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은 죽음을 말합니다. 죽은 칼라를 나타냅니다. 그러나 산 사람은 살아있음을 즉 생명을 말합니다. 그리고 생명의 칼라로 생명의 향기로 풍성한 열매로 정체를 밝힙니다.

예수님이 성도 안에 거하면 성도의 눈에 예수님의 생명이 있습니다. 입에도 예수님의 생명이 있습니다. 마음에도 생각에도 예수님의 생명이 있습니다. 그 영에도 예수님의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모든 삶의 적극적인 도구인 손과 발에는 임마누엘의 능력이 역사합니다. 즉 삶의 현장 위에 예수님의 생명의 영향력이 나타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능력도 눈 속에 있고, 입 속에도 있고, 가슴 속에도 있고, 마음과 생각 속에도 충만하게 있습니다. 손과 발의 동적 삶에도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삶을 사는 자들의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주님과의 관계성의 결핍입니다. 그런 자는 공동생활의 결핍 자 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약속 따로 실천 따로, 예배는 따로 생활은 따로 입니다. 믿음 따로 생활 따로의 이중적 삶입니다.

우리의 입으로 성령의 역사하심이 나타나면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생산력이 있습니다. 감화력이 있습니다. 견인력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친화력을 통하여 죽음의 사람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 견인합니다.

죽은 사람은 찬양할 수 없습니다. 기도할 수 없습니다. 움직일 수도 없습니다. 삶의 행복도, 축복도, 기쁨도, 산 소망도, 승리의 감격도 없습니다. 죽음은 죽음 그 자체입니다.

닫힌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다 닫혀 있습니다. 무덤의 문화를 조성하고, 무덤 속에서 비참하게 살아갑니다. 처절한 지옥의 삶이 기다리는 줄 모릅니다.

빛이 오면 어둠이 발각되고 사라집니다. 그리고 마음의 창문을 열고 신선한 살맛나는 공기를 영접합니다. 그동안 함께 친구처럼 지내던 죄악의 썩은 냄새인 악취들을 몰아냅니다. 함께 살았던 죄악의 먼지쓰레기들을 버리기 시작합니다. 축복의 길, 기쁨의 길을 가로 막았던 거미줄을 제거합니다. 빛이 모든 것을 새롭게 해주고 빛이 새로운 방향을 가르쳐 줍니다. 죽음의 음침한 유령 같은 집이 새롭게 단장되고, 변화되어 생명의 향기가 진동하는 새 집으로 살아갑니다. 그 집은 웃음이 가득하고 이웃 친구들의 즐거운 향연도, 축제도 벌리는 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