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영목사 (생명의전화 사이버상담위원장)

내담자들과 그들을 위해 상담을 해 주는 사람들은 변화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최고 관심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들의 삶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들은 어떤 변화를 원한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침체나 염려, 두려움 또는 어디서인지 모르게 들려 오는 음성으로부터 구원받기를 원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법, 성질을 통제하는 법, 사랑하는 사람과 의사소통을 하는 법, 사업을 경영하는 법 등을 배우기를 갈망하고 있다. 혹은 다른 수많은 문제들로 인해 평안과 기쁨을 가져다 줄 변화를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상담을 원한다.
상담자들은 사람들의 삶에 그런 변화가 이룩될 수 있도록 돕는 사람들이다.
대부분 상담자들은 인간의 가치와 신념과 태도와 행동에 대한 진정한 표준을 거부하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삶을 위해 주신 기본적인 책이며 생활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상담자나 내담자나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우리는 이상하게도 성경의 권위와 무오성을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이 삶을 위한, 삶의 모든 변화를 일으키는 교과서라는 것을 의심하고 있다. 삶의 변화가 다른 방법으로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하나님 한 분만이 사람들에게 추구해야 할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말씀하실 수 있다. 하나님만이 인생의 주요한 목표를 보여주실 수 있고 사람의 문제의 핵심을 설명할 수 있으며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책을 제공해 주실 수 있다. 만일 상담자가 성경을 떠나서 할 수 있다면 확실히 그리스도 자신은 헛된 것이 될 것이다. 성경 어디에서나 하나님은 변화를 명령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에게 주시지 않은 능력은 결코 요구하시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변화 받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변화되어야 하고 변화된 삶을 살 필요가 있다.
성경적인 상담을 통하여 내담자들이 변화되어야 하는 필요성, 내용, 조건, 과정 그리고 결과를 살펴본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변화시키는가를 좀 더 깊이 알 수 있을 것이다.

1. 변화의 필요성

아담스의 성경적인 권면적 상담이론에서 중요한 과제로 삼을 수 있는 것이 ‘변화’이다. 프로이드나 로저스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순전히 인간을 자율적인 존재로만 보고 있는 반면에 아담스는 인간을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된 피조물로 보아, 아직 타락하기 전의 인간과 타락의 결과로 죄책과 부패성을 가진 인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리스도인으로 구분하여 변화의 필요성을 언급한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인간은 그의 행복을, 심지어 아담이 죄로 말미암아 타락하기 전에도 하나님의 직접적이고 인도적이며 보호하시는 상담에 의존하도록 창조되어진 피조물이라는 사실이다. 아담은 동산 안에서 그러한 하나님의 상담을 받았으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제와 커뮤니케이션의 유익을 얻었던 것이다.
그러한 일과 상담에도 타락 후에는 이전에 필요가 없던 차원들이 부가되었는데 즉 책망과 훈계와 그 밖의 것들이 상담자의 새로운 레퍼토리로 주어진 것이다. 성경은 아담의 죄로 인해 인류는 범죄하고 타락했다고 말하며 이 타락은 전적 부패라는 생의 모든 부분들과 양상에 걸쳐서 타락되었다는 말이며 죄악의 사악한 영향으로부터 전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의 속 사람을 말할 때 타락하고 거짓되고 사악한 것으로 말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인간의 마음은 죄악된 행동과 습관들의 창고로 비유해서 말씀하셨다.
이러한 내면적 인간의 타락은 질병, 상해, 기형과 같은 신체적인 것에 비하여 비신체적 양상(non bodily aspect)인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죄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인간이 죄의 영향을 받지 않은 심리학적인 비신체적 영역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비성경적인 주장이다.
인간의 마음은 속 사람이나 비신체적인 면이나를 막론하고 모두가 예외 없이 거짓되며 사악하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새로운 마음을 필요로 하고 변화 받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2. 변화의 내용

성경적인 상담을 전개하기 위하여 우리는 우리가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결정해야 한다. 우리는 단순히 내담자의 징후(symptom)를 제거시키려고 노력하는가? 행동치료자들은 그 징후가 문제의 전부라고 주장한다. 그 징후를 제거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도 과연 그렇게 변화시키려고 노력해야 하는가?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ultimate goal)는 무엇인가? 성경적인 상담자의 목표는 비기독교 상담자와는 근본적으로 달라야 한다. 비기독교 상담자들은 인본주의적 사고에 뿌리박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개인적인 행복을 최상의 것으로 간주한다. 진정한 행복이 어떤 것이냐는 것을 규정하는 객관적인 기준이나 지침이 없이 비기독교 상담자는 내담자 자신이 정하는 행복의 정의를 허용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비기독교 상담자의 궁극적인 목표는 내담자가 행복을 느끼도록 돕는 것이다. 그들은 실제로 상담이란 내담자가 행복하다고 느끼도록 만드는 것은 무엇이든지 성취하도록 돕는 노력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라”고 말한다.
기독교 상담자들도 역시 내담자들의 행복을 바란다. 그러나 기독교 상담자들은 한 사람의 행복은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달려 있다고 믿는 절대적인 기준을 갖고 있다. 사람이 바르게 살도록 도우는 데 있어서 결정적 변화는 그의 기본적인 가정이 계시된 진리와 일치하도록 해 주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일차적인 문제는 잘못된 의존이다. 우리는 모든 것에 의존하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참으로 가치 있고 진실된 것에 의존하여야 한다. 그럴 때에야 우리는 변화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마음을 변화시켜야 한다. 로저스는 감정을 새롭게 하고, 글라서(Glasser)는 행동을 새롭게 하며, 스키너는 환경을 새롭게 해야 된다고 하였으나 그리스도께서는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하도록 하신다. 우리 주위의 많은 상담자들은 참된 기독교인의 변화를 위한 이 황금열쇠를 무시하고 다른 것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내담자를 변화시키려고 하는 변화의 내용이 내담자의 원망, 분노, 불만, 절망, 공허감과 같은 것에 목표를 두었다면 그것은 헛된 노력이 될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변화의 내용은 하나님을 바탕으로 한 생각과 기본적인 가정이어야 한다. 즉 하나님보다는 다른 어떤 것을 필요로 한다는 신념이 바뀌어야 한다. 그 신념이 변화될 때 그리고 그 내담자가 새로운 성경적 신념에서 행동할 때, 그의 삶은 의미 있을 것이며 참된 성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3. 변화의 조건

성경적 상담을 통하여 내담자가 변화하기 위한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중생(regeneration)
중생은 진정한 의미에서 성경적 상담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중생은 성령께서 속 사람에 들어오시고 속 사람을 변화시킴에 의해 돌처럼 단단한 마음이 새로운 마음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변화되기 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중생된 새로운 마음은 이와 같은 이해와 순종을 가능하게 해 준다. 베드로전서 4장 2절에서 베드로는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전적인 타락, 특별히 속 사람의 타락은 상담자들이 그의 모든 사역에서 알아야 하고 가르쳐야 하는 본질적인 주제인 것이며, 죄악된 마음이 중생하지 않는 한, 절대로 성경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따라서 중생한 성도만이 참된 상담이 가능하다. 중생한 마음은 놀랄 만한 가능성을 지녔으며 하나님의 상담을 이해하며 순종할 능력을 소유하게 되고 그들 속에 내재하시는 성령께서 중생을 실현시키신다. 불신자는 죄에 오염되지 않은 부분이 하나도 없다. 만일 새롭고 깨끗한 중생한 마음을 갖지 않는 한 결코 상담은 시도될 수 없다.
아담스는 상담이 실제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상담자, 내담자 모두가 중생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팔머(Edwin H. Palmer)는 중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이 하나님 나라를 보려면 중생의 역사를 체험해야 한다.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는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못한다. 그는 완전히 타락했고 그의 지식과 의지와 정서는 철저하게 부패했기 때문이다. 그의 지식으로 말하면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이해하지 못하니 이는 죄가 그의 이해력을 어둡게 하여 영적으로 완전한 소경이 되게 했기 때문이다. 또 그의 의지로 말하면 그는 하나님께 순종할 수 없다.” 이는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고 하신 때문이다. 그의 정서로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으니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첫 단계가 중생이라면 성경적 상담의 첫 단계도 중생이다.

(2) 회개(repentance)
아담스는 인간의 문제의 원인은 죄에 있다고 보며 회개를 통해 용서받을 수 있고, 회개를 문제 해결의 필연적인 과정으로 제시한다. 죄에 대해 절대적 반응을 보이는 것은 하나님의 편에서 볼 때는 불가피한데, 그것은 하나님의 신성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를 고백하고 죄에서 떠나야만 한다.
야고보서 5장 14-18절에서 야고보는 병이 죄에서 기인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야고보는 믿음의 기도는 병든 사람을 낫게 할 수 있고 혹시 죄를 범하였을 지라도 사하심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들의 죄를 서로 고백하라고 했다. 그렇게 하면 고침을 받을 수 있다는 교훈이다. 야고보는 분명히 병에 두 가지 원인 즉 유기체적인 원인과 비유기체적인 원인을 인정하고 있다.
또한 시편 32편에서도 고백과 용서를 통해서 행복이 온다고 단언하고 있으며 근심의 원인은 숨겨진 죄에 있음을 묘사한다. 다윗은 그 증거로 자신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 종일 신음함으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다윗의 이 말은 죄가 심신에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여 준다. 시편 32편에서 언급된 두 번째 사실은 죄의 고백이 구원과 행복을 가져온다는 점이다.
고백이란 범죄 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백하는 것이며 신약성경에서 ‘고백’이란 말은 ‘승인’ 혹은 ‘인정’ 또는 ‘동일한 사실을 말하는 것’을 말한다. 고백은 하나님이 어떤 사람의 죄에 관해서 말씀하시는 것과 동일한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고백은 양심의 가책으로 인해서 죄를 자백하는 것이다. 이러한 고백의 개념은 성경적인 상담의 결정적인 요소이다.
기독교인은 오직 죄를 고백함으로써만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다. 그리스도를 통한 고백과 용서는 죄가 심신에 미치는 영향으로 인해서 오는 억압을 구원해 준다.
상담자는 죄를 자백할 때에 성경적인 상담의 문에 들어감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3) 성화(sanctification)
상담은 성도의 변화하는 성화의 과정을 취급한다. 진정한 상담은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성령께서 변화를 일으키시게 하며 또한 이러한 변화는 중생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말씀의 역사에 은혜롭게 반응함으로 일어나게 된다. 중생, 회심, 칭의, 성화, 영화와 같은 중요한 기독교 교리 중에서도 성화만이 과정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성화도 회심과 마찬가지로 중생에서 그가 취했던 수동적 입장보다는 훨씬 더 많은 역할을 인간이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회심의 사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성화에 있어서도 말씀의 사역이 최고로 중요하다. 성령께서는 회심을 가져오기 위해 그의 말씀의 선포를 사용하신다. 성화도 동일한 방법으로 일어나게 된다.
내담자들에게 영적인 변화와 성장을 가져오도록 사역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이러한 변화는 설교와 가르침을 통해서 또한 서로의 교제와 한 번 혹은 그 이상의 상담과정을 통해서 일어난다. 성령의 능력으로 내담자는 옛 생활 유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벗어버리고 성경적인 유형을 가진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한다. 성화는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배우는 것보다도 그 이상의 것 즉 인격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인간의 인격이 변화될 수 없다는 견해는 비성경적이다. 인격은 변화될 수 있다.
하나님은 역사를 통하여 야곱을 이스라엘로, 시몬을 베드로로, 사울을 바울로 변화시켰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을 변화시키며 그들의 생각과 결정과 행동을 변화시킨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변화를 미리 예상하고 있다. 성령은 변화시키는 영이시다. 성령의 역사는 하나님의 백성의 인격을 변화시키는 힘이라고 성경 여러 곳에서 말하고 있다. 상담 중에도 성령의 역사는 필연코 일어나야 한다.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곳마다 사람들이 변화되었듯이 상담 중에도 성령의 역사로 내담자의 변화가 가능한 것이다. 생명이 있는 곳에는 성장이 있으며 성장은 변화를 의미한다. 성장은 성숙을 의미하며 또한 변화는 보통 옛 습관의 유형을 새로운 유형으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성화하는 변화를 거절하는 것은 성령을 거절하고 성령을 슬프게 하는 것이다.
성경적인 성화의 교리는 반드시 성결하게 성장하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나아가 상담 중의 내담자로 하여금 더욱 더 그리스도를 닮도록 변화를 해야만 한다. 또한 성장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에까지 이르도록 성장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상담을 하는 상담자는 이와 같은 상담에 있어서 변화는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가를 충분히 알고 상담에 임해야 할 것이다. 성경적인 상담이 성도의 중생과 회개와 성화까지 취급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상담에 임하는 상담자가 얼마나 될까를 생각하면 다시 한 번 상담의 어려움과 중요성이 우리 모두에게 일깨워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