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정모(64·서울 강서구)씨는 지난해부터 시력이 떨어졌지만 나이 탓으로 넘기다가, 올 들어 두통과 함께 앞이 뿌옇게 보이는 증상이 동반되자 안과를 찾았다. 진단 결과는 거짓비늘증후군 때문에 안압이 급격히 상승해 발생한 녹내장 초기였다.
녹내장은 보통 안압이 올라가거나 시신경 혈류량이 줄어들면서 생긴다. 다른 이유 없이 발병하는 1차성 녹내장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엉뚱한 질병이 녹내장을 일으키는 경우도 적잖다.
▷거짓비늘증후군=거짓비늘증후군이 생기면 30~60%는 녹내장으로 진행한다. 거짓비늘증후군이란 수정체 표면이 비늘처럼 벗겨지거나 홍채에 흰 물질이 쌓여서 안압이 높아지거나 시신경이 손상되는 질병이다. 서울대병원 안과 박기호 교수는 "거짓비늘증후군 때문에 생긴 녹내장은 일반적인 녹내장보다 진행이 빠르고 안압이 더 올라간다"며 "아시아에서는 특히 우리나라에 이 병이 많은 편이며, 유병률은 1% 내외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거짓비늘증후군이 있으면 앞이 뿌옇게 보이면서 눈이 충혈되고 두통이 생긴다. 50세 이상에서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안과에서 세극 등 현미경으로 안구 표면을 검사해 봐야 한다. 박 교수는 "거짓비늘증후군이 녹내장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막는 근본적인 방법은 없지만, 안압을 낮추는 약물을 써서 녹내장 발병을 최대한 억제한다"고 말했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위장 질환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이 녹내장 위험도 높인다. 박기호 교수팀은 성인 1220명을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보균자 그룹과 그렇지 않은 그룹으로 나눠 녹내장 발생률을 비교했다. 그 결과, 헬리코박터 그룹의 녹내장 발병률은 10.2%로 정상 그룹(5.9%)보다 높았다. 박 교수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에 감염되면 염증 반응과 혈관을 수축하는 물질의 분비가 활발해지면서 시신경 주위 혈관의 혈류량이 줄어들어 녹내장 위험이 커진다"며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에 감염된 40대 이상은 매년 한 번 안과 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알츠하이머성 치매=알츠하이머성 치매가 있으면 녹내장 발병 위험이 7배 높아진다. 누네안과병원 홍영재 원장은 "알츠하이머성 치매와 녹내장은 나이가 들고 신경이 퇴화하면서 발병한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알츠하이머성 치매 환자의 뇌 조직을 손상시키는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이 눈의 신경세포까지 손상시키기 때문에 치매가 오면 녹내장이 증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