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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원태목사 (경향교회)
Ⅰ. 하나님의 선교 전략
저 소아시아의 드로아 항구에서 배를 타고, 에게해 바다의 물결을 가르면서 마게도냐의 첫성 빌립보를 향하던 바울의 선교항해를 가리켜 토인비 교수는, ''바울을 싣고 가던 배는 구라파를 싣고 가던 배''라고 하는 의미 있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 큰 이유는 아시아에서 구라파로 향하던 바울의 선교 원정이 바로 오늘의 선진 구라파 문명의 문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의 영(행 16:6-7)의 인도를 받고 구라파 지역인 마게도냐 첫 성 빌립보에 이른 선교사 일행은 결정적인 하나님의 역사(役事)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저들은 안식일에 기도처를 찾아 문밖 강가에 나가다가 기도하던 여자들을 만났습니다. 저들 중에 루디아라 하는 여자와 그 가족을 얻게 되는 첫 번째 개가를 올렸습니다. 바울이 메시지를 전할 때 주께서 그녀의 마음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녀는 복음의 말씀을 청종함으로 주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바울 일행은 그녀의 집으로 인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녀와 온 집이 다 세례를 받고, 그녀의 집은 구원의 집이 되었습니다(행 16:14-15) 그녀와 그녀의 가족에게 복음 안에서 구원의 문이 열린 것은 바로 구라파 선교의 문이 열린 첫 번째 개가였습니다.
하나님은 바울 일행을 그 집에 머물도록 섭리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가족이 된 저들은 강권하여 선교사들을 자기 집에 머물게 하면서 복음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빌립보에서 복음 사역을 시작하던 바울 일행은 두 번째 개가를 부르게 됩니다. 그것은 그 성중에 사는 한 부자에게 매여 있던 한 귀신 들린 여자 노예를 귀신에게서 떼어놓아 해방을 시켜준 일이었습니다(행 16:16-18).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귀신에게 여자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할 때, 귀신이 즉시 나오고 여자는 온전하여졌습니다. 빌립보 사역의 두 번째 개가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또 다른 복음 전파의 기폭제로 선용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여자 노예에게서 귀신을 쫓아낸 일로 연결이 되었습니다. 그 점치는 귀신 들렸던 여자가 온전하여지자 그 노예 여자의 주인은 자기의 이익이 끊어졌다고 분노하였습니다. 그 결과 바울과 실라는 민심소란 죄목과 풍습파괴 죄목으로 무리들에게 고소를 당하여 깊은 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발은 착고에 든든히 묶이고 말았습니다. 물론 투옥 전에 바울 일행은 옷 벗김을 당하고 심한 매를 맞았습니다(행 16:19-24).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하여 빌립보에서 세 번째 전도의 개가를 올리도록 섭리하셨습니다. 그 밤에 하나님은 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에게서 기도와 감사의 찬송이 터지도록 하셨습니다. 깊은 밤중에 감방에서 터져 나오는 기도와 찬송 소리를 모든 죄수들이 다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계속해서 더 놀라운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시간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기 시작하면서 옥터가 움직이더니, 바울이 갇혀 있는 감방의 문이 열려 버린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감옥에 갇혀 있던 모든 죄수들이 함께 보고 체험한 사건이었습니다.
지진은 하나님 자신의 임재의 표현이었습니다(출 19:18). 처음 열두 사도들이 성령 받은 후 기도할 때도 이런 역사가 있었습니다(행 4:3).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도 지진이 나서 옥문을 열어 젖히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의 옥문은 조용히 열어 젖혔으나, 여기 빌립보 감옥에서는 그 감옥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이 사실을 느꼈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구라파 선교의 첫 작업에 놀라운 기적의 역사로 임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때 그 밤에 파수하던 간수는 열린 옥문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로 생각하고 검을 들어 자결하려 하였습니다(행 16:27). 로마의 법률에는 죄수가 도주하면 간수가 대신 벌을 받기 때문이었습니다(행 12:19). 이 장면을 현장에서 보았던 그 간수는 자기에게 종말이 온 줄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때 바울이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고 하였습니다(행 16:28). 바울 일행뿐 아니고 다른 죄수들도 도망가지 않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섭리적 이적에 속합니다.
캄캄한 감방 안에서는 밖의 거동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밖에서는 감방 안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때 간수는 무서워하며 떨었습니다. 등불을 달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을 하였습니다(행 16:29). 그의 놀라움은 두 번째입니다. 첫 번째는 옥문이 열렸다는 사실 때문에 놀랐고, 두 번째는 죄수가 도망가지 않고 있다는 사실과 더욱이 자기의 자결을 제지한 사실 앞에 놀랐던 것입니다.
이때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바울과 실라 앞에 무릎을 꿇고 마는 인격적 충동을 받고 만 것입니다. 여기 ''무릎을 꿇었다''는 말은 신 앞 에 엎드려 절하는 경외적 상태를 가리킵니다. 실제로 간수는 옥문이 열려 있고, 죄수가 도망을 치지 않고, 또 그 죄수의 발목에 채운 착고가 풀어져 버린 상태를 보고, 바울과 실라가 신이 아닌가 착각하고 두려워했을 정도였음을 보여줍니다.
마침내 그 간수의 입에서는 대단한 말이 터져 나오고 말았습니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 원을 얻으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행 16:30). 여기 ''선생들아'' 하는 말 ''큐리오이''는 ''주들아'' 하는 뜻입니다. 대단한 존경의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 을 얻으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질문은 종교적인 문제였습니다. 그가 말한 ''구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그가 토한 이 질문은 인간적인 한계상황 을 벗어나고 있는 질문임이 확실합니다. 지금 그는 힘으로도, 능으로도, 로마의 권력으로도 할 수 없는 초인적이고 초자연적인 사태의 현장 을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밤에 죄수들이 갇힌 감방의 옥터가 흔들리는 지진이 일어나고, 그 결과 옥문이 열려 버렸고, 더욱이 열린 옥문 앞에서 죄수가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에 있는 일, 오히려 자기의 생명을 아껴주는 사태를 목격 한 그 사람이고 보면 그가 발한 ''구원''이란 질문은 단순한 인간적 상황 그 이상의 것임이 분명합니다.
그가 어떤 인간적인 노력의 대가로 구원을 획득할 수 있겠느냐고 한 질문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겠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이러한 질문은 그 의미와 내용이 중대한 것입니다. 인간 구원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러한 질문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의 영감은 바울을 통하여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구원의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행 16:31). 하나님은 이 복음의 메시지를 나타내기 위하여 지금 빌립 보의 감옥에 당신의 현장 임재를, 기적을 통하여 나타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자신이 나타내신 구라파 선교전략이었습니다.
이때 그 간수는 죄수(?) 바울과 실라를 자기 집으로 안내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깊은 밤중에 그와 그의 온 가족이 복음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행 16:32). 그 밤에 그의 온 가족이 구원에 이르는 신앙의 고 백이 일어나고, 그 결과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와 온 가족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고 하나님의 사자들을 대접하기에 이르렀습니다(행 16:33-34).
다시 간수는 죄수(?)를 데리고 감옥으로 갔고, 날이 밝은 후 이 사실이 상관들에게 보고가 되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자유의 몸이 되어 다시 복음 전파에 나서게 되었습니다(행 16:36-40). 하룻밤 어간에 간수는 독실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했습니다.
하나님은 저 구라파 대륙에 복음의 문을 이렇게 열기 시작했습니다. 한 사람의 가정의 성원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고, 그 사람을 통하여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의 집으로 변화시켰습니다.
Ⅱ. 하나님의 선교 전략은 가정 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주도하신 빌립보 선교전략에서 중대한 전도교훈을 받게 됩니다. 곧 가족 전도는 가족 구원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첫째로, 성령께서 주도하였습니다.
성령이 바울의 아시아 전도 방향 을 수정하여 구라파로 향하게 하였습니다(행 16:6-7).
둘째로, 기도운동을 통하여 사람 을 만나게 했다는 사실입니다.
빌립보에 도착한 바울은 기도하러 가다가 기도하는 여인들을 만남으로 복음 전도의 대상을 만났습니다(행 16:13). 기도하러 가다가 점하는 귀신들린 여인을 만나 고쳐주었습니다(행 16:16). 기도하고 찬송하는 감옥에서 지진이 나고 옥터가 흔들리며, 감옥 문이 열리고 발에 묶인 착고가 풀려버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행 16:25-26).
셋째로 예수 이름의 선교운동이었습니다.
그는 예수 이름으로 귀신들린 여 인에게 자유를 주었습니다. 기적이었습니다(행 16:18). 그는 예수 이름 으로 구원의 복음을 전했습니다(행 16:31). 그는 예수의 이름으로 루디아의 가정과(행 16:15), 간수의 가정에(행 16:33)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예수, 곧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는 이것이 선교의 주제였습니다.
넷째로 가정 전도를 통한 가족구원의 선교 운동이었습니다.
루디아의 가정이 그러했습니다.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았다고 하였습니다(행 16:14-15). 간수의 가정이 그러했습니다.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세례를 받았다」고 하였습니다(행 16:33).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고 하였습니다(행 16:34). 이렇게 가정은 복음 선교의 기본 단위가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가족이 예수를 믿으 면, 그의 집이 다 세례를 받고 구원 을 받게 되는 하나님의 선교전략입니다. 이 말은 한 사람만 믿으면 온 가족이 다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 아니고, 그 한 사람의 구원 신앙이 그 가정 전도의 선구자가 되어 마침내 가족의 복음화가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영생복락 면류관 전도가 있었습니다.
바로 저의 장모님이신 고 이순이 집사의 경우입니다. 1950년, 6. 25 사변이 발생할 때였습니다. 경남 김해군 진례면 초전이라고 하는 동리에 초전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는 아주 작은 농촌 교회로 교역자를 모실 수 없을 정도의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돌아가신 김용규 장로님 내 외분이 노구를 이끌고 빈 교회에 와서 강단을 지키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장로님의 부인이었던고 이충갑 사모님께서 그 교회로부터 2km 떨어진 신월 마을에 전도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6. 25 사변 때문에 많은 피난민들이 동리마다 메워졌을 때였습니다. 이충갑 사모님은 저의 장모이신 이순이 씨의 집에 와서 사람들을 불러모아 놓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 사하고/ …영생복락 면류관 우리가 받겠네"
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분의 전도가 끝나자 이순이 씨가 물었습니다.
"영생복락 면류관이 무엇입니까? 참 그 말이 듣기 좋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다음 주일에 교회에 오십시오."
"교회에 가면 그 영생복락 면류관을 줍니까?"
"주고 말고요…"
이순이씨는 영생복락 면류관을 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으로 준비하며 손꼽아 주일을 기다리다가 마침내 교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분의 나이 50이었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교회에 나갔습니다. 영생복락 면류관을 받으러 간 것입니다. 이순이씨가 처음 출석한 교회에 그 날 모인 교인은 10여 명이었습니다. 물론 그 날 자기에게 영생복락 면류관을 약속하신 할머니가 아주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이순이씨는 예배석에 앉아 있었고, 이윽고 예배를 마쳤습니다. 교우들도 모두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이제 기다리던 영생복락 면류관을 받을 차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밤에 다시 오라고 하였습니다. 밤에 가면 영생복락 면류관을 줄줄 알고 또 나가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자기를 반겨주는 정도는 더 강했습니다. 그런데 역시 영생복락 면류관은 안 주고 다음 수요일에 또 오라고 하였습니다. 또 기다렸다가 수요일에 교회에 갔습니다. 또 다음 주일, 그 날 밤, 수요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이순이씨는 낙심하지 않고 영생 복락 면류관을 받고야 말겠다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또 오세요."
"…"
하는 말에 실망하지 않고 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 설교를 통하여 예수께서 성령으로 그 분에게 영생복락 면류관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죽어도 다시 살아서 영생한다는 구원의 진리가 영생복락 면류관인 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깨달음이 그 분의 나머지 한평생을 밝은 빛 속으로 이끌어 가고 말았습니다.
그 후 그분의 삶은 180도로 변화되었고, 최씨 종가의 그 많은 제사와 결별을 하면서 죽음에 이르는 핍박과 멸시를 받게 되었으나 백절불굴의 신앙으로 승리하였습니다.
그때부터 그 농촌 교회는 이순이씨가 살림을 거의 다 맡아 하게 되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그의 세 아들과 두 딸이 결국 복음화 되었습니다.
그 분이 교회로 나온 후 예배당 성전이 그의 삶의 거소가 되어 버렸습니다. 찬송을 따라 부르면서 눈으로 글을 익혀 깨닫게 되었습니다. 임종시간까지 그 분은 요한복음, 요한 1, 2, 3서, 야고보서, 요한계시록을 다 암송하였습니다. 그 외에 다른 성경도 부분적으로 암송하였습니다.
그 분에게 있었던 세 아들 중 한 분은 우리 교회 집사로 사시다가 소천하였고, 둘째 아들도 신앙생활을 잘 하다가 소천하였습니다. 셋째 아들이 지금 부산 부곡중앙교회에서 장로로 봉사하고 있는 최윤조 장로입니다. 그 분의 손자 4남 1녀의 가족이 모두 저희 경향교회에서 주를 섬기고 있습니다. 그 분의 두 번째 딸이 석원태 목사의 부인 최윤선씨입니다. 최윤선씨는 처음에 어머니의 전도를 2년 간이나 반대하다가 그 가족 중 제일 나중에 교회에 나오게 된 사람입니다. 저의 장모님 이순이씨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그 분과 그 분 집이 모두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파서 자식이나 교우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고 기도하다가 주 앞에 가게 해달라는 것이 그 분의 기도제목이었는데, 평소 그분 자신의 기도의 소원대로 그 분은 기도하던 중에 주 앞으로 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가족 중 한 사람이 믿으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그 온 가정이 예수를 영접하여 가족 구원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이것은 주님의 구라파 선교전략이었고, 세계선교전략입니다. 바로 ''별들의 전쟁''입니다. 가족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그 사람은, 그와 그 가족들이 별과 같이 빛나는 축복의 존재들로 역사의 한 가운데 서고 말 것입니다.
Ⅰ. 하나님의 선교 전략
저 소아시아의 드로아 항구에서 배를 타고, 에게해 바다의 물결을 가르면서 마게도냐의 첫성 빌립보를 향하던 바울의 선교항해를 가리켜 토인비 교수는, ''바울을 싣고 가던 배는 구라파를 싣고 가던 배''라고 하는 의미 있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 큰 이유는 아시아에서 구라파로 향하던 바울의 선교 원정이 바로 오늘의 선진 구라파 문명의 문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의 영(행 16:6-7)의 인도를 받고 구라파 지역인 마게도냐 첫 성 빌립보에 이른 선교사 일행은 결정적인 하나님의 역사(役事)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저들은 안식일에 기도처를 찾아 문밖 강가에 나가다가 기도하던 여자들을 만났습니다. 저들 중에 루디아라 하는 여자와 그 가족을 얻게 되는 첫 번째 개가를 올렸습니다. 바울이 메시지를 전할 때 주께서 그녀의 마음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녀는 복음의 말씀을 청종함으로 주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바울 일행은 그녀의 집으로 인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녀와 온 집이 다 세례를 받고, 그녀의 집은 구원의 집이 되었습니다(행 16:14-15) 그녀와 그녀의 가족에게 복음 안에서 구원의 문이 열린 것은 바로 구라파 선교의 문이 열린 첫 번째 개가였습니다.
하나님은 바울 일행을 그 집에 머물도록 섭리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가족이 된 저들은 강권하여 선교사들을 자기 집에 머물게 하면서 복음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빌립보에서 복음 사역을 시작하던 바울 일행은 두 번째 개가를 부르게 됩니다. 그것은 그 성중에 사는 한 부자에게 매여 있던 한 귀신 들린 여자 노예를 귀신에게서 떼어놓아 해방을 시켜준 일이었습니다(행 16:16-18).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귀신에게 여자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할 때, 귀신이 즉시 나오고 여자는 온전하여졌습니다. 빌립보 사역의 두 번째 개가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또 다른 복음 전파의 기폭제로 선용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여자 노예에게서 귀신을 쫓아낸 일로 연결이 되었습니다. 그 점치는 귀신 들렸던 여자가 온전하여지자 그 노예 여자의 주인은 자기의 이익이 끊어졌다고 분노하였습니다. 그 결과 바울과 실라는 민심소란 죄목과 풍습파괴 죄목으로 무리들에게 고소를 당하여 깊은 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발은 착고에 든든히 묶이고 말았습니다. 물론 투옥 전에 바울 일행은 옷 벗김을 당하고 심한 매를 맞았습니다(행 16:19-24).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하여 빌립보에서 세 번째 전도의 개가를 올리도록 섭리하셨습니다. 그 밤에 하나님은 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에게서 기도와 감사의 찬송이 터지도록 하셨습니다. 깊은 밤중에 감방에서 터져 나오는 기도와 찬송 소리를 모든 죄수들이 다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계속해서 더 놀라운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시간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기 시작하면서 옥터가 움직이더니, 바울이 갇혀 있는 감방의 문이 열려 버린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감옥에 갇혀 있던 모든 죄수들이 함께 보고 체험한 사건이었습니다.
지진은 하나님 자신의 임재의 표현이었습니다(출 19:18). 처음 열두 사도들이 성령 받은 후 기도할 때도 이런 역사가 있었습니다(행 4:3).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도 지진이 나서 옥문을 열어 젖히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의 옥문은 조용히 열어 젖혔으나, 여기 빌립보 감옥에서는 그 감옥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이 사실을 느꼈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구라파 선교의 첫 작업에 놀라운 기적의 역사로 임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때 그 밤에 파수하던 간수는 열린 옥문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로 생각하고 검을 들어 자결하려 하였습니다(행 16:27). 로마의 법률에는 죄수가 도주하면 간수가 대신 벌을 받기 때문이었습니다(행 12:19). 이 장면을 현장에서 보았던 그 간수는 자기에게 종말이 온 줄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때 바울이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고 하였습니다(행 16:28). 바울 일행뿐 아니고 다른 죄수들도 도망가지 않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섭리적 이적에 속합니다.
캄캄한 감방 안에서는 밖의 거동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밖에서는 감방 안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때 간수는 무서워하며 떨었습니다. 등불을 달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을 하였습니다(행 16:29). 그의 놀라움은 두 번째입니다. 첫 번째는 옥문이 열렸다는 사실 때문에 놀랐고, 두 번째는 죄수가 도망가지 않고 있다는 사실과 더욱이 자기의 자결을 제지한 사실 앞에 놀랐던 것입니다.
이때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바울과 실라 앞에 무릎을 꿇고 마는 인격적 충동을 받고 만 것입니다. 여기 ''무릎을 꿇었다''는 말은 신 앞 에 엎드려 절하는 경외적 상태를 가리킵니다. 실제로 간수는 옥문이 열려 있고, 죄수가 도망을 치지 않고, 또 그 죄수의 발목에 채운 착고가 풀어져 버린 상태를 보고, 바울과 실라가 신이 아닌가 착각하고 두려워했을 정도였음을 보여줍니다.
마침내 그 간수의 입에서는 대단한 말이 터져 나오고 말았습니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 원을 얻으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행 16:30). 여기 ''선생들아'' 하는 말 ''큐리오이''는 ''주들아'' 하는 뜻입니다. 대단한 존경의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 을 얻으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질문은 종교적인 문제였습니다. 그가 말한 ''구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그가 토한 이 질문은 인간적인 한계상황 을 벗어나고 있는 질문임이 확실합니다. 지금 그는 힘으로도, 능으로도, 로마의 권력으로도 할 수 없는 초인적이고 초자연적인 사태의 현장 을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밤에 죄수들이 갇힌 감방의 옥터가 흔들리는 지진이 일어나고, 그 결과 옥문이 열려 버렸고, 더욱이 열린 옥문 앞에서 죄수가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에 있는 일, 오히려 자기의 생명을 아껴주는 사태를 목격 한 그 사람이고 보면 그가 발한 ''구원''이란 질문은 단순한 인간적 상황 그 이상의 것임이 분명합니다.
그가 어떤 인간적인 노력의 대가로 구원을 획득할 수 있겠느냐고 한 질문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겠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이러한 질문은 그 의미와 내용이 중대한 것입니다. 인간 구원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러한 질문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의 영감은 바울을 통하여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구원의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행 16:31). 하나님은 이 복음의 메시지를 나타내기 위하여 지금 빌립 보의 감옥에 당신의 현장 임재를, 기적을 통하여 나타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자신이 나타내신 구라파 선교전략이었습니다.
이때 그 간수는 죄수(?) 바울과 실라를 자기 집으로 안내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깊은 밤중에 그와 그의 온 가족이 복음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행 16:32). 그 밤에 그의 온 가족이 구원에 이르는 신앙의 고 백이 일어나고, 그 결과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와 온 가족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고 하나님의 사자들을 대접하기에 이르렀습니다(행 16:33-34).
다시 간수는 죄수(?)를 데리고 감옥으로 갔고, 날이 밝은 후 이 사실이 상관들에게 보고가 되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자유의 몸이 되어 다시 복음 전파에 나서게 되었습니다(행 16:36-40). 하룻밤 어간에 간수는 독실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했습니다.
하나님은 저 구라파 대륙에 복음의 문을 이렇게 열기 시작했습니다. 한 사람의 가정의 성원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고, 그 사람을 통하여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의 집으로 변화시켰습니다.
Ⅱ. 하나님의 선교 전략은 가정 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주도하신 빌립보 선교전략에서 중대한 전도교훈을 받게 됩니다. 곧 가족 전도는 가족 구원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첫째로, 성령께서 주도하였습니다.
성령이 바울의 아시아 전도 방향 을 수정하여 구라파로 향하게 하였습니다(행 16:6-7).
둘째로, 기도운동을 통하여 사람 을 만나게 했다는 사실입니다.
빌립보에 도착한 바울은 기도하러 가다가 기도하는 여인들을 만남으로 복음 전도의 대상을 만났습니다(행 16:13). 기도하러 가다가 점하는 귀신들린 여인을 만나 고쳐주었습니다(행 16:16). 기도하고 찬송하는 감옥에서 지진이 나고 옥터가 흔들리며, 감옥 문이 열리고 발에 묶인 착고가 풀려버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행 16:25-26).
셋째로 예수 이름의 선교운동이었습니다.
그는 예수 이름으로 귀신들린 여 인에게 자유를 주었습니다. 기적이었습니다(행 16:18). 그는 예수 이름 으로 구원의 복음을 전했습니다(행 16:31). 그는 예수의 이름으로 루디아의 가정과(행 16:15), 간수의 가정에(행 16:33)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예수, 곧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는 이것이 선교의 주제였습니다.
넷째로 가정 전도를 통한 가족구원의 선교 운동이었습니다.
루디아의 가정이 그러했습니다.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았다고 하였습니다(행 16:14-15). 간수의 가정이 그러했습니다.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세례를 받았다」고 하였습니다(행 16:33).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고 하였습니다(행 16:34). 이렇게 가정은 복음 선교의 기본 단위가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가족이 예수를 믿으 면, 그의 집이 다 세례를 받고 구원 을 받게 되는 하나님의 선교전략입니다. 이 말은 한 사람만 믿으면 온 가족이 다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 아니고, 그 한 사람의 구원 신앙이 그 가정 전도의 선구자가 되어 마침내 가족의 복음화가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영생복락 면류관 전도가 있었습니다.
바로 저의 장모님이신 고 이순이 집사의 경우입니다. 1950년, 6. 25 사변이 발생할 때였습니다. 경남 김해군 진례면 초전이라고 하는 동리에 초전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는 아주 작은 농촌 교회로 교역자를 모실 수 없을 정도의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돌아가신 김용규 장로님 내 외분이 노구를 이끌고 빈 교회에 와서 강단을 지키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장로님의 부인이었던고 이충갑 사모님께서 그 교회로부터 2km 떨어진 신월 마을에 전도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6. 25 사변 때문에 많은 피난민들이 동리마다 메워졌을 때였습니다. 이충갑 사모님은 저의 장모이신 이순이 씨의 집에 와서 사람들을 불러모아 놓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 사하고/ …영생복락 면류관 우리가 받겠네"
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분의 전도가 끝나자 이순이 씨가 물었습니다.
"영생복락 면류관이 무엇입니까? 참 그 말이 듣기 좋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다음 주일에 교회에 오십시오."
"교회에 가면 그 영생복락 면류관을 줍니까?"
"주고 말고요…"
이순이씨는 영생복락 면류관을 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으로 준비하며 손꼽아 주일을 기다리다가 마침내 교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분의 나이 50이었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교회에 나갔습니다. 영생복락 면류관을 받으러 간 것입니다. 이순이씨가 처음 출석한 교회에 그 날 모인 교인은 10여 명이었습니다. 물론 그 날 자기에게 영생복락 면류관을 약속하신 할머니가 아주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이순이씨는 예배석에 앉아 있었고, 이윽고 예배를 마쳤습니다. 교우들도 모두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이제 기다리던 영생복락 면류관을 받을 차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밤에 다시 오라고 하였습니다. 밤에 가면 영생복락 면류관을 줄줄 알고 또 나가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자기를 반겨주는 정도는 더 강했습니다. 그런데 역시 영생복락 면류관은 안 주고 다음 수요일에 또 오라고 하였습니다. 또 기다렸다가 수요일에 교회에 갔습니다. 또 다음 주일, 그 날 밤, 수요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이순이씨는 낙심하지 않고 영생 복락 면류관을 받고야 말겠다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또 오세요."
"…"
하는 말에 실망하지 않고 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 설교를 통하여 예수께서 성령으로 그 분에게 영생복락 면류관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죽어도 다시 살아서 영생한다는 구원의 진리가 영생복락 면류관인 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깨달음이 그 분의 나머지 한평생을 밝은 빛 속으로 이끌어 가고 말았습니다.
그 후 그분의 삶은 180도로 변화되었고, 최씨 종가의 그 많은 제사와 결별을 하면서 죽음에 이르는 핍박과 멸시를 받게 되었으나 백절불굴의 신앙으로 승리하였습니다.
그때부터 그 농촌 교회는 이순이씨가 살림을 거의 다 맡아 하게 되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그의 세 아들과 두 딸이 결국 복음화 되었습니다.
그 분이 교회로 나온 후 예배당 성전이 그의 삶의 거소가 되어 버렸습니다. 찬송을 따라 부르면서 눈으로 글을 익혀 깨닫게 되었습니다. 임종시간까지 그 분은 요한복음, 요한 1, 2, 3서, 야고보서, 요한계시록을 다 암송하였습니다. 그 외에 다른 성경도 부분적으로 암송하였습니다.
그 분에게 있었던 세 아들 중 한 분은 우리 교회 집사로 사시다가 소천하였고, 둘째 아들도 신앙생활을 잘 하다가 소천하였습니다. 셋째 아들이 지금 부산 부곡중앙교회에서 장로로 봉사하고 있는 최윤조 장로입니다. 그 분의 손자 4남 1녀의 가족이 모두 저희 경향교회에서 주를 섬기고 있습니다. 그 분의 두 번째 딸이 석원태 목사의 부인 최윤선씨입니다. 최윤선씨는 처음에 어머니의 전도를 2년 간이나 반대하다가 그 가족 중 제일 나중에 교회에 나오게 된 사람입니다. 저의 장모님 이순이씨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그 분과 그 분 집이 모두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파서 자식이나 교우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고 기도하다가 주 앞에 가게 해달라는 것이 그 분의 기도제목이었는데, 평소 그분 자신의 기도의 소원대로 그 분은 기도하던 중에 주 앞으로 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가족 중 한 사람이 믿으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그 온 가정이 예수를 영접하여 가족 구원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이것은 주님의 구라파 선교전략이었고, 세계선교전략입니다. 바로 ''별들의 전쟁''입니다. 가족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그 사람은, 그와 그 가족들이 별과 같이 빛나는 축복의 존재들로 역사의 한 가운데 서고 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