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410
고미영교수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남들로부터 받는 평가라고 볼 수 있다. 평가는 한 편으로는 동기를 부여하고 노력한 결과에 대한 보상이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신적 긴장과 불안을 야기하는 원인이 된다. 특히 현대사회는 다른 무엇보다 자기 평가와 자기 감시가 극대화된 사회다. 스스로 평가하면서 자신에 대해 여유를 갖지 못하고 늘 불안 속에 사는 병이 우리 시대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현 시대를 살면서 평가를 피할 수는 없다. 푸코는 역사 비평을 통해서 이 평가를 보다 넓은 정치 사회적인 차원에서 해석했다. 그는 평가가 지배 권력층의 도구로 사용됨을 지적했다. 지배층은 평가를 그들이 요구하는 삶의 기준에 모든 사회원들을 복종시키기 위한 한 방편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평가를 통해 사람들은 그 사회에 순응하는 ‘온순한 몸’이 되어간다.
이러한 것은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를 평가하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회에서 제시하는 사고방식과 삶의 양식에 스스로 맞추어 가는 것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모두 동일한 사고와 삶의 방식을 택하고 그 삶은 획일화된다.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 평가’와 ‘자기 감시’ 기능을 가동하면서, 권력의 지배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많은 심리학자들도 개인의 정체성과 자존감이 주위 사람들의 평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인정한다. 한 사람의 가치는 주변 사람들의 평가를 통해 결정되고, 이러한 목소리는 그 사람의 내부의 목소리로 자리 잡는다. 일단 한번 이런 평가가 정해지면, 이 후에 그것이 수정되는 것이 매우 어렵다.
특히 청소년 시기는 이런 평가에 극히 민감해지는 시절이다. 우리 사회는 혹독하게 청소년들을 평가한다. 특히 개인적인 차이를 전혀 무시한 평가를 내리는 풍토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청소년기에 내려진 가혹한 평가는 한 사람의 삶이 아직 활짝 피어보기도 전에 일찍이 맺힌 봉우리를 꺾어 버리는 것과 같다.
청소년의 자살이나 이해하기 어렵고 다룰 수 없는 일탈 행동들은 바로 이런 평가에 대한 저항에 근거하고 있다. 이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이 아픔을 고치고 바로 잡을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그 길은 반드시 먼 것은 아니라고 본다. 자기 평가를 넘어서게 해주는 목소리는 반드시 있다. 내 경험으로는 어떤 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자기 평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궁극적으로 평가는 인정과 사랑에 대한 목마름에서 시작된다.
인정과 사랑이 조건 없이 주어진다면 우리는 평가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게 된다. 한 생명으로써 충분히 사랑받을 가치가 있음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자기를 스스로 괴롭히는 일에서 벗어날 수 있다.
특히 청소년들은 그들이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여러 다양한 방식으로 시험하고 확인받고 싶어한다. 평가하지 않고 언제나 반겨주는 사랑,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따뜻이 감싸주는 사랑만이 그들을 좌절과 포기로부터 구해낼 수 있다.
우리는 긴장을 풀고 마음을 여유롭게 가지고 큰 사랑 안에 푹 잠기는 것이 필요하다.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내가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인가를 생각해본다. 언제나 우리를 맞아주는 사랑의 원천으로 눈을 돌리면 마음의 평화와 쉼을 회복할 수 있다.
이 사랑은 나를 평가하지 않고 이 것 저 것을 구분해서 따지지 않는 사랑이다. 나무가 나무인 채로 그대로 사랑받듯이, 우리도 우리 존재 자체로 그대로 사랑받을 수 있다. 사소한 일에 매달리면서 자기에게 감시의 눈길을 돌리는 대신, 우리는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고 기뻐하시는 분에게 시선을 돌릴 수 있다.
우리가 마음의 평화를 지니고 있을 때 이 평화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전달된다. 우리 스스로 자기 평가를 넘어서서 평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면 우리 주변은 환하게 밝아지고 우리 삶은 보다 충만해 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