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고 눈을 뜨면
      내 안의 모든 욕망과 거짓과 어둠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사랑과 진실과 평화가 자리 잡게 하소서.
      그리고 언젠가는 작은 열매 몇 개라도 맺게 하소서.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길을 걸어갈 때,
      지난날 그의 나쁜 기억은 모두 잊게 하시고
      내 마음의 집에 좋은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그를
      오늘 새로운 기대와 설렘으로 만나게 하소서.

      이제는 가게 하소서.
      기다리는 사람을 향해서는 길을 걷게 하시고,
      나로 인해 상처 입은 사람을 향해서는 용서를 구하게 하소서.
      이제는 그들 곁으로 가 부끄럽게 손 내밀게 하소서

      열매가 아니라 가지를, 가지가 아니라 뿌리를,
      뿌리가 아니라 이미 떨어진 꽃과 잎을, 꽃과 잎이 아니라
      햇살과 수분과 농부의 손길을 기억하게 하시고
      이 모든 수고에 감사하게 하소서.

      이 가을에 나를 더 낮추어 겸손하게 하시고,
      나를 더 멀리 보내어 쓸쓸하게 하시고,
      나를 더 고독하게 하여 침묵하게 하시고,
      나를 더 외롭게 하여 사랑하도록 하소서.

      <정용철-마음이 쉬는 의자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