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의 경제대국이자 가톨릭 국가인 멕시코의 총면적은 195만8천㎢로 한반도 면적의 약 9배에 이른다.
기원전 올멕카인들이 처음으로 조직적인 문명을 이룬 뒤 1519년 스페인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가 무력을 앞세워 멕시코를 정복하기 전까지 마야와 톨테카, 아스테가 문명 등 원주민 문화가 차례로 발전했다.

300년가량 스페인 식민통치를 거친 뒤 1810년 멕시코 독립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겔 이달고 신부에 의해 독립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됐으며 1822년 과달루에 빅토리아 장군을 초대 대통령으로 첫 공화국이 수립됐다.

이후 외세를 등에 업은 기득권 세력과 농민. 원주민들로 구성된 혁명세력간의 갈등과 무력충돌, 미국과의 영토전쟁 등 반세기 이상 혼란기를 거치다 1910년 멕시코혁명의 발발과 함께 포르피리오 디아스 대통령이 축출되면서 근대화시기로 접어들었다.

특히 미국은 멕시코의 정치. 경제적 혼란기였던 19세기말 자국 산업 보호를 명목으로 멕시코와 전쟁을 일으켜 오늘날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해 콜로라도, 텍사스, 애리조나, 플로리다 등 과거 멕시코의 영토를 강제 합병했다.

이후 제도혁명당(PRI)의 71년 일당독재동안 각종 경제안정 및 개혁 정책을 취했으나 원주민. 농민 우민화 정책에 따른 빈부격차 확대와 부정부패, 대미 의존도가 높은 교역구조 등으로 경제의 부침이 거듭돼 왔다.

1억 멕시코 인구 가운데 혼혈(메스티소)이 약 65%를 차지하며, 원주민(인디오)20%, 백인이 10% 가량에 이르며 백인을 비롯한 상류층 20%가 전체 국부의 80%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공용어는 스페인어. 세계 5대 산유국이면서도 석유수출국기구(OPEC) 비회원국인 멕시코는 연간 160억 달러의 원유수출과 함께 풍부한 관광자원과 천연자원으로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지닌 나라이다.

1. 멕시코 식민통치 300년

스페인은 1521년에 멕시코에서 식민통치를 시작하면서 초급의 속도로 영토를 확장했다. 스페인은 멕시코 남쪽의 유카탄반도를 기점으로 하여 멕시코 본토와 북쪽으로 진격하여 현재의 미국의 텍사스, 캘리포니아와 뉴멕시코, 애리조나와 네바다 그리고 유타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영토를 확보하여 남미(latin america)에서 제일 크고 제일 넓은 땅을 소유한 대국으로써 식민통치를 하면서 300년 역사를 과시하고 있었다.

멕시코 원주민의 역사와 스페인의 멕시코 식민통치의 역사를 간략하게 되돌아보면 다음과 같다.

기원전 3,500년경부터 알라스카 베링 해협이 육지로 연결되어 있을 때 아시아의 몽골족이 멕시코에 정착하여 옥수수 농사와 조상숭배 제사를 행하는 ‘고전기 문명시대’를 열어 놓았다. 오늘의 멕시코 원주민들이 옥수수를 주식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마도 그 때부터 전해 내려오고 있는 인디오의 전통이라고 여겨진다.

올맥문명시대(기원전 1200-900), 마야문명시대(기원후 250-900)를 지나 그 후에 멕시코 전역에 원주민 왕국들이 이곳저곳에 다양하게 건설되어 저들끼리의 태평시대를 대대손손 누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1521년에 에스파냐 탐험대의 H코르테스 (Hernan Cortes)를 선두로 한 무장한 침입자들이 멕시코를 정복하였다. 도끼와 활을 가지고 있는 원주민들은 화약으로 총과 대포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무법자 침입군들을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그 후부터 300년 동안의 난폭한 에스파냐 식민지 시대가 시작되었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원주민을 통치하기위하여 무자비하게 살육, 강탈과 함께 노예노동을 강요했다. 식민통치자들은 자기들의 말을 고분고분히 잘 듣지 않는 인디언들을 마구 살해했다. 그때 흘린 인디언들의 피는 강이 될 정도로 엄청난 살육의 역사였다.

1535년에 에스파냐 국왕은 ‘부왕 Virrey"를 멕시코에 파송했는데 ‘부왕’은 막대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왕권의 대행자였다.

에스파냐 식민통치 300년 동안에 멕시코의 민중들의 구성은 4개의 부류로 되고 있었다. 첫째, ‘물라토 Mulato"는 백인과 흑인의 혼혈족이었고, 둘째, ‘메스티소 Mestizo" 는 백인과 인디오의 혼혈족이었고, 셋째, ‘크리오요 Criollo"는 백인혈통을 이어 받은 혼혈되지 않은 순종 백인들이었고, 그리고 넷째, ‘피온(indigena라고 멕시코에서는 부르는 것 같음. pion이란 단어는 일상생활에서 별로 들어본 적이 없음)’은 원주민 혈통을 이어 받은 혼혈되지 않은 순종 인디오들이었다. 이런 부류는 중남미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유사한 현상으로 나타났다.

부왕의 통치가 오래 계속되는 동안에 부왕의 왕권은 날로 쇠약해 졌으며 민중의 4개의 부류들의 부류간의 불화와 갈등은 극에 이르고 있었다. 이중에 ‘크리오요 Criollo’의 부류에 속하는 백인들이 모든 면에서 주권행사를 하고 있었다. 스페인으로부터 멕시코가 독립을 쟁취할 때 앞장선 것도 ‘크리오요’들 이었다.

그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동향이었는데, 불란서와 스페인의 전쟁에서 나폴레옹의 승리는 결정적이었다. 불란서와의 전쟁에서 스페인의 패전은 길고 긴 300년 동안의 식민통치의 종말을 예고하는 징표로 작용하고 있었다.

멕시코 원주민들의 자랑스러운 고대문명의 터 위에 스페인 침입자들은 십자가를 세워 놓고 300년 동안 잔인한 식민통치를 했다. 그러나 스페인 침략자들은 역사적 변천에 따라 드디어 막을 내리고 멕시코를 떠나 스페인으로 돌아갔다.

다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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