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44
몇 달 후 나는 그곳을 다시 찾았을 때는 모두들 너무 기뻐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시작에 불과 했습니다.
나는 그곳에 그들의 평생소원인 지하수 개발을 약속 했을 때는 그들은 정말 희망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모두들 신바람이 났으며, 마을주민 모두가 힘을 모았습니다.
지하수 개발의 가장 큰 문제는 경비였습니다. 그 경비를 내가 담당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도시에서 기술자와 자재들이 도착하여 작업을 시작한지 몇 일만에 수맥을 찾았습니다.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파이프를 수 십 미터 박아 물을 뽑아 올리는데 성공하였습니다. 한 달 정도 걸려 큰 물탱크도 만들고 작은 연못도 만들었습니다.
이제 식수는 물론 목욕, 빨래, 가축들의 식수 등 물 걱정은 모두 해결 했습니다 이 일들은 그들에게는 엄청난 변화였습니다. 곧 꼬르손이 그들의 생명을 구하러 온 구세주로 부각 되었습니다.
이제 때가 되었다는 생각에서 그들에게 마을 회의를 열게 하였고 그 자리에서 나는 목사 이며, 선교를 위해 이곳에 왔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들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을 보았고 그들은 한 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간곡히 애원 했습니다. 여기에 교회를 세워 우리 모두 하나님 백성이 되자고……
며칠 후 그들은 꼬르손의 뜻을 따르기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그곳 양지 바른 언덕 위에 교회를 짓기로 장소까지 결정을 했습니다.
교회 건축은 시작 되었고 나는 물자 공급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교회건물이 한창 진행 중에 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웃 동네 청년들이 구아사베에 교회를 짓는다는 소문을 듣고 무엇인가 일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나는 알 길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마을 외진 곳에서 나는 이웃 청년들에게 기습을 당했습니다. 내 머리에는 보자기가 씌워 졌고 한쪽 구석으로 끌려간 나에게 매 타작이 시작되었습니다. 얼마나 맞았는지 그 표현을 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반죽음 그 자체였습니다.
정신은 몽롱 했으며, 내가 죽는 것인지 살 수 있을 것인지 분간 할 수 없을 정도로 인사불성 상태에서 그들은 나의 머리에 총을 들어대고는 나에게 최후의 기회를 줄 테니 이곳을 떠나겠는가? 물었습니다. 떠나지 않으면 방아쇠를 당기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죽어 가는구나 생각하면서 한국에 계시는 어머니를 생각 했습니다. 미국에 가면 꼭 한국의 어머니께 전화로 안부를 묻곤 하는데, 그럴 때 마다 멕시코 시골 원주민을 위한 선교 상황이 얼마나 위험하다는 것을 들려주곤 했습니다.
멕시코 선교 이야기를 들려 드릴 때 마다 어머니의 말씀은 부디 몸조심하라, 그러나 아무리 선교가 위험하다해도 돌아 올 생각은 절대 하지마라, 순교정신으로 선교하라, 만약 네가 선교하다가 순교한다면 그것을 가장 큰 영광으로 생각 하겠다.
내가 주님 앞에 가서 아들이 선교하다가 순교했다면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의 소망은 이 땅이 아니라 하늘나라이며, 그곳에서 다시 만나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이다.
그리고 새벽마다 교회에 가서(경주입실교회) 너의 멕시코 선교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하신 그 말씀이 내 머리를 스쳐 갔습니다.
나는 주저할 것 없이 그들에게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리고는 나는 그들에게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나는 한번 한 약속은 꼭 지킨다. 나는 구아사베 형제들에게 이곳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약속을 했다. 교회가 세워지고 이곳이 복음화가 되기 전 까지는 결코 떠날 수 없다.
나는 정신이 몽롱해 그들의 얼굴이 아롱아롱 했지만 조용하게 그리고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기도 했습니다 오! 주님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하실 수 있고 주님만이 뜻을 아십니다.
주님을 더 잘 알아가고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시옵소서. 정녕 이곳의 복음화가 주님의 뜻이라면 저를 죽이든지 살리든지 복음화의 도구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저의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다음 계속......
나는 그곳에 그들의 평생소원인 지하수 개발을 약속 했을 때는 그들은 정말 희망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모두들 신바람이 났으며, 마을주민 모두가 힘을 모았습니다.
지하수 개발의 가장 큰 문제는 경비였습니다. 그 경비를 내가 담당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도시에서 기술자와 자재들이 도착하여 작업을 시작한지 몇 일만에 수맥을 찾았습니다.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파이프를 수 십 미터 박아 물을 뽑아 올리는데 성공하였습니다. 한 달 정도 걸려 큰 물탱크도 만들고 작은 연못도 만들었습니다.
이제 식수는 물론 목욕, 빨래, 가축들의 식수 등 물 걱정은 모두 해결 했습니다 이 일들은 그들에게는 엄청난 변화였습니다. 곧 꼬르손이 그들의 생명을 구하러 온 구세주로 부각 되었습니다.
이제 때가 되었다는 생각에서 그들에게 마을 회의를 열게 하였고 그 자리에서 나는 목사 이며, 선교를 위해 이곳에 왔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들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을 보았고 그들은 한 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간곡히 애원 했습니다. 여기에 교회를 세워 우리 모두 하나님 백성이 되자고……
며칠 후 그들은 꼬르손의 뜻을 따르기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그곳 양지 바른 언덕 위에 교회를 짓기로 장소까지 결정을 했습니다.
교회 건축은 시작 되었고 나는 물자 공급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교회건물이 한창 진행 중에 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웃 동네 청년들이 구아사베에 교회를 짓는다는 소문을 듣고 무엇인가 일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나는 알 길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마을 외진 곳에서 나는 이웃 청년들에게 기습을 당했습니다. 내 머리에는 보자기가 씌워 졌고 한쪽 구석으로 끌려간 나에게 매 타작이 시작되었습니다. 얼마나 맞았는지 그 표현을 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반죽음 그 자체였습니다.
정신은 몽롱 했으며, 내가 죽는 것인지 살 수 있을 것인지 분간 할 수 없을 정도로 인사불성 상태에서 그들은 나의 머리에 총을 들어대고는 나에게 최후의 기회를 줄 테니 이곳을 떠나겠는가? 물었습니다. 떠나지 않으면 방아쇠를 당기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죽어 가는구나 생각하면서 한국에 계시는 어머니를 생각 했습니다. 미국에 가면 꼭 한국의 어머니께 전화로 안부를 묻곤 하는데, 그럴 때 마다 멕시코 시골 원주민을 위한 선교 상황이 얼마나 위험하다는 것을 들려주곤 했습니다.
멕시코 선교 이야기를 들려 드릴 때 마다 어머니의 말씀은 부디 몸조심하라, 그러나 아무리 선교가 위험하다해도 돌아 올 생각은 절대 하지마라, 순교정신으로 선교하라, 만약 네가 선교하다가 순교한다면 그것을 가장 큰 영광으로 생각 하겠다.
내가 주님 앞에 가서 아들이 선교하다가 순교했다면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의 소망은 이 땅이 아니라 하늘나라이며, 그곳에서 다시 만나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이다.
그리고 새벽마다 교회에 가서(경주입실교회) 너의 멕시코 선교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하신 그 말씀이 내 머리를 스쳐 갔습니다.
나는 주저할 것 없이 그들에게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리고는 나는 그들에게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나는 한번 한 약속은 꼭 지킨다. 나는 구아사베 형제들에게 이곳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약속을 했다. 교회가 세워지고 이곳이 복음화가 되기 전 까지는 결코 떠날 수 없다.
나는 정신이 몽롱해 그들의 얼굴이 아롱아롱 했지만 조용하게 그리고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기도 했습니다 오! 주님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하실 수 있고 주님만이 뜻을 아십니다.
주님을 더 잘 알아가고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시옵소서. 정녕 이곳의 복음화가 주님의 뜻이라면 저를 죽이든지 살리든지 복음화의 도구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저의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다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