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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순목사 (그리스도사랑의교회)
부활절은 대단히 즐겁고 기쁜 날입니다. 인생의 소망도 없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부활하셔서 우리의 부활을 약속한 거대한 언약인 것입니다. 인류 역사에 실존적 부활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졌으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새 방언을 말하게 되었습니다. 새 방언이 무엇입니까? 방언은 외국어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고난 당한지 제 삼일만에 부활하셨다고 하는 놀라운 소식이 새로운 방언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부활하신 ‘예수를 바로 보자’ 어떻게 부활하신 예수를 바로 볼 수 있을까? 오늘 본문의 내용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고난 당하고 예수를 따랐던 제자들은 다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 중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 두 제자가 서로 대화하며 갈 때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대화할 때에 이사야 성경과 또한 시편에 기록된 모든 말씀을 들어서 그리스도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설명하는 그분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인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을 봅니다. 그러므로 이 대목과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잠자던 사람이 다시 일어나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고 깨닫게 해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삼 년 동안 다녔던 제자들이 알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모습으로 주님은 나타나 그들과 대화를 합니다. 그러나 저들은 그것이 주님인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엠마오라 하는 촌 동네로 함께 걸어 갈 때에 많은 대화를 했지만 주님인 줄 알지 못하고 저녁때가 되어서 식사 할 때 저들에게 눈을 뜨게 하시매 저들의 눈이 밝아져 지금까지 대화하고 함께 걸어왔던 그 분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인 것을 깨달았던 것을 봅니다. 사람이 부활을 이해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지적인 이해인 것입니다.
사람의 이해로는 부활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부활은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부활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부활의 모습 자체가 삼 년 동안 제자들과 함께 복음을 증거 하러 다녔던 그러한 모습이었다면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예수님을 모를 수가 없습니다. 잘 압니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예수께서는 다른 모습으로 저들에게 보인 까닭이 무엇일까요? 여기에 예수님 큰 메시지가 있습니다. 부활은 우리가 알고 있는 육체의 부활이 아닌 것입니다. 육체의 부활이 아니라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보이시기 위해서 어떻게 역사 했는가? 라고 하는 것을 이 시간 분명히 깨달아야 되는 줄 압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천사와 사람과의 교류의 관계를 이해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안식 후 첫날 이른 미명에 예수님의 시신에다 향품을 바르기 위해서 무덤으로 찾아갔습니다. 이때에 무덤에는 텅 비어있고 예수님의 시신이 놓여 있던 머리와 발에는 빛난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있었습니다. 이때에 그 천사는 마리아에게 말씀을 합니다.
우리는 영인 천사가 사람과 교류하고 사람들에게 이해시킬 때에 그 천사는 하나님이 부리는 영이지만 역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사람의 옷을 입은 것처럼 의복을 입고 나타나서 말씀하는 것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육안으로는 영을 볼 수 없습니다. 영을 볼 수 없는 인간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천사는 누구의 모습을 하고 왔습니까? 역시 육신을 가진 사람의 모습을 하고 사람의 눈에 보였던 것입니다.
사람의 눈에 보였다고 해서 천사가 육체를 가지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옷을 입은 것은 무엇이며 대화한 것은 무엇인가? 라고 하는 것을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알게 하기 위해서 천사를 보내어 마치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사람과 대화하는 것을 우리는 먼저 이해할 때에 그리스도의 부활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듣고 이 사실을 알고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은 예수를 따랐던 또 다른 제자들에게 우리가 주님을 보았노라고 분명하게 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믿지 아니합니다. 나타나 보인 것은 영이며 유령이지 예수의 실존적 부활이 아닐 것이다. 라는 이러한 의문을 갖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했다고 하는 소식을 막달라 마리아가 요한과 베드로에게 먼저 알렸습니다. 이제는 이 소식을 듣고 예수를 장사했던 무덤을 향하여 달음박질하여 갑니다. 이때에 베드로와 요한이 달음박질했는데 달리기는 요한이 더 잘 달렸습니다. 먼저 요한이 예수님의 무덤 앞에 당도했지만 무덤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 서 있는 것을 베드로는 뒤에 쫓아와서 빨리 무덤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예수의 시체가 놓였던 곳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들은 마리아를 통해서 전해들은 소식을 듣고 예수님의 무덤에 와서 확인했지만 그래도 저들의 마음에 예수의 부활을 믿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부활을 실제로 믿고 있습니까? 기독교의 가장 본질적인 메시지요, 본질적인 사건이요, 위대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서 우리의 부활을 약속한 언약이 기독교의 위대한 약속인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이 없다면 믿는 것은 헛된 것입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복음을 위해서 수고하는 우리들이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반드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부활의 약속이 있기에 그분이 말씀한 말씀을 우리가 지키며 행하면서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살아가는 오늘 우리 신앙인들의 삶인 줄 압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아니할 때에 예수께서는 어떻게 저들에게 믿음을 주실 까요? 사람이 믿지 아니하는 사람에게 이해를 시키고 그를 설득시켜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예수님께서는 저들이 부활하여 나타난 주님을 그들이 유령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 마음에 믿음 없는 것을 보고 이렇게 저들에게 말씀했습니다. “영은 살과 뼈가 없되 인자는 있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날 많은 사람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말씀 때문에 그리스도의 부활을 육체의 부활로 알고 믿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이 있는 것을 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영은 살과 뼈가 없되 인자는 있느니라.” 고 말씀하신 의도를 올바로 알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바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부활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면 저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부활을 믿을까요? 저들은 육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다시 사람의 이해를 들고 설명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천사가 육을 가지고 있습니까? 천사는 육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옷을 입을 모습으로 저들에게 보여주십니다. 또한 말씀도 하십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신령한 분이지만 사람들을 이해시키고 부활을 실존적으로 증명하기 위해서는 대상이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의 방법을 동원해서 나타나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인지의 한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말씀했습니다. “영은 살과 뼈가 없되 인자는 있느니라.” 그렇다면 예수님이 살과 뼈가 있을까요? 부활하신 주님이 살과 뼈가 있어서 시공을 초월할까요?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 다음에는 제자들이 유대인을 두려워서 문을 꽁꽁 걸어 잠갔을 때에 주님은 나타나 “평안 할지어다.” 말씀하시면서 또한 기운을 내 부시면서 “성령을 받아라.” 라고 말씀한 것을 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누구십니까? 곧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올바로 깨달을 때 진정한 우리의 부활의 의미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믿지 않으니까 예수님께서는 조반 잡수시는 것을 함께 잡수시고 생선도 함께 잡수시는 모습을 제자에게 보이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활하신 다음에 예수님이 생선을 잡수시고 조반 식사를 하실 까요? 조반을 먹고 생선을 먹는 것은 사람이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다음에도 그와 같은 모습을 보이는 까닭은 부활 자체를 믿지 아니하기 때문에 저들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최대의 방법을 동원해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설명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 주일을 맞이해서 예수님의 부활자체에 대한 이해를 할 때에 우리의 부활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분은 본래의 육의 사람이 아니라 오직 영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영이시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라고 말씀했습니다. 영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육신을 입고 오셨던 분이신 것입니다. 십자가 사역을 통해서 그분은 육신을 벗어버린 것입니다. 그분은 오시기 전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부활절을 맞이해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것을 확실하고 올바로 알 때에 우리의 믿음이 신앙이 우리의 부활이 바로 알게 되고 깨닫게 되는 은혜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부활하셔서 시공을 초월하시고 역사 하신 모든 것은 오직 그분의 부활은 육체의 부활이 아니라 신령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영적인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영적인 존재는 시공을 초월합니다. 아무리 문을 걸어 잠갔어도 어떠한 상황이라도 주님은 우리 곁에 올 수 있는 능력자이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것을 올바로 이해할 때에 우리는 우리의 부활을 올바로 이해하십시다. 우리는 흙으로 되었으니 흙으로 된 것은 흙으로 돌아갑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를 살리는 것은 육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영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할 때에 많은 사람들이 무덤에서 일어나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는 이상을 예수님의 제자는 보고 성경에 기록한 것을 봅니다.
여러분! 그들이 육체의 실존이 부활한 것 아닙니다. 육체의 실존이 부활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사도들이 아니라 부활 자들이 더 열심히 전파하고 애쓰고 수고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간 부활 자들이 그 후에 사역과 그들의 삶과 행위는 하나도 성경에 기록되지 아니한 것을 볼 때에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이상 중에서 보았던 것을 우리의 부활을 알고 깨닫게 하기 위해서 설명해 주기 위한 말씀이었던 것을 우리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는 믿음이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는 믿음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우리의 부활은 어떻게 부활할까요? 우리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부활하심과 똑 같이 부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했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고 했습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부활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단순한 예수님의 부활로만 알 것이 아니라 마지막 날 우리를 살리겠다는 말씀대로 우리의 부활을 제시해 주시고 약속하신 사건이 그리스도의 부활인 것입니다. 이 부활은 아무에게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믿는 자에게 라고 했습니다.
예수가 구원자임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허락한 다른 보혜사 성령의 은총을 입은 자들에게만 부활에 이르게 되고 부활에 이르게 된 자들에게만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 부활한 자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의 이름을 찾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되어 주시는 것은 부활한 자에게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하게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한 다음에 우리에게 부탁하시고 말씀한 말씀이 있습니다. 첫째는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향하여 부활의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부활의 증인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은 오직 그가 우리의 죄와 허물을 인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 죄를 사하시고 장사 지낸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성령으로 오시어서 우리 가운데 역사 하는 역사의 증인이 되어 달라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부탁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모두 다 부활의 증인이 되십시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상 명령의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또 말씀을 주십니다. “볼 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힐 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시는 그 은혜를 입어서 죄 가운데 있는 자가 아니라 의 가운데 있는 자! 세상을 향한 나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으로 바꾸어지는 그러한 우리 신앙의 변화가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위로부터 주시는 능력을 우리에게 입혀 주신다고 했습니다. 위로부터 주시는 능력이란 어떤 능력일까요? 이 능력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바꾸어지는 능력인 것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자가 삶을 얻고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자가 생명의 축복을 얻는 이것은 우리에게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허락하는 선물인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입혀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 부활하셔서 약속하신 말씀을 우리 마음 판 깊이 새기시면서 초대교회 사도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아버지께서 허락한 성령을 입을 때까지 참고 인내하며 기도해서 급기야 오순절 날 마가 다락방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성령으로 그들 가운데 오셔서 역사한 성령의 역사가 오늘 우리를 만들었고 우리를 그리스도인이 되게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를 입었으면 오직 복음의 사역을 위해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사역을 위해서 앞으로 전진 해 나가는 진정한 부활의 증인이 되시기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부활절은 대단히 즐겁고 기쁜 날입니다. 인생의 소망도 없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부활하셔서 우리의 부활을 약속한 거대한 언약인 것입니다. 인류 역사에 실존적 부활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졌으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새 방언을 말하게 되었습니다. 새 방언이 무엇입니까? 방언은 외국어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고난 당한지 제 삼일만에 부활하셨다고 하는 놀라운 소식이 새로운 방언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부활하신 ‘예수를 바로 보자’ 어떻게 부활하신 예수를 바로 볼 수 있을까? 오늘 본문의 내용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고난 당하고 예수를 따랐던 제자들은 다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 중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 두 제자가 서로 대화하며 갈 때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대화할 때에 이사야 성경과 또한 시편에 기록된 모든 말씀을 들어서 그리스도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설명하는 그분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인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을 봅니다. 그러므로 이 대목과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잠자던 사람이 다시 일어나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고 깨닫게 해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삼 년 동안 다녔던 제자들이 알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모습으로 주님은 나타나 그들과 대화를 합니다. 그러나 저들은 그것이 주님인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엠마오라 하는 촌 동네로 함께 걸어 갈 때에 많은 대화를 했지만 주님인 줄 알지 못하고 저녁때가 되어서 식사 할 때 저들에게 눈을 뜨게 하시매 저들의 눈이 밝아져 지금까지 대화하고 함께 걸어왔던 그 분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인 것을 깨달았던 것을 봅니다. 사람이 부활을 이해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지적인 이해인 것입니다.
사람의 이해로는 부활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부활은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부활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부활의 모습 자체가 삼 년 동안 제자들과 함께 복음을 증거 하러 다녔던 그러한 모습이었다면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예수님을 모를 수가 없습니다. 잘 압니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예수께서는 다른 모습으로 저들에게 보인 까닭이 무엇일까요? 여기에 예수님 큰 메시지가 있습니다. 부활은 우리가 알고 있는 육체의 부활이 아닌 것입니다. 육체의 부활이 아니라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보이시기 위해서 어떻게 역사 했는가? 라고 하는 것을 이 시간 분명히 깨달아야 되는 줄 압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천사와 사람과의 교류의 관계를 이해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안식 후 첫날 이른 미명에 예수님의 시신에다 향품을 바르기 위해서 무덤으로 찾아갔습니다. 이때에 무덤에는 텅 비어있고 예수님의 시신이 놓여 있던 머리와 발에는 빛난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있었습니다. 이때에 그 천사는 마리아에게 말씀을 합니다.
우리는 영인 천사가 사람과 교류하고 사람들에게 이해시킬 때에 그 천사는 하나님이 부리는 영이지만 역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사람의 옷을 입은 것처럼 의복을 입고 나타나서 말씀하는 것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육안으로는 영을 볼 수 없습니다. 영을 볼 수 없는 인간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천사는 누구의 모습을 하고 왔습니까? 역시 육신을 가진 사람의 모습을 하고 사람의 눈에 보였던 것입니다.
사람의 눈에 보였다고 해서 천사가 육체를 가지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옷을 입은 것은 무엇이며 대화한 것은 무엇인가? 라고 하는 것을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알게 하기 위해서 천사를 보내어 마치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사람과 대화하는 것을 우리는 먼저 이해할 때에 그리스도의 부활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듣고 이 사실을 알고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은 예수를 따랐던 또 다른 제자들에게 우리가 주님을 보았노라고 분명하게 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믿지 아니합니다. 나타나 보인 것은 영이며 유령이지 예수의 실존적 부활이 아닐 것이다. 라는 이러한 의문을 갖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했다고 하는 소식을 막달라 마리아가 요한과 베드로에게 먼저 알렸습니다. 이제는 이 소식을 듣고 예수를 장사했던 무덤을 향하여 달음박질하여 갑니다. 이때에 베드로와 요한이 달음박질했는데 달리기는 요한이 더 잘 달렸습니다. 먼저 요한이 예수님의 무덤 앞에 당도했지만 무덤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 서 있는 것을 베드로는 뒤에 쫓아와서 빨리 무덤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예수의 시체가 놓였던 곳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들은 마리아를 통해서 전해들은 소식을 듣고 예수님의 무덤에 와서 확인했지만 그래도 저들의 마음에 예수의 부활을 믿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부활을 실제로 믿고 있습니까? 기독교의 가장 본질적인 메시지요, 본질적인 사건이요, 위대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서 우리의 부활을 약속한 언약이 기독교의 위대한 약속인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이 없다면 믿는 것은 헛된 것입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복음을 위해서 수고하는 우리들이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반드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부활의 약속이 있기에 그분이 말씀한 말씀을 우리가 지키며 행하면서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살아가는 오늘 우리 신앙인들의 삶인 줄 압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아니할 때에 예수께서는 어떻게 저들에게 믿음을 주실 까요? 사람이 믿지 아니하는 사람에게 이해를 시키고 그를 설득시켜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예수님께서는 저들이 부활하여 나타난 주님을 그들이 유령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 마음에 믿음 없는 것을 보고 이렇게 저들에게 말씀했습니다. “영은 살과 뼈가 없되 인자는 있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날 많은 사람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말씀 때문에 그리스도의 부활을 육체의 부활로 알고 믿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이 있는 것을 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영은 살과 뼈가 없되 인자는 있느니라.” 고 말씀하신 의도를 올바로 알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바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부활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면 저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부활을 믿을까요? 저들은 육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다시 사람의 이해를 들고 설명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천사가 육을 가지고 있습니까? 천사는 육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옷을 입을 모습으로 저들에게 보여주십니다. 또한 말씀도 하십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신령한 분이지만 사람들을 이해시키고 부활을 실존적으로 증명하기 위해서는 대상이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의 방법을 동원해서 나타나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인지의 한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말씀했습니다. “영은 살과 뼈가 없되 인자는 있느니라.” 그렇다면 예수님이 살과 뼈가 있을까요? 부활하신 주님이 살과 뼈가 있어서 시공을 초월할까요?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 다음에는 제자들이 유대인을 두려워서 문을 꽁꽁 걸어 잠갔을 때에 주님은 나타나 “평안 할지어다.” 말씀하시면서 또한 기운을 내 부시면서 “성령을 받아라.” 라고 말씀한 것을 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누구십니까? 곧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올바로 깨달을 때 진정한 우리의 부활의 의미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믿지 않으니까 예수님께서는 조반 잡수시는 것을 함께 잡수시고 생선도 함께 잡수시는 모습을 제자에게 보이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활하신 다음에 예수님이 생선을 잡수시고 조반 식사를 하실 까요? 조반을 먹고 생선을 먹는 것은 사람이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다음에도 그와 같은 모습을 보이는 까닭은 부활 자체를 믿지 아니하기 때문에 저들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최대의 방법을 동원해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설명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 주일을 맞이해서 예수님의 부활자체에 대한 이해를 할 때에 우리의 부활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분은 본래의 육의 사람이 아니라 오직 영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영이시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라고 말씀했습니다. 영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육신을 입고 오셨던 분이신 것입니다. 십자가 사역을 통해서 그분은 육신을 벗어버린 것입니다. 그분은 오시기 전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부활절을 맞이해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것을 확실하고 올바로 알 때에 우리의 믿음이 신앙이 우리의 부활이 바로 알게 되고 깨닫게 되는 은혜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부활하셔서 시공을 초월하시고 역사 하신 모든 것은 오직 그분의 부활은 육체의 부활이 아니라 신령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영적인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영적인 존재는 시공을 초월합니다. 아무리 문을 걸어 잠갔어도 어떠한 상황이라도 주님은 우리 곁에 올 수 있는 능력자이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것을 올바로 이해할 때에 우리는 우리의 부활을 올바로 이해하십시다. 우리는 흙으로 되었으니 흙으로 된 것은 흙으로 돌아갑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를 살리는 것은 육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영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할 때에 많은 사람들이 무덤에서 일어나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는 이상을 예수님의 제자는 보고 성경에 기록한 것을 봅니다.
여러분! 그들이 육체의 실존이 부활한 것 아닙니다. 육체의 실존이 부활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사도들이 아니라 부활 자들이 더 열심히 전파하고 애쓰고 수고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간 부활 자들이 그 후에 사역과 그들의 삶과 행위는 하나도 성경에 기록되지 아니한 것을 볼 때에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이상 중에서 보았던 것을 우리의 부활을 알고 깨닫게 하기 위해서 설명해 주기 위한 말씀이었던 것을 우리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는 믿음이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는 믿음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우리의 부활은 어떻게 부활할까요? 우리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부활하심과 똑 같이 부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했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고 했습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부활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단순한 예수님의 부활로만 알 것이 아니라 마지막 날 우리를 살리겠다는 말씀대로 우리의 부활을 제시해 주시고 약속하신 사건이 그리스도의 부활인 것입니다. 이 부활은 아무에게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믿는 자에게 라고 했습니다.
예수가 구원자임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허락한 다른 보혜사 성령의 은총을 입은 자들에게만 부활에 이르게 되고 부활에 이르게 된 자들에게만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 부활한 자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의 이름을 찾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되어 주시는 것은 부활한 자에게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하게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한 다음에 우리에게 부탁하시고 말씀한 말씀이 있습니다. 첫째는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향하여 부활의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부활의 증인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은 오직 그가 우리의 죄와 허물을 인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 죄를 사하시고 장사 지낸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성령으로 오시어서 우리 가운데 역사 하는 역사의 증인이 되어 달라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부탁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모두 다 부활의 증인이 되십시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상 명령의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또 말씀을 주십니다. “볼 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힐 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시는 그 은혜를 입어서 죄 가운데 있는 자가 아니라 의 가운데 있는 자! 세상을 향한 나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으로 바꾸어지는 그러한 우리 신앙의 변화가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위로부터 주시는 능력을 우리에게 입혀 주신다고 했습니다. 위로부터 주시는 능력이란 어떤 능력일까요? 이 능력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바꾸어지는 능력인 것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자가 삶을 얻고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자가 생명의 축복을 얻는 이것은 우리에게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허락하는 선물인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입혀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 부활하셔서 약속하신 말씀을 우리 마음 판 깊이 새기시면서 초대교회 사도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아버지께서 허락한 성령을 입을 때까지 참고 인내하며 기도해서 급기야 오순절 날 마가 다락방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성령으로 그들 가운데 오셔서 역사한 성령의 역사가 오늘 우리를 만들었고 우리를 그리스도인이 되게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를 입었으면 오직 복음의 사역을 위해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사역을 위해서 앞으로 전진 해 나가는 진정한 부활의 증인이 되시기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