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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신목사 (영락교회)
가. 고난(36-38)
1. 평화의 왕께서 예루살렘에 들어 가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왕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는 것을 기뻐하고 환영했습니다.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고, 대단한 행진 행렬이 형성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온 성안에 소동이 일어났습니다(마 21:10). 많은 사람들이 옷을 깔거나 흔들면서, 종려나무 가지를 깔거나 흔들면서 그 왕을 환영하였고, 어린아이들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마 21:15)” 노래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 메시아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을 모두 다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이나 서기관들,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예수님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음모를 꾸몄습니다. 음모를 꾸미는 중에 예수님의 제자 한 사람과 접선이 되었습니다. 그 제자는 자기 선생님을 배신하고, 선생님을 돈 받고 팔아 넘겼습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음모는 이제 결정적인 기회를 맞게 되었고, 이제 예수님을 죽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2.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점점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었고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으로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그 밤이 십자가를 눈 앞에 둔 마지막 밤인 것을 아셨기 때문에, 기도로 준비하기 위하여 겟세마네에 가셨습니다. 겟세마네는 기도하러 자주 가시던 곳이기 때문에 가룟 유다도 잘 아는 장소였습니다. 겟세마네란 말의 뜻은 기름 짜는 틀, 맷돌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그곳에서 몸부림치며, 온 몸과 마음을 쥐어짜는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기도가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기도만큼 힘든 사역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을 세워 가면서 온 몸이 다 쥐어짜지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할 수 없는 슬픔과 고민을 갖고 계셨습니다. 얼마나 그 고민이 심했던지,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38)”고 제자들에게 심경을 토로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삶을 살아갈 때에 여러 가지 고민을 안고 살아갑니다. 어떤 학생들은 성적이 떨어져서 고민하다 자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자기 마음의 답답한 것을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점점 나이가 들고 사회 속에 살아가면서 학업 성적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직장생활 하다가 실직하게 되었을 때에 그 고민이 얼마나 큽니까? 사업하다가 그 사업이 무너지게 되었을 때에 그 고민이 얼마나 큽니까?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인간관계의 갈등 때문에 고민을 겪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고민 중에 가장 큰 고민은 죽음을 눈 앞에 두었을 때입니다. 그 고민은 말할 수 없이 가장 큰 고민일 것입니다. 만약에 당신은 얼마 밖에 살 수 밖에 없다는 사형선고를 받았다면 내 앞에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고민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내 존재가 밑바닥에서부터 무너지는 현상을 두고 고민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죽음을 바로 눈앞에 두고,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고민을 하셨습니다. 가장 비참한 죽음,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 가장 수치스러운 죽음을 눈앞에 두고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고민을 하셨습니다. 육체적 고통을 생각하면 끔찍했고, 내가 죽어지고 나를 포기하는 마음의 고통도 너무나 컸습니다. 낙심이 되고 좌절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받는 고통이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그 고통을 혼자서 외롭게 짊어지기가 너무나 힘이 들었습니다. 두려웠습니다. 슬펐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나와 함께 있자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참 인간이십니다.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가지신 분이십니다. 우리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인간적인 면이 많이 나옵니다만 오늘 이 순간이야말로 예수님의 인간적인 면이 가장 많이 드러나는, 예수님의 가장 연약한 점을 드러내는, 연약함 속에서 인간적인 면이 나타나는 순간입니다.
3. 예수님뿐만 아니라 제자들도 나름대로 고민이 많았습니다. 제자들도 불안하고 낙심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점점 가까이 올 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이별할 것, 고난 당하실 것, 제자들이 흩어질 것을 반복하여 말씀하셨습니다(26:31). 제자들은 내심 예루살렘에 가면 예수님은 왕이 되시고, 자기들은 높은 자리에 앉고, 큰 성공을 거둘 것이라는 기대를 했는데, 그런 기대는커녕, 그만 엄청난 고난이 닥칠 것이라는 불길한 생각이 그들 가운데서 점점 커졌습니다. 낙심과 좌절, 패배주의가 그들 속에 만연되었고, 그들 미래에 대한 불안이 그들 속에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피곤하였습니다. 하루종일 예수님과 함께 사역을 하고, 유월절 만찬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쉬지 못한 채 밤늦게 예수님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왔기 때문에 심신이 피곤한 상태였습니다.
나. 깨어있어 기도하라(39-44)
1. 이렇게 낙심되고 좌절된 상태 속에 빠져 있으면, 시험에 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탄의 계교에 말려들어서 패배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있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41).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 말씀에 거듭 거듭해서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38,40,41). ‘깨어 있으라’는 말은 잠자지 말고 깨어 있으라는 뜻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슬픔과 두려움에 빠져 있지 말고 거기서 벗어나서 정신차리라는 말씀입니다. 게으름과 피곤에 빠져 있지 말고 깨어서 정신차리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연약함에 사로 잡혀서 주저앉지 말고 정신차리고 그것을 극복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민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인간의 연약함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인간의 연약함에 빠져있지 말고 ‘정신차리고 깨어서 이제는 하나님께로 향해라, 하나님께로 향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해라,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라,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하나님께로부터 힘을 얻으라’는 말씀입니다. ‘깨어있으라’는 말은 고민 중에 빠졌던 것으로부터 정신차리고 일어나라는 말씀입니다. ‘기도하라’는 말씀은 이제는 하나님께로 향해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라는 말씀입니다.
2. 그러나 제자들은 깨어 있는데 실패했습니다. 기도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인간의 연약함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피곤과 잠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낙심과 좌절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인간의 연약함과 무능함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육신의 피곤과 게으름에 그냥 빠져 버렸습니다. 인간의 비겁함과 좌절함에 그냥 주저앉았습니다. 베드로는 바로 얼마 전에,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26:33)”,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35)”라고 호언장담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신앙은 말뿐인 신앙이요, 마음뿐인 신앙이었습니다. 자기 말대로 믿음대로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인간의 연약함을 다 아셨습니다. 인간의 무능력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41)” 탄식하셨습니다. 깨어있는데 실패한 제자들, 기도하는데 실패한 제자들은 예수님께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3. 그러나 예수님은 홀로 깨어 기도하셨습니다. 곁에서 예수님을 기도로 돕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홀로 예수님은 기도하고 또 기도하셨습니다. 똑같은 기도제목을 가지고 거듭거듭 기도하셨습니다. 처음에 기도를 시작할 때는 인간의 연약함이 앞섰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이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고난의 잔, 죽음의 잔을 마신다는 것이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이 고난을 피하고 싶다고 하나님께 말씀드렸습니다(39). 그러나 예수님은 이 모든 선택과 결정은 나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인정을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선택하고 결정할 일이었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께 매달렸고 이 고난의 잔을 피하게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거듭하면 할수록, 예수님의 기도는 나 중심의 기도에서 하나님 중심의 기도로 그 무게 중심이 옮겨갔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마다 그 고난과 고통이 가벼워진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 자신의 의지와 생각과 욕심은 전부 내려놓게 되고, 하나님 아버지께 전적으로 내 맡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큰 뜻과 계획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계획에 전부 다 내 맡겼습니다.
4. 처음에는 하나님의 뜻보다 내 뜻을 앞세웠지만, 그러나 기도가 거듭되면서 하나님의 뜻을 내 뜻보다 앞세우게 되었습니다. 점차 하나님의 뜻이 분명해졌습니다. 십자가 고난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십자가를 통해 인간의 죄를 사하시고,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사랑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그 사랑으로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또 하나님의 계획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 십자가는 단순한 고난이 아니고 부활로 가는, 하나님께서 높이시고 영광을 거두게 하시는 한 과정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32).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살리시리라는 확신, 그를 다시 높이시리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금 당장 눈앞에는 고난이 닥쳐와 있지만, 이 고난을 넘어서서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삶을 돌이켜 보면, 우리는 우리들의 삶 속에 있는 것들에 빠져서 살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일에 빠져 삶을 살아갑니다. 돈에 빠져 삶을 살아가고, 지위와 성공에 빠져서 삶을 살아갑니다. 또 많은 분들이 유흥과 부패하고 타락한 일들에 빠져서 삶을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술에, 혹은 마약에 빠져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컴퓨터 게임, 인터넷 메일, 채팅, 포르노에 빠져 살아갑니다. 온 국민이 스포츠에 빠져 살아가는 경우도 봅니다. 또 우리는 자주 두려움과 공포와 슬픔을 느끼면서 거기에 빠져 살아갑니다. 고민과 근심과 염려 가운데 빠져 살아갑니다. 어떤 때는 피곤에, 또 어떤 때는 게으름에 빠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 말씀에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말씀하십니다. 고민에 빠지고, 일에 빠지고, 세상 속에 빠지면 마귀의 시험에 걸릴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에게 권면하고 명령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어야 되는 것입니다. 고민하고, 중독되고, 빠져 있는 데서부터 깨어서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인간의 연약함에 빠져있던 데서부터 깨어서 극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삶을 돌이켜 보십시오. 어디에 빠져 있습니까? 일에 빠져 있습니까, 고민에 빠져 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에 우리 주님의 권면을 받아들여서 우리 주님이 말씀하시는 그대로 빠져있던 데에서부터 깨어서 정신 차리고 벗어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 향하십시오.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복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시고 구원하시려 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확신을 가지게 될 때에 우리의 연약함을 극복할 수 있고,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게 됩니다.
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45-46)
우리 예수님께서 확신을 얻은 다음에 고난을 향해 담대하게 일어났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46절에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다음에 고난이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기도하신 다음에 확신을 얻고 고난을 향해서 담대하게 일어나 나갈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마치 전쟁터로 나가는 전사같이 고난을 마주 대하여 정면대응을 하게 되었습니다. 십자가로 향하여 정면으로 당당히 마주 대하여 나아가셨습니다. 기도로 이미 하나님의 뜻을 확신하고, 기도로 이미 고난을 이겨낸 것입니다. 기도로 이미 승리하였고, 이제는 담대하게 행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캐롤 버리스라는 부인이 근육 무력증에 걸렸습니다. 이 병은 근육이 점점 무력해져서 활동을 못하게 되고, 마지막에는 죽게 되는 아주 희귀한 병입니다. 그 병을 고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약물을 과다하게 투여하다 보니까 머리카락이 모두 빠지고, 온 몸과 얼굴이 퉁퉁 부었습니다.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니까 한심하고 비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낙심이 되고 좌절이 되었습니다. 때로 심장과 호흡에 장애가 일어날 때마다 그대로 죽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주변 사람의 짐이 되었다는 사실에 너무나 비참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자기 스스로 벽을 높이 쌓고, 혼자 고립된 삶을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교회에서 성가대원들이 찾아와 같이 찬송하며 합심하여 통성으로 기도했습니다. 성가대원들이 같이 통성 기도할 때에 이 부인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고 간절한 마음으로 같이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같이 찬송하고 기도하는 속에는 이런 능력의 역사들이 일어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돌아간 다음에, ‘기도하고 믿었으면, 이제는 실천하고 행동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기 주위에 있는 좌절과 어두움의 그림자를 다 물리치고, 하나님이 주신 좋은 것들만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처지 가운데 놓여 있지만, 그러나 휠체어 타고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면, 다른 어려운 사람, 혹은 병원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위로하고 사랑을 베풀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점점 기도한 대로 실천하고 삶을 살아가다 보니까 처음에는 힘들고 괴로웠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몸이 좋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병이 두렵지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드린대로 실천하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여 삶을 살아가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하면, 성령께서 우리 마음 가운데 확신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확신,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시고 구원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확신을 얻은 사람은 앉아 있지 않습니다. 일어납니다. 담대하게 세상 가운데 나가서 자기가 기도한 그대로 실천하며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부터 고난 주간이 시작됩니다. 고난 주간이 끝나면 부활절입니다. 여러분, 이 고난 주간에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고민에 빠져 있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일에, 고민에 빠져 있던 데에서부터 깨어서 정신차려서 일어나시고 하나님께로 향하시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실 때에 하나님께서 여러분 속에 함께 하시고 도와주시는 것을 확신하고, 그리고는 담대하게 세상 속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가. 고난(36-38)
1. 평화의 왕께서 예루살렘에 들어 가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왕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는 것을 기뻐하고 환영했습니다.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고, 대단한 행진 행렬이 형성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온 성안에 소동이 일어났습니다(마 21:10). 많은 사람들이 옷을 깔거나 흔들면서, 종려나무 가지를 깔거나 흔들면서 그 왕을 환영하였고, 어린아이들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마 21:15)” 노래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 메시아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을 모두 다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이나 서기관들,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예수님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음모를 꾸몄습니다. 음모를 꾸미는 중에 예수님의 제자 한 사람과 접선이 되었습니다. 그 제자는 자기 선생님을 배신하고, 선생님을 돈 받고 팔아 넘겼습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음모는 이제 결정적인 기회를 맞게 되었고, 이제 예수님을 죽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2.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점점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었고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으로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그 밤이 십자가를 눈 앞에 둔 마지막 밤인 것을 아셨기 때문에, 기도로 준비하기 위하여 겟세마네에 가셨습니다. 겟세마네는 기도하러 자주 가시던 곳이기 때문에 가룟 유다도 잘 아는 장소였습니다. 겟세마네란 말의 뜻은 기름 짜는 틀, 맷돌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그곳에서 몸부림치며, 온 몸과 마음을 쥐어짜는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기도가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기도만큼 힘든 사역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을 세워 가면서 온 몸이 다 쥐어짜지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할 수 없는 슬픔과 고민을 갖고 계셨습니다. 얼마나 그 고민이 심했던지,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38)”고 제자들에게 심경을 토로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삶을 살아갈 때에 여러 가지 고민을 안고 살아갑니다. 어떤 학생들은 성적이 떨어져서 고민하다 자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자기 마음의 답답한 것을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점점 나이가 들고 사회 속에 살아가면서 학업 성적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직장생활 하다가 실직하게 되었을 때에 그 고민이 얼마나 큽니까? 사업하다가 그 사업이 무너지게 되었을 때에 그 고민이 얼마나 큽니까?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인간관계의 갈등 때문에 고민을 겪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고민 중에 가장 큰 고민은 죽음을 눈 앞에 두었을 때입니다. 그 고민은 말할 수 없이 가장 큰 고민일 것입니다. 만약에 당신은 얼마 밖에 살 수 밖에 없다는 사형선고를 받았다면 내 앞에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고민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내 존재가 밑바닥에서부터 무너지는 현상을 두고 고민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죽음을 바로 눈앞에 두고,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고민을 하셨습니다. 가장 비참한 죽음,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 가장 수치스러운 죽음을 눈앞에 두고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고민을 하셨습니다. 육체적 고통을 생각하면 끔찍했고, 내가 죽어지고 나를 포기하는 마음의 고통도 너무나 컸습니다. 낙심이 되고 좌절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받는 고통이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그 고통을 혼자서 외롭게 짊어지기가 너무나 힘이 들었습니다. 두려웠습니다. 슬펐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나와 함께 있자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참 인간이십니다.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가지신 분이십니다. 우리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인간적인 면이 많이 나옵니다만 오늘 이 순간이야말로 예수님의 인간적인 면이 가장 많이 드러나는, 예수님의 가장 연약한 점을 드러내는, 연약함 속에서 인간적인 면이 나타나는 순간입니다.
3. 예수님뿐만 아니라 제자들도 나름대로 고민이 많았습니다. 제자들도 불안하고 낙심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점점 가까이 올 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이별할 것, 고난 당하실 것, 제자들이 흩어질 것을 반복하여 말씀하셨습니다(26:31). 제자들은 내심 예루살렘에 가면 예수님은 왕이 되시고, 자기들은 높은 자리에 앉고, 큰 성공을 거둘 것이라는 기대를 했는데, 그런 기대는커녕, 그만 엄청난 고난이 닥칠 것이라는 불길한 생각이 그들 가운데서 점점 커졌습니다. 낙심과 좌절, 패배주의가 그들 속에 만연되었고, 그들 미래에 대한 불안이 그들 속에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피곤하였습니다. 하루종일 예수님과 함께 사역을 하고, 유월절 만찬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쉬지 못한 채 밤늦게 예수님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왔기 때문에 심신이 피곤한 상태였습니다.
나. 깨어있어 기도하라(39-44)
1. 이렇게 낙심되고 좌절된 상태 속에 빠져 있으면, 시험에 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탄의 계교에 말려들어서 패배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있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41).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 말씀에 거듭 거듭해서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38,40,41). ‘깨어 있으라’는 말은 잠자지 말고 깨어 있으라는 뜻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슬픔과 두려움에 빠져 있지 말고 거기서 벗어나서 정신차리라는 말씀입니다. 게으름과 피곤에 빠져 있지 말고 깨어서 정신차리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연약함에 사로 잡혀서 주저앉지 말고 정신차리고 그것을 극복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민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인간의 연약함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인간의 연약함에 빠져있지 말고 ‘정신차리고 깨어서 이제는 하나님께로 향해라, 하나님께로 향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해라,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라,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하나님께로부터 힘을 얻으라’는 말씀입니다. ‘깨어있으라’는 말은 고민 중에 빠졌던 것으로부터 정신차리고 일어나라는 말씀입니다. ‘기도하라’는 말씀은 이제는 하나님께로 향해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라는 말씀입니다.
2. 그러나 제자들은 깨어 있는데 실패했습니다. 기도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인간의 연약함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피곤과 잠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낙심과 좌절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인간의 연약함과 무능함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육신의 피곤과 게으름에 그냥 빠져 버렸습니다. 인간의 비겁함과 좌절함에 그냥 주저앉았습니다. 베드로는 바로 얼마 전에,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26:33)”,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35)”라고 호언장담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신앙은 말뿐인 신앙이요, 마음뿐인 신앙이었습니다. 자기 말대로 믿음대로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인간의 연약함을 다 아셨습니다. 인간의 무능력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41)” 탄식하셨습니다. 깨어있는데 실패한 제자들, 기도하는데 실패한 제자들은 예수님께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3. 그러나 예수님은 홀로 깨어 기도하셨습니다. 곁에서 예수님을 기도로 돕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홀로 예수님은 기도하고 또 기도하셨습니다. 똑같은 기도제목을 가지고 거듭거듭 기도하셨습니다. 처음에 기도를 시작할 때는 인간의 연약함이 앞섰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이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고난의 잔, 죽음의 잔을 마신다는 것이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이 고난을 피하고 싶다고 하나님께 말씀드렸습니다(39). 그러나 예수님은 이 모든 선택과 결정은 나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인정을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선택하고 결정할 일이었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께 매달렸고 이 고난의 잔을 피하게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거듭하면 할수록, 예수님의 기도는 나 중심의 기도에서 하나님 중심의 기도로 그 무게 중심이 옮겨갔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마다 그 고난과 고통이 가벼워진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 자신의 의지와 생각과 욕심은 전부 내려놓게 되고, 하나님 아버지께 전적으로 내 맡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큰 뜻과 계획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계획에 전부 다 내 맡겼습니다.
4. 처음에는 하나님의 뜻보다 내 뜻을 앞세웠지만, 그러나 기도가 거듭되면서 하나님의 뜻을 내 뜻보다 앞세우게 되었습니다. 점차 하나님의 뜻이 분명해졌습니다. 십자가 고난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십자가를 통해 인간의 죄를 사하시고,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사랑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그 사랑으로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또 하나님의 계획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 십자가는 단순한 고난이 아니고 부활로 가는, 하나님께서 높이시고 영광을 거두게 하시는 한 과정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32).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살리시리라는 확신, 그를 다시 높이시리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금 당장 눈앞에는 고난이 닥쳐와 있지만, 이 고난을 넘어서서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삶을 돌이켜 보면, 우리는 우리들의 삶 속에 있는 것들에 빠져서 살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일에 빠져 삶을 살아갑니다. 돈에 빠져 삶을 살아가고, 지위와 성공에 빠져서 삶을 살아갑니다. 또 많은 분들이 유흥과 부패하고 타락한 일들에 빠져서 삶을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술에, 혹은 마약에 빠져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컴퓨터 게임, 인터넷 메일, 채팅, 포르노에 빠져 살아갑니다. 온 국민이 스포츠에 빠져 살아가는 경우도 봅니다. 또 우리는 자주 두려움과 공포와 슬픔을 느끼면서 거기에 빠져 살아갑니다. 고민과 근심과 염려 가운데 빠져 살아갑니다. 어떤 때는 피곤에, 또 어떤 때는 게으름에 빠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 말씀에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말씀하십니다. 고민에 빠지고, 일에 빠지고, 세상 속에 빠지면 마귀의 시험에 걸릴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에게 권면하고 명령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어야 되는 것입니다. 고민하고, 중독되고, 빠져 있는 데서부터 깨어서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인간의 연약함에 빠져있던 데서부터 깨어서 극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삶을 돌이켜 보십시오. 어디에 빠져 있습니까? 일에 빠져 있습니까, 고민에 빠져 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에 우리 주님의 권면을 받아들여서 우리 주님이 말씀하시는 그대로 빠져있던 데에서부터 깨어서 정신 차리고 벗어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 향하십시오.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복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시고 구원하시려 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확신을 가지게 될 때에 우리의 연약함을 극복할 수 있고,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게 됩니다.
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45-46)
우리 예수님께서 확신을 얻은 다음에 고난을 향해 담대하게 일어났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46절에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다음에 고난이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기도하신 다음에 확신을 얻고 고난을 향해서 담대하게 일어나 나갈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마치 전쟁터로 나가는 전사같이 고난을 마주 대하여 정면대응을 하게 되었습니다. 십자가로 향하여 정면으로 당당히 마주 대하여 나아가셨습니다. 기도로 이미 하나님의 뜻을 확신하고, 기도로 이미 고난을 이겨낸 것입니다. 기도로 이미 승리하였고, 이제는 담대하게 행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캐롤 버리스라는 부인이 근육 무력증에 걸렸습니다. 이 병은 근육이 점점 무력해져서 활동을 못하게 되고, 마지막에는 죽게 되는 아주 희귀한 병입니다. 그 병을 고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약물을 과다하게 투여하다 보니까 머리카락이 모두 빠지고, 온 몸과 얼굴이 퉁퉁 부었습니다.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니까 한심하고 비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낙심이 되고 좌절이 되었습니다. 때로 심장과 호흡에 장애가 일어날 때마다 그대로 죽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주변 사람의 짐이 되었다는 사실에 너무나 비참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자기 스스로 벽을 높이 쌓고, 혼자 고립된 삶을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교회에서 성가대원들이 찾아와 같이 찬송하며 합심하여 통성으로 기도했습니다. 성가대원들이 같이 통성 기도할 때에 이 부인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고 간절한 마음으로 같이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같이 찬송하고 기도하는 속에는 이런 능력의 역사들이 일어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돌아간 다음에, ‘기도하고 믿었으면, 이제는 실천하고 행동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기 주위에 있는 좌절과 어두움의 그림자를 다 물리치고, 하나님이 주신 좋은 것들만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처지 가운데 놓여 있지만, 그러나 휠체어 타고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면, 다른 어려운 사람, 혹은 병원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위로하고 사랑을 베풀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점점 기도한 대로 실천하고 삶을 살아가다 보니까 처음에는 힘들고 괴로웠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몸이 좋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병이 두렵지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드린대로 실천하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여 삶을 살아가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하면, 성령께서 우리 마음 가운데 확신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확신,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시고 구원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확신을 얻은 사람은 앉아 있지 않습니다. 일어납니다. 담대하게 세상 가운데 나가서 자기가 기도한 그대로 실천하며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부터 고난 주간이 시작됩니다. 고난 주간이 끝나면 부활절입니다. 여러분, 이 고난 주간에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고민에 빠져 있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일에, 고민에 빠져 있던 데에서부터 깨어서 정신차려서 일어나시고 하나님께로 향하시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실 때에 하나님께서 여러분 속에 함께 하시고 도와주시는 것을 확신하고, 그리고는 담대하게 세상 속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