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영목사 (생명의 전화 사이버상담위원장)

6. 직면

직면(confrontation)이란 단어는 상담기법에서 자주 사용된다. 직면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언제 사용되는가? 상담에서 직면이란 상담자가 자신과 내담자 사이의 현실을 바라보는 방법상의 불일치를 내담자에게 지적해 주는 행동으로 정의되어져 왔다. 직면이란 실제로 일상생활의 일부인데, 그것은 다른 사람을 돕는 데 사용될 경우 효과적일 수 있다. 직면은 ‘자신의 선(善)을 주장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부정적이고 책망하는 듯한 공격은 내담자에게 결코 이롭지 못할 것이다. 윌리엄 크레인이 그것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준비되지도 않은, 심판적인 직면은 상담을 가능하게 하는 관계를 단절시켜 버린다. 내담자는 이미 죄의식과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다. 그러므로 이해하고 수용하기 보다 심판하고 비난하는 것은 완전한 거절을 의미할 뿐이다. 죄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이미 정의(正義) 편에 서 있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거부당했다고 느낀다. 정말로 그는 그가 도움을 얻으려는 사람으로부터 비난받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지라드 이건은 최상의 직면이란 더 발전된, 정확한 공감으로의 확장이라고 주장한다. 즉 그것은 내담자의 감정과 경험과 행동에 대한 깊은 이해에 기초해서 반응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반응은 왜곡된 가면을 벗게 하고 내담자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며, 행동에 도전을 주는 것과 관련된다.
윌리엄 크레인은 말한다. “공감이 되었을 때만이 직면으로 나아갈 준비가 된 것이다. 그 전까지 직면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며 도움도 줄 수 없다.” 직면과 공감의 관계는 매우 중요한데, 많은 상담자들이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직면이란 또한 ‘은혜의 행동’이라고 불린다. 이건은 직면을 “내담자가 자기이해와 건설적인 행동의 변화로부터 숨기 위해 사용하는 불일치, 왜곡, 게임, 연막 등의 가면을 벗기는 반응”이라고 정의한다.
또한 직면은 미개발된, 저개발된, 사용되지 않은, 오용된 내담자의 가능성, 기술, 그리고 자원들을 조사하고 이해하여 그것을 실제 행동에 적용시켜 보려는 한 가지 견해를 도전하는 것과 관련된다. 직면이란 도움을 주는 사람이 내담자에게 이해하는 것을 방해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는 방어들을 탐색하도록 초대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직면하는 우리의 목적은 그에게 더 나은 결정을 하도록 하며, 자신을 수용하게 하고, 그의 삶이 더욱 생산적이고 덜 파괴적이도록 돕는 데 있다. 전문가이든 비전문가이든 직면하길 주저하는 경우가 있는 데, 그것은 책임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상담자가 실수를 한다거나 내담자가 오해나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우리는 비록 직면이 적절한 방법으로 주어졌더라도 내담자의 삶에 부정적으로 작용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언제 직면을 하는 것이 적절한가? 직면에 앞서 공감적 관계가 되어야 한다.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의 관계의 질이 매우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그 관계가 더 강하면 강할수록 직면은 더욱 더 심도 있고 강력해 질 수 있다. 직면은 상담자가 내담자를 염려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만약 우리들이 그들의 개선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직면은 해로울 수 있다.
직면은 ‘비교나 조사를 위해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는’ 건설적인 행동이다. 그것은 내담자의 인식, 감정, 행동, 가치, 태도 등을 비교, 조사하는 데 있어서 성장과 퇴보의 모순을 드러내기 위한 목회자나 상담자들의 기회이다. 이것은 내담자들이 그들의 삶과 행동을 다른 조명 하에서 보도록 돕는다. 내담자의 사고나 행동에 어떤 도전을 가하는 것은, 당신의 관심이나 선한 의지를 내담자가 느끼고 있지 못하다면, 그들에게 약간의 위협이 될 수 있다.
직면은 상담의 초기 단계에서 사용되면 안된다. 위기의 다양한 단계 중 어떤 시점에서 그들이 대면을 적절히 받아들일 수 있다고 당신은 생각하는가?
직면에 수반되는 또 다른 요소는 당신이 이야기한 바를 알고 이해하는 내담자의 능력이다. 그가 직면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당신이 주장하는 것을 그가 받아들여 따를 수 있는가?
직면을 하는 적절한 시기는 다음과 같은 잠정적인 태도로 진술할 때이다. “나는 …할지 의아합니다.” “그가 …할 수 있었을 텐데요….” “그것이 가능할까요….” “당신은 이것을 이해하십니까?” “이러한 인식에 대해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직면을 할 때 내담자는 어떤 반응을 할 수 있을까? 이건은 몇 가지 가능한 반응들을 열거했다. 내담자는 상담자를 신뢰하지 않으려 할 수도 있다.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면서 상담자를 공격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상담자가 직면을 잘못했거나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어떤 내담자는 상담자의 관점을 변화시키도록 설득할 수도 있다. 그는 이성적 논리를 사용할 수도 있다. 그는 상담자에게 자신은 그렇게 나쁘지 않으며, 단지 오해받고 있는 것이라고 설득하려 할 수도 있다. 그는 또 논의되고 있는 주제들의 중요성을 합리화 함으로써 최소화 하려고 할 수도 있다. 목회상담에서 종종 일어나는 것처럼, 내담자는 자기 자신의 관점을 지지해 줄 기반을 찾으려고 할 것이다.
종종 내담자는 상담자의 관점에 동의할 것이다. 그의 동의는 타당할 수도 있고 혹은 하나의 게임일 수도 있다. 그는 상담자가 손을 떼게 하기 위해서 동의할 수 있다. 만약 동의를 한 후에도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면, 내담자의 진실성을 의심할 수 있다. 직면의 목적은 내담자에게 반드시 동의를 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내담자가 자기 자신을 더 잘 이해하며, 훨씬 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그의 행동을 다시 검토해 보게 하는 것이다.
직접적인 직면의 한 예가 성경의 사무엘하 12장 7절에서 14절에 있다. 나단(Nathan)은 우리아(Uriah)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Bathshe- ba)에게 지은 다윗(David)의 죄를 직면시켰다. 다윗이 자기의 죄를 솔직하게 자백하자 나단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주께서 왕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왕은 죽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왕은 이번 일로, 주의 원수들에게 우리를 비방할 빌미를 주셨으므로, 밧세바와 왕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은 죽을 것입니다.”(삼하 12:13-14).
우리아에 대해, 이스라엘 왕으로서 그의 지위에 대해, 밧세바에 대해,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 대해 범한 다윗의 잘못 때문에, 다윗은 전체 상황에 직면해야만 하였다. 윌리엄 크레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용서와 관용으로써,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표현하지 않았다면, 다윗에게 죄를 깨우치게 한 심판이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나단이 “주께서 왕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왕은 죽지는 않을 겁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을 때, 다윗은 진실한 회개의 결과로서 하나님이 그를 받아 주시고 용납해 주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만약 다윗이 나단에 의해 이러한 직면을 받지 않았더라면, 그가 자신의 죄를 확인하거나 혹은 시인하면서 용서의 필요성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당신이 사람들과 함께 일할 때, 매 시간마다 똑 같은 방법을 사용할 수 없다. 당신은 그들의 요구에 민감해져야만 한다. 적응력(adaptability)의 필요성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4절에 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무질서하게 사는 사람을 훈계하고, 마음이 약한 사람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사람을 도와주고,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십시오.”
당신은 그가 잘못된 일을 하고 있을 때 어떻게 직면하는가? 요한복음 5장에, 예수님은 연못가에 있는 사람에게, “당신은 진정으로 낫기를 원합니까?, 당신은 진정으로 변화되기를 원합니까?”라고 물으셨다.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님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게, “가서, 이제부터 다시 죄를 짖지 말아라”라고 말씀하셨다.
정직(honesty)과 수용(acceptance)은 모든 상담에서 따라야 할 중요한 원리들이다. 잠언 28장 23절은 “아첨하는 사람보다는 바르게 꾸짖는 사람이, 나중에 고맙다는 말을 듣는다”고 말한다. 우리는 잠언 27장 5절에서 “드러내 놓고 꾸짖는 것이, 숨은 사랑보다 낫다”는 말씀을 읽는다. “교우 여러분, 어떤 사람이 어떤 죄에 빠진 일이 드러나면, 성령의 지도를 받아 사는 여러분은 온유한 마음으로 그런 사람을 바로 잡아 주고, 자기 스스로를 살펴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갈 6:1, 표준새번역). “그들이 다그쳐 물으니, 예수께서 몸을 일으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서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 8:7, 표준새번역).

7. 필요한 언어적 반응

우리가 효과적인 상담의 원리를 모두 따르려고 할지라도, 우리의 충고적인 상담태도로 인해 내담자에게 영향을 줄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이것은 파괴적인 요소들이 상담과정에 들어올 때 일어난다. 그것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몇 가지 요소들을 확인해 보자.
상담자 편에서의 수동적인 태도는 내담자에게 실망을 줄 수 있다. 비언어적인 격려로 경청과 반영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만일 언어적 반응이 부족하거나 혹은 전혀 없다면, 상담자는 의심을 받게 되고, 상담자는 모호하게 보일 것이다. 만일 내담자가 불안정하거나 의존적이라면, 그는 수동적인 반응을 돌보지 않거나, 비판주의적이거나, 심지어는 거절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당연히, 상담자의 언어적 활동은 내담자를 변화시킬 것이다. 그래서 적절한 표현 반응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상담자는 말 할 때 뿐 아니라 침묵할 때가 중요하지만, 그 시기는 상담자의 민감한 경청에 의해서 결정될 수 있다.

아래의 말씀은 상담에서 실제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말씀의 목록이다.

위로
시편 46:7 ㅁ 시편 103:17 ㅁ 로마서:38, 39
민수기 14:9 ㅁ 신명기 31:6 ㅁ 시편 27:10
시편 73:23 ㅁ 마태복음 28:20 ㅁ 요한복음 6:37-39
이사야 41:17 ㅁ 시편 94:14

평화
로마서 5:1, 2 ㅁ 출애굽기33:14 ㅁ 시편 85:8
시편 119:165 ㅁ 이사야 26:3 ㅁ 이사야 57:2
이사야 32:17 ㅁ 마태복음 11:29 ㅁ 에베소서 2:14
골로새서 3:15 ㅁ 요한복음 14:27 ㅁ 민수기 6:24-26

두려움
히브리서 13:6 ㅁ 신명기 7:21 ㅁ 역대상 16:25, 26
예레미아 15:20 ㅁ 이사야 26:3 ㅁ 잠언 16:7
이사야 35:4 ㅁ 고린도 후서 1:10 ㅁ 빌립보서 4:9
느헤미아 4:14 ㅁ 시편 28:7 ㅁ 신명기 1:17
요엘서 3:16 ㅁ 시편 4:8 ㅁ 시편 56:3

불안
마태복음 11:28 ㅁ 요한복음 16:33 ㅁ 창세기 28:15
욥기 34:12 ㅁ 시편 20:7 ㅁ 시편 50:15
시편 55:22 ㅁ 시편 86:7 ㅁ 이사야 41:13
잠언 3:5, 6 ㅁ 이사야 40:11 ㅁ 시편 68:19

약하다고 느낄 때
시편 142:3 ㅁ 시편 147:6 ㅁ 창세기 57:15
하박국 3:19 ㅁ 역대상 16:11 ㅁ 시편 50:15
시편 72:13 ㅁ 시편 55:18 ㅁ 이사야 41:13
에베소서 3:16 ㅁ 고린도 후서 12:9 ㅁ 시편 68:19

절망
학개서 2:4 ㅁ 야고보서 1:12 ㅁ 에스겔서 34:16
이사야 40:29 ㅁ 이사야 51:6 ㅁ 다니엘 2:23
데살로니가 후서 3:3 ㅁ 히브리서 10:35 ㅁ 예레미아 32:17
에베소서 1:18 ㅁ 시편 46:1 ㅁ 시편 119:116
시편 100:5

비탄
이사야 43:2 ㅁ 시편 116:15 ㅁ 요한 계시록 21:3, 4
시편 71:20, 21 ㅁ 시편 119:28 ㅁ 시편 119:76
시편 119:50 ㅁ 고린도 후서 1:3, 4 ㅁ 데살로니가 후서 2:16, 17

어려울 때
시편 50:15 ㅁ 요한복음 16:33 ㅁ 시편 121:5-8
시편 9:12 ㅁ 시편 37:39-40 ㅁ 시편 34:7
시편 46:1 ㅁ 시편 138:7 ㅁ

고독과 우울할 때
스바냐서 3:17 ㅁ 요한복음 10:10 ㅁ 시편 126:5
시편 30:5 ㅁ 시편 34:18 ㅁ 시편 40:1, 2
시편 42:11 ㅁ


8. 전문가에게 의뢰하기

상담자에게 오는 많은 사람들이 당신과의 상담으로부터 도움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어려움이 심하기 때문에 더 많은 전문지식을 가진 다른 전문가에게 조언을 받을 필요가 있다. 이 때 당신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도움은 의뢰하는 것이다. 자신이 부족하다고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고도 의뢰할 수 있다는 것은 내적인 힘과 안정감의 표시이다. 어떤 상담자는 굉장히 소유욕이 강하고 자신의 능력에 대해 과장된 관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의 능력을 알고 이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무에게든지 분파적 동기(다툼이나 분쟁, 이기심, 합당치 못한 목적)나 자만심과 허영으로 하지 말라. 대신 참된 겸손의 정신(마음을 낮은 데 둠)으로, 각각 서로를 귀하게 여기는 가운데 자기 보다 남을 낫고 우월하다고 여기라.
서로를 존중하고 존경하여 각각 자기의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 보라(빌 2:3-4).

상담자는 다른 직업적 상담자들, 목사, 법률가, 의학 전문가, 재정 전문가, 누구든 전문적 지식을 가진 사람에게 의뢰할 수 있다. 모든 상담자가 모든 상황에서 도울 수 있어야 한다고 기대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우리의 훈련과 경험, 성격은 모두 상담에서 일어나는 일에 영향을 끼치는 변수이다.
그러면 언제 의뢰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가장 일반적 위탁의 이유는 상담자가 줄 수 없는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한 위기에 내담자가 처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내담자의 문제가 반드시 심하거나 극단적임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그저 당신이 다룰 수 없는 것임을 의미한다.
그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인상을 주지말고 그저 다른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리라. 왜냐하면 그것은 스트레스와 위기감을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의뢰의 또 다른 이유는 상담자의 환경과 전문지식을 뛰어넘는 잠재적으로 심각한 위험의 징조가 있을 때이다. 내담자의 안녕이 걸린 문제일 때는 내가 이 사람을 도와줄 시간과 능력이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 보라. 이 때는 심리학자, 정신과 의사나 가족 치료사 같은 전문적인 치료사에게 의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의뢰의 다른 이유는 내담자가 당신이 제공하는 것과 다른 접근법을 선호할 때이다. 장기 상담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특히 목회자들은 대부분 장기 상담 훈련을 받지 않았고 많은 시간을 상담으로 할애할 시간적인 여유도 없다.
그러면 어떻게 위탁자를 찾을까? 다른 상담자들이나 기독교인 의사나 법률가에게서 개인적으로 추천을 받을 수 있다. 신학교나 기독교 학교에서도 위탁자를 추천해 준다. 그리스도인임을 고백하는 전문 치료가들을 만나 보아 그들의 신념이나 접근방법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있을 수 있다. 항상 그리스도인 치료자에게만 의뢰해야 하는지? 올슨 박사는 치료자를 선택할 때 우선 그리스도인인 좋은 치료자, 그런 다음에 그리스도인이 아닌 좋은 치료자의 순서로 기준 한다.
실제로 의뢰를 하는 데 관련된 조처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무엇보다 먼저 필요한 정보를 다 알고서도 다른 사람에게 맡길 만큼 상태가 극단적이고 심하거나 자기를 좋아하지 않거나 도와주고 싶지 않은가 보다라고 느끼게 된다면 이것은 거부당했다는 느낌을 주게 된다. 상담자의 배려와 민감함이 요청되는 때가 바로 이 때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편안하게 말을 시작하는 것이 굉장히 걱정하는 심각한 표현보다 훨씬 좋다. 다음과 같이 말하면 좋을 것이다. “당신과 함께 나누었던 시간들은 정말 좋았습니다. 제가 당신을 얼마나 도와 줄 수 있는지 알 수 있게 해줬기 때문이죠. 저는 당신을 최선을 다해 돕고 싶습니다. 이제 제가 당신을 도와 줄 최상의 방법은 이 문제와 상황을 나보다 훨씬 많이 다루었고 훈련과 전문지식도 더 많이 가진 전문 상담자와 연결시켜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편 내담자가 이것을 흔쾌히 받아들일 수도 있으나 주저하면서 어리둥절해 할 수도 있다. “날 도와주고 싶지 않으시군요” 또는 “날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으시군요”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아닙니다. 당신을 정말 도와 드리고 싶고, 그리고 아마 가끔씩 계속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이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도움을 얻기 바라는 데, 이 제안을 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입니다.”
내담자가 이렇게 대답할지도 모른다. “당신과 너무 많은 얘기를 나누었어요. 전 원래 말을 잘 못합니다. 그런데 이제 당신은 또 낯선 사람과 제가 얘기 나누기를 원하십니다”라고 .
“이 작업을 다시 한 번 시작하는 것이 좀 두려우시리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렇지만 여기 와서 나를 만나 터놓고 얘기하는 데도 당신에게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나보다 더 잘 준비된 사람과 새롭게 시작할 능력을 당신이 갖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변화를 실행하기 위해 제가 무엇을 해 드릴까요?”
그리고 나서는, 당신의 의뢰 제안을 받아들일 지 거절할 지 선택권은 내담자가 가진다. 그 스스로가 결정해야 한다. 만약 그가 깊은 우울증이 있거나 자살하려 하거나 신체적으로 어려움이 있거나, 마약을 사용하는 등의 심각한 어려움에 처해 있으면, 당신의 결정에 동의하도록 당신의 판단을 부드럽게 종용해야 한다. 이런 위급한 상황이 아닐 때는 제안을 고려해 보고 당신에게 알려 달라고 하라. 단지 당신을 기쁘게 해 주려고 위탁 제의나 당신이 추천해 준 사람을 응낙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꼭 알려 주라. 가능한 한 두세 명의 이름을 동시에 제안하면 좋다.
그가 당신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는 생각을 밝히면, 필요한 조처들을 통해 그를 도와 주기 바란다.
당신 사무실에서 전화를 걸어 주고, 말로써 어떻게 가야 할지 정확한 방향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모든 과정에 대해 기도해 주고, 첫날에 그와 함께 동행해 주는 것까지도 포함된다.
그가 도움을 주는 새로운 곳에 처음 방문한 다음에 그를 만나거나 전화를 걸어 주라. 당신이 계속해서 기도할 것과 계속적으로 그에게 관심이 있음을 알려 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