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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원태목사 (경향교회)
확실히 주께서 세운 십자가의 참된 교회는 부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성령이 예루살렘 교회를 탄생시켰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말씀(설교)과 주의 이름으로 올리는 교회들의 기도에 주님의 응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권능과 기적과 표적의 초자연적 역사(役事)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향한 세상의 핍박이 오히려 교회를 견고케 하는 부흥의 바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처음 예루살렘 교회의 부흥비결일 뿐 아니라, 2000년 동안 지상에 자리 잡은 모든 전투 교회들의 부흥의 비결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다시 예루살렘 교회의 부흥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Ⅰ. 교회 안에 일어난 물질적 시험은 오히려 교회를 부흥시키는 전화위복이었습니다(행 5:1~11).
사단은 교회 밖에서 예루살렘 교회를 시험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유대 교권주의자들(산헤드린 공회)의 교회박해였습니다(행 4장). 그러나 이러한 외부적 박해도 결국 교회를 부흥시키는 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
이제 사단은 다시 교회 안에서 시험을 일으켰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로 말미암은 시험이었습니다. 저들 부부는 물질 봉사를 빙자하여 교회의 시험꺼리가 되었습니다. 저들 중에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속 가운데 요셉이라고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도들은 그에게 바나바(권위자)라고 하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그는 교중을 위로하고 권하는 사랑의 은사를 받은 자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소유로 있던 밭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내어 놓아 가난한 자들을 도와주므로 교회의 복음운동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아마 그 일로 인하여 그의 덕망이 더 높아졌던 것 같습니다(행 4:34~37).
아나니아라고 하는 남자와 그의 아내 삽비라는 이 일에 충동을 받고 자기들도 그런 일을 함으로 교회 안에 이름을 떨쳐 보고자 하는 공명심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1. 저들 부부는 자기의 소유(재물)로 위선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저들은 자기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고’,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고 하였습니다(행 5:1~2).
여기 ‘감추다’라는 말은 ‘따로 떼어놓다’, ‘자기 자신을 위하여 갈라놓다’, ‘가로채다’, ‘횡령하다’라는 의미입니다.
베드로는 저들 부부의 이런 소행에 대하여 사단의 꾐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냐」(행 5:3)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성령을 속였다고 하였습니다.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행 5:3)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을 속인 죄라고 하였습니다.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행 5:4)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부부가 공모하는 죄를 범했다고 하였습니다. 저들은 함께 소유를 팔고(행 5:1), 함께 그 값 얼마를 감추고(행 5:2), 함께 거짓말을 하고(행 5:8), 함께 주의 영을 시험했다고 하였습니다(행 5:9).
저들의 범죄는 주의 이름으로 위선을 행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공인, 곧 사도들을 속인 죄였습니다. 거룩한 교회 이름을 빙자한 죄였습니다. 함께 ‘꾀하다’라는 말은 ‘같은 소리’를 냈다는 뜻입니다. 저들은 부부간에 선을 꾀하며 선을 조장하지 못하고, 악을 공모하는데 함께 마음먹고, 함께 거짓말하고, 함께 행동하였습니다.
2. 하나님의 공의로운 징계가 나타나고 말았습니다.
사도행전 5장 5절에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영감의 사도 베드로의 질책을 듣는 동안에 ‘엎드려져 혼이 떠났다’라고 하였습니다. 육체적으로는 신경성 쇼크를 일으켰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그의 시체를 장사하였다고 하였습니다(행 5:6).
그런 일이 있은 후 세 시간쯤 지나, 그 아내가 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왔을 때였습니다. 베드로는 그녀에게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녀가 가로되 「예 이뿐이로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그 시간 사도 베드로는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라고 질책하면서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곧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고 말았습니다. 물론 그녀의 시체도 함께 장사되어 버렸습니다(행 5:7~10).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 있었던 처음 권징 역사(役事)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회개하지 않은 범죄자를 권징함은 교회의 신성과 순결과 화평을 유지함에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신적 권위와 지상 전투 교회의 불완전함을 보여줌에 있습니다.
3. 그 결과로 오히려 교회의 부흥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① 온 교회에 하나님을 향한 큰 경외심이 더해졌습니다.
사도행전 5장 11절에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신성 앞에 사람(신자)들의 신앙심이 더 커지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진리 증거에 힘 있는 표적이 되었습니다. ‘크게 두려워 함’이란 큰 경외심을 뜻합니다.
② 표적과 기사가 많이 나타났습니다.
사도행전 5장 12절에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라고 하였습니다. 이 표적과 기사는 예루살렘 도시에서도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5장 15절에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뉘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라고…」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사도들의 손’(행 5:12)이나 ‘그림자’(행 5:15), 그 자체에 표적과 기사의 요소가 있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표적과 기사는 주님 자신의 역사(役事)이고, 사도들은 그 역사 전달의 수단일 뿐이었습니다.
농촌에서도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5장 16절에 「예루살렘 근읍 허다한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모두 쾌유를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교회 앞에서 불의를 심판하는 사도들에게 표적과 기사가 더함으로, 저들의 영적 권위가 교회에 새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③ 합심하여 더 모였다고 하였습니다.
믿는 사람이 모였습니다. 다 마음을 같이하여 모였습니다. 성전에 모였다고 하였습니다. 솔로몬 행각에 모였다고 하였습니다(행 5:12).
④ 백성들에게 칭송의 대상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5장 13절에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들의 권위가 드러나고, 백성들의 칭송이 일어났다고 하였습니다.
⑤ 교세가 확장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5장 14절에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크다’라는 말은 언제나 교세 확장을 두고 사용된 말입니다. 큰 권능의 증거(행 4:33), 무리의 큰 은혜(행 4:33), 큰 두려움과 경외(행 5:5, 11), 커지는 제자의 수(행 6:7), 큰 기사와 표적(행 6:8), 큰 핍박(행 8:1), 큰 기쁨(행 8:8, 15:3) 등은 교회부흥과 관계된 축복을 나타내는 표현들이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로 말미암아 야기된 물질적 시험은 오히려 교회 부흥을 가져오는 전화위복이었습니다.
Ⅱ. 교회 직분 임직은 교회부흥의 첩경이었습니다(행 6:1~7).
예루살렘 교회의 부흥은 새로운 교회 제도를 창설하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1. 그것은 바로 교회 집사 제도의 시작이었습니다.
집사 제도는 교세증가를 효과적으로 수용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도행전 6장 1절에 「그 때에 제자(믿는 자)가 더 많아졌는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그때’는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에게 권징을 행한 후를 뜻합니다. ‘제자’(μαθητ?ν)는 ‘배우는 자’를 뜻하는 단어로 신앙성장에 따르는 영적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초신자 단계에서 더 진보하는 신앙수준의 상태를 뜻합니다. 또한 ‘많아졌다’는 말은 수용불가능에 이르는 ‘충만’을 의미한 단어입니다. 실로 즐거운 비명입니다.
집사 제도는 교회 안의 성도들의 수적 증가로 말미암아 복잡해진 구제(식량배급)를 원활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헬라파(이방지역에 사는 유대인) 사람들이 히브리파(본방에 사는 유대인) 사람들보다 식량배급(구제)에 차별대우를 받는 일 때문에 원망하는 문제가 일어났습니다(행 6:1).
여기에 사도들은 여러 제자들을 불러놓고, 교회사역의 분담안을 제의하고, 집사제도를 두기로 하였습니다. 사도들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을 전하는 일(설교)에 전무하고(행 6:2, 4), 신도들에게 모아진 돈으로 공궤하는 일(섬기는 일, 구제사역)을 맡을 사람을 택하기로 하였습니다(행 6:2, 3).
여기 ‘공궤’라는 말(διακονε?ν)은 먼지(χ?νι?)에서 나온 말에 전치사(δια)를 합성시켜 ‘먼지 속을 왕래하는 자’, 곧 ‘집사’로 사용되었습니다. ‘먼지 속을 왕래하는 자’는 ‘밭(흙)에서 일하는 자’를 뜻합니다. 일상 속에서 일하는 자, 섬기는 자를 뜻했습니다(요 12:26, 딤전 3:10, 13). 그 중 본문에서는 물질 구제와 관계되고 있습니다.
2. 집사의 자격은 네 가지였습니다.
① 성령 충만한 자(행 6:3, 5) ② 믿음 충만한 자(행 6:5), ③ 지혜 충만한 자(행 6:3), ④ 모든 사람에게 칭찬 듣는 자(행 6:3)였습니다.
성령 충만은 새 사람(거듭남)의 요소입니다(요 3:5). 믿음은 구원의 요건입니다(롬 1:17). 지혜는 영적 봉사의 분별력입니다(마 10:16). 칭찬은 교중의 모범 인을 뜻합니다. 말하자면 하나님 앞에서(성령과 믿음), 또 사람 앞에서(지혜와 칭찬) 인정받는 자를 뜻합니다(딤전 3:8~13).
3. 집사 선택 방법은 회중의 선택과 사도들에 의한 임직이었습니다.
무리들은 기뻐하여 네 가지 자격에 적격자 일곱 명(스데반, 빌립,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니골라)을 택하였습니다(투표). 사도들은 저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여 임직하였습니다(행 6:6). 교중이 투표하고, 사도들이 안수함으로 임직된 것입니다.
4. 집사 임직의 결과 교회는 부흥하였습니다.
사도행전 6장 7절에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였다 함은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가 더 강해졌음을 뜻합니다. 교회 안에 작은 원망의 내분도 사라져 버렸다는 뜻입니다. 헬라파 유대인이나 히브리파 유대인 같은 색깔이 없어져 버렸다는 뜻입니다. 예루살렘 교회 안에 신앙이 성장하는 제자(신자)가 많아지고, 제사장 급에 속하는 유대 지도자들도 부활의 도에 복종하여 구원인의 수가 많아졌다는 사실입니다.
말하자면 교회 집사 직분의 임직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부흥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목사나 장로나 집사나 권사나 기타 여러 교회의 봉사 직무는 교회부흥을 위한 결정적인 수단입니다. 이러한 직분을 받은 자들은 실로 복이 있는 자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예루살렘 교회는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의 위선적 물질 헌금 때문에 시험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사단적 위선자를 징치하므로, 오히려 교회가 더 부흥하는 전화위복의 복을 받게 하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확장되는 교세 수용을 위하여 제정한 집사제도와 집사 임직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더 부흥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구속운동을 성취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선교 작전입니다.
※ 오늘 교회는 모름지기 교회 안에 사단의 사자인 위선하는 자들로 말미암는 여러 종류의 시험을 받을 때 과감하게 사탄의 책략을 응징하는 공의로운 권징을 실행해야 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교회는 천국열쇠(권징권)를 사용할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질서와 순결과 화평을 파수해야 합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하게 됩니다.
교회를 위하여 받은 모든 봉사와 헌신의 직분자들은 각자가 받은 그 직분을 교회 부흥의 도구로 선용해야 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하도록 해야 합니다.
마침내 예루살렘 교회의 부흥은 스데반 집사의 순교의 피로 그 절정을 남기고 있습니다(행 7:54~60).
바로 이런 교회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이요,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됩니다(딤전 3:15). 아멘.
확실히 주께서 세운 십자가의 참된 교회는 부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성령이 예루살렘 교회를 탄생시켰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말씀(설교)과 주의 이름으로 올리는 교회들의 기도에 주님의 응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권능과 기적과 표적의 초자연적 역사(役事)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향한 세상의 핍박이 오히려 교회를 견고케 하는 부흥의 바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처음 예루살렘 교회의 부흥비결일 뿐 아니라, 2000년 동안 지상에 자리 잡은 모든 전투 교회들의 부흥의 비결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다시 예루살렘 교회의 부흥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Ⅰ. 교회 안에 일어난 물질적 시험은 오히려 교회를 부흥시키는 전화위복이었습니다(행 5:1~11).
사단은 교회 밖에서 예루살렘 교회를 시험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유대 교권주의자들(산헤드린 공회)의 교회박해였습니다(행 4장). 그러나 이러한 외부적 박해도 결국 교회를 부흥시키는 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
이제 사단은 다시 교회 안에서 시험을 일으켰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로 말미암은 시험이었습니다. 저들 부부는 물질 봉사를 빙자하여 교회의 시험꺼리가 되었습니다. 저들 중에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속 가운데 요셉이라고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도들은 그에게 바나바(권위자)라고 하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그는 교중을 위로하고 권하는 사랑의 은사를 받은 자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소유로 있던 밭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내어 놓아 가난한 자들을 도와주므로 교회의 복음운동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아마 그 일로 인하여 그의 덕망이 더 높아졌던 것 같습니다(행 4:34~37).
아나니아라고 하는 남자와 그의 아내 삽비라는 이 일에 충동을 받고 자기들도 그런 일을 함으로 교회 안에 이름을 떨쳐 보고자 하는 공명심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1. 저들 부부는 자기의 소유(재물)로 위선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저들은 자기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고’,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고 하였습니다(행 5:1~2).
여기 ‘감추다’라는 말은 ‘따로 떼어놓다’, ‘자기 자신을 위하여 갈라놓다’, ‘가로채다’, ‘횡령하다’라는 의미입니다.
베드로는 저들 부부의 이런 소행에 대하여 사단의 꾐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냐」(행 5:3)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성령을 속였다고 하였습니다.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행 5:3)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을 속인 죄라고 하였습니다.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행 5:4)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부부가 공모하는 죄를 범했다고 하였습니다. 저들은 함께 소유를 팔고(행 5:1), 함께 그 값 얼마를 감추고(행 5:2), 함께 거짓말을 하고(행 5:8), 함께 주의 영을 시험했다고 하였습니다(행 5:9).
저들의 범죄는 주의 이름으로 위선을 행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공인, 곧 사도들을 속인 죄였습니다. 거룩한 교회 이름을 빙자한 죄였습니다. 함께 ‘꾀하다’라는 말은 ‘같은 소리’를 냈다는 뜻입니다. 저들은 부부간에 선을 꾀하며 선을 조장하지 못하고, 악을 공모하는데 함께 마음먹고, 함께 거짓말하고, 함께 행동하였습니다.
2. 하나님의 공의로운 징계가 나타나고 말았습니다.
사도행전 5장 5절에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영감의 사도 베드로의 질책을 듣는 동안에 ‘엎드려져 혼이 떠났다’라고 하였습니다. 육체적으로는 신경성 쇼크를 일으켰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그의 시체를 장사하였다고 하였습니다(행 5:6).
그런 일이 있은 후 세 시간쯤 지나, 그 아내가 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왔을 때였습니다. 베드로는 그녀에게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녀가 가로되 「예 이뿐이로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그 시간 사도 베드로는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라고 질책하면서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곧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고 말았습니다. 물론 그녀의 시체도 함께 장사되어 버렸습니다(행 5:7~10).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 있었던 처음 권징 역사(役事)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회개하지 않은 범죄자를 권징함은 교회의 신성과 순결과 화평을 유지함에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신적 권위와 지상 전투 교회의 불완전함을 보여줌에 있습니다.
3. 그 결과로 오히려 교회의 부흥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① 온 교회에 하나님을 향한 큰 경외심이 더해졌습니다.
사도행전 5장 11절에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신성 앞에 사람(신자)들의 신앙심이 더 커지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진리 증거에 힘 있는 표적이 되었습니다. ‘크게 두려워 함’이란 큰 경외심을 뜻합니다.
② 표적과 기사가 많이 나타났습니다.
사도행전 5장 12절에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라고 하였습니다. 이 표적과 기사는 예루살렘 도시에서도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5장 15절에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뉘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라고…」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사도들의 손’(행 5:12)이나 ‘그림자’(행 5:15), 그 자체에 표적과 기사의 요소가 있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표적과 기사는 주님 자신의 역사(役事)이고, 사도들은 그 역사 전달의 수단일 뿐이었습니다.
농촌에서도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5장 16절에 「예루살렘 근읍 허다한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모두 쾌유를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교회 앞에서 불의를 심판하는 사도들에게 표적과 기사가 더함으로, 저들의 영적 권위가 교회에 새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③ 합심하여 더 모였다고 하였습니다.
믿는 사람이 모였습니다. 다 마음을 같이하여 모였습니다. 성전에 모였다고 하였습니다. 솔로몬 행각에 모였다고 하였습니다(행 5:12).
④ 백성들에게 칭송의 대상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5장 13절에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들의 권위가 드러나고, 백성들의 칭송이 일어났다고 하였습니다.
⑤ 교세가 확장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5장 14절에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크다’라는 말은 언제나 교세 확장을 두고 사용된 말입니다. 큰 권능의 증거(행 4:33), 무리의 큰 은혜(행 4:33), 큰 두려움과 경외(행 5:5, 11), 커지는 제자의 수(행 6:7), 큰 기사와 표적(행 6:8), 큰 핍박(행 8:1), 큰 기쁨(행 8:8, 15:3) 등은 교회부흥과 관계된 축복을 나타내는 표현들이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로 말미암아 야기된 물질적 시험은 오히려 교회 부흥을 가져오는 전화위복이었습니다.
Ⅱ. 교회 직분 임직은 교회부흥의 첩경이었습니다(행 6:1~7).
예루살렘 교회의 부흥은 새로운 교회 제도를 창설하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1. 그것은 바로 교회 집사 제도의 시작이었습니다.
집사 제도는 교세증가를 효과적으로 수용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도행전 6장 1절에 「그 때에 제자(믿는 자)가 더 많아졌는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그때’는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에게 권징을 행한 후를 뜻합니다. ‘제자’(μαθητ?ν)는 ‘배우는 자’를 뜻하는 단어로 신앙성장에 따르는 영적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초신자 단계에서 더 진보하는 신앙수준의 상태를 뜻합니다. 또한 ‘많아졌다’는 말은 수용불가능에 이르는 ‘충만’을 의미한 단어입니다. 실로 즐거운 비명입니다.
집사 제도는 교회 안의 성도들의 수적 증가로 말미암아 복잡해진 구제(식량배급)를 원활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헬라파(이방지역에 사는 유대인) 사람들이 히브리파(본방에 사는 유대인) 사람들보다 식량배급(구제)에 차별대우를 받는 일 때문에 원망하는 문제가 일어났습니다(행 6:1).
여기에 사도들은 여러 제자들을 불러놓고, 교회사역의 분담안을 제의하고, 집사제도를 두기로 하였습니다. 사도들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을 전하는 일(설교)에 전무하고(행 6:2, 4), 신도들에게 모아진 돈으로 공궤하는 일(섬기는 일, 구제사역)을 맡을 사람을 택하기로 하였습니다(행 6:2, 3).
여기 ‘공궤’라는 말(διακονε?ν)은 먼지(χ?νι?)에서 나온 말에 전치사(δια)를 합성시켜 ‘먼지 속을 왕래하는 자’, 곧 ‘집사’로 사용되었습니다. ‘먼지 속을 왕래하는 자’는 ‘밭(흙)에서 일하는 자’를 뜻합니다. 일상 속에서 일하는 자, 섬기는 자를 뜻했습니다(요 12:26, 딤전 3:10, 13). 그 중 본문에서는 물질 구제와 관계되고 있습니다.
2. 집사의 자격은 네 가지였습니다.
① 성령 충만한 자(행 6:3, 5) ② 믿음 충만한 자(행 6:5), ③ 지혜 충만한 자(행 6:3), ④ 모든 사람에게 칭찬 듣는 자(행 6:3)였습니다.
성령 충만은 새 사람(거듭남)의 요소입니다(요 3:5). 믿음은 구원의 요건입니다(롬 1:17). 지혜는 영적 봉사의 분별력입니다(마 10:16). 칭찬은 교중의 모범 인을 뜻합니다. 말하자면 하나님 앞에서(성령과 믿음), 또 사람 앞에서(지혜와 칭찬) 인정받는 자를 뜻합니다(딤전 3:8~13).
3. 집사 선택 방법은 회중의 선택과 사도들에 의한 임직이었습니다.
무리들은 기뻐하여 네 가지 자격에 적격자 일곱 명(스데반, 빌립,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니골라)을 택하였습니다(투표). 사도들은 저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여 임직하였습니다(행 6:6). 교중이 투표하고, 사도들이 안수함으로 임직된 것입니다.
4. 집사 임직의 결과 교회는 부흥하였습니다.
사도행전 6장 7절에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였다 함은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가 더 강해졌음을 뜻합니다. 교회 안에 작은 원망의 내분도 사라져 버렸다는 뜻입니다. 헬라파 유대인이나 히브리파 유대인 같은 색깔이 없어져 버렸다는 뜻입니다. 예루살렘 교회 안에 신앙이 성장하는 제자(신자)가 많아지고, 제사장 급에 속하는 유대 지도자들도 부활의 도에 복종하여 구원인의 수가 많아졌다는 사실입니다.
말하자면 교회 집사 직분의 임직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부흥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목사나 장로나 집사나 권사나 기타 여러 교회의 봉사 직무는 교회부흥을 위한 결정적인 수단입니다. 이러한 직분을 받은 자들은 실로 복이 있는 자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예루살렘 교회는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의 위선적 물질 헌금 때문에 시험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사단적 위선자를 징치하므로, 오히려 교회가 더 부흥하는 전화위복의 복을 받게 하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확장되는 교세 수용을 위하여 제정한 집사제도와 집사 임직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더 부흥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구속운동을 성취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선교 작전입니다.
※ 오늘 교회는 모름지기 교회 안에 사단의 사자인 위선하는 자들로 말미암는 여러 종류의 시험을 받을 때 과감하게 사탄의 책략을 응징하는 공의로운 권징을 실행해야 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교회는 천국열쇠(권징권)를 사용할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질서와 순결과 화평을 파수해야 합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하게 됩니다.
교회를 위하여 받은 모든 봉사와 헌신의 직분자들은 각자가 받은 그 직분을 교회 부흥의 도구로 선용해야 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하도록 해야 합니다.
마침내 예루살렘 교회의 부흥은 스데반 집사의 순교의 피로 그 절정을 남기고 있습니다(행 7:54~60).
바로 이런 교회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이요,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됩니다(딤전 3:15).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