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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순목사 (그리스도사랑의교회)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들을 때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은 전혀 다르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먼저 깨달아야 됩니다. 모든 사람들은 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도 아름다운 손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손을 가진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하면 물론 현대에는 미용이라고 하는 표면적으로 다듬는 이러한 것들이 성행되는 시대이기 때문에 손과 손톱을 잘 소제하고 화장품을 발라서 피부를 보호하는 다듬어진 손도 아름다운 손이지만 가장 아름다운 손이 어떤 손인가 하면 일을 많이 해서 손가락이 굶어져 있고 손의 피부는 거칠거칠해진 사람들을 우리는 많이 대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남자들은 서로 인사를 나룰 때 악수를 합니다. 악수를 할 때에 만져보면 손이 두툼하면서 손바닥에는 약간 딱딱함을 느끼는 사람들의 손을 봅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손이 실상은 아름다운 손입니다. 왜 아름다운 손일까요? 많은 노동을 통해서 타인들에게 봉사한 손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손인 것입니다. 물론 세상에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은 손가락으로 악기를 연주합니다. 물론 그들의 손도 아름다운 손입니다. 아름다운 손이란 일을 많이 한 손이 아름다운 손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부탁한 주의 일을 해야 되겠는데 어떤 일이 주의 일인 것인가 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 보십시다. 전도하는 것, 교회 봉사하는 것, 찬양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다 주의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주의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 당하시고 삼일만에 살아나 부활 승천하시어서 성령으로 오시어 지금 우리 가운데 역사 하는 그 분을 온전히 믿는 것이 큰 주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바탕에 세워지지 아니한 일이란 어떤 것도 주의 일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믿음을 가져야 되느냐?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믿음이 있고 내가 아무리 성경을 잘 알고 내가 아무리 찬양을 잘 한다 할지라도 믿음에는 반드시 행함이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에는 어떠한 행함이 따라야 되겠느냐? 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혈루증으로 고생하는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소식을 듣고 마음에 믿음을 가졌습니다. 믿음을 가진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예수를 만나러 갔습니다. 예수를 만나러 가서 그는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혈루가 나을 것을 믿었습니다. 그는 그 믿음대로 행동으로 옮겨서 혈루병을 나음을 입었습니다. 이때에 예수께서는 그 여인을 향하여 말씀하기를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졌으면 온전히 주님께 나아가는 나의 행위가 있어야 됩니다. 이 행위는 육신으로부터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서 믿어질 때에 행위로 옮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고 싶지 않은 곳에 가지 않고 가고 싶은 곳에 오지 말라고 해도 가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움직여 행동하는 믿음은 먼저 마음에서 믿어질 때에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일을 하는 것은 보내신 그분을 온전히 믿고 그분의 말씀하신 그대로 우리는 따라가는 것이 주의 일인 것입니다.
본문에 보니까 어떤 사람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데 장정만 약 오천의 숫자가 모였습니다. 모인 그들을 그리스도께서는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서 오천 명을 먹이고 남는 놀라운 능력을 행해 그들에게 영혼 구원자이며 생명의 양식을 주는 그리스도임을 그들에게 나타내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런 능력 행하는 것을 보고 저들은 예수를 자신들의 임금 삼기를 원했습니다. 영적인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육적인 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자리를 피하셔서 나왔을 때에 예수를 찾던 무리들이 랍비여 언제 여기에 오셨습니까? 라고 하는 물음을 물을 때에 예수님은 예수를 찾아다닌 그들에게 말씀하신 말씀이 오늘 내용의 일부분입니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많은 사람들은 세상의 일은 썩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고 교회의 일은 영생하는 양식을 위해 일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으로 기독교와 사회와의 관계를 갈라놓아 버리는 편협 된 사고를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한 말씀을 사회와 교회를 단절시키기 위해 말씀한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신앙생활이 어느 것을 위해서 해야 되겠습니까? 우리의 신앙이 썩는 양식을 위해 다시 말해서 육신적인 축복을 바라보는 믿음의 생활은 불행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육신의 축복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양식을 위해서 일해야 되겠습니까? 우리의 수고하는 일은 믿음의 생활인 것입니다. 믿음의 생활하는 사람은 영생하는 양식을 위하여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그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며 믿음의 사람으로 행동하는 신앙인이 되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는 당대의 사람들은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묻습니다. 이때에 예수님은 명료하게 대답하셨습니다. 그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는 믿음에 예수 그리스도가 빠진 믿음은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의 대상이 누구입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온전히 갖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한 사람들을 보십시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가룟유다 외에는 모두 다 하나님의 일을 했습니다. 그들이 변화의 과정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역시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를 따라 다닐 때에 그들에게 언젠가는 이스라엘이 회복되게 되면 자신들에게 혜택이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예수를 따라 다녔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고 이미 무덤에 장사지내고 말았습니다. 이때에 이들은 다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왜 이렇게 저들이 다 뿔뿔이 흩어졌습니까? 그 이유는 단순한 것입니다. 자신들이 바라고 요망하는 메시아가 이미 죽어버렸으므로 자신들이 원하고 바라는 것을 이룰 수 없다는 것 때문에 다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우리에게 의미합니까? 예수를 바로 알고 믿은 것이 아니라 예수를 자기중심적으로만 알고 믿은 결과는 다 부정했던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를 긍정적으로 믿은 사람이 없던 것을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관계 속에서 주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찾아봅시다. 뿔뿔이 흩어진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 다음에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깨닫지 못할 때에는 십자가에 고난 당한 모습으로 저들에게 보여주면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저들에게 설명하셨고 또한 많은 말씀으로 그들에게 부탁도 했습니다.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아버지께서 허락한 그 성령이 올 터인즉 그 성령을 받으면 권능을 얻어서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되어 달라.” 는 말씀과 부탁뿐만 아니라 “볼 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 절대적인 약속을 주시면서 까지 말씀으로 저들을 설득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의 말씀을 믿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열심히 기도하는 가운데 오순절 날이 이르렀을 때에 주님 말씀한 대로 성령이 저들 위에 임했던 것을 봅니다. 성령이 임하고 나니까 지금까지 알고 있던 예수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바꾸어지는 변화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성령을 받기 전에 예수에 대한 이해라고 하는 것은 육신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알고 있던 이들은 그분이 우리의 영혼을 구원할 영원한 구원자임을 올바로 깨닫는 역사가 저들 심령 위에 이루어질 때에 우리는 이렇게 있을 수 없다. ‘놀랍고 놀라운 이 사실을 나아가서 증거 해야 되겠다!’ 라는 마음으로 그들은 예루살렘 길거리로 뛰어 나갔습니다. 그때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과 또한 성령으로 오시어 지금 우리 가운데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예루살렘에는 많은 외국인들이 모였습니다.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올바로 증거 할 때에 성령의 역사 하심을 통해서 각 나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듣게 되는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베풀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행위와 행동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며 믿음의 사람의 행위인 것입니다. 만약에 저들이 성령의 은혜를 입고도 전하지 아니했던들 오늘 우리 기독교의 복음사역이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까? 우리가 믿을 수 있습니까? 전하는 자가 없이 어떻게 듣겠으며 또한 들음이 없으면 어떻게 우리의 믿음이 생기겠습니까?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오늘 말씀한 말씀의 의미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오직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보내신 자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말할 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 속의 노예 생활 속에서 출애굽을 시켜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과정 속에서 광야생활이 시작됩니다. 이 광야생활 속에서는 농사하지 않았습니다. 길쌈하지 않았습니다. 농사하지 않고 길쌈하지 않아도 저들은 먹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나를 주셔서 먹고 또한 메추라기를 주셔서 먹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은혜로 여기지 못했던 것이 그들의 신앙생활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한 말씀이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 믿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예수를 믿게만 하신 것이 아니라 또한 은혜의 말씀으로 계속해서 우리는 양육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양육을 받으면서도 말씀이 내게 은혜의 말씀이요, 내게 생명의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항상 묵상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왔을 때에 설교 시간에는 듣고 교회 문 앞에 나가면서 그 말씀을 다 잊어버리고 가고 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으면서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신 만나라고 생각하지 아니하고 감사할 줄 모르고 도리어 조금만 어려운 상황이 되면 불평불만만 했던 것이 그들의 삶이었던 것을 우리는 거울삼아 보면서 우리는 결코 불평하는 삶이 아니고 감사하는 삶, 불신앙인의 삶이 아니고 신앙인의 삶, 오직 주의 거룩한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삶, 이런 삶이 진정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삶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라.” 고 분명히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고 말씀했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이것을 이루시기 위해서 오셨노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하겠습니까? 오직 그분이 말씀하신 말씀을 믿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상황에 변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절대로 그 믿음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 사도바울을 보십시다. 많은 핍박과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그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그리스도의 사랑의 줄에서 나를 끊을 수 있으랴! 기근이랴, 핍박이랴, 그 어떤 어려움이라도 그리스도와 나와의 사랑의 줄, 생명의 줄을 맺은 것은 어느 누구도 끊을 수 없다고 증거 한 것을 봅니다. 뿐입니까? 베드로 사도도 우리에게 믿음을 지키기를 말씀합니다.
진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된다고 했습니다. 결코 믿음으로 굳건하게 서서 이기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입은 사람인 것입니다. 믿음은 나 혼자만 외롭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나아갈 때에 성령이 함께 역사하사 그 성령의 은혜를 통해서 인간으로 행할 수 없는 불가능한 것을 이루게 하는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함께 해 준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시고 제시한 것을 봅니다.
성경 중에서 유대인이 아닌 수로노니게 여인이 등장됩니다. 이 여자는 자기의 딸이 귀신들려서 많은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그는 예수님께 나아와 간절히 간구 합니다. 주여! 저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라고 주님을 찾아 부르짖습니다. 이때에 예수님께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주님! 제발 저 여인에게 말씀을 하셔서 가라고 하시던지 보내십시오.’ 라고 하는 이러한 말을 할 때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는 말씀이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주지 아니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자녀의 떡이라는 자녀는 유대인을 자녀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은 유대인에서 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때에 여인은 ‘옳소이다만은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라고 말하는 것을 봅니다. 여인의 믿음은 오직 구원자는 유대인에게만 구원자가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구원자가 되실 수 있지 않습니까? 라는 물음이었던 것입니다. 이때에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의 믿음을 바라보시고 “딸아!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될 지어다.” 라고 할 때에 그 여인의 딸이 그 시에 사단에 매여 있던 질병에서 나음을 얻는 놀라운 은혜를 입었던 것을 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내가 단순하게 주여! 주여! 하는 믿음이 아니라 믿음 가운데는 성령의 역사하심이 계시다 라고 하는 것을 우리에게 분명히 제시해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하심이 함께 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으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말씀을 내가 믿는 것입니다. 곧 그 말씀을 내가 믿는 것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주의 일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온전한 믿음을 가져서 우리 모두 다 하나님의 일에 충성된 종이 되게 하시다가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여러분이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귀한 은혜의 자녀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들을 때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은 전혀 다르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먼저 깨달아야 됩니다. 모든 사람들은 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도 아름다운 손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손을 가진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하면 물론 현대에는 미용이라고 하는 표면적으로 다듬는 이러한 것들이 성행되는 시대이기 때문에 손과 손톱을 잘 소제하고 화장품을 발라서 피부를 보호하는 다듬어진 손도 아름다운 손이지만 가장 아름다운 손이 어떤 손인가 하면 일을 많이 해서 손가락이 굶어져 있고 손의 피부는 거칠거칠해진 사람들을 우리는 많이 대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남자들은 서로 인사를 나룰 때 악수를 합니다. 악수를 할 때에 만져보면 손이 두툼하면서 손바닥에는 약간 딱딱함을 느끼는 사람들의 손을 봅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손이 실상은 아름다운 손입니다. 왜 아름다운 손일까요? 많은 노동을 통해서 타인들에게 봉사한 손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손인 것입니다. 물론 세상에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은 손가락으로 악기를 연주합니다. 물론 그들의 손도 아름다운 손입니다. 아름다운 손이란 일을 많이 한 손이 아름다운 손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부탁한 주의 일을 해야 되겠는데 어떤 일이 주의 일인 것인가 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 보십시다. 전도하는 것, 교회 봉사하는 것, 찬양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다 주의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주의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 당하시고 삼일만에 살아나 부활 승천하시어서 성령으로 오시어 지금 우리 가운데 역사 하는 그 분을 온전히 믿는 것이 큰 주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바탕에 세워지지 아니한 일이란 어떤 것도 주의 일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믿음을 가져야 되느냐?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믿음이 있고 내가 아무리 성경을 잘 알고 내가 아무리 찬양을 잘 한다 할지라도 믿음에는 반드시 행함이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에는 어떠한 행함이 따라야 되겠느냐? 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혈루증으로 고생하는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소식을 듣고 마음에 믿음을 가졌습니다. 믿음을 가진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예수를 만나러 갔습니다. 예수를 만나러 가서 그는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혈루가 나을 것을 믿었습니다. 그는 그 믿음대로 행동으로 옮겨서 혈루병을 나음을 입었습니다. 이때에 예수께서는 그 여인을 향하여 말씀하기를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졌으면 온전히 주님께 나아가는 나의 행위가 있어야 됩니다. 이 행위는 육신으로부터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서 믿어질 때에 행위로 옮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고 싶지 않은 곳에 가지 않고 가고 싶은 곳에 오지 말라고 해도 가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움직여 행동하는 믿음은 먼저 마음에서 믿어질 때에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일을 하는 것은 보내신 그분을 온전히 믿고 그분의 말씀하신 그대로 우리는 따라가는 것이 주의 일인 것입니다.
본문에 보니까 어떤 사람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데 장정만 약 오천의 숫자가 모였습니다. 모인 그들을 그리스도께서는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서 오천 명을 먹이고 남는 놀라운 능력을 행해 그들에게 영혼 구원자이며 생명의 양식을 주는 그리스도임을 그들에게 나타내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런 능력 행하는 것을 보고 저들은 예수를 자신들의 임금 삼기를 원했습니다. 영적인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육적인 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자리를 피하셔서 나왔을 때에 예수를 찾던 무리들이 랍비여 언제 여기에 오셨습니까? 라고 하는 물음을 물을 때에 예수님은 예수를 찾아다닌 그들에게 말씀하신 말씀이 오늘 내용의 일부분입니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많은 사람들은 세상의 일은 썩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고 교회의 일은 영생하는 양식을 위해 일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으로 기독교와 사회와의 관계를 갈라놓아 버리는 편협 된 사고를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한 말씀을 사회와 교회를 단절시키기 위해 말씀한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신앙생활이 어느 것을 위해서 해야 되겠습니까? 우리의 신앙이 썩는 양식을 위해 다시 말해서 육신적인 축복을 바라보는 믿음의 생활은 불행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육신의 축복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양식을 위해서 일해야 되겠습니까? 우리의 수고하는 일은 믿음의 생활인 것입니다. 믿음의 생활하는 사람은 영생하는 양식을 위하여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그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며 믿음의 사람으로 행동하는 신앙인이 되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는 당대의 사람들은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묻습니다. 이때에 예수님은 명료하게 대답하셨습니다. 그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는 믿음에 예수 그리스도가 빠진 믿음은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의 대상이 누구입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온전히 갖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한 사람들을 보십시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가룟유다 외에는 모두 다 하나님의 일을 했습니다. 그들이 변화의 과정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역시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를 따라 다닐 때에 그들에게 언젠가는 이스라엘이 회복되게 되면 자신들에게 혜택이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예수를 따라 다녔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고 이미 무덤에 장사지내고 말았습니다. 이때에 이들은 다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왜 이렇게 저들이 다 뿔뿔이 흩어졌습니까? 그 이유는 단순한 것입니다. 자신들이 바라고 요망하는 메시아가 이미 죽어버렸으므로 자신들이 원하고 바라는 것을 이룰 수 없다는 것 때문에 다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우리에게 의미합니까? 예수를 바로 알고 믿은 것이 아니라 예수를 자기중심적으로만 알고 믿은 결과는 다 부정했던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를 긍정적으로 믿은 사람이 없던 것을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관계 속에서 주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찾아봅시다. 뿔뿔이 흩어진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 다음에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깨닫지 못할 때에는 십자가에 고난 당한 모습으로 저들에게 보여주면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저들에게 설명하셨고 또한 많은 말씀으로 그들에게 부탁도 했습니다.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아버지께서 허락한 그 성령이 올 터인즉 그 성령을 받으면 권능을 얻어서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되어 달라.” 는 말씀과 부탁뿐만 아니라 “볼 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 절대적인 약속을 주시면서 까지 말씀으로 저들을 설득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의 말씀을 믿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열심히 기도하는 가운데 오순절 날이 이르렀을 때에 주님 말씀한 대로 성령이 저들 위에 임했던 것을 봅니다. 성령이 임하고 나니까 지금까지 알고 있던 예수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바꾸어지는 변화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성령을 받기 전에 예수에 대한 이해라고 하는 것은 육신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알고 있던 이들은 그분이 우리의 영혼을 구원할 영원한 구원자임을 올바로 깨닫는 역사가 저들 심령 위에 이루어질 때에 우리는 이렇게 있을 수 없다. ‘놀랍고 놀라운 이 사실을 나아가서 증거 해야 되겠다!’ 라는 마음으로 그들은 예루살렘 길거리로 뛰어 나갔습니다. 그때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과 또한 성령으로 오시어 지금 우리 가운데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예루살렘에는 많은 외국인들이 모였습니다.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올바로 증거 할 때에 성령의 역사 하심을 통해서 각 나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듣게 되는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베풀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행위와 행동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며 믿음의 사람의 행위인 것입니다. 만약에 저들이 성령의 은혜를 입고도 전하지 아니했던들 오늘 우리 기독교의 복음사역이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까? 우리가 믿을 수 있습니까? 전하는 자가 없이 어떻게 듣겠으며 또한 들음이 없으면 어떻게 우리의 믿음이 생기겠습니까?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오늘 말씀한 말씀의 의미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오직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보내신 자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말할 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 속의 노예 생활 속에서 출애굽을 시켜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과정 속에서 광야생활이 시작됩니다. 이 광야생활 속에서는 농사하지 않았습니다. 길쌈하지 않았습니다. 농사하지 않고 길쌈하지 않아도 저들은 먹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나를 주셔서 먹고 또한 메추라기를 주셔서 먹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은혜로 여기지 못했던 것이 그들의 신앙생활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한 말씀이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 믿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예수를 믿게만 하신 것이 아니라 또한 은혜의 말씀으로 계속해서 우리는 양육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양육을 받으면서도 말씀이 내게 은혜의 말씀이요, 내게 생명의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항상 묵상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왔을 때에 설교 시간에는 듣고 교회 문 앞에 나가면서 그 말씀을 다 잊어버리고 가고 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으면서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신 만나라고 생각하지 아니하고 감사할 줄 모르고 도리어 조금만 어려운 상황이 되면 불평불만만 했던 것이 그들의 삶이었던 것을 우리는 거울삼아 보면서 우리는 결코 불평하는 삶이 아니고 감사하는 삶, 불신앙인의 삶이 아니고 신앙인의 삶, 오직 주의 거룩한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삶, 이런 삶이 진정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삶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라.” 고 분명히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고 말씀했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이것을 이루시기 위해서 오셨노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하겠습니까? 오직 그분이 말씀하신 말씀을 믿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상황에 변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절대로 그 믿음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 사도바울을 보십시다. 많은 핍박과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그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그리스도의 사랑의 줄에서 나를 끊을 수 있으랴! 기근이랴, 핍박이랴, 그 어떤 어려움이라도 그리스도와 나와의 사랑의 줄, 생명의 줄을 맺은 것은 어느 누구도 끊을 수 없다고 증거 한 것을 봅니다. 뿐입니까? 베드로 사도도 우리에게 믿음을 지키기를 말씀합니다.
진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된다고 했습니다. 결코 믿음으로 굳건하게 서서 이기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입은 사람인 것입니다. 믿음은 나 혼자만 외롭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나아갈 때에 성령이 함께 역사하사 그 성령의 은혜를 통해서 인간으로 행할 수 없는 불가능한 것을 이루게 하는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함께 해 준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시고 제시한 것을 봅니다.
성경 중에서 유대인이 아닌 수로노니게 여인이 등장됩니다. 이 여자는 자기의 딸이 귀신들려서 많은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그는 예수님께 나아와 간절히 간구 합니다. 주여! 저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라고 주님을 찾아 부르짖습니다. 이때에 예수님께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주님! 제발 저 여인에게 말씀을 하셔서 가라고 하시던지 보내십시오.’ 라고 하는 이러한 말을 할 때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는 말씀이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주지 아니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자녀의 떡이라는 자녀는 유대인을 자녀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은 유대인에서 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때에 여인은 ‘옳소이다만은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라고 말하는 것을 봅니다. 여인의 믿음은 오직 구원자는 유대인에게만 구원자가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구원자가 되실 수 있지 않습니까? 라는 물음이었던 것입니다. 이때에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의 믿음을 바라보시고 “딸아!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될 지어다.” 라고 할 때에 그 여인의 딸이 그 시에 사단에 매여 있던 질병에서 나음을 얻는 놀라운 은혜를 입었던 것을 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내가 단순하게 주여! 주여! 하는 믿음이 아니라 믿음 가운데는 성령의 역사하심이 계시다 라고 하는 것을 우리에게 분명히 제시해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하심이 함께 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으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말씀을 내가 믿는 것입니다. 곧 그 말씀을 내가 믿는 것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주의 일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온전한 믿음을 가져서 우리 모두 다 하나님의 일에 충성된 종이 되게 하시다가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여러분이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귀한 은혜의 자녀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