시험대와 같습니다. 가끔 교인들이 시험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질때문에, 시험들지 말고 은혜로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느날 성전에 가셨습니다. 헌금대에 앉았는데 부자들이 헌금을 막 합니다. 그런데 가난한 과부가 두닢을 정성스레 넣습니다. 예수가 제자를 불렀습니다. “이리오너라." 제자들이 왔습니다. “내가 분명히 말한다. 부자들은 풍족한 가운데 넣거니와 이 가난한 과부는 구차한 중에 생활비 전부를 넣었다." 주님께서 과부의 정직한 싱령을 보시고 칭찬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시간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릴때 마음을 드립니다. 또 기도드립니다. 헌금할때 그 사람의 진실성이 나옵니다. 물어볼 것이 없습니다. 그 사람의 진실이 지금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 아십니다. 내 진실, 그래서 성경에서 물질로 망했습니다. 아가니가 시날산의, 또 한벌과 은 200세겔 금 50세겔을 여리고성을 점령할때 감추었습니다. 이걸로 아이성을 점령할때 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가니성은 안된다. 그래서 아가니가 아골골짜기에서 돌에 맞아 죽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성경전체에 간음한 사람도 용서해 주시고 살인자도 용서해주시는데 이 물질에 넘어간 자는 손을 쏠 수가 없습니다. 왜? 평생에 그것은 못고칩니다. 하나님이 그것은 힘드신 모양입니다. 물질로 하나님을 섬겼으니 그렇습니다. 게하시는 남한이 문등병을 고치고 돌아가는 길에 하사품이 생각나서 엘리사모에게 가서 남한에게 하사품을 받습니다. 은 1달랄트와 옷 두벌을 받습니다. 이일로 문둥병에 걸립니다. 가롯유다는 은30개로 스승을 팔고 목매달아 죽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베드로를 속여서 그가 하나님 앞에 거짓되게 하다가 그 혼이 떠나 버렸습니다. 여러분, 이게 성경의 비밀입니다. 물질로 진실한 사람은 진실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자기가 얼마나 진실하게 사는가를 고백하면서 성찬합니다.
몇일전에 한 여종이 저보고 음식점에 나오라고 합니다. 그래서 갔습니다. 남편이 같이 왔습니다. 평소에는 그분 얼굴이 조금 거무스름한데 그날은 훤하십니다. “무슨 좋은 일이 있습니까?" “목사님, 참좋은 일이 있습니다. 제마음이 기쁩니다." 자기 남편이 명예퇴직을 3개월전에 했다는 것입니다. 명예퇴직을 해서 퇴직금을 받았는데 급해서 써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3개월이 지난후 명예퇴직금의 십일조를 만들어서, 이제는 하나님 앞에 바칠일을 생각하니 너무 기뻐서 저를 초청하고 음식을 대접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에게 그럽니다. “목사님, 제가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바칠 수 있게 되어서 제 마음이 참 평화롭고 자유럽습니다." 제가 그날 음식을 대접받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먹었습니다. 참 제마음이 그렇게 기쁠수가 없었습니다. 그 은혜로 살려고 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여기 다윗이 고백하데로 백성이 주께로 즐거이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 심히 기쁘도소이다. 오늘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이 나와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께 즐거이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라는 고백이 우러나기를 축원합니다.
추수감사 주일에는 이러한 고백을 하는 주일입니다. 우리가 1년동안 지나온 감사를 주께 올려야 합니다. 받은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바치는 즐거움으로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인생 모두 나그네, 머무르면서 지나가는 나그네, 인생 길에서 주님앞에 진실하게 고백되므로 하나님이 심히 기뻐하는 그 음성을 나의 삶을 통해서 고백을 통해서 내 가정에 내 삶속에 일어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