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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에서는 기본적으로 자살에 대한 금지 조항이나 엄격한 규율을 직접적으로 명시한 것은 없으나 긍정적으로 사람의 생명에 대한 존중과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창 1:26-27)을 소중히 여기라는 메시지를 통하여 자살을 간접적으로 금지한다. 사람의 생명 자체의 기원에 대하여 어떤 물질로 이루어진 기계적, 생물적 존재만이 아닌 인격적 형상을 가지고 태어난 고귀한 존재라는 것을 강조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다.” (창세기 5:1)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니 누구든지 사람을 죽인 자는 죽임을 당할 것이다.” (창세기 9:6)는 성서의 말씀을 보더라도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Image of God)을 가지고 태어났으므로 다른 사람을 해하는 것도 다른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행위로써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며 자신의 몸을 해치는 행위도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형상을 파손하는 행위로 간주하고 있다.

     신학적 입장에 따라 에덴동산에서 인간이 타락한 이후 하나님의 형상이 온전하게 남아있는 가에 대한 논쟁이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형상은 모든 인간이게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 인간성의 이 기본적 형식 (하나님의 형상)은 죄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상실되지 않았다. 달리 말하여 하나님의 형상은 타락한 인간에게도 남아 있다.”

     기독교의 십계명 중 6번 째 계명인 살인하지 말라는 명령은 다른 사람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훼손하지 말고 생명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라는 말이다. “무릇 사람이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창세기 9:6) 다른 사람을 해치는 행위에 대한 경고를 내리고 있고 또한 자신의 목숨의 소중함을 다음의 성서 말씀을 통해 보여 준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마태복음 16:26)  예수는 자신을 잡으러 오는 군사를 그의 제자 베드로가 검으로 그 군사의 귀를 베고 죽이려하자 예수는 오히려 상처 난 귀를 치료하시고 베드로에게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마태26:51-52)고 하여 생명에 대한 존경을 나타낸다.
    
기독교에서 생명은 무엇보다도 귀한 것이고 그 생명에는 단순하게 생물학적 유전 정보를 간직하고 있거나 화학적 합성이나 심리적 역동들로만 구성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계속 하나님과 인격적 만남을 요구하고 그 요구에 응답하는 존재로 이해한다. 이러한 이해에 기반하여 자신의 생명을 인위적 수단으로 앗아간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 안에 있는 하나님 형상을 파괴하는 행동으로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교만과 반역의 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욥의 자살유혹 극복:
욥은 의롭게 사는 사람이었으나 자신의 재산과 자녀까지 잃고 자신의  몸까지 병에 걸리게 되자 아내가 “이래도 당신은 여전히 신실함을 지킬 겁니까?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서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욥기 2:9)고 자살을 권유하지만 욥은 “당신까지도 어리석은 여자들처럼 말하는구려. 우리가 누리는 복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는데, 어찌 재앙이라고 해서 못 받는다 하겠소?” (욥기 2:9-10)라는 대답으로 자살권유를 뿌리치고 오히려 처참한 고통을 참아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바울의 자살 만류: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기적이 일어나 감옥 문이 열려졌는데 자다 일어나 열린 감옥 문을 보고 죄수들이 달아난 줄 알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고 하자 바울이 “ 그대는 스스로 몸을 해치지 마시오. 우리가 모두 그대로 있소” (행 16:27-28)라고 하여 간수가 자결하려는 것을 만류한다. 더 나아가 바울은 그 간수가 구원을 받도록 인도한다.