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58
이계준
1. 머리말
한 종교인의 사상을 이해하려면 그가 믿는 종교의 경전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했는가를 알아보면 된다. 그 경전이 그의 생애와 사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미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존 웨슬리는 스스로 '한 책의 사람'이라고 부르듯이 성서를 자기 신학의 1차적 자료로 생각하였다. 그는 수 많은 책을 읽는 다독가이었지만 성서는 그의 도서목록 중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웨슬리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그가 성서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였는지 알아보는 것은 극히 중요한 일이다.
2. 18세기 영국의 성서 이해
모든 인간은 시대의 산물이다. 자기가 태어난 시대의 사상과 풍조에 영향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이다. 웨슬리는 18세기 영국에서 교육받고 활동한 인물이기 때문에 그 시대의 신학적 배경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당시 도버 해협 건너 편에 있는 유럽 대륙, 특히 독일에서는 소위 합리주의와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하에 성서에 대한 비판적 연구가 활발하였다. 철학자 I. 칸트나 신학자 F. 슐라이에르마허 같은 대가들이 나타난 것과 같이 성서에 대한 역사적 비판을 연구하는 레싱과 같은 성서학자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등장하였다. 역사적 비평이란 쉽게 말해서 성서를 기록 당시의 역사적 기록에 비추어 연구함으로써 성서가 얼마나 객관적으로 정확하고 타당한 것인지를 추구하는 학문이라고 하겠다.
독일의 역사 비평학이란 새로운 사상이 영국 신학계에 알려지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뿐만 아니라 19세기 초 독일의 '역사 비평서'가 영국에서 번역되었을 때 이것은 곧 이단으로 정죄 받았다. 이것은 곧 영국이 학문적으로 후진적인 동시에 보수적이었다는 것이다. 웨슬리 자신도 영국의 신학자들처럼 독일의 비평학에 무관심하였다는 것은 당연하다.
웨슬리의 성서 이해는 한 마디로 보수주의적이고 또한 경건주의적이었다. 독일에서 처음 나타난 경건주의는 새로운 성서 비평학을 배격하는 입장이었으므로 비록 웨슬리가 성서 비평학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고 할 지라도 그것을 받아드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의 육신은 비평 시대 초기에 살았으나 그의 정신은 비평 시대 이전에 속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그가 맹목적인 문자주의자(blind biblist)였다는 말이 아니라 그는 18세기 영국이란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한정된 시대의 인물이라는 것이다.
3. 웨슬리의 성서 이해
웨슬리는 교회의 전통적 신앙인 "성서의 영감설"을 그대로 수용하였다. 그는 "감리교의 특징"이라는 글에서 이것을 분명히 밝혔다. "사실, 우리는 '모든 성서는 하느님의 감동으로 된 것임'을 믿는다. 그리고... 우리는 하느님의 기록된 말씀이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실행의 유일하고도 충분한 기준(the only and sufficient rule)이라고 믿는다."
웨슬리는 성서 저자들이 영감을 받아 기록하였지만 그 영감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즉 하나는 명시적인 '특별계시'이고 다른 하나는 암시적인 '영감'이라는 것이다. 성서 본문에서, '말하는 주체'가 하느님, 예수 또는 성령이면 특별계시에 속하고 성서 저자의 인간적인 생각이 크게 반영된 것은 영감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는 성서가 하느님에게서 왔다는 확실한 사실을 증명하는 4가지 증거가 있다고 한다: 1) 하느님의 능력에서 온 기적 2) 하느님의 이해에서 온 예언 3) 하느님의 우수성에서 온 가르침의 우수성 4) 하느님의 거룩함에서 온 인간 저자의 도덕적 품성 등. 그는 기독교가 이 4개의 기둥 위에 서 있다고 하였다.
이 위대한 성서의 저자는 누구일까? 웨슬리는 3가지 가능성을 제시한다: 1) 선한 사람이나 천사에 의해 쓰였거나, 2) 악한 사람이나 악마에 의해 쓰였거나, 3) 하느님에 의해 쓰였거나, 셋 중의 하나라고 한다. 선한 사람이나 천사가 자기의 말을 쓰면서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속일 수 없을 것이고, 악한 사람이나 악마가 썼다면 그 내용이 그렇게 훌륭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지막 가능성은 하느님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토록 영감설에 확신하였고 그렇게 주장하였다. 그의 영감설의 특징은 교회의 전통에 맹종하는 것이 아니라 성서 내용의 우월성을 강조하는데 있는 것이다.
웨슬리의 영감설은 영감이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적이라고 하는 주장에 그 특성이 있다. 즉 성서 저자들에게 작용한 영감이 오늘 우리에게도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영감은 새로운 성서를 기록할 수 있는 방식으로가 아니라 기록된 성서의 의미를 밝혀주는 방식으로 활동한다고 하였다. 성령의 계속적인 역할에 대한 그의 이해는 그가 문자적인 이해와 기계적인 적용의 잘못에 빠지지 아니하고 심미적으로 읽고 창의적으로 적용하게 하였던 것이다.
웨슬리가 발견한 성서의 핵심은 "믿음을 통한 구원의 도리"이다. 이 도리는 3가지로 구분된다: 1) 인간은 모두 죄 안에서 죽었고 따라서 하느님의 노여움의 대상이라는 것, 2) 인간은 믿음으로만 의롭다는 인정을 받는다는 것, 3)믿음은 내적, 외적 거룩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 등이다. 그는 이 세 주제를 가지고 성서를 읽고 해석한다. 이것이 성서가 보여주는 길이기 때문에 그는 성서를 가장 중요한 책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4. 성서 읽기
윌리암 아넷은 "웨슬리의 해석 원칙"을 6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문자적인 의미가 강조된다.
둘째, 성서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맥락(context)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셋째, 성서를 통해서 성서를 해석한다.
넷째, 성서 해석에 있어서 경험이 강조된다.
다섯째, 이성은 믿음을 돕는 한에서 허용된다.
여섯째, 실용성을 염두에 두고 해석한다.
아넷이 요약한 이 원칙들은 제1강에서 말한 웨슬리의 4가지 표준을 연상케 한다.
웨슬리는 성서 해석에 있어서 문자적 의미를 강조하였는데 여기에는 역사적 배경이 깔려 있다. 16세기 종교개혁 이전에 성서 해석을 지배한 원리는 소위 "비유적 해석"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성서를 자의적 해석 곧 해석자의 주관대로 해석하므로 성서의 의미를 곡해할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따라서 종교개혁은 "비유적 해석" 대신에 "문자적 해석"을 강조하였다. 웨슬리는 이 종교개혁 전통을 따른 것이다.
웨슬리가 성서를 해석할 때 가장 돋보이는 특징은 본문의 문학적, 역사적 맥락을 강조하는 점이다. 이것은 "문학적 혹은 심미적 읽기"라고 할 수 있다. 웨슬리는 성서의 언어에서 영감을 발견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성서를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 단어의 의미, 그 단어로 표현된 거룩한 감동, 그 단어 안에 포함된 저자의 감정 등을 관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위해 단어의 의미를 묻고 전후의 문맥을 살피며 언어의 표현을 꿰뚫어 보는 직관적 독서를 즐겼다.
이러한 성서 이해방법은 웨슬리가 비록 문서 비평 이전의 사고를 가지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기계적인 문자주의자가 아니라 오늘의 "문학비평적 독서"(literary reading)에 훨씬 근접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웨슬리의 성서 읽기에 있어서 또 하나의 특징은 "묵상적 읽기"(meditative reading)라고 하겠다. 그는 우리가 성서를 읽을 때 자주 멈추어서, 읽은 내용으로 우리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점검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그의 거룩한 뜻에 복종하는 기회를 주신 사실을 발견하고 찬양 드리게 되며 이와 반대로 우리의 양심이 거기에 미치지 못할 때는 겸손과 기도의 계기를 제공해 줄 것이라고 하였다. 웨슬리는 묵상하면서 직관력으로 본문의 의미를 꿰뚫어 본 다음, 같은 직관력으로 본문과 자기 자신의 대화를 시도하였던 것이다.
끝으로 웨슬리는 성서 읽기에 있어서 "실천"을 강조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이 묵상을 통하여 어떤 빛을 받으면, 최선을 다하여 그것을 사용해야 한다. 그것도, 즉시로, 조금의 지체도 없게 하라. 당신이 무엇을 결심하였던지, 그 순간부터 실행하기 시작하라.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이 말씀이 현재의 구원과 영원한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구원임을 발견할 것이다."
실천이 없는 이론은 제아무리 고상하다고 할지라도 무의미한 것이다. 야고보서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하였다.(2:14) 웨슬리도 성서 읽기에서 실천을 강조하였다. 그는 성서 읽는 방법을 제시하면서 "계속하여"(constantly), "규칙적으로"(regularly), "세심하게"(carefully), "신중하게"(seriously), 그리고 "생산적으로"(fruitfully) 읽으라고 하였는데 "생산적으로"란 말은 곧 실천에 관심을 두라는 것이다.
5. 맺는 말
웨슬리는 스스로 "한 책의 사람" 이라고 말하였는데 그것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 살펴 보았다. F. 힐더브란트는 이 사실을 한마디로 압축하였다. 즉 "그의 설교들, 편지들 그리고 일기들은 구구절절이 성서의 용어로 말하고, 성서적 방식으로 주장하고, 성서적 범주 안에서 생각하는 사람을 보여준다." 실로 그는 "한 책의 사람"이 되기 위하여 최선을 다 한 사람이었다.
비록 그는 18세기 영국의 풍토 속에서 독일의 발전된 성서 역사 비평학에 접하지는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종교개혁 전통의 "문자적 해석"을 수용하였고 놀라운 통찰력과 창의성을 통하여 심미적, 묵상적, 실천적 성서 읽기를 제시한 것은 우리 현대인들에게 성서 이해에 대한 큰 깨우침과 신앙의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